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내커

앵무새와 광고인

광고인 생활 10년 정도를 맞이하여, 광고계 내에서 의욕적인 변신을 시도하려는데 건강에 문제가 생기고, 그러다 보니 자신감까지 잃어가는 듯한 모습을 보인 후배가 있었다. 그 후배에게 현대 광고의 아버지라고 불러도 별 무리가 가지 않는 데이비드 오길비란 전설적인 광고인의 <나는 광고로 세상을 움직였다>(강두필 역, 다산북스, 2008)를 주며 읽어 보라고 했다. ‘80~’90년대에 광고인들의 필독서였던 <어느 광고인의 고백>을 개정 증보하여 낸 책이다. 

38세에 광고계에 입문한 데이비드 오길비를 생각하면서 첫째 조급해 하지 말고, 둘째 자기 멋이 아닌 소비자를 움직여 제품을 사도록 만들어야 한다는 광고의 기본을 다시 생각해 보고, 마지막으로 무엇보다 제목에서처럼 광고로 세상을 움직여보겠다는 큰 꿈을 새롭게 가져 보라는 의미에서 그 책을 건넸다. 어느 정도 몸이 회복되어 업무에 복귀하며 인사를 하러 온 그 친구가 페이퍼백 형태의 작은 책인 <플로베르의 앵무새>(줄리언 반스 지음, 신재실 역, 열린 책들, 2005)-원제는 <Flaubert’s Parrot>-를 답례로 전해 주었다. 크리에이티브 분야에서 최고로 인정을 받고 있는 우리 공통의 선배 한 분에게도 예전에 같은 책을 선물했다는 말을 덧붙였다.


귀스타브 플로베르(Gustave Flaubert)는 나에게 친숙한 작가는 아니다. <보바리 부인>이란 그의 가장 널리 알려진 작품을 고등학교 때 다이제스트 판으로 읽었을 뿐이었다. 내용을 떠나 당시 막 유행하기 시작했던 ‘~부인’ 시리즈와 결부된 ‘간통’ 혹은 ‘불륜’이란 민감한 소재의 대표작이라는 것만 기억에 남아 있었다. 실제 이 책을 읽으면서 초반에 플로베르를 역시 제대로 읽지 않은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작가인 마르셀 푸르스트(Marcel Proust)로 착각했다. 그래서 젊었을 때 플로베르가 매음굴에 들락거렸고, 여성 관계가 복잡했으며, 결국 매독에 걸렸고, 그 여파로 대머리에 곰 같은 전형적인 배가 불룩 나온 부르죠아의 몸매가 되었다는 대목에서 무척 당황을 했다. 평생을 병약하여 요양자 신세를 벗어나지 못했던 내가 알고 있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푸르스트와 너무나 다른 인생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평생을 두고 한 작품에만 매달렸다는 내 기억과 달리 여러 작품들 얘기가 나왔다.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읽는데 23쪽에 가서야 <보바리 부인>이 작품으로서 그 이름을 드러내면서 내가 착각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 플로베르가 책상 위에 두었다는 박제 앵무새에서 이 소설은 출발한다. 그 앵무새를 찾아 나선 아마추어 플로베르 연구자인 영국인 의사의 며칠간에 걸친 여정을 여러 가지 방식으로 기술한 작품이다. 왜 앵무새였을까? ‘앵무새’가 들어간 책 제목을 보는 순간부터 중학교 시절의 유치한 농담 하나와 리영희 선생의 서글픈 이야기가 생각났다. 먼저 지금 20대 분들에게는 이름도 낯선 배우들이 등장하는 70년대말의 농담.

섹스 심볼로 유명한 여배우 마릴린 먼로가 앵무새를 하나 키우고 있었다. 먼로가 샤워하는 것을 본 앵무새가 계속 지껄였다. “나는 봤다, 나는 봤다….” 조용히 하라고 했는데도 계속 그렇게 떠들어대자 먼로가 화가 나서 앵무새 머리의 털을 쫙 밀어버렸다. 그런데 바로 다음 날 대머리로 유명한 배우인 율 브리너가 먼로의 집에 놀러 왔다. 그러자 앵무새가 지껄였다. “너도 봤니? 너도 봤니?….” 

