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랜드로 본 한국 프로야구 다섯 가지 성공요인




        한국 프로야구가 2009년에 역대 최대 관중 동원 기록을 세웠다. 9월 9일 ‘95년의 540만 6,374명을 넘어서 540만 7,527명의 신기록을 달성했고, 현재로서는 페넌트 레이스 끝날 때는 보수적으로 570만, 내심 600만까지도 바라보고 있다. 관중 동원이란 지표로 상징되는 인기에 굴곡은 있었지만, 30년 가까운 역사를 통하여 이제 프로야구는 누가 무어라 해도 우리 생활 속에 브랜드로서 자리를 잡았다. 그렇게 자리를 잡을 수 있었던 이유를 브랜드, 그 중에서도 기업 브랜드의 관점에서 찾아보겠다.




        프로야구가 시작되었던 1982년, 소위 스크린, 섹스, 스포츠로 대중들의 관심을 정치 이외의 것으로 돌리자는 3S정책의 대표적인 사례로 들먹여지는 분위기에서 프로야구는 비난과 의구심 어린 눈총 속에서 출범했다. 하긴 영화 <애마부인> 시리즈가 시작되고, 광주에서의 학살의 피 냄새가 선연한 가운데 미스 유니버스 행사가 그에 항의하는 투신자살의 보도는 한 줄도 실리지 않을 채 벌어지던 그런 시대였다. 


        3S도 정책이라고 했을 때 그 일환으로 벌어진 것이 차라리 한국프로야구의 생명을 지금까지 이어오게 한 원동력 중의 하나라고 생각한다. 마티 뉴마이어는 <ZAG>, 한국어로는 <브랜드, 반란을 꿈꾸다>라고 번역된 그의 저서에서 17단계의 브랜드 차별화된 자신만의 브랜드를 디자인하는 방법을 소개했는데, ‘나는 누구인가?’라는 첫 단계에 이어 두 번째 단계에서 ‘무슨 일을 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그에 대한 답을 내야 한다고 했다. 그런데 그 답은 통상적으로 단순히 상품을 팔아서 돈을 버는 것 이상으로 사업 목적을 정의하라고 했다.


        기업 차원의 홍보효과가 매우 크다는 식으로 참여한 기업들은 그럴싸하게 명분을 내세우기는 했지만, 애당초 수익을 올린다는 것은 생각하지 않았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아마 조금이라도 수익성을 고려했다면 한국 프로야구 자체가 탄생할 수 없었을 것이다. 수익에 연연하지 않아서, 차라리 “어린이게는 꿈을, 젊은이에게는 정열을, 그리고 모든 국민들의 선량한 여가선용을 위하여”란 슬로건이 표방하는 이상을 추구하는 자세를 보일 수 밖에 없었던 것이 바로 한국 프로야구 존속할 수 있었던 첫 번째 이유이다.


        두 번째로 정부 주도이기는 했지만 사회 환경의 변화 및 트렌드와도 잘 맞아떨어졌다. 정통성이 결여된 정권인지라 저항의 조그마한 싹조차도 허용하지 않는 얼어붙은 분위기였지만, 경제적으로는 70년대 말부터의 기나긴 인플레 터널을 빠져 나와 ‘3저 호황’이 막 시작된 시점이었다. 그리고 정치에 대한 무관심을 강요당한 국민들은 그 때까지의 무조건적으로 졸라매기만 했던 허리띠를 때 마침 호황에 힘입어 조금씩 풀기 시작했다. 여가생활에 눈을 돌리기 시작했고, 한국 프로야구는 새로운 여가문화의 대표적인 상품으로 떠오르며 자리를 잡았다.

