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내커

Tales of Two Peters-(1)너무나 다르고 같은 두 피터

“아넬, 그 놈은 정말 나쁜 새끼야. 우리 집 화장실 청소하는 것도 그 새끼한테는 과분해(Arnell is bullshit. He is not even qualified enough to clean my toilet).”

가끔씩 입이 건 편이기는 했지만, 피터 김(Peter Kim)은 그와 같은 퍼스트네임을 가진 피터 아넬(Peter Arnell) 이야기만 나오면 흥분하여 상소리를 해대곤 했다. 위의 말은 술자리에서 약간 취기가 올라서 하기 시작했는데, 나중에는 때를 가리지 않고 꽤 자주 들었던 것 같다.

피터 김은 미국광고계에 혜성처럼 나타났다가 전설이 되어 사라진 인물이다. 졸저 <모든 것은 브랜드로 통한다>(사회평론, 2002)에 그와의 인연에 관하여 실은 바가 있다. 그리고 2004년에 낸 <브랜드 마인드>에는 그 피터 김의 화장실 청소 자리도 과분하고 제대로 못해낼 거라고 욕을 먹은 피터 아넬과의 개인적인 경험과 평을 실었다. 1980년 이후 미국광고계를 얘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두 인물과 개인적으로 함께 일하고 놀고 얘기할 수 있었던 것은 귀중하고 유익한 경험이었다. 내 자신이 다른 광고하는 사람들과 차별화되는 한 요소가 될 정도이다.

이 두 피터는 너무 다르다. 피터 김(1959년생)은 외교관인 아버지를 따라 어릴 때부터 세계 각지를 돌아다니며 살았다. 16세에 뉴욕대학교에 입학하여, 20세에는 이미 그와 비슷한 나이의 학생들을 대상으로 강의를 시작했다. 26세에 미국문화와 사회의 근본적인 흐름을 연구하는 역할을 맡아 광고회사인 JWT에 들어간 그는 20대에 임원이 되고, 32세에는 당시 세계 최대의 광고회사였던 맥캔에릭슨(McCann Ericcson)의 이사회 멤버가 된다. 우리네로 치면 등기임원이 된 셈이다. 그리고 34세에는 맥캔에릭슨의 부회장이 되면서 2인자가 되어 있었다. 그러나 1997년 그는 갑자기 맥캔에릭슨에서 쫓겨난다. 그 배경과 이유를 술자리에서 물어본 적이 있는데, 뭔가 당연히 광고주까지 엮여져서 정치적으로 얽힌 문제가 있다는 것만을 들었다. 이후 그는 자신의 독자회사인 ‘Bright Sun’을 창립하여 광고계의 무서운 아이로 한창 발돋움을 하다가 2000년 심장마비로 급사(急死)했다.

피터 아넬은 동부 유럽 출신의 이민자들이 모여 살던 뉴욕 브루클린(Brooklyn) 출신으로 그 곳에서 고등학교까지 마쳤다. 이후 여러 가지 직업을 전전하다가 우연히 포스트모더니즘 건축가로 유명한 마이클 그레이브스(Michael Graves)의 강의를 듣고, 그를 찾아가서 인턴으로 그의 사무실에서 일을 하게 된다. 건축 일을 하면서 찍은 사진과 동료와 낸 책이 주목을 받으면서 1980년대 초에 광고계로 입문을 하게 된다. 그리고 ‘80년대 초 당시 앤 클라인의 디자이너였다가 독립을 시도한 도나 카랜(Donna Karan)을 만나 독창적인 로고 및 카탈로그, 광고 등으로 성공에 기여하면 광고계의 총아로 떠오르게 된다. 이후 결정적으로 도나 카랜의 보급형 브랜드인 ’DKNY’는 그를 미국광고계의 이단아이면서도 최고의 뉴스메이커 중의 하나로 만들었다.

