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내커

호텔과 소주 브랜드의 관계는?

 

        신라호텔에 근무하고 있는 친구 하나를 만나서 간단히 소주 반주를 하면서 저녁을 함께 하게 되었다. 주문을 받는 아주머니가 “소주는 어떤 것으로 하시겠어요?”하며 묻자마자, 그 친구가 우리 일행을 보면서 단호하게 소리쳤다. “‘처음처럼’은 안 돼!” 신라호텔 내에서도 면세점을 맡아서 롯데면세점과 그야말로 정면승부를 벌이고 있으니, 2009년 2월 두산그룹에서 롯데그룹으로 넘어간 ‘처음처럼’ 소주를 마시는 것조차 용납할 수 없다는 단호한 경쟁의식의 표현이었다. 그 친구의 마음을 충분히 헤아려 우리 모두 그 날 저녁 ‘처음처럼’의 경쟁사 제품만 연신 들이켰으나, 사실 필자는 그 전까지 대부분의 자리에서 처음처럼을 택하여 마셨다.


        우선 많은 사람들이 그랬겠지만 신영복 선생의 글씨가 먼저 와 닿았다. 역사학자인 한홍구 선생이 ‘서예의 실용화’라는 어느 서예학회의 학술대회 주제를 보고 떠올리며 웃음지었던 바로 그 글씨이다. 신영복 선생을 위하여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그 분의 책을 사서 글을 읽는 것 밖에는 없는 것 같았는데, 처음처럼 소주를 마시면 왠지 그 분에게 신세진 것을 갚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처음처럼이 출시된 얼마 후에 손혜원 선생을 만날 기회가 있어서, 처음처럼 브랜드가 탄생하기까지의 뒷얘기를 듣고 손 선생님의 남다른 힘과 매력에 압도되는 기쁨을 누릴 수 있었다. 처음 시장에 나올 때부터 기사에 많이 나왔지만, 신영복 선생에게 글씨를 얻은 사례금 대신 1억원의 장학금을 기부하였다는 것도 사회공헌 활동으로 처음처럼이라는 브랜드에 방점을 찍어 주었다.

 
       원래 제품인 ‘산’이 축적해 놓은 자산 위에 모기업인 두산의 주류(酒類)산업에서의 경험과 힘이 이런 개인적인 소회나 인연, 그리고 물성적인 부분을 떠난 브랜드 연상 등과 아우러지면서 처음처럼은 필자와 같은 충성스러운 고객과 함께 시장점유율 10%대를 돌파했다. 이어 롯데그룹 산하로 들어가면서는 신라호텔 친구의 단호한 거부에도 불구하고 ‘마의 벽’이라고 불리던 12%까지 깨면서 약진하고 있다.

 
       롯데 ‘처음처럼’의 약진에는 롯데의 자금력과 공격적 마케팅과 유통력에 힘입은 바가 크다고 본다. 이전 두산 시절에는 0.2%에 그쳤던 처음처럼의 부산 지역 시장 점유율을 롯데야구단을 이용한 적극적인 마케팅 활동으로 2%대 이상으로 10배 이상 끌어 올린 것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롯데 처음처럼의 이러한 성공 추세가 지속적인 것이 되어 롯데측의 말 그대로 15% 이상이 되기 위해서는 기존의 이런 공격적인 마케팅 활동 이상의 노력과 자산이 필요하다.


        처음처럼이 가지고 있었던 브랜드 연상과 요소들을 되살리고, 그것을 긍정적으로 ‘롯데화’하는 활동이 필요하다. 즉, 신영복 선생의 ‘처음처럼’이 가지고 있던 의미와 장학금 출연 등에서 보여준 사회를 향한 가치까지 포용하고 함께 나아가는 천명이 있어야 했다. 롯데에서 처음처럼을 인수한다는 발표가 나왔을 때부터 사실 어린이와 청소년들을 주고객으로 하는 과자 브랜드와 주류 브랜드가 어떻게 같은 테두리 안에서 어울릴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우려를 인터넷에서 많이 발견할 수 있었다.


        후발주자로 나와서 단기간 내에 급속한 성장을 이룩한 기업들 중 상당수가 성장에 제동이 갑자기 딱 걸리는 순간을 맞이한다. 그런 기업들 중 대부분이 이전의 성장 동력을 더욱 강화하는 방향으로 전략방향을 잡는다. 대부분의 경우 자신의 성장 동력 자체가 한계에 부딪힌 것을 수용하지 못한다. 보통 일정 단계까지의 성공은 남들보다 뛰어난 제품력, 새로운 유통 채널이나 내부 마케팅 시스템 등 품질과 운영(Operation)적인 측면, 곧 물리적인 특성에 기반을 두고 있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어느 순간에 경쟁자들이 그들만의 그런 물리적인 특성을 베끼거나 장착하여 그 부문에서의 경쟁력을 무력화시키는 경우가 발생한다. 경쟁의 새로운 장이 펼쳐졌는데, 예전의 경쟁방식에 몰두하는 시대착오적인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2차대전 시대의 일본이 최후까지 보루로 삼고 있던 것은 세계 최대의 전함으로 절대 침몰하지 않는다고 해서 ‘불침함(不沈艦)’이라고 불렸던 야마토전함(大和戰艦)이었다. 48cm포를 포함하여 최고의 화력과 가장 두꺼운 철갑을 둘러 웬만한 포격에는 끄떡하지 않을 강력한 전함이었으나, 항공모함 위주의 기동력이 해전의 핵이 되면서 실질적인 활약상을 보여주지 못했다. 그러나 일본군은 야마토전함이 결정적인 전투에서 그 빛을 발할 것이라는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결국 야마토전함은 오끼나와전투에서 해안선의 포대 역할을 하러 달려오다가 미군 함재기의 집중포화를 맞고 격침되고 만다.


        브랜드에 대한 오해 중의 하나로 우리가 잘 드는 것이 ‘제품만 잘 만들고, 디자인만 좋으면 팔린다’는 믿음이다. 품질과 디자인은 당연히 잘 해야 한다. 그런 품질과 디자인에 어떤 감성적 가치를 연결시킬 것인가가 중요해졌다. 그리고 이에 더하여 그 제품을 만드는 기업의 사회적인 가치와 평판이 역시 경쟁요소로 대두된 지 오래이다. 롯데의 강력한 마케팅력은 분명 처음처럼에 플러스 요소로 작용했고, 시장점유율의 성장세로 그를 입증했다. 기업브랜드적인 요소를 롯데가 처음처럼에 담기를 바란다.

2009년 10월부터 현대기아차그룹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이노션월드와이드 마케팅본부장으로 재임하고 있음.
역사 및 사회의 제반 모습들을 브랜드적으로 해석하는 데 관심이 많고, 그에 관련한 저서 두 권이 있다. '모든 것은 브랜드로 통한다(사회평론,2002)', '브랜드 마인드(사회평론,2004)'. 학부에서는 중국사를 전공했고, 삼성전자 홍보실을 거쳐, 미국 뉴욕대 경영대학원을 졸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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