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내커

강한 자여, 그대 이름은 여성

 모신문에 박스로 처리되어 나온 글이다. 지면 사정상 대폭 줄여서 나왔는데, 원문은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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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한 자여, 그대 이름은 여성! 웃긴 자여, 그대 이름은 남성!

“나는 아침에 일어나 6시 반에강아지를데리고밖에나가운동을시켜야한다…. 나는 아침을 과일 몇 조각으로 때워야 한다. 나는 면도를 해야 하고, 면도 후에는 세면대를 닦아야 한다….나는 당신이 ‘예’라는 대답을 듣길 원하면 ‘예’라고 해야 하고,  ‘아니’라고 하는 소리를 당신이 듣길 싫어하면 입 닥치고 조용히 있어야 한다….나는 당신이 내 친구에 대해서 이러쿵저러쿵 얘기하는 걸 들어야 한다. 나는 당신의 친구가 내 친구를 두고 어쩌고저쩌고 얘기하는 것까지도 들어야 한다….나는 흡혈귀가 나오는 TV드라마를 당신과 함께 봐야 한다….나는 침대에 들어가기 전에 양말을 벗어야 한다. 나는 내 속옷을 빨래통에 제대로 넣어야 한다….”

아마 고개를 끄덕이며 약간은 울분이 어린 동의를 보여줄 남성들이 많을 것 같다. 지난 2월초 미국의 슈퍼보울 경기 중 방영한 ‘남자의 최후 보루(Man’s Last Stand)라는 제목이 붙은 닷쥐(Dodge) 자동차 광고의 일부이다. 활력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이 피곤함이 잔뜩 묻어나는 표정과 흐리멍텅한 눈빛의 30~40대 남성들 하나하나의 얼굴이 화면을 채우는 가운데 위와 같은 나레이션이 나온다. 그 남성들이 위와 같은 상황을 견디는 이유는 딱 하나이다. 바로 자신이 좋아하는 닷지자동차의 차저(Charger)를 타기 위해서 모든 시련(?)을 견딘다며, 광고는 자동차 굉음과 함께 속도감이 한껏 느껴지는 화면과 내용으로 반전(反轉)을 꾀한다. 자동차 하나를 위해서 저렇게까지 모든 것을 참고 희생해야 하는가 남자로서의 삶에 회의가 든다.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한 과장의 단계를 넘어서 남성들이 지나치게 희화화(戱畵化)되지 않았냐는 느낌도 든다. 그런데 이들 닷지의 남자들은 이번 슈퍼보울 광고에서 외롭지 않았다.

휴대용TV인 플로TV 광고의 남성은 여자가 쇼핑한 물품의 짐꾼 역할만 하며, 여자가 물건을 고르는 지겨운 시간들을 무기력하게 참고 견딜 따름이다. 그에게 플로 휴대용 TV는 여성의 쇼핑 짐꾼으로서 기다리는 시간을 즐겁게 해줄 수 있는 구세주와 같은 도구가 된다.

세제용품  도브(Dove)의 남성전용세제인 ‘맨 플러스 케어(Men+Care)’편에서는 남자의 출생부터 청소년기를 거쳐 결혼하여 가정을 이루고 사회생활을 하며 겪는 갖가지 힘들고 어려운 일들을 한 편의 짧은 인생 다큐멘터리처럼 보여 준다. 남성에게는 인생 자체가 악몽과 같다. 그런데 이 모든 인생 고난 역정을 단순히 남성 전용 비누로   목욕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을 통해 기쁨과 위안을 삼으면서 남성은 현실의 악몽에서 벗어나 새롭게 태어난다.

이에 반하여 여성들은 강인하고 심각하다. 미국 보수파 기독교 단체인 ‘가정을 최우선으로 하는 모임(Focus on the Family)’의 낙태반대 광고에서는, 출산 시 합병증을 극복하고 아들(Tim Tebow)을 낳아 미 대학 풋볼스타로 성공시킨 강인한 어머니(Pam)의 이야기를 감동 있게 그려낸다. 그러다 난데없이 달려든 아들이 장난스럽게도 어머니를 태클로 넘어뜨리는 어처구니없는 모습으로 나타난다. 상황에 어울리지 않게 등장한 아들이 광고의 완성도와 감동을 일거에 무너뜨렸다는 평가를 받았다. 물론 광고제작자들이 그렇게 꾸민 것이기는 하지만.

