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내커

탐욕이 낳는 왜곡

 탐욕이 낳는 왜곡


미국의 소비자들은 이제 소비생활을 영위하는 데 쓸 돈이 없다. 소비가 국내총생산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70%에 이르는 이 나라에서 문제는 너무나도 심각하다. 그렇다면 그 돈은 다 어디로 간 것인가?


        빌 클린턴 행정부 시절 노동부장관을 지냈고, 현재는 버클리대학교 교수로 재직하고 있는 로버트 라이시(Robert Reich)가 올해 2월 9일자 워싱턴포스트(Washington Post)에 “부양정책이 발동되면서 진짜 힘든 싸움이 시작된다(Once the Stimulus Kicks In, the Real Fight Begins)”라는 제목으로 기고한 글의 일부이다. 

 
       이어서 그는 1970년대 말 이후 갈수록 국민소득의 대부분이 상위 소득층으로 몰린 현상을 지적한다. 1976년만 해도 미국의 상위 소득 1%는 전체소득의 9% 정도를 차지했으나, 2006년에 이르면 상위 1%가 전체 소득의 20%를 가져가는 구조로 바뀌었다고 한다.


        미국 중산층의 전체 소득에서의 비중이 줄어들기 시작한 1970년대 말 이후, 미국 중산층은 자신들의 생활수준을 유지하기 위하여 전업주부들을 포함하여 모든 가족들이 잠을 줄이며 복수의 일을 하는 체제로 돌입했다. 그렇지만 그들의 소비생활은 심리적, 실제적인 양 측면에서 더욱 쪼들려 갔다. 부동산과 금융에서의 자산이 거품이 되어 나타나면서 많은 이들이 희망조차도 잃어버린 상태이다. 처음의 문장에 나온 대로 그나마 소비할 수 있는 약간의 돈마저도 말라 버린 형편이다.


        전체 경기를 위해서는 소득이 증가한 부자들이 적극적으로 소비에 나서야 한다. 하지만 부자들은 중산층 이하보다 소득 대비 소비하는 비중이 적다. 이미 필요한 것들을 웬만큼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소비를 늘인다고 해도 전체 경제에 크게 영향을 미치지 않는 사치품 등의 제한된 부분에서 주로 할 따름이다. 상위권으로 소득이 집중되면 총수요에 큰 구멍이 생기고, 경제가 나락으로 떨어지게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래서 중간소득을 높이고, 생산성을 제고하는 등의 정책 없이는 미국은 더 심각하고 장기적인 경기침체에 직면할 것이라고 라이시 교수는 경고한다. 미국 역사에서 상위 1%가 20% 이상을 가져갔던 적은 대공황이 시작되기 직전인 1928년 밖에 없었다는 사실이, 그의 경고가 더욱 섬뜩하게 들리게 한다. 미국이 차지하는 비중을 생각하면 전 세계가 오랜 기간 신음하게 될 것이다.


        상위계층과 다른 계층의 차이를 여실히 드러내는 통계들을 몇 가지 더 보자.


1965년, 기업 CEO의 수입은 일반 근로자 평균의 다섯 배였다. 많은 액수이기는 하지만CEO 수입이 일반 근로자의 거의 300배에 달하는 오늘날에 비하면 이러한 격차는 아무 것도 아니다. 1980년대 이전만 해도 임금 격차는 여전히 작은 수준이었다.

<치팅컬처> 데이비드 캘러한 지음, 강미경 옮김, 도서출판 서돌, 2008


        미국에만 국한되지 않고 영국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우리나라로 치면 100대 상장기업이라고 할 수 있는, 영국 FTSE 100(Financial Times Stock Exchange 100)기업의 최고경영자들과 영국 노동자들의 평균 소득격차가 2000년 39배에서, 2006년 98배로 커졌다고 한다.


        미국에서는 대공황(Great Depression)과 제 2차 세계대전의 비정상적인 시기를 지난 1940년대 중반부터 1960년대 말까지를 ‘대압축(Great Compression)’의 시기라고도 부른다. 전후의 호황이 계속 되면서 소득격차가 대폭 줄어들었고, 미국의 거의 모든 계층이 비슷한 비율로 부유해진 시기였다. 그것이 ‘혼돈의 70년대’와 ‘탐욕의 80년대’, ‘거품의 90년대’를 거치면서 폭발하고 증발하는 단계로 접어든 것 같다.


AIG 브랜드가 의미하는 것은?


        2008년 여름 중국의 윈난(雲南) 지방으로 여행을 갔었다. 그 때 지린(吉林)성 옌벤(延邊)조선족자치구 출신으로 가이드를 맡았던 친구가 하나 있었다. 윈난 지방의 한국인 가이드로는 최고 고참급이라는 그 친구는 우리 일행과 헤어질 시간이 다가오매 버스 안에서 마이크를 잡고 이미 모두가 알고 있던 자기 이름을 몇 차례 더 큰 소리로 외쳤다. 한국에 있는 친지나 다른 분들께 중국 윈난 지방으로 여행을 많이 오시도록 추천을 해주고 그러면서 자기소개를 해달라고 부탁을 했다. 그리고는 덧붙였다.


