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록키> 영화 시리즈에도 출연했던 80~90년대 최고의 인기 프로레슬러인 헐크 호간(Hulk Hogan)의 자서전인 <My Life Outside the Ring>에 관한 기사를 보았다. 그 자서전에 이런 구절이 나온다고 한다.  

“Wrestling isn't fake. It's predetermined. So what?" 

어떻게 번역을 해야 할까? 이 정도로 하면 되지 않을까? 

“레슬링은 사기가 아니야. 미리 정해 놓았을 뿐이지. 그래서 어쩌라고?” 

1965년의 장영철이라는 프로레슬링 선수가 “레슬링은 쇼다”라고 폭로했다는 사건을 연상시키는 대목이다. 그 사건으로 장영철 선수는 레슬링의 인기를 추락시킨 장본인으로 지목되었는데, 이에 대해서는 상당부분 잘못 알려진 부분이 많다. 우선, 장영철 선수는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다고 한다. 레슬링이 승부와 주요 기술 등을 사전협약을 한다는 말을 들은 경찰 혹은 검찰이 “그럼 레슬링이 쇼 아니야”라고 한 말이 언론에 보도되었다는 것이 정설이다. 그 때 사건을 보도한 1965년의 신문을 보자. 

27일 밤 장충체육관에서 열린 6개국 프로레슬링대회 마지막날 경기는 장영철 선수의 위급한 표정을 계기로 링위에 뛰어오른 10여 제자들에 의해 한때 수라장이 되었다. 이들은 장 선수의 상대인 일본의 오구마(오쿠마구마고로(大熊熊五郞) 선수를 병으로 치고 링을 점령했으며 곧이어 장 선수는 밑도 끝도 없이 "김일 선수에게 도전하겠다"고 마이크로 떠들어 관중을 어리둥절케 하고 "내려가라"는 야유를 받았다. (11월 29일자 경향신문)  

28일(※27일의 잘못) 국제프로레슬링대회 집단폭행사건의 증인으로 중부서에 출두한 장영철 선수는 "프로레슬링 경기에서는 언제든지 사전에 시합 방법과 우승자를 논의하는 법"이라고 말함으로써 프로레스(프로레슬링)의 쇼적인 이면을 드러냈다. 프로레슬러로서 경기가 쇼임을 자인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장 선수는 "오구마 선수와의 경기에 앞서 선수 대기실에서 김일 선수, 유스도로크(터키) 국제심판, 천규덕 선수 등이 모여 오구마 선수가 2-1로 져주기로 약속했었는데 그가 약속을 어겼기 때문에 소란이 벌어진 것으로 안다"고 진술했다. (11월 29일자 한국일보) 

그러니까 장영철 선수는 헐크 호간과 거의 비슷한 형식의 얘기를 했을 뿐이다. 굳이 프로레슬링 업계를 망치려고 작정하고 폭로를 하는 식은 아니었던 셈이다. 그리고 그 사건으로 프로레슬링의 인기가 폭락했다고 하는데, 실제로 나도 경험했지만 그렇지 않았다. 중학교 때인 70년대 말까지는 TV에서 프로레슬링 중계도 많이 해주고 나 자신도 열광하면서 보았다. 특히 70년대 초에는 삼성전자 ‘또 하나의 가족’ 시리즈 초창기 광고에 나오는 것처럼 아는 분의 집에 가서 시청하곤 했는데, 악마의 화신과도 같은 외국 레슬링 선수들이 집에 돌아오는 골목 어딘가에서 뒷덜미를 잡을 것 같아서 무서워하면서 돌아오곤 했다. 학교에서 친구들과 프로레슬링 흉내를 내는 놀이가 초등학교 때는 계속 유행이었다. 단지 잘난 체하기 좋아하거나 근본적으로 삐딱해 보이려 애쓰는 친구들이 ‘프로레슬링은 쇼야’라고 하면서 레슬링 얘기에 열을 올리고 흉내를 내는 애들을 보고 몇 마디 하는 식이었다. 

“여러분들 ‘쇼’ 안 봐요? 쇼는 재미있잖아? 그런데 왜 프로레슬링은 쇼라서 재미없다고 그러죠?” 지금은 서울산업대 교수로 계신 고등학교 1학년 때 담임선생님께서 어떤 계제였는지 기억이 확실하지 않지만 기가 막히다는 투로 이런 말씀을 하셨다. 아마도 괜한 반항이나 잘난 체 하려는 친구들을 놀리려고 하셨을 것이다.  
그런 프로레슬링의 ‘쇼’적인 면을 극대화시켜서 성공한 것이 바로 ‘WWE(World Wrestling Entertainment)’이다. ‘80년대 WWE의 최고 스타가 바로 헐크 호간이었다. 당시 경기 자체보다 선수들 간에 벌어지는 드라마가 더욱 인상적이었다. 악역을 맡았던 선수가 갑자기 회개를 하여 선한 진영으로 넘어오고, 반대의 경우도 흔하게 일어났다. 국제 관계까지도 드라마에 반영되어 당시의 소련과 아랍 계열 선수들이 그야말로 ’악의 축’ 역할을 WWE에서는 충실히 수행하였다.  

개인적으로 ‘80년대 이래 최고의 브랜드 성공 사례 중의 하나로 WWE를 든다. 브랜드의 성격이 명확하고, 그 뚜렷한 성격을 구현하는 브랜드 요소로서 다양한 캐릭터의 선수와 그 주변 인물들이 존재하며, 다양한 분야로 사업 확장을 이루어 2008년 5억$ 이상의 매출에 4천5백만$ 이상의 수익을 거두는 거대사업체로 발전을 시켰다. 그런 성공의 근본이 바로 치밀하게 구성된 스토리이다. 바로 쇼를 잘했기 때문이다.  

헐크 호간의 넋두리와 같은 일갈을 보면 당연한 얘기를 교묘하게 한 것 같기도 하고, 좀 뻔뻔스럽게 들리기도 하는데, 그런 말을 했다는 자체가 그렇게 크게 성공한 WWE도 ‘쇼’라는 사실에 뭔가 캥기는 분위기가 있는 것 같다. 여러 가지로 정의할 수 있겠지만, 그만큼 ‘진짜’, 영어로 ‘Authentic'의 힘이 강하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2009년 10월부터 현대기아차그룹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이노션월드와이드 마케팅본부장으로 재임하고 있음.
역사 및 사회의 제반 모습들을 브랜드적으로 해석하는 데 관심이 많고, 그에 관련한 저서 두 권이 있다. '모든 것은 브랜드로 통한다(사회평론,2002)', '브랜드 마인드(사회평론,2004)'. 학부에서는 중국사를 전공했고, 삼성전자 홍보실을 거쳐, 미국 뉴욕대 경영대학원을 졸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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