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18일자 모신문에 실은 글의 원문입니다. 신문에는 기사체로 많이 편집이 되었습니다. 휴가간 친구 하나가 '광고의 공익적인 면을 생각하여 그리 부정적으로만 보지 말라'는 반응을 보였는데, 어쨌든 많이 노출만 되면 최고라는 '노출지상주의'에 걸린듯한 광고주를 비롯한 광고계에 다른 시각을 전해주고 싶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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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자 스토커가 되지는 말자

 햇볕 따사로운 오후에 당신은 대로(大路) 뒤편의 차량 통행도 별로 없는 한가로운 길을 자동차로 달리고 있습니다. 초등학교 하나가 근처에 있는 ‘어린이보호구역’이기는 하지만, 한창 수업이 진행되고 있을 시간입니다. 그 학교에서 공부하고 있는 당신의 어린 아이를 생각하며 괜히 흐뭇해져서 휘파람까지 불면서 여유 있게 핸들을 놀리시는군요. 그런데 “이런!” 갑자기 골목에서인지 어느 곳에서인지 앞쪽 길 한복판에 여자 아이 하나가 공을 쫓아서 뛰어 들어왔습니다.  

가상광고의 악몽 

운전하고 골목을 지날 때의 대표적인 나이트메어, 악몽입니다. ‘끼익’하고 가까스로 브레이크를 잡았습니다만, 차는 하염없이 미끄러지는 것 같고, 놀란 당신은 어찌 할 도리도 없고 순간적으로 눈을 꽉 감아버렸습니다. 차는 멈췄고, 아무 충돌도 일어나지 않아 살며시 눈을 뜬 당신 앞에, 어설프기 짝이 없는 3D로 만든 여자 어린이의 가상화면이 앞에서 공을 주우러 뛰어 나오는 같은 장면을 계속 반복하고 있습니다.

실제가 아니었다는 안도의 한숨을 쉬시겠죠? 그런데 다음 날 똑같은 일이 일어나면 어떨까요? 아마도 놀라거나 긴장하는 정도가 처음보다는 떨어지지 않겠습니까? 어느 날 갑자기 진짜 어린이가 길로 나간 공을 가지러 뛰어들었는데, ‘아, 저것도 가상일거야. 항상 속을 줄 알고!’하면서 비극적인 일이기는 하겠지만, 아무렇지도 않게 휙 지나가버릴 수도 있지 않을까요? 실제 캐나다의 밴쿠버에서 사진에 보이는 것과 같은 가상광고를 9월 중순부터 무작위로 초등학교 근처에서 실행한다고 하는데, 이미 제가 우려한 것과 같은 논란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작게 보면 안전운전에 과연 그 실제와 비슷한 가상광고가 얼마나 효과가 있을 것이냐, 다른 부작용은 없느냐 하는 것에 맞추어져 있습니다. 하지만 이는 넓게 보면 과연 광고의 적절한 노출 및 그 강도와 관련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마이너리티 리포트의 세계는 광고인의 천국인가?

광고인들이 프리젠테이션에서 압도적으로 가장 많이 동영상으로 일부분을 틀어주고, 언급하는 영화가 하나 있습니다. 무엇일까요? 제대로 계산하지는 않았지만 99% 확실하게, 탐 크루즈가 주연한 2002년에 개봉된 <마이너리티 리포트>가 그 답입니다. 영화의 장면 중에서도 탐 크루즈가 백화점 같은 곳을 걸어가는데 계속 광고들이 바로 위에서 얘기한 3D 가상광고처럼 뜨면서 그의 이름을 부릅니다. 그렇게 홀로그램 형식으로 나타나는 광고들은 모두 그가 흥미를 가질 만한 제품이나 브랜드들의 광고입니다. 그 장면들을 동영상으로 보여주던 광고인들은 제가 기억하는 한 모두, 광고가 그렇게 족집게같이 개개인의 특성에 따라 공간적인 한계를 극복하며 실행될 수 있다고 자랑스럽게 얘기했습니다. 즉 기존의 대중화, (시간 및 장소의) 규격화, 일방성의 광고가 과학적인 데이터에 의거하여 개인화, 유연화, 쌍방향의 광고로 진화한다고 얘기했습니다. 그러면서 광고주들도 빨리 돈을 내서 그런 미래에 뒤처지지 말라고 촉구했습니다.

디지털 기술이 미래의 광고를 어떻게 변화시킬 것인가를 얘기하는 세미나 발표 자리에서 개인적으로는 지겹고 식상하게 느껴질 정도로 보았습니다. 그런데 정말 2002년 이후 우리의 광고가 그렇게 변했습니까? 기술이 아직 뒷받침이 되지 않았다고요? 물론 마이너리티 리포트에 나온 것과 같은 개인 데이터를 가지고 있는 광고회사나 광고주는 없습니다. 그러나 감히 제가 얘기하자면 맘만 먹으면 그와 같은 광고 형태를 할 수 있게 하는 데이터는 현재 상태로도 상당 부분 갖출 수 있습니다. 홀로그램으로 공중에 광고 동영상을 띄우는 기술은 구현된 지 몇 년이 됩니다. 사람의 나이를 인식하는 컴퓨터 프로그램의 정확도는 점점 높아지고 있습니다. 그 프로그램에 입고 있는 옷이나 가방과 같은 휴대제품의 상표를 인식하는 장치를 깔면 컴퓨터는 바로 그 사람의 나이와 성향, 대략의 재산 상태까지 파악하여 그에 맞는 광고를 홀로그램으로 쏘게 할 수 있습니다.