언제나 유머러스한 광고를 내놓는 버드라이트(Bud Light) 맥주는 이번에도 예외가 아니었다. 마을로 들어오는 다리가 끊어지고, 사람들이 표류하여 무인도에 고립되는 상황을 설정했다. ‘모두 힘을 합쳐 다리를 잇자’, ‘섬을 빠져 나갈 수 있게 가능한 자원을 모아서 도구를 만들어 보자’고 상황을 타개하려 여성들이 나서지만 남성들은 그런 심각한 문제에 관심이 없다. 그러다가 버드라이트 맥주를 실은 차가 다리가 끊어져 들어오지 못한다는 말에 만사 제치고 나선다. 또 무인도에서는 파도에 밀려온 버드라이트가 들은 냉장고를 발견하고는 섬을 나갈 생각은 잊고 버드라이트와 함께 순간을 즐기기에 바쁘다. 철없는 남성들이여!

한국에서도 근래 연예계와 광고에서 과거의 마초류의 남성을 위한 자리는 점점 좁아지고 있다. 진지한 가부장으로서의 역할을 담당하는 중년 이상의 남성 배우를 이제 찾기 힘들다. 다수의 출연자가 등장하는 소위 토크가 어우러지는 예능 프로에서 남성들은 코믹한 중년과 귀염 떠는 아이돌의 두 부류로 확연히 나누어진다. 광고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스포츠, 배우, 가수의 출신 분야별 광고의 절대 지존을 모두 여성들이 차지하고 있다. 예전의 안성기, 장동건과같은무게있는남성적인광고모델은어디에갔는가?

불쌍하고 희화화된 남성들이 광고에 많이 나타나고는 있지만, 실제 생활에서 여성들의 모습도 사실은 별반 그리 다르지 않다. 닷지자동차 광고가 슈퍼보울 경기중계를 통하여 방영된 그 날 광고계에 종사하는 일군의 여성들이 모여서 ‘여자의 최후 보루(Woman’s Last Stand)’라는 제목으로 패로디 광고물을 만들었다. 화면과 흐름이 똑 같은 가운데, 여성의 생활을 여성 관점에서 얘기하는 나레이션이 흐른다.

“나는 아침에 일어나 6시 반에 당신 점심을 싼다. 나는 자몽 반쪽을 아침으로 먹는다. 나는 애들 등교 채비를 해준다. 나는 악취를 풍기며 거실 침대에 쓰러져 있는 당신의 친구를 애써 못 본 척 한다… 나는 똑 같은 일을 하면서도 당신이 1달러를 받는데 75센트 밖에 받지 못한다….나는 다이어트도 해야 하고, 보톡스도 맞고, 털도 밀어야만 한다….나는 당신의 아이들을 키우기 위하여 내 커리어를 접었다….나는 뚱뚱하고 멍청하고 못생긴 남자들이 멋진 여성들을 부인으로 두고 있는 TV 드라마들을 봐야 한다….”

뜨끔하다. 그래도 이 여자들은 다음과 같이 남자들의 허물을 눈감아주는 관용을 발휘한다. 이 시대는 여성이 진정한 강자라는 증거로 내게는 들렸다.

“나는 물건 크기 따위는 문제될 것 없다고 당신을 안심시킨다….나는 당신의 앞머리가 어느새 훌떡 벗겨져 대머리가 된 것을 알아채지 못한 것처럼 행동한다….나는 당신이 TV드라마를 보고 우는 것을 못 본 척한다….남성다움을 잃고 축 쳐져 있는 당신과 같은 남성들을 슈퍼보울 광고에서 보니 참으로 안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2009년 10월부터 현대기아차그룹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이노션월드와이드 마케팅본부장으로 재임하고 있음.
역사 및 사회의 제반 모습들을 브랜드적으로 해석하는 데 관심이 많고, 그에 관련한 저서 두 권이 있다. '모든 것은 브랜드로 통한다(사회평론,2002)', '브랜드 마인드(사회평론,2004)'. 학부에서는 중국사를 전공했고, 삼성전자 홍보실을 거쳐, 미국 뉴욕대 경영대학원을 졸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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