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월간마케팅> 2010년 4월호 게재원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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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랜드 관점에서 본 도요타의 문제

지난 2007년은 명실상부하게 일본의 도요타(豊田)자동차가 세계 최대의 자동차 기업으로 GM을 제치는 원년이 된다. 오일쇼크 이후 일본 자동차들의 약진이 세계시장에서, 특히 미국시장에서 두드러진 것은 사실이나, 일본 자동차들의 명성이란 JIT(Just-In-Time)이나 간판시스템과 같은 포드자동차와 같이 생산기술에서의 우위가 바탕이 되었다. 거기에 연비를 주요한 구매준거로 따지게 된 소비자들의 변화한 욕구를 맞추게 된 마케팅에서의 경쟁우위도 자연스럽게 따라갔다. 그러나 새로운 경쟁우위요소를 갖추며 90년대말까지 절대적인 시대의 강자로 군림한 것은 일본자동차 기업들이 아니었다.

- <월간마케팅> 2008년 1월호, ‘기업브랜드를 위하여’ 중에서 - 

이어서 감성적 가치를 지닌 브랜드의 진면목을 보여준 BMW와 벤츠에 대해 얘기를 하였다. 그런 주로 독일산의 자동차 브랜드의 절대 강자들을 어떻게 물리치고 도요타가 1위의 자리에 올랐는지 그 다음 호에서 살펴보았다.  

도요타의 성공 요인으로는 최근 경영관련 최고의 화제어 중의 하나인 ‘가이젠(改善)’이나 유서 깊은 ‘JIT(Just In Time)' 등의 생산방식에서의 경쟁우위도 있지만, 생산 외의 부문에서도 이전의 자동차 기업들과는 다른 무언가를 발견할 수 있다. 도요타의 경우 다른 어느 자동차 기업보다도 하이브리드(Hybrid) 자동차 개발에 앞장서면서 ’환경‘ 부문에서 독보적인 이미지를 구축하였고, 생산시설이 진출하여 있는 미국 시장에서 지역사회와의 화합을 강조하면서 바로 감성적인 브랜드 이상의 사회의 일원으로서 기업 전체의 가치를 올리는 작업에서 다른 기업들에 앞서는 모습을 보여 왔다. ’사회적인 존재로서 기업에 대한 소비자 및 다른 사회 일원들의 평가와 부여하는 가치‘ 부문에서 도요타는 경쟁우위를 점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는데, 이것이 바로 ’기업평판(Corporate Reputation)'이고, 지난 호의 ‘생산기술-> 마케팅->브랜드’에 이은 제 4의 경쟁요소로 대두하였다.

- <월간마케팅> 2008년 2월호, ‘기업브랜드를 위하여(3) 중에서 -

 

브랜드의 한계를 지닌 1위 기업

 



그림과 같이 기업의 핵심경쟁요소가 변해왔는데, 도요타는 제조기술부터 라인업과 연비와 같이 시대적 트렌드를 읽고 적용하는 마케팅, ‘품질의 도요타’라는 소비자들의 믿음을 얻는 브랜드라는 단계를 차근차근 성과를 축적해 왔다고 보았다. 그 3단계까지 다른 기업들을 쫓아가는 입장이었던 도요타는 마침내 사회적 존재로서 자리를 매겨 ‘기업평판’이란 측면에서는 앞서서 공격적으로 그 길을 개척하여 1위의 자리에 올랐다는 평가를 내렸다.

문제는 ‘품질’이라는 자신의 영역을 공고히 한 것까지는 좋았는데, 그 ‘품질’이 이성적인 기준에 바탕을 두었다는 것이다. 자동차 성능과 내구성에 대한 믿음을 주기에는 다른 경쟁자들을 압도하고, 자동차 산업 내에서도 제조 기술부터 납품업체의 관리까지 최고의 효율성을 자랑하는 존재임을 어느 누구도 부인 할 수 없었다. 사람, 그 중에서도 학생으로 따지면 최고의 우등생이었다. 시험 성적이나 자원봉사까지 필요한 모든 스펙을 갖춘 완벽한 모범생이었다. 그런데 딱 거기까지였다.

