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내커

맥주와 원산지

 

        밀러 맥주를 나는 좋아하지 않는데, 인상에 남는 기억이 하나 있다. 2000년대 초 미국에 주재하던 시절에 밀러를 좋아하는 한 친구가 집에 오면서 밀러 맥주 여섯 병을 사왔다. 그런데 병들을 꺼내서 보니 두 병이 한눈에 봐도 규정 용량에 한참 못 미쳤다. 밀러 맥주 회사와 맥주를 구입한 슈퍼마켓 두 곳 중 어디에 항의를 해야 할지 몰라서 양 쪽에 다 메일을 보내기로 했다.


        메일을 보낸 다음 날 밀러에서 답신이 왔다. 미안하다며 고객번호를 하나 주면서 밀러 소비자센터의 수신자 부담 전화번호를 이용하여 소비자센터에 상의하라는 내용이었다. 소비자센터에 전화를 하니 중년의 털털한 아저씨가 약간 술 취한 듯한 목소리로 “여보세요, 여보세요”하면서 나왔다. 약간 당황 하면서 같이 “여보세요”하는데 그 아저씨가  흡사 술집에서 얘기하는 듯한 톤과 단어로 “어이, 반가워. 여긴 밀러 맥주 회사인데, 불러주는 번호  중에서 뭘 할 건지 선택해봐”하면서 서비스 번호를 안내했다. 그 안내를 따라서 서비스 직원과 연결되어 여섯 병 상품권을 받았다. 노동자들의 휴식 시간에 함께 하는 “Miller Time”을 제대로 연상시키는 전화안내였다.

 
       밀러 맥주회사는 1855년에 창립되었다. 1966년 W.R.Grace & Company라는 회사에 팔렸다가, 바로 3년 후인 1969년에 말보로 담배로 유명한 필립 모리스(Philip Morris) 사의 일원이 되었다. 필립 모리스란 기업브랜드를 얘기했을 때 거의 대부분의 소비자들에게 가장 먼저 떠오르는 연상이 말보로 담배이다. 필립 모리스란 이름이 언론에 가장 많이 오르내리는 경우도 바로 담배 관련 소송 사건을 통해서이다. 그리고 필립 모리스를 담배와 함께 밀러 맥주라는 술까지, 인류에 해악을 끼치는 제품들을 생산하는 대표적인 해악기업으로 비난하는데 밀러 브랜드가 함께 묶여서 들어가기도 한다.

 
       당연히 밀러는 필립 모리스라는 기업 브랜드와는 거리를 둘 수밖에 없었다. 버드와이저(Budweiser)가 나오는 앤하우저부쉬(Anheuser-Busch)가 꾸준히 기업이미지광고 활동을 펼치는 것과는 대비가 된다. 맥주시장에서의 규모와 전문성에서, 곧 기업 브랜드에서  버드와이저 대비 떨어지는 이미지를 그래도 밀러는 밀러타임(Miller Time)이라는 전설적인 광고 캠페인을 통하여 밀러는 그래도 나름대로의 영역을 잘 지켜왔다.

 
       2002년 남아프리카의 South Africa Brewery가 밀러를 인수하여 SAB Miller를 출범시켰다. 문제는 매우 미국적인 이미지의 밀러와 남아프리카가 그리 잘 어울리지 않다는 것이다. 게다가 2007년 SAB Miller가 몰슨 쿠어스(Molson Coors)까지 인수하면서 정체성은 더욱 모호해졌다. 쿠어스 맥주는 미국 자연의 상징 중의 하나인 록키산맥과 끊으려 해도 끊을 수 없는 관계로 연결이 되어 있기 때문이다. ‘록키산맥의 눈 녹은 물로 만든다’는 문구를 포장에 명시할 정도이고, 그래서 더욱 시원하고 맑은 느낌을 주는 맥주로 자리를 잡았는데, 그런 이미지와 남아프리카의 초원 지대는 잘 연결이 되지 않는다.

 

        하이트 맥주에서 극적으로 부각되기도 했지만, 어쨌든 주류 특히 맥주에서 물은 아주 중요한 요소이다. 그래서 그 물이 흐르는 자연 환경이 주류 브랜드에서 중요한 요소를 차지하고, 이는 그 배경의 국가로까지 연결된다. 코로나(Corona)가 상징하는 멕시코다운 여유와 낭만, 아일랜드의 터프함과 시원함이 조화된 기네스(Guiness),네델란드 특유의 상업과 예술에서의 전통 품격과 유머가 어우러진 하이네켄(Heineken)같은 경우가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하이네켄이야 워낙 오랜 역사를 두고 알려져서인지 국가를 직접적으로 결부시켜서 얘기하는 경우를 요즘은 별로 보지 못한 것 같다. 그렇지만 네델란드를 방문하는 외국인들에게 하이네켄공장 투어는 가장 인기 있는 프로그램 중의 하나이다. 멕시코를 배경으로 지역적으로도 캘리포니아를 시작으로 미국 시장에 진출하고, 이어 세계로 뻗어 나간 코로나는  광고나 웹사이트를 통해서 볼 때 예전과는 달리 멕시코다운 색깔을 떨쳐내려고 노력하는 분위기이다.

 
       기네스는 광고를 할 때, 새로운 마케팅 프로그램을 도입할 때 “기네스다운 것이 무엇인가? 아일랜드다운 것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진다는 기네스 임원의 얘기처럼 아일랜드라는 자산을 가장 잘 이용하고 있다. 2000년 최초로 기네스를 만들기 시작한 양조장을 ‘Guiness Storehouse’란 거대한 체험관으로 바꾸어 문을 열었다.


        기네스체험관은 현재 더블린 시내관광의 대표적인 목적지이자 더블린 젊은이들의 만남의 장소로 자리를 잡아서 기네스 브랜드의 젊음을 유지하는 중심축 역할을 하고 있다. 체험관은 바로 기네스라는 기업의 역사와 문화를, 바로 맥주 한 잔이 아닌 기네스를 기업 브랜드로서 사람들이 모든 감각을 통하여 느끼도록 해주고 있다.


        술을 먹으면 사람들이 감정적이 되듯이 술은 매우 감성적인 제품이다. 블라인드 테스트를 했을 때 오인지율이 가장 높은 제품군이 바로 술이다. 그만큼 브랜드가 큰 역할을 한다. 그리고 감정선은 단순한 제품으로서의 브랜드를 넘어서 지역 배경으로서 원산지 국가 그리고 모기업의 브랜드까지 연결이 된다.

2009년 10월부터 현대기아차그룹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이노션월드와이드 마케팅본부장으로 재임하고 있음.
역사 및 사회의 제반 모습들을 브랜드적으로 해석하는 데 관심이 많고, 그에 관련한 저서 두 권이 있다. '모든 것은 브랜드로 통한다(사회평론,2002)', '브랜드 마인드(사회평론,2004)'. 학부에서는 중국사를 전공했고, 삼성전자 홍보실을 거쳐, 미국 뉴욕대 경영대학원을 졸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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