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를 이렇게 해석할 경우, 지금 내가 읽고 있는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3번은 아쉬운 점이 많다. 무엇보다 <이반 데니소비치, 수용소의 하루>라는 출처 불명의 제목이 마음에 걸린다. 원래의 러시아 제목도 그대로 번역하면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가 된다. 편집자가 굳이 왜 이렇게 제목을 바꾸었을까? 원래 제목이 더 큰 의미를 함축하고 있고 울림도 더 크다고 나는 생각한다.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는 수용소의 하루일 수도 있고, 소련이라는 병영국가의 하루일 수도 있으며, 심지어는 생존을 위해 고통스럽고 비인간적인 노동과 억압을 견뎌야 하는, 소련과 아무 관계도 없는 그 누구의 하루일 수도 있지 않은가.  

유시민 선생의 <청춘의 독서>에서 나온 대목 중의 하나이다. 나는 중학교 2학년인가 3학년 때 이 책을 읽었다. 단행본으로 발행된 것이었는데, 당연히 30년도 더 지난 시기의 책이니 현재 인터넷을 뒤져보았지만 번역자와 출판사 모두 기억이 나지 않는다. 우중충했던 책 표지만 어렴풋하게 기억에 남아 있다. <청춘의 독서>에서도 상당한 비중을 두고 인용했던 , 흡사 미사를 치루는 것처럼 경건하게 주인공이 죽을 먹는 장면, 특히 그릇 바닥까지 어떻게 핥아 먹는가에 관한 부분은 선명하게 다시 떠올랐다.  

윗부분에서 인용한 한국어로 옮긴 제목에 관하여 나는 유시민 선생의 견해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출판기획자가 악의로 제목을 그렇게 바꾼 것은 아니라고 본다. 독자들에게 친절하게 보다 확실하게 내용을 알려주어서 이해를 돕고, 한편으로는 좀 더 눈에 띄도록 하는 의도도 있었을 것 같고, 반공(反共) 도서라는 것을 명확하게 밝혀서 지자체나 교육기관에서의 대량구매를 내심 바랐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어쨌든 유시민 선생의 말처럼 울림이 없어져 버렸다. 러시아 전체를 담을 수 있는 울림이 수용소 안으로 그것도 어느 특정한 날의 운수 좋은 하루로 오그라져 버렸다.  
광고를 하는 데 이런 일이 무척 많다. 깔끔한 광고 카피에 누군가가 얘기한다. “그렇게 해서 사람들이 알겠어?” 우리 제품이 어떻다는 것을 더욱 자세하게 밝혀주라는 얘기다. 압축된 카피의 긴장감이 사라지고, 느슨함을 넘어 지루한 느낌이 들면서 소비자들은 그 광고에 힐끗 눈길을 주었다가 지나쳐 버린다. 지나치게 단순화시켜서 하는 말이기도 하지만, “어떤 광고가 좋은 광고냐?”는 질문에 “대체로 카피가 적은 광고가 좋은 광고이고, 그런 제품들이 바로 강한 브랜드들입니다”라고 대답하곤 했다. 거기에는 울림이 있고, 사람들에게 더 큰 의미를 스스로 만들어서 채우도록 한다.  

그렇게 울림이 있는 광고를 만드는 데 방해세력은 주로 광고주이다. 광고주 실무자부터 직급을 하나하나 타고 올라가면서 허가를 받으면서 직급 하나마다 카피가 한 줄씩 늘어난다. 그래서 처음의 간결하고 함축적인 카피로 제작되었던 광고가 장황해지는 경우가 곧잘 나타난다. 이 이야기를 어느 강의 자리에서 했는데, 주요한 광고주 한 분이 그 자리에 있었다, 그 분이 바로 다음 날 그 때 내가 다니던 회사의 사장님에게 내 강의 얘기를 하면서 “앞으로 절대 우리 맘대로 카피를 어떻게 해라 하지 않겠습니다”라고 했다는 얘기를 당시 사장님께 전해 들었다. 그 광고주 분을 곧 뵐 것도 같은데, 그 회사 광고들이 내가 강의를 했던 이래로 어떻게 달라는 졌는지 한번 살펴봐야겠다.
2009년 10월부터 현대기아차그룹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이노션월드와이드 마케팅본부장으로 재임하고 있음.
역사 및 사회의 제반 모습들을 브랜드적으로 해석하는 데 관심이 많고, 그에 관련한 저서 두 권이 있다. '모든 것은 브랜드로 통한다(사회평론,2002)', '브랜드 마인드(사회평론,2004)'. 학부에서는 중국사를 전공했고, 삼성전자 홍보실을 거쳐, 미국 뉴욕대 경영대학원을 졸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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