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애 선생의 <도시읽는 CEO>(21세기북스)를 말레이시아 출장을 가는 비행기 안에서 읽기 시작했다. ‘도시의 숲에서 인간을 발견하다’란 소제목이 원래 저자가 쓰려던 제목인 듯 싶다. 요즘 ‘CEO'를 제목으로 내세운 책들이 그래도 잘 팔리니까 출판사에서 저자의 의도와는 달리 현재의 제목을 주장한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김진애 선생은 출판사의 의도에 맞추어 원래 글의 말미에 CEO의 입장에서 어떤 교훈을 받아야 하는지 갖다 붙이는 수고를 한 것 같았다.

 직접 출판사나 저자에게 묻고 확인한 것은 아니지만 거의 맞을 것이다. 예전에 나도 그런 경험을 한 적이 있다. 모출판사에서 나의 잡문들을 모아서, 컨셉을 나름대로 잡아 그에 맞추어 분류를 해가지고 왔다. 그 컨셉에 맞추어 뒷부분에 약간씩 첨언을 해주면 잘 맞아 떨어질 것이라고 했다. 처음에 사양하다가 출판사의 정성에 그 해 유난히 길었던 어느 명절 연휴를 이용하여 서문을 쓰고, 잡문들을 컨셉에 맞추어 쓴 것인냥 수정도 하고 새로운 의미도 덧붙였다. 그런데 그 과정이 너무나도 힘들었다. 그런 목적을 가지고 쓴 글들이 아닌데, 자신을 속이는 듯한 죄책감이 들었고, 한 자 한 바 번민하며 자판을 두들겼다. 약속한 기일이 있어 원고는 출판사의 요구대로 완성을 하기는 했지만, 출판사 친구에게 사정사정하여 결국 출판을 하지 않게 만들었다. 비슷한 번민의 흔적을 이 책에서 발견할 수 있었다.

그렇지만 그런 성형의 자국을 잊게 할 정도로 이 책은 재미있고, 생각할 거리를 많이 던져 준다. ‘호기심, 성찰, 몸담기, 상상’의 4부로 나뉘어져 있는데, 각 부의 핵심어들은 바로 광고하는 사람들의 일하는 방식에도 적용되고 갖추어야 할 덕목들이다.

첫 번째의 호기심은 애정에서 나온다. 애정은 가슴으로 하는 행위이다. 호기심이 있어야 재미를 느낄 수 있다. 자신이 광고하는 제품에 대해 광고하는 사람은 끊임없이 의문을 제기하여야 한다. 작은 부분까지 세세히 들추어 보며 질문을 던지면서 광고하는 사람들은 실마리를 얻게 된다. 저자의 말대로 길을 잃으며 헤매야 길을 찾게 된다. 확실한 길을 알게 된다.

"근사한 이미지에 눈이 먼저 팔리면 본질을 잃어버릴 위험이 커지는데, 의문을 선명히 하고 구조를 알고 난 후에 그림을 보면 ‘아’하게 된다“는 광고주의 제품이라고 무조건 칭송하는 태도를 버리고, 세세하게 제기한 의문들을 통해 얻은 것들을 구조화해야 할 필요성을 역설한 것으로 해석했다. 도시의 구조는 바로 ‘점(点)’, ‘선(線)’, ‘면(面)’이다. 점들을 이어서 선을 만들거나 찾고, 거기서 더 크게 면을 구성하며 파악하는 접근이 바로 제품을 얘기하는 포인트를 찾는 방식이다.

두 번째의 ‘성찰’에서는 사회의 무대로서, 도시의 사회성을 생각하라고 한다. 이 부분을 저자는 두바이의 예를 든다. 김진애 선생의 이름은 예전부터 들었지만, 친근감을 갖게 된 것은 두바이 모델이 한국 사회에 적용될 수 없고, 지속가능하지 않다는 점을 지적한 선생의 글을 2006년에 읽고 나서이다. 그 해 초에 두바이에서 화려하게 열린 세계광고대회 참관차, 11년만에 두바이를 방문하고 두바이의 문제점을 지적하며, 계속 성장하기 힘들 것 같다는 글을 썼었다.

