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내커

센소노미(Sensonomy) 의 시대

삼성경제연구소 SERI CEO에서 강연한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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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전에는 이맘 때 쯤이면 보릿고개 걱정이 되곤 했습니다. 이제는 거의 흘러간 시절의 단어로 치부됩니다만, 보리가 나기 전의 5월, 6월을 어떻게 지내는가가 큰 문제였고, 그래서 보릿고개다 춘궁기다 하는 말들이 나왔습니다. 그런데 그런 식량이 다 떨어진 상태에서도 우리 선조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어떻게 보일까 걱정을 또 합니다. 제가 좋아하는 노벨상 후보로도 자주 거론되는 고은 선생의 시집 <만인보> 중에서 자신의 할아버지를 그린 시 중의 일부를 소개하겠습니다.


집안 식구 서너 끼니 어질어질 굶주리면


부엌짝 군불 때어 굴뚝에 연기 낸다


남이 보기에 죽사발이라도 끓여먹는구나 속여야 하므로


맹물 끓이자면 솔가지 때니 연기 한번 죽어라고 자욱하다



        먹을 것이 아무 것도 없어 식구들은 가뜩이나 어질어질한데 왜 여기에 더 어지럽게 군불이라도 때어서, 죽사발이라도 끓여 먹는 것처럼 속여야 할까요? 상식적으로는 굶고 있는 것을 사람들에게 보여서 그나마 조금이라도 여유 있는 사람에게 쌀이나 먹을거리를 얻어야 살 수 있는 것이 아닌가 싶은데요.


        세계 어느 나라 사람이나 갖고 있지만, 우리에게 좀 더 강하게 나타나는 소비성향이 있습니다. 남들에게 보이기 위한 소비성향이 아주 강합니다. “옷이 날개”라는 옛 속담부터 시작해서, 박지원의 양반전에서 묘사된 것처럼 양반이라는 사회적으로 자신을 나타내는 신분을 사고판다든지, 비교적 근래의 명품 열기와 폭발적으로 일어나는 휩쓸고 가는 패션의 유행 같은 것이 바로 이런 다른 사람들의 시선에 민감한 우리의 모습을 보여 줍니다. 


        사실 경기가 좋고, 잘 나갈 때에야 모두들 잘 나가는 것 같으니까 다른 사람들 크게 신경 쓰지 않습니다. 그런데 예전의 보릿고개나 지금과 같은 불경기 때는 누가 가장 먼저 떨어져 나가는가가 관건이 되는 치킨게임과 같은 양상이 나타납니다. 누가 먼저 영향을 받는가가 관건이 되고, 혹시라도 거기에 속해서는 안 되겠다는 의식을 주린 배를 감싸 안으며 다짐합니다. 속하게 된다고 하더라도 다른 사람들이 알아차리지 못하게 필사의 노력을 군불을 때면서도 합니다. 그러다가 실제로 누군가 굶어 죽는 사람이 생기고 하면, 공식적인 구휼 활동이 시작되고 그 때는 좀 떳떳하게, 체면을 차리면서 구호양식을 받습니다.


        당장의 먹고 살거리도 걱정이지만,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지는 모습까지 신경을 쓰는 모습은 이후 세계가 놀랄 정도의 급속한 경제발전을 이루고, 그에 따라 우리의 생활수준도 크게 향상을 하였지만 예전과 크게 달라진 것 같지는 않습니다. 이번 불황, 경제위기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로 계속 이어지는 모습을 발견합니다. 특히 1997년의 IMF경제위기를 겪은 한국인들에게는 그 10여년 전 가까운 과거의 아픈 기억까지 곁들여져서 이번의 경제위기에 더욱 민감하게 반응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제일기획에서는 IMF 경제위기 이후로부터 11년간 매년 실행했던 한국인 라이프스타일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앞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보릿고개에도 양식이 없어도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하여 군불을 때던 한국인들이 더더욱 그런 시선뿐만 아니라 실제 경기 자체에도 민감하게 반응을 하는  ‘불황민감성 체질’로 변해왔다고 정의내린 바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수치상으로 나타나는 경기의 변동에 정상적인 수준 이상으로 과도하게 반응을 보인다는 겁니다.

