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내커

조작과 왜곡에 맞선 투쟁…'꿍꿍이'는 결국 까발려진다

‘힐즈버러 참사’ 유가족들

27년 만에 웃었다. “드디어 정의가 실현됐다”며 환호했다. 오랜 세월 경찰 조작과 언론의 왜곡을 상대로 싸워왔던 영국 힐즈버러 참사 유가족들. 지난 4월 26일(현지 시각) 재판에서 “경찰의 대처가 늦어 피해가 커졌다. 축구 팬들은 아무 잘못이 없다”는 배심원단의 평결을 받아내고 잠시 회한에 잠겼다. 과거를 되짚던 이들의 눈가가 촉촉히 젖기 시작했다.

1989년 4월 15일 잉글랜드 셰필드에 있는 힐즈버러 스타디움에서 리버풀 FC와 노팅엄 포리스트 FC간의 FA컵 준결승전이 막 열리려 하고 있었다. 인근 리버풀에서만 2만5천 명의 팬이 찾아왔다. 경기장 수용 인원을 훨씬 넘어서는 엄청난 규모였다.

그러나 경찰은 좌석이 만원이라는 사실을 통보하지 않았다. 관중을 통제하기는커녕 일부 출구를 입구로 개방하는 편법까지 썼다. 평소 같으면 관중이 안전하게 진입하게끔 안내했으나 웬일인지 이날은 그리하지 않았다.

그 사이 경기는 시작됐다. 그러나 선수들은 단 6분만 뛸 수 있었다. 먼저 들어와 있던 관중들과 순식간에 쏟아져들어온 수천 명이 뒤엉켜 난리가 났기 때문이다. 특히 입석 자리로 이어지는 좁은 터널 통행로는 그야말로 아수라장이 됐다.

관람석 앞쪽에 있던 팬들이 뒤쪽의 인파에 밀려 쓰러지거나 철제 담장에 끼이기 시작했다. 일부는 압사를 피하기 위해 담장을 타고 올랐다. 순식간에 96명이 압사했고 수백 명이 부상 당했으며 또 수백 명이 입원 치료를 받았다.

경찰의 사고 발표는 신속하면서도 명쾌했다. 결론은 ‘우발적 사고’로 규정됐고 원인은 ‘일부 훌리건의 난동’이었다. 사우스요크셔 경찰은 “술에 취해 통제를 벗어난 관중들이 입장권도 없이 경기장에 난입하면서 사고가 일어났다”고 밝혔으며 언론들도 이에 동조했다. 일부 몰지각한 팬들의 돌출 행동을 부각시키는 보도가 연일 이어졌다. 유가족들은 죽은 이를 애도할 여유도 없이 참사 원인과 책임 소재를 따지는 외롭고 끈질긴 투쟁에 돌입했다.

이들이 승리하는 데는 27년이라는 긴 시간이 걸렸다. 배심원단은 이날 “경찰과 구조 당국이 조직적으로 사고 책임을 축구 팬들에게 돌리려 했다”고 지적했다. 배심원단에 따르면 경찰은 사건과 관련된 진술 164건을 조작했고 경찰에 불리한 진술 116건을 없앴다. 또 충분히 구조 노력을 기울였더라면 최소 41명은 살릴 수 있었다는 것. 이것이 ‘진실’이었다.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들

2006년 어느 날의 서울아산병원. 소아청소년과의 한 의사는 10여 명의 ‘이상한’ 환자들을 접했다. 이들은 소아 간질성 폐질환을 앓고 있었는데 급격히 상태가 악화되면서 모두 죽어나갔다. 이전까지 간질성 폐질환 경과가 그렇게 빨리 나빠지는 경우가 드물었으므로 이들의 사망이 의학적으로 잘 설명이 되지 않았다.

이때부터 의사는 전국적으로 비슷한 증상을 보이는 환자들을 조사하기 시작했다. 각고의 노력 끝에 그는 같은 공간에 있던 사람들이 병에 더 쉽게 걸렸다는 사실과 함께 과학적 설명이 가능한 원인과 메커니즘을 밝혀냈다.

당시 ‘괴질’로 보이던 그 병의 원인은 바로 가습기 살균제였다. 그 의사의 힘으로 2011년 대규모 역학 조사가 이뤄졌으며 세상에 진상이 알려지게 됐다. 그러나 이후 5년간 사망자와 피해자가 속출하기까지 이에 대한 위독성 검증은 그 어디에서도 이뤄지지 않았으며 정부 부처도 제각각의 목소리를 내기 바빴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2011년 말 가습기 살균제 분류를 공산품에서 의약외품으로 변경했다. 2012년 2월 질병관리본부는 가습기 살균제 제품과 폐질환과의 인과관계가 규명되지 않았다고 발표했으며 같은 해 9월 환경부는 유독물로 지정했다. 그뿐이었다.

병의 진상이 알려진 지 5년이 흐르는 동안 유아 등 200여 명이 사망하고 피해자만 1000명이 발생했다. 그렇다면 이들 피해에 대한 책임은 누가 져야 할 것인가. 가습기 살균제가 어엿하게 팔리기까지 관여한 정부 부처의 관계자와 인간의 안위를 담보로 잡고 매출 올리기에 급급했던 기업 모두가 대상이 되어야 할 터. ‘안방의 세월호’ 사건. 진실은 언제 밝혀질 것인지….

마산에서 태어나 중앙대 국문과를 졸업했습니다. 주부생활ㆍ일요신문을 거쳐 한국경제신문에 입사, 22년 동안 편집부 기자와 종합편집부장ㆍ편집위원으로 일했고요. 2009년 계간 '시에' 시부문 신인상으로 문단에 데뷔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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