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의 트렌드를 한자(漢字) 한 자로 표현하자! 

일본의 한자능력검정협회라는 단체는 매년 말 공모를 통하여 그 해를 대표하는, 상징적으로 나타낼 수 있는 한자(漢字) 한 자, 바로 ‘올해의 한자(今年の漢字)’를 뽑는다. 보통 9만 여건 정도의 응모가 오는데, 한 해를 정리하는 한 단어로 의미가 있다. 견강부회적인 측면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한 해의 주요 사건들과 연결하여 해석을 하니 그럴 듯하게 대체로 고개를 끄덕이게 만든다. 1995년 처음 시작된 이래의 ‘올해의 한자’와 그들이 선정되게 된 배경을 한번 보자. 

- ‘95년 : 진(震). 원래 천등과 벼락을 의미하는데, 여기서는 ’떨다‘, ’흔들리다‘의 뜻으로 쓰였다. 실제로 한신대지진이 났고 옴진리교의 지하철 독가스 살포 등으로 일본 사회 전체가 흔들렸던 한 해였다.  

- ‘96년 : 식(食). 먹는 것이 크게 문제가 되었다. O-157균으로 일본인들이 집단발병하여 11명이 사망하는 사건이 일어났고, 광우병이 본격적으로 알려지기 시작했다.  

- ‘97년 : 도(倒). 일본 증권업계 4위였던 야마이찌증권이 도산했다. 울면서 기자회견을 하며 도산을 발표했던 당시 사장의 모습이 기억난다. 일본이 최초로 월드컵에 진출한 것도 예상을 뒤엎었다며 연계하여 붙였다. 

- ‘98년 : 독(毒). 71명의 목숨을 앗아간 충격적인 독카레사건이 일어났다. 소도시 축제에서 참가자들에게 제공한 카레에 이웃주민들에게 앙심을 품은 주부가 독극물인 비소를 집어넣은 사건이었다. 이후 ’묻지마 살인사건‘이 많이 일어났다고 한다. 

- ‘99년 : 말(末). 문자 그대로 ’세기말‘ 1999년 아니었던가! 경찰이 강도행각을 벌인 일 등도 언급을 했는데, 사족이었다.  

- 2000년 : 김(金). 남한과 북한의 두 김씨의 정상회담이 화제였다. 시드니올림픽에서 일본이 여자 마라톤 등 여러 종목에서 금메달 사냥에 성공한 것도 한 이유로 제시되었다. 

- 2001년 : 전(戰). 9·11 이후의 소위 ‘테러와의 전쟁’이 여기까지 영향을 미쳤다. 

- 2002년 : 귀(歸). 북한에 납치되었던 일본인 5명이 귀환했다. 거품시대를 지나 일본경제가 예전 좋은 시대로 복귀할 것 같다는 조짐이 여러 방면에서 나타났다.  

- 2003년 : 호(虎). 프로야구 저팬시리즈에서 한신타이거스가 우승했다. 이라크에 자위대를 파병하면서 과거의 호랑이와 같은 모습을 보여주기 시작했다는 일본 보수우익스러운 면이 반영되었다. 

- 2004년 : 재(災). 지진과 태풍, 폭염 등의 천재지변이 연이었던 한 해였다. 사실 일본에서는 어느 해나 ‘재’자는 해당이 될 것 같다. 이 해 한류 열풍으로 ‘한(韓)’이 2위에 올랐다.  

- 2005년 : 애(愛). 미국의 카트리나 등의 재난 등으로 사랑의 중요성이 부각되어 뽑혔다는데, 이야말로 견강부회였다. 굳이 이유를 들자면 아이찌(愛知)현에서 엑스포가 열려서 ‘애(愛)’자가 많이 나부꼈고, 천황의 장녀가 결혼을 하면서 그 러브스토리가 화제에 올랐다는 점을 들 수 있겠다. 

- 2006년 : 명(命). 천황가를 이을 손자가 태어났고, 이지메로 인한 자살, 자녀 학대 등의 사건이 많이 일어나 하나뿐인 생명의 중요성을 절감한 한 해였다고 주최 측은 설명했다. 억지로 갖다붙힌 느낌이 많이 난다. 

- 2007년 : 위(僞). 불량식품, 허위 유통기한 표기 등이 문제가 되었고, 정치인의 기만발언 등도 역시 많았던 해라, ‘거짓 위(僞)’가 뽑힌 것 같다고 해석했다. 

- 2008년 : 변(變). 세계적인 금융위기로 인한 경제 변화와 함께 ‘변화(Change)'를 내세우며 미국 대통령에 당선된 오바마까지 갖다 붙였다.  