덧붙여 휴대전화의 위치인식과 바코드 인식 프로그램과 같은 것이 연결되면 그 정확도는 더욱 더 높아질 수 있습니다. 통신사에서는 가입자의 인구통계학적 자료를 절대 비밀로 취급하지만, 가입자 본인들이 통신사에 가입할 때 쓰는 것보다 훨씬 많은 자신의 정보를 흘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광고인들이 마이너러티 리포트의 그 장면을 트는 것을 볼 때마다 가끔씩 겹쳐서 연상되는 역시 영화의 한 장면이 있습니다. 영화의 주요 무대가 광고회사이어서, 역시 광고인들의 프리젠테이션에 가끔 등장하는 영화입니다. 바로 여자들의 마음의 소리를 들을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된 광고 회사의 직원으로 멜 깁슨이 분하여 열연한 ‘What Women Want'라는 영화의 마지막 장면입니다. 여자들이 원하는 것을 꼭 집어들을 수 있어서, 광고기획자로서 성공하고 사랑까지 획득한 멜 깁슨이 흐뭇한 표정을 짓다가, 백화점 같은 곳에서 수많은 여자들의 거의 아우성치는 소리에 둘러싸여 어쩔 줄 몰라 하는 장면입니다. 멜 깁슨에게 여성들의 그 소리는 그를 성공으로 이끌고, 계속 그것으로 밥을 먹고 살아야 하지만, 그렇게 항상 포위되어서 살 수는 없는 노릇이었습니다. 그러니 꼭 필요하지도 않은 물품들을 사라고 정보를 전하는 광고들을 계속 봐야 하는 사람들은 어떠하겠습니까?

자랑스럽게 광고주들과 미래의 광고인을 꿈꾸는 학생들에게 보여 주곤 했던 마이너리티 리포트의 그 장면들은 사실 뒤집어 보면 광고가 사람들에게 얼마나 귀찮은 존재가 될 것인지를 역설적으로 보여 주는 것들이기도 합니다.

 스토커와 ‘과유불급(過猶不及)’ 

지난 8월30일자 IHT(International Herald Tribune)에 실린 “Web's hard sell : Ads stalk users site to site"란 기사는, 제목처럼 인터넷 사용자가 다니는 사이트를 스토커처럼 쫓아다니며 나타나는 광고 형태에 대해서 소개하고 있습니다. 디지털 기술과 접목하여 광고의 효율을 높인 형태의 앞서가는 형식으로 얘기하는 것 같이 보이기도 하지만, ‘hard'-’무리스런‘-와 ’stalk'-편집증적으로 쫓다-와 같은 단어의 어감이 그렇듯이 우려감을 더욱 강하게 표시하고 있습니다.

올해부터 우리나라에서도 TV 가상광고가 시작되었습니다. 축구 국가대표 선수들이 녹색의 잔디가 아닌 광고판위를 뛰어 다니는 모습을 시청자들은 보게 될 지도 모릅니다. 어찌 보면 제품을 영화나 TV 프로그램 등에 자연스럽게 노출하는 PPL의 확장된 형태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4년전 미국에서는 주요 작가들이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의 이름을 경매에 붙이는 행사를 진행했는데, 어찌 보면 그도 역시 PPL의 한 형태라고 저는 정의내린 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미국 유명 소설가들의 그 행사 얘기를 들으면서 『미국 문화의 몰락(The Twilight of American Culture)』의 저자인 모리스 버만(Morris Berman)과 그의 동료 비평가들의 다음과 같은 말들이 생각났습니다.

-"우리 문화에서는 이미 상업적인 메시지를 담지 않은 빈 공간이 거의 남아 있지 않다."

-"우리는 조용히 있고 싶어도 이를 허용하지 않는 정적을 조직적으로 억누르고 있는 사회에서 살고 있는 것이다"

-"(미국에서) 과장으로 부풀리고 거짓으로 근사하게 치장하지 않고서는 아무것도 성공할 수 없다"
-"문화적 소음 속에서 아이디어를 근사하게 꾸미고 그럴싸하고 화려하게 포장해야만 사람들이 조금이라도 귀를 기울이기 때문이다. 내용은 항상 동일하기 떄문에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내용보다 표어가 중요하고 과장은 필수요소다."

그 짜릿한 비판적 문구와 함께 여백으로 더 크게 얘기하는 리커란(李可染)의 그림도 생각이 났습니다. 그는 목우도(牧牛圖)에서 물을 그리지 않고 여백으로 남겨두면서, 소들의 콧구멍까지 물이 차오른 듯한 효과를 더욱 실감나게 만들어 냅니다. 지나치느니 차라리 미치지 못하는 게 낫다는 ‘과유불급(過猶不及)’, 아무 것도 하지 않으면서 일을 이루어가는 ‘무위지위(無爲之爲)’와 같은 사자성어들을 다시금 되씹어 보게 합니다.

혹시 여러분들은 사람들의 느낌과 반응에 대한 고려 없이, 포위할 듯이 미소한 공간까지도 채우지 못하면 안 될 듯이 이미 달려들고 있는 것은 아니신지 되돌아 보시는 시간을 가져보셨으면 합니다. 저도 광고대행사 수익을 위하여 그렇게만 유도한 것은 아닌지 성찰의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2009년 10월부터 현대기아차그룹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이노션월드와이드 마케팅본부장으로 재임하고 있음.
역사 및 사회의 제반 모습들을 브랜드적으로 해석하는 데 관심이 많고, 그에 관련한 저서 두 권이 있다. '모든 것은 브랜드로 통한다(사회평론,2002)', '브랜드 마인드(사회평론,2004)'. 학부에서는 중국사를 전공했고, 삼성전자 홍보실을 거쳐, 미국 뉴욕대 경영대학원을 졸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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