‘얄미운 우등생’. ‘90년대 중반부터 삼성의 이미지 조사를 한국에서 하면, 약간씩 다른 표현을 쓰기는 했지만 한결같이 ’얄미운 우등생‘이란 두 단어로 집약되었다. 지금도 삼성 내부에서 기업 브랜드와 관련한 삼성의 과제를 얘기할 때는 여러 사람들 입에서 위의 표현이 나오곤 한다. 미국인에게 비친 도요타가 그런 모습이었다. 흠 잡을 데 없이 건실한 데, 서로 속마음을 보여주는 친구 사이로 발전하기까지는 너무나 흠이 없어서 꺼려지는 그런 관계였다.

도요타와 함께 일본 자동차 업계를 대표하는 혼다(Honda)는 오토바이로 미국 시장을 공략할 때 “좋은 사람들은 혼다를 탑니다(You meet the nicest people on a Honda)"라는 광고로 화제를 불러 일으켰다. 실제 매출도 따라 주어 혼다는 소형 오토바이 시장에서 60% 이상의 점유율을 올렸다. 혼다가 처음부터 의도한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데, ‘좋은 사람들’ 광고 캠페인이 성공하게 된 배경이 있다.  

애호와 열광을 이끌어내지 못한 브랜드 

1946년 7월 4일 캘리포니아의 홀리스터(Hollister)라는 작은 도시에서 폭주족 4천여명이 모여서 연례경주대회를 열었다. 기록에 의하면 폭주족 단체의 시조격인 주로 2차 대전 퇴역군인들로 구성된 POBOB(블루밍턴의 열받은 녀석들)이 주최를 하고 몇몇 갱단들이 함께 모였다. 그런데 행사 도중 이유가 잘 알려지지 않은 채로 폭주족 한 명이 체포되는 사건이 발생했고, 나머지 4천여명의 폭주족들이 그를 빼내오기 위하여 감옥으로 돌입하는 폭동과 같은 현상이 벌어졌다. 이 소동을 ‘홀리스터 폭동사건’(Hollister Riot)이라고 한다.

이는 폭주족이 미국 전역에 그 이름과 존재를 떨친 큰 충격을 준 사건이었다. 이 사건에 대한 의견 표명 요청을 받은 ‘전미 모터사이클협회(AMA : American Mocycle Association)'에서는 이렇게 대답을 했다.

“99% motorcyclists were law-abiding citizens, and the last one percent were outlaws(99%의 모터사이클 애호가들은 법을 지키는 시민들이고 단지 나머지 1%만이 법을 어기는 작자들이다).”

이 말이 나온 이후 폭주족들은 모두 자신을 나머지 1%로 생각하게 되었다. 그리고 보통의 시민들도 1%에 들어가고 싶어 했다. 아니면 최소한 모터사이클을 탈 때만이라도 괜한 욕도 하고 싸움도 걸고, 여자들에게 치근덕거리면서 범법자가 되고 싶어 했다. 원래의 의도와는 달리 무뢰한 집단으로서 폭주족들의 성가와 인기를 높여주는 역할을 했던 언급이 되어버린 것이다. 실제로 여러 폭주족 단체에서는 다이아몬드 모양의 패치 안에 ‘1%’라는 글자를 새겨서 자신들의 가죽점퍼에 붙이거나 같은 모양으로 문신을 새겨서, 사회 일탈자로서의 자신들의 상징으로 사용을 했다다. 그리고 아예 그런 사회 일탈자로서 ‘원 퍼센터(One percenter)'라는 새로운 단어가 생겼다.

혼다는 그 1%의 일탈을 위한 오토바이가 아닌 99%를 차지하는 건실한 생활의 동반자로서의 오토바이 시장을 만들었고, 성공을 거두었다. 그러나 브랜드적으로는 꿈을 꾸게 하고 열망을 불러일으키는 단계로 발전할 수 없는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었다. ‘상식’, ‘일상’, ‘모범’이 꼬리표로 붙어 버린 것이다. 혼다가 아시모(Asimo) 로봇을 개발하고 광고의 주역으로 활용하는 데는 기술력을 알리려고 하는 면도 있지만, ‘꿈’, ‘재미’, ‘친근’과 같이 자신에게 부족했던 브랜드 요소들을 강화하려는 의도도 있다고 본다.