남의 목소리가 아닌 자신의 얘기를 하는 앵무새는 머리를 깎이는 처벌을 받아야 한다는, 앵무새가 가지는 본질적인 한계를 통속적이고 유치한 도구와 틀을 이용하여 보여준 농담이라고 의미를 담아 해석하고 싶다. 리영희 선생은 ‘소총 위에 올라앉은 앵무새’ 모양의 통역병과 배지에 대해 ‘아무런 자율적 사고나 자발적 행동이나 창의적 구상 같은 것이 허용되지 않는’, ‘주견 없이 남의 말을 따라 하는’, ‘비주체적·비자율적·비실존적 존재’로서 통역이 가진 한계를 형상화한 것으로 여겨서 다음과 같이 씁쓰레하게 추정하기도 했다. 

“육군본부 어딘가에 있는 무식한 전투병과 장교들의 악의에 찬 발상인 것 같았다. 어쩌면 군대 내의 허약한 인텔리 집단을 모욕하려는 기막히게 교활한 자의 창작이었는지도 모른다.”  

앵무새가 통역을 상징한 사례는 고대로까지 올라간다. <플로베르의 앵무새>라는 책에도 언급되었지만, 상업으로 유명했던 카르타고의 통역들은 가슴에 앵무새 문신을 새기고 있었다고 한다. ‘한·영’과 같이 한 가지 언어만 할 줄 알면 날개를 접은 앵무새를, ‘한·영·중’하는 식으로 몇 개 언어를 통역하면 날개를 편 앵무새를 가슴에 새겼다고 한다. 그들 카르타고의 통역들은 일체의 노역을 면제받았다며 그들을 특권계급처럼 해석하려는 사람들이 있다. 그 특권은 바로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는 것을 희생하는 것에 대한 보상이라고 해석하고 싶다.  

조선시대 역관들은 중인(中人)이었다. 어릴 때부터 동시통역사를 꿈꾸다가 ‘80년대말에 동시통역대학원에 입학하고, 졸업 후에 한국을 대표하는 동시통역사로 날렸던 한 선배가 술을 마시고는 농담반진담반으로 “신분상승의 꿈을 안고 죽을동살동 공부하여 이름을 떨쳤는데, 그래봤자 ‘중인’이다. 유리천장처럼 막혀 있는 신분상승의 길에 보상을 받을 수 있는 건 돈을 버는 것 밖에 없어. 이제 돈 버는 길로 가련다”라더니, 기업체로 들어갔었다. 조선시대 역관 출신 중에도 부자들이 많았다. 물론 중국이나 외국과의 교류를 통하여 대외 사정에 밝고, 상대적으로 잇속을 차릴 수 있는 기회를 움켜잡는데 제약이 덜한 신분의 이점도 있었으나 결국은 자신의 소리를 내지 못하는 것에 대한 암묵적인 보상의 일종이라고 해석할 수도 있다.  

자신의 소리를 제대로 내지 못하는 것. 소리를 낸다고 해도 어떻게든 왜곡될 수밖에 없는 앵무새와 같은 존재로 줄리언 반스는 하필이면 광고를 하나의 예로 든다. 어느 잡지에 나온 친구나 배우자를 구하는 광고를 두고 줄리언 반스는 다음과 같이 얘기한다.  