회고조로 정리하는 ‘올해의 한자’와는 다르게 내년의 트렌드를 대표적으로 나타낼 수 있는 한자 하나를 뽑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 자는 아니었지만 작년 말 올해의 트렌드를 예측하면서 삼국지 맨 처음에 나오는 ‘분구필합(分久必合)’이라는 한자성어를 쓰기도 했다. ‘분구필합’은 한 글자 한 글자가 의미를 가지면서, 합쳐진 성어로도 또 의미를 가질 수 있도록 했다. 그러니까 전체적으로는 다섯 가지의 트렌드를 나타내는 의미를 담은 셈이었다.  

풀어서 본다면 ‘분(分)’은 빈부격차의 확대로부터 촉발되고 그를 반영한 ‘소비의 극심한 양극화’를 말한다. ‘구(久)’는 ‘추억의 재발견과 재구성’을 의미하는데 과거회귀형 상품이 등장하고, 맞춤형·스킨십 서비스 등이 뜰 거라고 예측했다. ‘필(必)’은 경제불황 시대가 어느 정도 지속됨에 따라 ‘한정된 필수품’을 구매하는 경향이 늘어난다는 것이다. 구매 전에 정보탐색에 무게를 둘 것이며 브랜드에 대한 의존도 증대할 거라고 말했다. ‘합(合)’은 ‘가족’에 좀 더 무게가 갈 것이며, 묶음, 공동 구매, 퓨전형 제품의 수요가 증대되고 소비자들 간의 이합집산이 늘어날 거라고 전망했다.  

마지막으로 이들을 합한 ‘분구필합’은 삼국지에 나온 그대로 남북한으로 민족 자체가 분열되어 있는데, 이 사회 안에서도 이념과 재산보유 정도에 따라 나누어지는 것이 안타까워 그렇게 오래 나누어져 있었으니 이제는 좀 화합하며 나아가자는 트렌드라기보다는 내 자신의 소망을 담았다.  

2009년을 돌이켜 보면 위에서 얘기한 것들이 얼마나 맞았는지 모르겠다. 큰 각도에서 분열은 여러 부문에서 더욱 심해졌고, 과거회귀형의 제도와 역사(役事)가 벌어지고 있다. 경제성장율은 금융위기 상황 이전으로 돌아갔지만, 가계소득은 그만큼 늘어나고 있지 않아 소비가 탄력을 받기는 힘든 상황이다. 그런 혼란스럽고 불확실한 상황 속에서 ‘가족가치’가 더욱 빛을 발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 가치는 실제 혈연 가족뿐만 아니라 ‘의사(疑似) 가족’ 형태를 만들어가고 추구하는 움직임도 강하게 나타냈고 이는 다음 해에도 계속 될 전망이다. 

잠깐 위에서 정리한 것들을 바탕으로 내가 뽑은 2010년의 한 글자 한자(漢字)는 바로 ‘안(安)’이다. 어떤 식으로 ‘안’의 의미를 내포한 현상들이 나타날 것인지 말뜻을 풀어가면서 보자. 

- ‘안위(安危)’와 ‘안전(安全)’에서 쓰이는 것과 같은 ‘위태롭지 않음’을 첫째로 들 수 있다. 특히 2009년 하반기 신종 플루는 예전의 식품류에서의 안전한 재료나 조리방식과 같은 한정된 분야에서 벗어나 우리 생활 방식 전체에 영향을 미쳤다. 손소독제, 입가리개 등의 히트상품 외에 공중위생 분야에서 잘게 자르고 들어갈 혹은 새로이 창조할 수 있는 시장은 무궁무진할 것이다.  

- ‘안가(安價)’에서의 ‘안’은 값이 싸다는 뜻이다. 중국에서는 쓰지 않고, 일본어에서 주로 쓰고, 한국에서도 그 영향으로 쓰이는 것으로 추정되는 표현이다. 일본에서는 ‘安物(やすもの)-싼 물건’과 같이 ‘값싼’이란 뜻으로 ‘안’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은데, 우리나라에서는 ‘안가’ 이외에는 그렇게 쓰인 경우를 보지 못했다. 어쨌든 예전에 한국산 제품을 얘기할 때 특장점으로 ‘’가격이 싸다“는 것을 ‘Value for money', 굳이 얘기하자면 ’성능 대비한 가격’이라고 얘기를 하곤 했는데, 2010년에는 약간 다른 의미로 더욱 중요해질 것이다. 예전에는 실제 ‘가치’가 얼마 되는지를 소비자들이 제대로 파악하기가 힘들었다. 이제는 다양한 경로를 통하여 가치를 비교하여 파악할 수 있다. 무엇보다 예전에 제품의 가치는 고정된 가격표에 의하여 결정되었는데, 지금의 제품들은 부착된 가격표 이외에 자신이 가지고 있는 잠재가치를 함께 보여야 한다. 아이폰과 앱스토어 식의 제품의 가치를 높일 수 있는 여지, 냉장고가 성능뿐만 아니라 가구로서 가질 수 있는 가치 등의 근본 기능 이외의 가치와 효용성을 얘기하여야 한다. 그런 것들에 의하여 정말 ‘싼값’인지 여부를 판단한다. 