 
       <ZAG>에서 마티 뉴마이어는 브랜드 성공을 위한 기본 조건으로 다른 기업들과 확실한 차별화(Differentiate), 초점 집중(Focus), 강력한 커뮤니케이션(Communication)과 함께 시대적 상황과 맞는 트렌드(Trend)의 네 가지를 꼽았다. 그리고 구체적인 단계별 방법론에서도 자신을 성공으로 이끌 트렌드가 무엇인지 따져 보는 것을 아주 주요한 단계로 설정했다. 한국 프로야구는 이 트렌드 측면에서 당시 80년대 초의 여가 문화의 본격적인 탄생이라는 트렌드의 물결을 제대로 탔다.


        세 번째로 경쟁구도가 누구나 이해하고 관심을 가질 수 있게 명확했다. 지역을 근거지로 팀을 출범시키니까 바로 지역 단위의 라이벌 구도가 형성되었다. 영남과 호남의 뿌리 깊은 대립이 한국프로야구에는 훌륭한 자양분이 되었다. 그리고 한국 특유의 지역 연고에 기초한 동창문화가 이미 고교야구에서 꽃피웠기 때문에, 더욱 쉽게 프로야구에서도 지역대결이 자연스럽게 받아 들여졌다.

 
       또한 동종업계에서의 치열한 경쟁의식이 또한 바로 야구장으로 이식되었다. 당시 제과업계를 양분하고 있던 해태와 롯데가 바로 그 주인공들이다. 광주에서 롯데대리점이 망했고, 부산에서 해태과자 매출이 뚝 떨어졌다는 확인되지 않은 소문을 남기면서 이들의 대결은 뜨겁게 달아올랐고, 한국 프로야구의 초기 열기를 이끌었다. 후에 기아(KIA)타이거스로 이름과 모기업이 바뀌었지만, 이 두 팀은 현재도 전국적으로 가장 많은 열성 팬을 가지고 있다. 올해 8월중순까지 KIA는 1만 5천 명 이상, 롯데는 1만 2천명 정도의 원정 경기 최다 관중 동원 능력을 보이고 있다.

 
       연륜이 쌓이고, 새로운 기업들이 참여하면서 새로운 형태의 라이벌 대결 구도가 마들어졌다. 이를테면, LG가 뛰어들면서 삼성과 LG의 ‘전자전(電子戰)’이라는 용어가 만들어졌다. 원래 충청도를 기반으로 하던 두산이 서울로 올라오면서 두 팀이 경기를 벌이면 ‘서울 라이벌 대격돌’과 같은 헤드라인이 스포츠면을 장식했다. 현대와 SK가 들어오면서는 명실상부하게 국내 최대의 기업집단들이 모두 참여하면서, ‘자존심 싸움’과 같은 표현이 자주 등장했고, 실제로 각 그룹들은 한국시리즈와 같은 큰 경기에 자존심을 걸었고, 기싸움에 지지 않기 위하여 자사 임직원들을 동원하기도 했다. 그런 치열한 경쟁 자체가 한국 프로야구 저변을 확산시키고, 사회적 관심을 불러일으킨 동력이었다.

 
       고객 측면에서 초창기 포로야구 붐의 숨은 공신은 바로 어린이들이었다. 지금은 두산베어스로 이름이 바뀐 OB베어스에서 최초로 어린이 회원을 모집했는데, 회원 수가 무려 23만명에 이르렀다. 각 구단에서 경쟁적으로 어린이회원을 모집했고, 거리에서 프로야구 구단의 모자나 점퍼를 입은 어린이들을 흔하게 볼 수 있었다. 그 어린이들은 그 자체로 움직이는 광고판이었을 뿐만 아니라, 가장 순도가 높은 충성도를 보이는 고객들이었다. 그리고 어른들에게 프로야구에 대한 관심을 갖게 만들고, 야구장으로 발걸음을 옮기게 하는 파워도 가지고 있었다.

 
       정확하게 추산할 수는 없지만, 현재의 다시 일어나는 프로야구 붐에 이들 초창기 어린이 회원들의 힘도 크게 작용하고 있다고 믿는다. 이제 30대 중후반에 이른 당시의 회원들, 회원이 아니더라도 그런 추억의 시간을 공유했던 층들이 관중들의 중추를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 왜 그 많던 어린이 회원들이 순식간에 없어지다시피 했을까?