도요타는 혼다의 아시모와 같은 그런 시도가 없었다. 전통적인 자동차 산업 내에서 효율성이란 잣대에 맞추어 자신의 길을 걸어왔을 뿐이다. 그 효율이란 이성적인 잣대는 소비자와의 관계에서도 상호간에 그대로 적용되었다. 지극히 합리적이고 계산적인 관계가 형성되었고, 문제가 터지자 그 관계는 무관심하거나 아예 등을 돌려 버리는 식이 되었다. 도요타는 ‘애호(Advocate)'와 ’열광(Mania)'을 이끌어내는 브랜드 감성 부분에서 취약했던 것이다.

1위의 부담 

도요타가 미국인들의 감정선을 자극하며 그들의 가슴 속으로 깊이 들어간 경우는 있었다. 바로 렉서스가 출현 했을 때이다. 자동차 딜러가 악덕 변호사와 사기꾼의 중간 정도로 인식되는 미국에서 소비자들은 렉서스를 통하여 질적으로 차원이 다른 서비스를 맛보았다. 차를 판매한 한 달 후에 고객에게 전화를 해서 차에 문제가 없는지 알아보고 도와줄 것을 묻는 판매후 서비스에 감동했다는 미국인들을 몇 명 개인적으로 보기도 했다. 그런데 많은 독립 브랜드의 속성이자 한계이기도 하지만 렉서스의 감동이 모기업 브랜드인 도요타로까지 충분히 전이되지는 않았다. 게다가 도요타가 그런 렉서스의 ‘감동의 서비스’를 자신의 것으로 확고히 하지 못한 상태에서 다른 경쟁자들이 그들의 서비스 수준을 끌어올려, 렉서스 식 서비스를 업계 표준으로 만들어 버렸다. 다른 경쟁자들과 구별되는 보다 친밀한 관계를 소비자들과 맺을 수 있는 기회를 놓친 것이다.
제 4의 경쟁요소로 꼽은 ‘기업 평판’에서 도요타는 ‘지역 밀착’과 ‘환경’이란 가장 핵심적인 두 축을 선점하였다. 광고로 외치기만 한 것이 아니라 실체가 뒷받침되었다. 미국에만 8개 공장이 있어서 지역의 고용 창출에 지대한 공헌을 하고 있다. 도요타는 ‘친환경 하이브리드’란 수식어가 항상 붙는 프리우스(Prius)를 본격적으로 양산하기 이전부터 ‘하이브리드'와 ’환경친화‘를 한 묶음으로 자신의 전유물과 같이 만들었다.

자동차는 기본적으로 친환경적인 제품이 아니다. 하이브리드는 그런 자동차의 한계 내에서 가장 친환경적인 기술로 부각되었다. 그 하이브리드의 창시자이자 주도자가 바로 도요타였다. 그런데 초기의 하이브리드 기술과 제품에 대한 열광이 사그러지며 그에 대한 반작용으로 원죄와도 같이 자동차가 야기하는 환경문제가 이슈로 제기되면서 도요타는 불완전한 친환경제품으로 환경문제를 완전히 해결한 것처럼 소비자를 호도하는 기업으로 인식되는 부담을 갖게 되었다. 리콜 사태가 시작된 이후의 페달 생산업체와의 책임 공방과 과정에서 들추어진 전방위적인 로비 등은 뭔가 흑막이 있는 기업으로서 도요타의 이미지를 부각시켰다.

도요타가 1위 자동차 기업으로 등극을 눈앞에 두고 있었던 2006년 4월, 나이키의 홍보 책임자가 도요타 미국법인에 가서 1위 기업으로서 주의할 점에 관한 강의를 했다. 왕년의 인기 그룹인 ‘쓰리 독 나이트(Three dog night)의 인기곡에서 따온 그 강의 제목이 대단히 의미심장하다.  

“One is the Loneliest Number You'll Ever Do." 

그 외로움과 힘겨움을 도요타는 뼈저리게 느끼고 있을 것이다.
2009년 10월부터 현대기아차그룹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이노션월드와이드 마케팅본부장으로 재임하고 있음.
역사 및 사회의 제반 모습들을 브랜드적으로 해석하는 데 관심이 많고, 그에 관련한 저서 두 권이 있다. '모든 것은 브랜드로 통한다(사회평론,2002)', '브랜드 마인드(사회평론,2004)'. 학부에서는 중국사를 전공했고, 삼성전자 홍보실을 거쳐, 미국 뉴욕대 경영대학원을 졸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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