당시 한국 사회는 경제와 정치 분야에서 그야말로 ‘두바이 열풍’이 불고 있었다. ‘두바이를 배우자’며 언론에서 연일 떠들었고, 정치인들과 기업인들이 참관단을 조직하여 두바이를 방문했고, ‘두바이 전도사’을 자처하는 교수나 연구원들이 서로 목소리를 높이고 있었다. 그럴 때 김진애 선생과 같은 전문가가 꼭 집어서 비슷한 얘기를 해주어 괜시리 고맙고 뿌듯했다. 당시 두바이 찬가를 불러댔던 사람들 중, 자신이 잘못 생각했다는 반성까지는 가지 않다고 하더라도, 되씹어 보면서 교훈을 얻었다는 얘기를 하는 사람을 보지 못했다. 어찌 보면 후진 제품을 교묘하게 사기를 쳐서 팔아치운 못된 장사치와 별 다를 바 없는 행위였다.

소비자는 사람이고, 사회의 구성원이다. 사람이 사용함으로써 제품에도 사회성이 가미된다. 곧 어떤 제품이라도 사회를 이루는 한 구성요소가 된다. 단순한 물리적 기능만을 연구하며 그것을 광고해서는 안 된다. 시장에 제품이 나오고, 사람들의 손에 들어가 사용되는 그 흐름과 용도와 사용되는 과정을 사회적 맥락 속에서 파악하고 의미를 짚어 보아야 한다.

 ‘몸담기’ 부분을 통하여 우리 신입사원들도 입시 1주년을 기념하여 5일 동안 걷는 둥 열풍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제주 올레’의 이름을 지은 사람이 바로 김진애 선생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자동차를 타고 도시를 다니면 ‘도시의 숲에서 인간을 발견’할 수 없다. 인간뿐만이 아니라, 다른 어떤 것도 제대로 발견할 수 없다.

저자는 이 부분에서 파리 퐁피두센터 앞의 경사진 광장을 언급한다. 몇 차례 그 곳에 갔었지만 이 책에서 볼 때까지 나는 그 광장이 경사가 져있다는 사실을 몰랐다. 그저 시간에 쫓기듯이 점에서 점으로, 파리의 관광 목적지의 하나로 퐁피두센터를 찍는데 급급했다. 문자 그대로 퐁피두센터 바깥에 대해서는 눈 뜬 장님이었던 것이다. 저자는 걸으면서, 몸을 담는 것을 신체의 눈을 감으며 마음의 눈을 뜨는 행위로 비유한다. 소비자를 조사에 나타난 숫자로만 파악하고, 제품의 기능만을 주어 담으며 외치는 게 바로 장님 광고장이의 행위이다.  
마지막 4부에서는 도시를 소재로, 불씨로 상상의 나래를 펴보라고 권유한다. ‘시공간을 넘나들며 상상하라’고 한다. 2천년전의 폼페이와 2005년의 뉴올리언스를 들어, 자연적 재앙이 밀어 닥치는 경우를 미래 지속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상상해 보라고 하는데, 사실 이 부분에서 서두에 얘기한 원래의 원고와는 어긋나 CEO라는 출판사에 의하여 부과된 컨셉과 그에 따른 독자들을 겨냥한 첨언이 가장 부자연스럽게 느껴졌다.  

그렇지만 파괴되고 사라진 역사 속의 도시들을 생각하며, ‘결핍’ 상황을 가정한 상상은 저자의 말대로 위기 대비 이상으로 필요하다. 불교의 선(禪)의 한 방법으로 눈앞에 보이는 물체를 마음의 눈으로 없애고 다시 살리면, 물체와 마음이 모두 새롭게, 이면까지 보이듯이 도시 자체를 더욱 깊이 이해하는 길잡이가 된다. 광고를 위하여 제품을 연구하는 데도 제품이 존재하지 않았거나 다른 형태를 갖추고 있던 과거와 새로운 기능이나 쓰임새와 모습을 보일 미래를 상상해보는 것이 현재의 제품을 이해하는 실마리를 제공해 주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본질에 더욱 가까이 파고 들어갈 수 있는 길잡이가 된다.  

도시가 되었건 제품 광고가 되었건 그 근본은 저자가 부제로-아마도 실제로는 원래의 제목으로- 쓴 것처럼 ‘인간’이다. 도시의 구조물에 압도되지 말고 거기서 사는 인간을 발견하여야 하고, 광고에서도 소비자 아닌 인간을 발견하고 읽어야 한다.
2009년 10월부터 현대기아차그룹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이노션월드와이드 마케팅본부장으로 재임하고 있음.
역사 및 사회의 제반 모습들을 브랜드적으로 해석하는 데 관심이 많고, 그에 관련한 저서 두 권이 있다. '모든 것은 브랜드로 통한다(사회평론,2002)', '브랜드 마인드(사회평론,2004)'. 학부에서는 중국사를 전공했고, 삼성전자 홍보실을 거쳐, 미국 뉴욕대 경영대학원을 졸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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