 
       어린이 회원을 관리하는 방법을 제대로 몰랐고, 관리 노하우가 어느 정도 있다고 하여도 노하우에 비하여 어린이 회원 수가 너무 많았다. 특히나 지금의 기준에서 보면 주먹구구, 수작업으로 수십만명의 인원을 관리하다 보니까 제대로 데이터베이스 정리가 안 되는 경우가 많이 발생한 것으로 알고 있다.

  
      무엇보다도 마케팅 프로그램의 일환이라는 의식 부족한 채, 그저 경쟁적으로 모집하고, 회원 수 경쟁을 하다보니까, 회원이 모이면 모일수록 수익이 더욱 악화되는 양상이 벌어졌다. 아주 충성도가 높은 고객집단을 가지고 그들을 대상으로 연대감과 충성도를 더욱 강화하면서, 수익성도 제고하는 활동을 벌일 생각을 하지 못했다.
 
       마지막으로  매우 성공적인 브랜드 확장(Extension)이라는 측면에서 한국 프로야구의 출범과 성장을 이해할 수 있다. 프로야구가 출범하기 직전까지 한국 야구의 간판은 고교야구였다. 같은 학원 야구로 대학 야구가 있기는 했지만, 지역 연고가 약하고, 애교심도 상대적으로 약한 대학야구가 한국 야구의 주류라 되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직장인 야구로 실업팀들이 간이 리그 형태로 경쟁을 했다. 경기력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실업야구가 한국 야구의 최고봉이었지만, 문자 그대로 그들만의 리그였다. 그리고 어쨌든 실업야구선수들은 공식적으로 은행원이니 회사원이었지, 야구 자체가 직업이 아니었다. 학원 야구선수가 대학과 고등학교를 떠나서 학생 신분이 우선이었던 것도 마찬가지이다.


        이 면에서 프로야구는 기존의 한국야구라는 카테고리 안의 다른 제품들과 성격을 뚜렷이 다르게, 확실한 차별화 포인트를 가지고 태어났다. 바로 야구 자체를 직업으로 하는, 1년 내내 야구만을 하는 직업군이 나타난 것이다. 스카우트 때 책상 밑으로 오가던 보너스나 급여를 투명하게 보여 주고, 직접적으로 언급하게 된 것도 달라진 점이었다. 프로야구 첫 시즌이 개막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어느 스포츠 신문에서 ‘일부 관중들은 점수나 경기 승패를 가지고 즉석에서 돈을 걸고 내기를 하는 프로야구다운 모습을 보여주었다’는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돈을 걸고 내기를 하는 것이 프로야구의 관중다운 모습인지는 모르겠지만, 연봉을 가지고 선수의 우열을 매긴다는 것은 뚜렷한 차별점이 구현된 것이기는 했다.


        정리하자면 한국 프로야구는 여러 측면에서 깅버 브랜드로서 성공할 수 있었던 요인을 갖추고 있었다. 첫째, ‘돈’ 이상의 목표가 있었다. 둘째, 시대 트렌드와 잘 맞았다. 셋째, 고객을 끌 수 있는 경쟁상황이 펼쳐졌다. 넷째, 충성고객을 가지고 있었다. 다섯째, 기존 제품의 기반이 있었고, 그 위에서 뚜렷한 차별점을 가지고 브랜드 확장을 했다.
2009년 10월부터 현대기아차그룹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이노션월드와이드 마케팅본부장으로 재임하고 있음.
역사 및 사회의 제반 모습들을 브랜드적으로 해석하는 데 관심이 많고, 그에 관련한 저서 두 권이 있다. '모든 것은 브랜드로 통한다(사회평론,2002)', '브랜드 마인드(사회평론,2004)'. 학부에서는 중국사를 전공했고, 삼성전자 홍보실을 거쳐, 미국 뉴욕대 경영대학원을 졸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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