        “선생님들, 제가 저 혼자 먹으려고 그러는 건 아닙니다. 사람이 아무리 많이 먹는다고 해도 혼자 먹는 데는 한계가 있습니다. 한 솥의 밥을 혼자 다 먹을 수는 없습니다. 한국인 대상 가이드들 모두가 같이 먹을 겁니다. 도와주십시오!”


        그렇다. 혼자서 솥의 밥을 다 먹을 수는 없다. 그런데 요즘 보면 다 먹을 수는 없지만 밥을 버리는 한이 있어도 일단 독차지하려고 하는 모습을 보는 경우가 많다. 어쨌든 우선은 챙기고 보자는 탐욕으로 철저하게 무장한 브랜드들이 출몰하고 있다. 구제금융을 받으면서도 보너스 잔치를 벌인 AIG가 아마 대표적인 사례라고 하겠다.


        지난 3월 미국 뉴햄프셔 주의 하원의원인 폴 호드(Paul Hodes)는 청문회에서 AIG가 ‘Arrogance, Incompetence, Greed(교만, 무능, 탐욕)’을 나타낸다고 얘기했다. AIG를 가지고 분명히 이런 식의 말장난이 등장하겠지 생각하고 있었는데 바로 나왔다.


        외국기업에서는 브랜드, 특히 기업의 이름에 이런 약자를 쓰는 경우가 많다. GE, GM, IBM, 3M, UPS, UA, AA, S&P, A&P, AT&T, HP, P&G 등등 우리에게 익숙한 이름들이 약자 형태의 브랜드로 존재하고 있다. 그런데 실제로 각 철자가 무엇을 나타내는지 소비자들은 관심이 없다. 소비자들을 떠나서 미국이나 한국이나 광고하는 친구들이라고 해도 위의 약자 기업명들이 어디서 유래했는지, 풀어서 얘기하는 정식 명칭이 무엇인지를 정확하게 아는 것이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되지도 않는다.


        당연히 소비자들에게 그 알파벳 하나하나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가르쳐 주기도 아주 힘이 든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각각에 담긴 의미를 소비자들이 꼭 알아야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기도 하다. 보통은 창업기의 스토리를 알림으로써 자연스럽게 전달하려 한다. 현재 추구하는 브랜드와 연결시켜서 얘기할 수 있는 시나리오를 만들어서 사람들을 가볍게 놀라게 하고, 신선한 이미지를 덤으로 얻기도 한다. 3M과 같은 경우 가운데 ‘M’이 ‘Mining’, 곧 현재 소비자들이 주로 알고 접하고 있는 3M의 분야와는 거리가 있는 ‘광업(鑛業)’이라는 것이 긍정적인 쪽으로 주로 작용하는 것 같다.


        한편으로 광고하면서 잘 쓰는 수법은, 부러 재미있는 언어유희와 같은 형태로 새롭게 정의하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BP가 ‘British Petroleum’이 아닌 ’Beyond Petroleum’이라고 정의한 것은 아주 진지하게 접근한 사례이다. 1980년대 초에 ‘미국을 대표하는 두 명의 장군(General)’으로 GE와 GM을 폴란드의 한 인사가 농담조로 언급한 것을 시대적 분위기와 맞추어서 두 회사에서는 즐겨서 재인용하곤 했다. 아주 맘에 든 선물처럼 주어진 언어의 유희였던 것이다.


        아무리 좋은 의미로 BP처럼 슬로건을 만들거나, GE나 GM처럼 외부의 인사가 도와주어도, 이번의 AIG처럼 사람들의 생각과 완전히 엇갈리는 방향으로 밀고 나가 버리면 부정적인 방향으로 브랜드 철자 의미 변형시키기 대회의 문을 열어준 셈이 된다. 당분간 보다 재치 있고, 날카로운 AIG 의미 변형 놀이를 보게 될 것 같다.


        단순한 철자와 연관하여 의미를 부여하는 놀이 이외에, 기존의 제품이나 기업의 이름을 확 바꾸어 보는 장난(?)을 치는 경우도 있다.


