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명품 브랜드의 역사와 향후 전망




        70년대 초등학교 시절 반공도덕이란 과목이 있었고, 그 교과서에 실린 대목이다. 해외 출장을 갖다온 아버지가 딸에게 서양 인형을 선물로 가져다준다. 딸은 인형이 예쁘다고 기뻐하면서, “인형을 만든 사람도 이 인형처럼 생겼을 거야. 눈도 동그랗고, 코도 오뚝하고, 머리는 노랗고.” 아버지가 웃으면서 어느 나라에서 만들었는지 상표를 확인하라고 한다. 인형 뒤 상표에는 자랑스럽게 ‘Made in Korea'란 표시가 되어 있었다. 그래서 딸은 그런 착각을 한 자신이 부끄러우면서도, 발전한 대한민국의 모습에 자부심을 느끼게 되었다는 내용이었다.



        해외 출장을 가서 한국산 제품을 사오고, 그것을 꼭 딸에게 확인시키는 등 지금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 많다. 그렇지만 쓸만한 공산품이란 모두가 외국산이었던 시절이 있었고, 그런 공감대는 그보다 더욱 오래 한국인의 의식 속에 자리 잡고 있었던 것은 사실이었다. ‘70년대 중반까지 ’메딘쩨‘라는 말이 시장에서 쓰이곤 했는데, 바로 공산품 뒤 라벨의 ’Made in~'을 붙여서 발음한 말이었다. 그런 라벨은 오로지 외국산에만 붙고, 그래서 메딘쩨라고 할 때는 바로 제품이 고급임을 보증해준다는 의미였다. 그저 물 건너 온 제품이면 명품으로 생각했던 시절이었다. 그런 명품에는 미군부내에서 암시장으로 흘러나온 제품들도 상당 수 있었다. 명품이라는 용어 자체가 통용되지도 못하고, 아주 기본적인 필수 효용 이상의 가치 자체가 사치스런 것으로 조심스럽게 유통되었다.


        ‘80년대 들어 해외여행과 외국 제품 수입 자유화 폭이 넓어지면서 한국인들의 해외 브랜드에 대한 지식이 급증했다. 외국에 가면 꼭 사야하는 필수 브랜드 품목들의 리스트를 작성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경제발전과 더불어 가처분 소득이 늘어나면서, 실질적인 가치뿐만 아니라 감성적인 가치도 추구하는 경향이 나타났다. 이제 단순한 외국산 제품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알아볼 수 있고, 들어본 적이 있는 브랜드여야 했다. 그러면서도 그 때까지 소수만이 사용할 수 있는 그런 브랜드들이 바로 명품이었다.


        이 시기에 다양한 분야에서 한국산 명품을 추구하는 움직임이 나타났다. 기존의 경쟁사 제품과는 수준을 달리 하고, 알려진 해외 브랜드보다는 가격이 약간 낮지만 품질은 대등하거나 낫다는 것을 내세우는 식이었다. 대표적으로 남성 정장의 제일모직 ‘갤럭시’나 캐주얼의류로 ‘빈폴’, 압구정동이라는 지리적 배경을 십분활용한 현대백화점 등이 있다.


        그저 알려진 브랜드 이상의 의미를 추구하는 풍조가 ‘90년대 중반 이후 나타났다. 이 때 들어서는 알려진 브랜드 집단들 간에, 그리고 동일한 브랜드 내에서도 제품 종류에 따른 서열이 한국 소비자들에게 형성이 되기 시작했다. 세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한국인들의 해외 브랜드에 대한 정보가 축적되면서 생긴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둘째, 해외의 브랜드들이 라인을 확장하며 여러 가지 제품 카테고리로 진출하면서 동일한 브랜드 내에서도 제품들 간의 가격 차이가 나타났다. 셋째, 한국에서 출현한 브랜드들과 명확한 차별점이 필요했다. 이 점들을 충족시킨 게 바로 상식을 뛰어 넘는 수준의 가격이었다.


        이 때는 한국에서 명품이라는 단어가 정착하는 시기이기도 하고, 명품전문점을 표방하는 대규모 유통점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다수의 해외 명품 브랜드들이 ‘대중적인 명품(Masstige)'를 표방했다. 이 물결 속에서 희소성이라는 가치를 만족시키기 위하여 초고가의 제품들로 명품의 조건이 좁혀졌던 것이다.


        대중적 명품 전략은 결과적으로 많은 명품 브랜드들의 브랜드 가치만을 떨어트리는 결과를 가져 왔다. 어느 브랜드나 겪기 마련이지만 지나치게 대중화되면서 그 브랜드만이 가지고 있는 자부심이나 특권의식이 사라져버린 것이다.


