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 안에 '환경'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기업으로 만들어 드리겠습니다."




1994년 초였다. '우리 강산 푸르게' 캠페인으로 '환경' 관련하여 소비자 인식에서 압도적인 우위를 차지하고 있던 모회사를 5년 안에 눌러 주겠다고, 모제지회사의 임원에게 프로젝트 제안서를 설명하면서 감정까지 고조되어 톤은 높지만 애절하게 얘기했다. 꼭 해보고 싶은 프로젝트였고, 자신이 있었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환경친화적인 기업으로 인식시켜 달라는 요청이 온 데는 당시 제지업계를 조여 오고 있던 위기감이 큰 역할을 했다. 컴퓨터가 사무기기로 본격적으로 보급이 되면서, '종이가 필요없는 사무실(paperless office)'가 된다는 얘기가 널리 퍼졌다. 제지기업들은 사양산업으로 분류되는 제지업종 이외의 확장 혹은 대안을 모색해야 하는데, 자산으로 가지고 있는 것이 종이의 원료로 쓰이는 펄프를 만들려고 조성한 삼림이었다. 그것을 환경과 연결시켜 소비자 인식 속에 강하게 자리를 잡고, 관련 업종으로 진출코자 했다.




그래서 '환경 친화적인 기업으로 인식한다'로부터 출발하여 보다 구체적이고 명확하게 프로젝트의 구체적인 목표로서 '환경'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기업으로 시기까지 5년으로 명시하여 제시했던 것이다. 당시 실정에 비추어보면 매우 의욕적인 연구계획도 짰고, 그에 맞추어 프로젝트 비용도 당시 수준으로서는 꽤 큰 금액을 써넣었다. 꼭 해보고 싶었던 나의 의욕이 비싸게 보이는 컨설팅 비용과 어울려 평소와 다른 분위기로 애절하고 높은 톤의 소리가 나왔던 것이다.




회사 이름도 바꾼 지 오래 되지 않아 새롭게 출발하고자 하는 기운이 그 때까지는 제법 남아 있고, 자금 형편도 괜찮은 편이라 상당히 기대를 했지만 결국 그 프로젝트 제안은 기각되고 말았다. 광고회사에 보통 지불하는 컨설팅 비용 예상치를 넘어선 예산을 제시한 것이 결정적으로 부담스러웠다고 들었다.




그 기업은 지금까지도 제지 부문에서 굳건하게 한국 내 최고의 자리를 지키고 있다. 환경과 관련하여서도 우리가 제안한 컨설팅을 하지는 않았지만 상당한 노력을 기울였다. 그러나 환경 관련한 이미지는 그 노력과 실제로 환경 관련하여 가지고 있는 자산에 비하여 매우 취약한 편이다.




지금까지도 가끔 그 때의 컨설팅 제안이 받아들여졌다면 결과가 어떻게 되었을까 궁금하다. 과연 유한킴벌리의 살아 있는 전설이 된 ‘우리 강산 푸르게’ 캠페인의 아성을 무너뜨릴 수 있었을까? 실행 프로그램 자체도 매우 파격적이며 큰 예산이 소요되는 것들이었을 텐데 수용할 수 있었을까? 5년이란 기한을 명시했고, 환경 관련하여 소비자조사에 따라 성과를 명확하게 판단할 수 있는 그런 컨설팅 제안을 지르기는 힘든데, 그렇게 한 것을 보면 자신만만했고, 한편으로 매우 순진했던 것 같다. 실제 진행을 했다면 최고의 도전작(Challenging project)가 될 확률이 높았다.




기업들마다 ‘Paperless company'를 만든다고 소동을 부리던 시절이 실제 있었다. 1994년 제지회사 임원의 걱정대로 종이 소비가 급격히 줄어들 것이라고들 예측을 했다. 그런데 실상 종이 소비는 계속 늘어났다. 우리나라의 경우 ’94년 655만톤에서 2007년 890만톤으로 종이소비가 30% 이상 늘었다. 전 세계적으로도 2005년 3억2천만톤의 종이를 소비했는데, 2015년이면 4억4천만톤 정도로 소비량이 늘어날 전망이란 글을 보고 갑자기 15년 전의 일이 생각이 났다.




그런데 왜 종이 소비가 늘어날까?

1. 절대적인 정보취급량이 많아졌다. 종이에 담겨져 전달될 정보가 많아진 것이다.

2. 종이의 쓰임새가 많아졌다. 주방의 키친타월이나 화장실 세면대의 페이퍼타월 같은 것은 80년대에만 해도 우리 사회에서 보기 힘들었다.

3. 무엇보다 1번과 연결하여 사람들은 몸에 배인 방식을 쉽게 버리지 못한다. 종이에 담긴 글을 정보를 읽는 것이 편하다.



위의 세 번째 이유와 연결하여 새로운 기기가 출현하면 보통 전의 것들을 대체한다고 예상을 한다. 미디어 관련하여 그런 경향이 더욱 두드러진다. TV가 등장하며 라디오가 없어질 것이라든지, 비디오 때문에 영화관이 없어지고, 인터넷으로 인하여 신문이 사라지고, e북이 종이책을 없애버릴 것이라는 식의 얘기가 나왔다. 그러나 실제로는 원래의 것들에 새로운 것이 보완재로 혹은 별도로 소비생활을 넓히는 쪽으로 진행이 되었다. 흑백의 이분법적인 사고로 시장을 예측해서는 안 된다.




“신문은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 컴퓨터로 생선을 쌀 수는 없을 테니까.“

이런 조크를 80년대에 본 적이 있다. 사람들은 익숙한 습관을 버리지 못하기도 하지만, 컴퓨터가 아무리 발달을 해도 종이의 촉감을 사람들은 잊지 못하고 계속 찾을 것이다. 그래서 종이책도 결코 사라지지 않고, 출판 기술의 발달과 정보량의 증대에 힘입어 더욱 많은 도서가 출간되며 발전할 것이다. 단지 고급정보의 전달자로 예전과 같은 절대적인 지위를 누리지는 못할 뿐이다.
2009년 10월부터 현대기아차그룹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이노션월드와이드 마케팅본부장으로 재임하고 있음.
역사 및 사회의 제반 모습들을 브랜드적으로 해석하는 데 관심이 많고, 그에 관련한 저서 두 권이 있다. '모든 것은 브랜드로 통한다(사회평론,2002)', '브랜드 마인드(사회평론,2004)'. 학부에서는 중국사를 전공했고, 삼성전자 홍보실을 거쳐, 미국 뉴욕대 경영대학원을 졸업했다.

ⓒ 한경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