        예전에 미국의 한 블라인드 업체에서 대대적인 광고를 시작하면서, 블라인드를 블라인드라 부르지 않고 새롭게 정의한다고 거창하게 발표를 했다. 기능적인 측면에서 빛을 조절하고, 빛을 적절하게 분산시킨다는 의미에서 ‘Light controller’, ‘Light diffuser’라는 표현을 썼다. 우리말로 고치자니 썩 적절한 용어가 생각나지 않았다. 결국 ’조광기(調光機)‘와 ’산광기(散光機)‘로 번역을 했다. 또한 그 업체는 조광기와 산광기가 그 사용자들에게 줄 감성적인 혜택으로, 무드를 고조시켜준다고 해서 ’Mood enhancer’라는 용어를 만들어 냈다.


        최종적으로 이런 변화들을 ‘빛이 모든 것을 변화시킨다(Light can change everything)’는 슬로건으로 뒷받침했다. 항상 보는 별 변화가 없는 제품을 이렇게 다른 호칭을 부여하고, 그렇게 다른 각도로 보도록 소비자들을 유도하는 것은 제품의 활력을 유지하거나 이미지 환기를 시킬 수 있는 좋은 수단이다. 차단한다는 의미가 더 강한 ‘블라인드(blind)’보다는 ’빛(light)’, ‘기분(mood)’, ‘고조(Enhance)’같은 단어들이 훨씬 긍정적인 의미를 불러일으킨다. 이런 호칭이나 표현의 변화가 정치 쪽으로 넘어 오면 문자 그대로 옳은 것을 부정하고(歪), 곧은 것을 구부려(曲) 왜곡시키는 브랜드들이 점멸한다.


왜곡의 사례와 정명(正名)

        중국 청나라의 마지막 50년을 장식하며 궁궐내의 암투와 그에 따른 정적의 살해, 사치와 기행(奇行)으로 전설과 같은 인물로 남은 자희태후(慈禧太后)라고도 불리는 서태후(西太后)란 인물이 있다. 서태후는 전통시대 중국의 마지막을 장식하여 현재의 중국과도 직접적으로 깊은 연관이 있는 인물로 그에 관한 기록들을 여러 방면에서 쉽게 접할 수 있다. 예를 들자면 ‘마지막 황제’인 선통제(宣統帝) 푸이(溥儀)를 제위에 올린 인물이 바로 서태후이다. 직전 황제인 광서제(光緖帝)가 죽기 며칠 전에 부의를 후계로 결정했고, 황제가 죽은 다음 날 서태후도 죽음을 맞이했다.


        그런 서태후의 시대를 공식적으로 기록한 사서(史書)에 ‘경자서수(庚子西狩)’라는 구절이 나온다. 문자 그대로 해석을 하면 ‘경자년에 서쪽으로 사냥을 갔다’는 뜻이다. 그런데 서태후 시절의 경자년이라면 1900년을 말하는데, 서구 세력, 특히 선교사들과 중국의 기독교 신자들을 집중적으로 공격한 ‘의화단(義和團) 사건’으로 북경을 중심으로 한창 피비린내가 진동을 하고, 편견에 가득 찬 오리엔탈리즘 영화의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는 ‘북경의 55일’에 보이는 것처럼 미국을 비롯한 6개국 연합군이 북경을 쑥대밭으로 만들었던 바로 그 해이다. 서태후도 의화단이 떨치고 일어선 초기에만 하더라도 관망하는 자세를 취하다가, 의화단이 북경을 압박해 오면서는 공개적으로 의화단을 지지했고, 6개국 연합군이 북경을 향해 밀어 닥치자 황망히 황제까지 대동하고 서안을 향하여 도망을 갔다.


        사서에서 ‘서쪽으로 사냥을 갔다’는 것은 바로 그 도주를 일컫는 것이었다. 자고로 중국에서는 황제가 난리를 피하여 궁문을 나서서 도망하는 것을 ‘사냥을 간다’고 표현했다고 한다. 하긴 황제의 이름과 같은 자가 있는 것만 해도 휘자(諱字)라고 피해, 피휘(避諱)한다고 하는데, 그런 황제에게 ‘도망을 간다’ 식의 무엄한 용어를 쓸 수는 없는 노릇이었을 게다. 피휘가 어느 정도 심각한 일이었는가 하면, 1908년 푸이가 선통제로 제위에 올랐을 때, 1911년 신해혁명 후에 중화민국 최초의 총리를 지낸 탕사오이(唐紹儀)는 마침 미국 출장 중이었는데, 소식을 듣고 제일 먼저 한 일이 본국 정부에 자신의 이름의 마지막 자인 ‘儀’를 같은 발음의 ‘怡’로 바꾼다는 사실을 알린 것이었다.