        이에 대응한 소위 해외 명품 브랜드들의 전략 방향은 두 가지로 나뉘었다. 하나는 대중화의 길을 가속하여 달려가는 것이다. 저변의 확대와 그를 통한 매출의 증대에 한층 힘을 기울였다. 이는 지금과 같은 글로벌 경기 침체가 그 정당성에 더욱 힘을 실어주고 있다. 둘째는 대중성 확산과는 반대로 나아갔다. 가격을 높이고, 한정품 위주로 제품을 내놓아 희소성을 더하는 식이었다. 그러면서 명품의 이름값이 아닌 자신의 취향과 맞는 브랜드, 그 브랜드에서도 특정 품목만을 찾는 경향이 나타났다. 독립적으로 자신만의 명품리스트를 만들기 시작한 것이다. 


        위의 변화들은 전단계의 모습들을 일거에 갈아 치우면서 바뀌어 온 것은 아니다. 아직도 명품의 제 1조건으로 무조건 외국브랜드여야 한다 혹은 값이 비싸야한다는 것을 내세우는 사람도 많다. 서로 겹치면서 명품에 대한 인식과 소비의 대세가 그렇게 변해 왔다는 것을 의미하며, 가장 큰 흐름은 ‘원산지(외국) -> 인지도 -> 가격 -> 개인과 어울림’ 식으로 조건이 까다로워지는 한편 소비자의 결정 비중이 커져 왔다는 데 있다. 그래서 단순하면서 거만하게 매장에 제품을 내놓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추종자를 거느린 명품으로 인정받는 시대는 갔다. 이제는 소비자들의 변화를 예의주시하여 명품들이 그 트렌드에 자신을 맞추어야 할 시대가 되었다. 그런 측면에서 한국인들의 명품 관련한 소비 트렌드의 몇 가지 큰 흐름을 살펴보고자 한다.


        첫째, ‘미묘한 차이(Subtle difference)'가 명품을 만든다. 상투적인 광고문구 같지만 한국인들은 대세감을 중시하면서 그 안에서 다른 것을 추구한다. 일전에 한국문화 연구 차 온 어느 영국 광고인들과 얘기를 나누었는데, 디자이너 출신 친구가 나이트클럽에 가서 보니 한국 여자들이 예쁜데 패션이 너무 획일적이라고 했다. 눈썰미가 그보다 좋았던 카피라이터 출신 영국 친구가 반박했다. “같아 보이지만, 자기네들끼리만 알아보는 차별화 포인트가 있더라구.” 그런 차이와 그를 통한 자부심을 심어주어야 한다.


        둘째, 다양한 분야에서 명품이 출현한다. 휴대전화가 기존 명품 브랜드와 디자인 부문에서 협력하는 선에서 넘어서서 기술력을 중심으로 한 ‘IT 명품’의 길을 열고 있다. 환경을 주제로 한 사회적 명품, 나 자신을 위한 웹빙에서 로하스로의 진화 길목에서 그에 맞는 명품이 등장할 수 있다.

        셋째, 바로 위의 다양한 부문과 앞서 얘기한 엄청나게 높은 가격이 합쳐져서 저관여제품에서 초고가의 명품임을 자임하는 브랜드들이 나타날 것이다. 이전까지 브랜드 자체가 거의 의미 없게 받아들여졌던 주방타월, 구두닦이 솔, 화장실 휴지 등에서 기존 가격 열 배 이상의 제품들이 출현할 것으로 예상한다.


        넷째, 그저 가격만 높아 고소득층의 허영심을 부추기고, 사회 갈등과 소외를 일으키는 주범 중의 하나로 명품을 지적하는 ‘반(反)명품’운동 내에서 ‘탈(脫)명품’의 움직임이 크게 일어날 것으로 전망한다. 개인의 취향에 따라 명품리스트를 작성하는 흐름과 맞닿아 있는 트렌드인데, 생활 패턴으로 브랜드에 구속되거나 좌우되지 않고 신경 쓰지 않는 ‘(명품 )브랜드 프리(Brand Free)’에서 ‘사회적, 철학적 소비’의 유형을 만들고 그것이 더 많은 소비자에게 공감을 얻게 될 것이다.


        요약하면 개별제품 차원에서 대세 유행을 크게 거슬리지 않으면서도 미묘한 매력 포인트 만들기, IT나 웰빙과 같은 시대를 리드하는 부문과 그간 방치하였던 저관여제품과의 접목, 사회적 건전한 역할의 규정과 공헌이 앞으로의 한국 내 명품의 과제라 하겠다.


- 한국능률협회 발행 "The Proud" 에 실린 글입니다.-
2009년 10월부터 현대기아차그룹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이노션월드와이드 마케팅본부장으로 재임하고 있음.
역사 및 사회의 제반 모습들을 브랜드적으로 해석하는 데 관심이 많고, 그에 관련한 저서 두 권이 있다. '모든 것은 브랜드로 통한다(사회평론,2002)', '브랜드 마인드(사회평론,2004)'. 학부에서는 중국사를 전공했고, 삼성전자 홍보실을 거쳐, 미국 뉴욕대 경영대학원을 졸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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