 
       이렇게 전반적으로 경기 관련 자극에 대하여 과도한 반응을 보이고, 외부에 대하여 필요 이상의 의식하여 자신의 경제를 꾸려 나가는 이러한 상태, 경제적 인식과 상황을 “Sense”와 ”Economy”를 합성한 “Sensonomy”라는 새로운 용어로 표현하고자 합니다. ‘Sense’라는 낱말이 사실 한글로 한 마디로 딱 들어맞게 번역하기는 힘들지만, 이성보다는 감성 쪽으로 경도된 경제 관련 결정과 반응 태도를 보인다는 것입니다.


        “Sensonomy”에서 소비자들은 ‘Sense’에서 기원하는 몇 가지 단어로 정리할 수 있는 특성을 보입니다. 먼저 이들은 아주 감각적, 심하게 얘기하면 육감적이라고까지 표현할 수 있는, 영어 단어를 사용한다면 ’Sensual’한 소비성향을 보입니다.


        불황기 소비의 대표적인 특성으로 언급되는 사례들이 있죠? 자극적인 노출 성향을 반영하는 미니스커트가 거리에 많이 보이고, 립스틱을 비롯하여 진한 색조의 화장품과 역시 강렬한 색상이 유행하는 것이 바로 ‘Sensual’한 소비의 대표적인 경우라고 하겠습니다. 이밖에도 자극적인 매운 맛의 음식, 가격과도 관계가 있기는 하지만 풍성한 느낌을 주는 음식이나 포장 같은 것도 이런 성향을 반영한 사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소비자들은 이런 류의 소비, 즉 미니스커트를 입은 자신에게 보내는 타인들의 시선과 혀에 남아 있는 얼얼한 느낌을 통하여 어떻게 보면 자신이 소비하고 있는 자신을 확실하게 자각하며 만족감을 높일 수 있습니다.

 
       두 번째로는 앞서 몇 차례 언급하기도 했지만, 여러 가지로 민감해 집니다. ‘Sensitive’해지는 것이죠. 당연히 ’돈‘ 그 자체에 대한 부담과 중요성, 생활에서 차지하는 심리적인 비중이 커집니다. 그런데도 참 아이러니컬한 것은 워낙 민감해져서인지 착실하게 차근차근 돈을 모으는 것보다는 로또식 대박을 노리는 경향이 짙어진다는 점이 또 하나의 특징입니다. 이런 부분은 ’Sensual’한 소비성향과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자신이 쓰는 돈의 가치와 연계하여 상품이 주는 물리적인 가치뿐만 아니라 감성적인 혜택에까지 민감하게 됩니다. 이런 감성적인 혜택의 큰 부분이 바로 다른 사람들이 주는 시선을 많이 의식하게 되고, 다른 사람들과 비교를 하게 되는 경향을 더욱 뚜렷하게 보이게 됩니다.


        마지막으로는 제품 자체의 물리적, 감성적인 부분에 다른 사람들의 시선 등까지 의식하는 등 민감하게 여러 가지를 고려하게 되면서 신중하게 정보를 수집하고 따져보고, 감각적으로나 이성적으로나 교감을 이루고자하는 ‘Sensible’한 모습을 보입니다.


        실제 구매를 위하여 유통점까지 가는 발걸음이 무거워지고, 두 차례 갈 것을 한 번으로 줄이고, 이미 다 결정하고 온 것 같지만 최후의 순간에 제품을 집어 들고는 다시 고민을 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이 고민은 제품을 구입하고 난 후에도 계속 됩니다. 어찌 보면 끊임없는 자기확신과 자기합리화의 과정을 불황기의 소비자들은 계속 거치는 셈입니다.

  
      현재진행형의 이 불황의 시기는 소비자 측면에서 본다면 “Age of Sensonomy”, 크게 보아 감각적인 소비가 이루어지는 시대라고 정의를 내릴 수 있습니다. 이 ‘Sensonomy’의 시대에 ‘Sensual’ ’육감(肉感)‘적이고, ‘Sensitive’ ’민감(敏感)‘하며, ’Sensible’ ‘교감(交感)‘을 지향하는 소비자들에게 어떻게 접근하고 감응을 이루어낼 지 차차 보도록 하겠습니다.

2009년 10월부터 현대기아차그룹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이노션월드와이드 마케팅본부장으로 재임하고 있음.
역사 및 사회의 제반 모습들을 브랜드적으로 해석하는 데 관심이 많고, 그에 관련한 저서 두 권이 있다. '모든 것은 브랜드로 통한다(사회평론,2002)', '브랜드 마인드(사회평론,2004)'. 학부에서는 중국사를 전공했고, 삼성전자 홍보실을 거쳐, 미국 뉴욕대 경영대학원을 졸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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