        2차대전까지의 일본군을 보면 작전명령서에 ‘후퇴’라는 단어를 쓰지 않았다. 적군들의 움직임을 표현할 때는 ‘후퇴’ 혹은 ‘패퇴(敗退)’라는 단어를 남발하다시피 했지만, 자신들에게는 절대 사용하지 않았다. 대신 그들은 방향을 바꾸어 나아간다는 뜻으로 ‘전진(轉進)’이라고 썼다. 보통 우리가 쓰는, 그리고 ‘나아갈 진(進)’과 어울리는 ‘전진(前進)’과 헷갈릴 수밖에 없다. 그나마 일본어로는 ‘젠신(ぜんしん)-前進’과 ‘텐신(てんしん)-轉進’으로 발음의 차이가 그래도 좀 나지만, 우리말로는 같았다. 그래서 한국전 와중에 일본군 출신 장교들로부터  ‘후방 XX지점으로 전진하라’는 명령을 받고 어리둥절해 하거나, 어떤 경우는 무작정 정말 앞으로 전진 하는 웃지 못 할 에피소드도 발생하곤 했다고 한다.


        에두아르도 갈레아노(Eduardo Galeano)란 아르헨티나 출신 시인은 “1984 보고서”란 시에서 미국 정부가 행한 언어의 왜곡을 다음과 같이 고발하며 꼬집고 있다.


        미국 국무부는 라틴아메리카에서의 인권 유린에 관한 자체 보고서에서 ‘살인’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기로 결정한다. ‘살인’ 대신에 ‘생명의 불법적 또는 자의적 박탈‘이라고 써야 한다. 얼마 전 CIA는 테러 교범에서 ‘살인’이라는 단어를 뺐다. 대신에 적을 죽이거나 죽이려 할 때 ‘무력화(無力化)한다’고 씌어 있다. 또 국무부는 미국이 라틴아메리카에 보내는 모든 군대를 ‘평화유지군’이라고 부르며, 미국 기업의 이익을 되찾기 위해 싸우는 살인자들을 ‘자유의 투사’리고 부른다.


        공자(孔子)는 정치에 대하여 말씀을 하면서 정명(正名)을 강조했다. 이 정명이란 것은 실제와 그 나타나는 바, 이름을 일치시켜야 한다는 뜻과 ‘임금은 임금다워야 하고, 신하는 신하다워야 한다’에서 나타나는 것처럼 명분이나 지위에 걸맞는 행동을 해야 한다는 두 가지 갈래로 해석될 수 있다. 그러나 실상 이 둘은 서로 연계되어 있다.


        서태후나 일본 군대, 미국 정부의 CIA와 국무부에서 보인 예들은 두 번째의 정명을 짧게 해석했다. 어떤 지위 사람의 체면을 손상하거나, 명분에 어긋나는 경우를 억지로 회피하면서 멋대로 해석하여 그것이 첫 번째의 정명을 어지럽히는 결과를 가져왔다. 거기에는 사서를 읽을 후세의 사람들이나 작전명령을 받을 군인들에 대한 배려는 전혀 없이 황제로서의, 대일본군으로서의 체면만을 고려했다. 미국 정부도 자신의 정책으로 라틴 아메리카 사람들이 받을 고통에 대한 일말의 동정심도 찾아볼 수 없다. 자신들의 이득만을 계산하고 추구하는 탐욕의 세계만이 존재할 뿐이다. 그래서 당시에는 일시적으로 체면을 세웠는지는 몰라도, 정치에 실패했고, 결국 후세의 비웃음을 사고 있다.


        그런 면에서 블라인드 광고에는 약간의 과장은 있을지 몰라도 정명 자체에 위배되는 면은 없다. 또 거기에는 블라인드의 존재 이유가 되는 ‘빛’이라는 요소로부터 출발하고 있음을 뚜렷이 했고, 사용하는 고객들의 위치에서 그 혜택을 표현하려 했기에 부담감 없이 받아들일 수 있고, 흥미를 느끼게 된다. 현실에서 빗나가지 않게 근본을 뚜렷이 하면서, 그 바탕 위에 이름 곧 이야기할 내용을 바로 세우고, 고객의 위치에서 그 눈높이에 맞추어 약간의 흥미 요소를 섞어, 더러는 과장되게 혜택을 표현할 수 있다.


        탐욕이 지나칠 때 수용될 수 있는 한계를 넘어서는 왜곡이 나오게 된다. 그 왜곡은 표현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의 근본 질서조차 뒤틀리게 한다. ‘순환’하며 ‘진보’한다는 개념은 아직도 양립, 연계될 수 없는 것들을 접붙이는 순진함의 표현에 지나지 않을 뿐인가?

2009년 10월부터 현대기아차그룹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이노션월드와이드 마케팅본부장으로 재임하고 있음.
역사 및 사회의 제반 모습들을 브랜드적으로 해석하는 데 관심이 많고, 그에 관련한 저서 두 권이 있다. '모든 것은 브랜드로 통한다(사회평론,2002)', '브랜드 마인드(사회평론,2004)'. 학부에서는 중국사를 전공했고, 삼성전자 홍보실을 거쳐, 미국 뉴욕대 경영대학원을 졸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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