- ‘안이(安易)’하게 ‘편안(便安)’함을 추구하는 성향이 더욱 강해질 것이다. 가족가치의 증대 및 실질 가처분 소득의 제자리걸음과 연계되어 가정 내에서 즐길 수 있는 게임이나 오락프로그램에 대한 수요가 늘 것이다. 기업들은 소비자들이 ‘손 안대고 코를 풀’ 수 있게 해주는 서비스를 제공하고 그런 제품을 만들려 노력하며 끝간데 없는 정도로 경쟁할 것이다. 소비자들은 바로 위에서 얘기한 ‘금전적인 가치’와 돈이 조금 더 들지만 ‘편한 서비스’ 사이에서 트레이드오프(Trade-off) 결정을 내려야 한다.  
- ‘치안(治安)’은 원래 잘 다스려진다는 말이다. 여기서 ‘안’은 말 잘 듣고 조용히 있는 것을 의미한다. 여기에는 다스리는 국가라는 존재가 있어야 한다. ‘국태민안(國泰民安)’에서 ‘나라(國)’와 ‘시민(民)’ 사이에는 확실한 위계질서가 보인다. 2010년에는 동계올림픽과 월드컵 축구, 광쪼우(廣州)아시안게임 등의 국가간 경쟁을 내세우는 대형 이벤트들이 국가주의의 물결을 불러일으킬 것이다. ‘웹 2.0 소비자’와 같은 용어로 참여하는 소비자들이 대두되었고, 사회적으로도 그런 참여가 2008년 미국 쇠고기 수입을 둘러싼 촛불시위로 절정을 이루었다. 그러나 이후의 과정을 보면 제품의 소비자로서, 사회의 일원으로서 시민들은 그야말로 ‘치안’, 길들여지고 있다. 제한된 참여에 만족하며, 조금이라도 위험스러운 행동으로 나서는 것은 여러 가지로 지양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 ‘대한민국’ 구호를 외치면서 ‘참여’의 기쁨을 누리는 것으로 만족할 수 있다. 기성정치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를 인터넷 상에서 크게 내지만, 실제 그를 바꾸기 위한 집회는 고사하고 투표에도 참여하지 않는다. 오디션 심사에 ARS나 인터넷으로 투표에 참여한 것으로 뿌듯해 한다. 여러 분야의 참여가 두드러지기는 하겠지만, 소극적이고 찰나적인 즐거움을 추구하는 방향이 더욱 크게 주류를 이뤄갈 것이란 예측을 할 수 밖에 없는 현실이 안타깝다.  

위의 네 가지는 당연히 서로 연계되어 있다. 일신의 안녕을 추구하며 위생과 건강에의 관심이 많은 부분에서 발현될 것이며, 그것이 사회적으로 보면 사회적으로 튀지 않고 안전지대를 확보한 상태에서만 참여하는 경향이 두드러질 것이다. 최고의 가치를 가진 값싼 가격의 제품을 찾는 것도 자신에게 손해를 끼칠 수 있는 행동에 대한 염려가 극대화되는 가운데 더욱 극명하게 나타나게 된다. 제품과 관련된 정보가 많아지고, 다른 제품들과 연계하여 잠재적으로 실현시킬 수 있는 가치까지 알 수 있게 된 것이 가치에 대한 관심을 고조시키고 방법까지 업그레이드시킨다. 최고로 자신을 편하게 해 줄 수 있는 제품이나 서비스를 구현시킬 수 있는 제품을 또한 찾아 나선다.  

이런 트렌드에 구체적으로 기업들이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하는 문제를 다음에 살펴보자.
2009년 10월부터 현대기아차그룹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이노션월드와이드 마케팅본부장으로 재임하고 있음.
역사 및 사회의 제반 모습들을 브랜드적으로 해석하는 데 관심이 많고, 그에 관련한 저서 두 권이 있다. '모든 것은 브랜드로 통한다(사회평론,2002)', '브랜드 마인드(사회평론,2004)'. 학부에서는 중국사를 전공했고, 삼성전자 홍보실을 거쳐, 미국 뉴욕대 경영대학원을 졸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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