이후 리복(Reebok) 슈퍼보울 광고 등으로 이름을 지속적으로 날린 그는 올해도 여러 가지로 언론에 자주 등장하고 있다. 우선은 펩시와 펩시의 계열 회사 중의 하나인 트로피카나의 로고와 용기를 바꾸었다가 거의 전방위적으로 몰매를 맞고 트로피카나는 결국 예전의 로고와 용기로 돌아갔다. 피터 아넬이 제시한 펩시의 새 로고의 생명도 그리 길지는 않을 것 같다. 그리고 또 하나 올해 언론에 그가 가장 많이 노출된 것은 광고를 떠나 산업디자이너로서 크라이슬러의 도시형 소형전기자동차인 ‘Peapod’ 프로젝트를 책임지면서였다. 이 크라이슬러의 ’Peapod’은 미국 NBC방송의 ‘Today Show’, 그 유명한 마싸 스튜어트(Martha Steward)의 쇼에서 그 콧대 높은 친구들이 홈쇼핑 호스트 역할을 하면서 띄어주려 애를 쓸 정도로 화려하게 모습을 나타냈다. 물론 피터 아넬도 함께. 피터 아넬의 개인적인 인맥이 큰 역할을 했을 것이다. 그는 원래 유명인과 인맥을 쌓는 데는 거의 천부적인 소질을 가지고 있고, 무엇보다 어느 누구도 감동시킬만한 최고의 정성과 잊지 못할 퍼포먼스를 보여준다. 예전에는 200Kg에 육박한 그의 몸 자체가 잊지 못할 인상을 남겨주었는데, 이제는 100Kg 이상 줄여서 날씬해진 몸이 예전과 대비되어 사람들에게 강한 인상을 심는다 

피터 아넬의 가장 심각한 문제는 유명인사나 자신에게 필요한 사람에게는 온 정성을 다 기울이는데 비하여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철저히 무시하고 그에 대하여 개의치 않는 태도를 보이는 것이 마치 자신의 특별함을 드러내는 것인냥 생각한다는 것이다. 자신에게는 치명상이 될 수 있었던 자신이 주도했던 트로피카나 로고와 포장 교체작업이 결국 원상복귀된 올해 초의 트로피카나 대소동에 관해서 묻는 기자에게 피터 아넬은 이런 말을 했다. 

“완전 개판이 되어버린 트로피카나 브랜딩 작업에 대해서 내 나름대로 생각하고 판단하는 게 있지. 근데 그건 내 브랜드가 아니야. 내 회사도 아니야. 그러니 어쩌겠어? 난 이미 트로피카나에게서 돈 많이 받았고, 거기 말고도 30개 이상 클라이언트가 줄서서 기다리고 있다고. (I have my own perspective on it [the disastrous rebranding of Tropicana orange juice]. But it’s not my brand. It’s not my company. So what the hell? I got paid a lot of money, and I have 30 other projects.)”

그에 비하여 항상 벼랑 끝까지 자신을 내몰며 일을 하고 클라이언트를 상대한다는 피터 김의 말은 완연 다르다.  

“나는 매일매일 밀려 나갈지 모르는 벼랑 끝에 서 있어.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면 내 일을 제대로 하지 않고 있는 거야. 한계를 넘는 도전을 멈추는 순간, 나는 실패한 인생이 되는 거지(I’m on the verge of being fired everyday. If I’m not I’m not doing my job. If I cease to push the envelope, I’ve failed).” 

둘의 말에서 느낄 수 있는 차이가 그들 둘의 특히, 피터 김의 피터 아넬에 대한 경멸의 원인이 되었다. 실제 그들이 문제를 정의하고, 해결책을 찾기 위해 접근하여 내놓는 방식도 너무나 다르다. 이들이 실제 문제를 푸는데 어떻게 다르고, 또 어떤 점이 같은지는 다음에 올릴 글에서 풀어나가겠다. 그들 두 명의 인간성 부분에서도 공통점과 차이점을 찾아 보도록 하겠다.

2009년 10월부터 현대기아차그룹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이노션월드와이드 마케팅본부장으로 재임하고 있음.
역사 및 사회의 제반 모습들을 브랜드적으로 해석하는 데 관심이 많고, 그에 관련한 저서 두 권이 있다. '모든 것은 브랜드로 통한다(사회평론,2002)', '브랜드 마인드(사회평론,2004)'. 학부에서는 중국사를 전공했고, 삼성전자 홍보실을 거쳐, 미국 뉴욕대 경영대학원을 졸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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