스내커

마침표(The Final Cut)

이제는 장흥아트파크라고 이름이 바뀐, 장흥 조각공원에 다녀 왔다. 그 곳에 ’88년 겨울방학 말, 개학하기 직전에 처음 갔다. 학교에서 지갑을 잃어버린 후 망연자실해 있던 나를 도와준 친구에게 나중에 고맙다고 술 한잔 대접한다고 하자, 그 친구가 술 대신 좋은 곳을 소개시켜 주겠다고 해서 간 곳이 바로 장흥조각공원이었다. 이후 몇 차례 더 놀러 그 곳에를 갔다. 회사 다니면서는 사보 촬영한다고 가기도 했다. 마지막으로는 ’92년도 여름에 갔었다. 그리고 이번에 갔으니 근 20년만에 간 것이다. 작은 전시관들이 많이 생기고, 애들이 조각품을 놀이기구 삼아서 뛰어 놀 수 있고, 도자기 제작 등의 치험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마련하고, 피크닉 벤치까지 한 곳에 자리를 잡아서 가족공원과 같은 형태로 바뀌었다. 예전의 널따랗고 한적하고 사색에 잠기게 하는 공간 시절이 약간 그립기도 했지만, 지금의 가족들의 편안한 예술과 함께 하는 휴식공간도 괜찮았다.

 

그 곳에서 만난 전시중의 하나로 “The Final Cut”이란 제목이 붙은 것이 있었다. 다른 전시회는 신예 작가들 위주였는데, 장흥아트파크의 메인 전시관이라고 할 수 있는 미술관에서 열린 이 전시회에 오니 작가들의 이름이 대체로 낯익다. 무엇보다 아래와 같은 처음 전시회 설명 부분에서 한동안 자리를 뜰 수 없었다. 읽고 또 읽었다.























처음에는 중간 부분의 ‘공통감共通感(Common sense)’라는 말이 확 와 닿았다. 보통 광고나 브랜드에서는 ‘공통감’이란 말은 잘 쓰지 않는다. ‘일체감’이나 ‘공유’ 혹은 ‘공감’을 영어로 ‘Consensus’라는 단어로 주로 표현했다. ‘common sense’는 우리가 정말 상식적으로 ’상식(常識)‘이라고 하지, 여기서 얘기하는 ’공통감‘, 즉 ’구체적이고 이성적으로 표현할 수는 없지만, 감성적으로 느끼고 공감‘한다는 의미로까지 해석하기는 힘들 것 같다. 영영사전을 찾아보았지만, 그런 식으로 쓰인 용례를 찾지 못했다. 영어가 글로벌 언어로 확실하게 자리매김을 하는 시대에 각 지역에서 나름의 특성을 가미한 새로운 영어 단어의 용례들이 생기고는 있지만, 아직 이 ’common sense’는 상식적이지 않은 것 같다.

 

가슴을 콕 찌른 문장은 바로 다음에 있었다. “작가의 마침표가 제때 찍혔는지, 아니면 서둘렀는지 혹은 미뤘는지에 따라 걸작과 태작 그리고 졸작의 구분이 생겨납니다.” 광고를 보면 틀리건 맞건 간에 어떤 과정을 거쳤는지 혼자서 추측을 하게 된다. 보통은 광고에 참여하는 직종에 따라 전략을 맡고 있는 AP(Account Planning) 친구들은 어떻게 컨셉을 잡았는데, 그게 제작으로 넘어가면서 해석이 조금 다르게 되고, 마지막에 광고주의 입김이나 회사의 높은 양반의 한 소리가 어떻게 반영되었는지 대충 그림을 그려본다.

 

결국은 각자 자기 부분에서의 작은 마침표들이 모여서 큰 마침표를 찍게 된다. 큰 마침표가 찍어지면서, 과정에서의 작은 마침표들은 한번 씩 숨을 고르는 쉼표가 된다. 마지막의 큰 마침표가 어떻게 찍혔느냐에 따라서 전시회 설명에서처럼 모든 쉼표들까지 제몫을 한 걸작과 어느 한 두 과정을 건너뛰다시피 한 태작과 대부분의 참가자들이 그저 시간에 쫓기면서 서두르기만 한 졸작들이 구분된다. 각 과정마다의 성과와 기여도가 함께 매겨진다.

 

마지막 문단의 중간에 “이 전시에는 구체적인 스토리를 가진 작품에서 느낄 수 있는 벅찬 감동은 없습니다. 대신 넘치거나 모자라지 않는 완결된 조형미 그리고 그 조형미를 완벽하게 전달하기 위해 필연적인 순간에 마침표를 찍어 완성한 무욕의 경지가 담겨 있습니다”란 부분은 글쎄 겸손이 지나친 것인지, 스토리를 어떻게 해석한 것인지 잘 모르겠지만 좀 아쉽다. ‘완결된 조형미’에는 스토리가 담겨 있어야 한다. 여기서의 스토리는 ‘무욕의 경지’이다. ‘구체적인’, 아마도 겉으로 바로 드러나는 ‘스토리를 가진 작품에서’만 사람들이 벅찬 감동을 느낀다고 하면 감상하러 온 사람들을 너무 무시한 것이나, 지나치게 앞서서 걱정한 것을 너무 솔직하게 표현한 것 같다. ‘포스트모더니즘 시대의 광고’라는 글에서도 썼지만, 사람들이 어떻게 감동을 받아야 하는 것까지 가르쳐 줄 필요는 없다. 감동을 받지 못할까봐 걱정할 이유 없다.

 

‘Laissez-faire!’

‘Let it be!’

‘Que sera sera!’

‘될대로 되라’? 이건 너무 간 것 같다. 

2009년 10월부터 현대기아차그룹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이노션월드와이드 마케팅본부장으로 재임하고 있음.
역사 및 사회의 제반 모습들을 브랜드적으로 해석하는 데 관심이 많고, 그에 관련한 저서 두 권이 있다. '모든 것은 브랜드로 통한다(사회평론,2002)', '브랜드 마인드(사회평론,2004)'. 학부에서는 중국사를 전공했고, 삼성전자 홍보실을 거쳐, 미국 뉴욕대 경영대학원을 졸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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