나는 잡지의 뒤쪽에 실린 이런 광고들을 항상 읽는다. 하지만 한번도 편지를 보낼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리고 이제 막 이유를 깨달았다. 광고내용을 하나도 믿지 않기 때문이다. 광고를 한 사람들이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실제로 그들 모두는 아주 진지해지려고 노력한다. -그러나 그들은 진실을 말하고 있지는 않다. 광고란은 광고자들이 자기 자신을 소개하는 방법을 왜곡시키고 있는 것이다.(중략)

아무리 애를 쓰더라도 광고를 내는 사람은 광고라는 그 형식에 항상 두들겨 맞기 마련이다. 그가 솔직히 자신의 개성을 광고에 표현할 필요가 있을 때조차, 그는 광고의 형식에 얽매여 바라지도 않는 비개성적인 인물이 될 수밖에 없게 된다.  

광고 공간으로 제공되는 ‘광고란’ 매체의 종류를 말하는 ‘광고의 형식’은 ‘광고를 내는 사람’이 전하고 싶은 본래의 의미가 거쳐야 하는 필터(filter)요 전달되는 통로가 된다. 그 과정의 안내자가 바로 광고인이다. 곧 광고인은 광고하고자 하는 제품의 언어를 소비자의 언어로 바꾸어 그들이 상호 의사교환을 하도록 매개하는 통역과 같은 역할을 한다. 어떻게 해도 원래 의도했던 의미를 100% 전달할 수는 없다. 인식의 갭이 생기기 마련이다. 그 갭을 조금이라도 줄이고자 할 때, 진실이 더욱 왜곡될 확률이 커지고, 광고인은 마릴린 먼로의 농담에 나온 앵무새처럼 처벌을 받게 된다.

 

처음 플로베르가 집필을 할 때 책상 위에 놓여 있던 박제된 앵무새 한 마리로 촉발되었던, 소설 속 주인공의 여정이 끝날 때 들른 박물관에서 그는 세 마리의 박제 앵무새 앞에 서게 된다. 그것도 원래 50마리가 있었는데, 그나마 남은 것이라고 했다. 주인공은 그 세 마리 중의 하나가 바로 플로베르가 책상 위에 두었던 그 앵무새 중의 하나라고 생각한다. 그에 대하여 어느 누구도 확신할 수 없다. 그저 믿거나 반대할 뿐이다. 긴 여정의 마지막에 나타난 여러 앵무새 중의 하나가 바로 자신이 찾던 것이라고 믿게 만드는 그 과정 자체가 가장 큰 의미를 담고 있다. 

광고란 것도 정답을 찾는 것이 아닌, 정답이라고 믿도록 만드는 과정이 아닌가 싶다. 지나치게 직설적으로 행동하고 외치는 광고인들은 처벌을 받게 된다. 아마도 광고주와 소비자 양쪽에서 짓눌려 쓰레기통에 버려지는 신세가 될 것이다. 광고의 세계는 광고주와 소비자가 양쪽 끝에 자리 잡은 퍼즐판과 같다. 그 둘은 서로를 이어주는 다리를 구성하는 퍼즐 조각들만이 필요하다. 그런데 수많은 퍼즐 조각들에서 다리를 구성하는 것들만 바로바로 집어서 놓을 수는 없다. 퍼즐판의 큰 그림들이 어느 정도 완성이 되어야 연결하는 다리가 어슴프레 윤곽을 드러낸다. 어떤 때는 다리 자체가 퍼즐판의 밑그림 속에 없을 수도 있다. 그럼 광고인이란 뭘 하는 존재인가? 그럴 때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들이 가지는 가치란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그리고 처음으로 돌아가서 그 후배는 내게 왜 이 책을 주었단 말인가? 바로 위의 질문들에 대한 대답들과 함께 대략 알 듯도 하다. (계속)

2009년 10월부터 현대기아차그룹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이노션월드와이드 마케팅본부장으로 재임하고 있음.
역사 및 사회의 제반 모습들을 브랜드적으로 해석하는 데 관심이 많고, 그에 관련한 저서 두 권이 있다. '모든 것은 브랜드로 통한다(사회평론,2002)', '브랜드 마인드(사회평론,2004)'. 학부에서는 중국사를 전공했고, 삼성전자 홍보실을 거쳐, 미국 뉴욕대 경영대학원을 졸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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