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셉을 잡아라 - 누가, 어떻게?

입력 2009-03-04 21:10 수정 2009-03-04 21:10
 

광고의 컨셉은 누가 잡는가?




조사팀에서 마케팅팀으로




        ‘90년대 초 광고 회사에 입사하여 마케팅팀에 배속 받은 후, 이전에 다니던 회사에 있으면서 광고 관련 업무를 했던 몇몇 선배를 만났다. 배치된 부서를 물어본 몇몇 선배가 마케팅팀이란 말에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갸우뚱거리다가, 어떤 일을 하는지 자세한 얘기를 들은 후 ’아, 조사팀으로 갔구나‘하면서 고개를 끄덕이던 것을 기억한다.


        입문교육을 통하여 우리는 현재는 모광고회사의 대표를 맡고 있는 강사로 들어온 마케팅팀에 소속된 선배에게 광고의 컨셉을 뽑아내는 것이 바로 마케팅팀에 있는 소위 마케터들의 업무라는 말을 들었다. 그러나 마케팅팀에 들어와서 보니, 조사를 기획하고 감독하고 결과를 분석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업무인 것 같았다. 실제로 조사팀이란 명칭에서 마케팅팀으로 부서의 명칭이 바뀐 지도 얼마 되지 않았다는 얘기를 들었으니, 이전 회사 선배들의 반응이 터무니없는 것도 아니었다.


        마케팅팀 생활에 적응을 하면서 보니, 마케터 개개인에 따라 업무의 범위가 조금씩 달랐다. 조사 회사 사람들 이상으로 조사 업무의 아주 세부적인 부분에까지 꼼꼼하게 치중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카피라이터가 자신의 카피안(案)들을 가지고 와서 컨셉을 제대로 반영했는지 여부를 물을 정도로 제작에 깊숙이 관여하는 마케터도 있었다.


        당시만 해도 어쨌든 과도기였다. 컨셉에 관한한 절대적 권한을 갖고 있었다고 여겼던 몇몇 AE는 조사 결과만을 전달하던 조사팀원들이 마케터라는 직함을 가지고 나타나서 컨셉을 던지는 데 당황하며 거부감을 나타내기도 했다. 반대로 조사 결과 해석의 규정된 틀을 넘어서 컨셉을 던지는 것이 영 거북스럽게만 느껴졌던 조사전문가들은 마케터란 새로운 명칭이 부담스럽기도 했다.


        사실 마케터가 등장하기 이전에 컨셉은 제작 아이디어와 거의 같은 의미로 사용되었다. 그런 아이디어를 내는 데는 AE나 제작과 같은 뚜렷한 직종의 구분이 없었다. 그래서 당시 한 초년병 AE가 자신이 주로 하는 일은 고참 AE가 불러 주는 컨셉을 노트에 받아 적는 일이라고 얘기하자, 다른 AE가 자기는 제작이 불러 주는 컨셉을 노트에 그려 넣는 일을 한다고 푸념하는 것을 들은 기억이 있다. 마케터란 호칭으로 바뀌기 전 광고회사 조사팀원들은 그런 제작 아이디어를 내는데 도움이 되는 조사결과를 제공하거나 혹은 그를 뒷받침하여 광고주 설득에 도움이 될 조사결과를 이끌어내는 역할을 했다.


        마케터가 제대로 등장하게 된 배경은 훨씬 앞서서 직종을 세분화하고 직종별로 균형 잡힌 역할과 책임을 규정했던 외국 광고 회사들의 영향이 절대적이었다. 그 외국의 광고회사들도 마찬가지였지만, 광고가 마케팅 이론과 접목되면서 보다 과학적인 접근방법을 꾀하며 컨셉의 의미가 과거와는 다르게 해석되는 데서도 마케터가 출현하게 된 이유를 찾을 수 있다. 어떤 그림을 보여 줄 것이냐라는 제작 아이디어 차원을 넘어서, 고객의 ‘구매장애요인’을 제거하는, 곧 우리 ‘제품이나 서비스를 구매해야 하는 절실한 이유’를 제공해 주는 것으로 컨셉의 의미가 변화하였다.


        그 컨셉을 대상 목표고객들에게 보다 재미있게 눈에 띄게 만드는 것이 바로 제작이 할 몫으로 규정되었다. 그러면서 제작의 단초를 제공할만한 아이디어를 ‘제작 컨셉’이라고 부르기 시작했고, 광고주의 상품기획을 비롯한 마케팅 부문에서 얘기하는 제품의 특징 혹은 셀링 포인트(Selling point)와 마케터가 광고회사의 마케터와 제작이 내놓는 컨셉과 구분할 필요가 생겼다. 이에 광고주 단계에서의 ‘제품 컨셉’, 광고에서 풀어 나가야할 ‘광고 컨셉’, 제작에서 이를 다시 해석하여 풀어내는 ‘제작 컨셉’으로 컨셉 자체가 분화되어 정의되었다.




어카운트 플래너의 등장




        ‘90년대 말부터 마케터는 어카운트 플래너(Account Planner), 줄여서 AP라는 새로운 이름을 갖게 된다. AP는 컨셉이 다원화되고, 서로 연계가 제대로 되지 않는 경향에 대한 대응으로 ’소비자로부터 시작하여 마지막 제작물까지 전략적 일관성을 유지한다‘는 명분을 가지고 출현했다. 사실 광고계의 모두가 동의하는 AP의 역할에 대한 객관적 정의는 없다. 각 대행사마다 조금씩 그 역할이 다르고, 같은 대행사 안에서도 AP 개인별로 차이가 있다. 그렇지만 세계 어느 대행사나 마케터들이 AP로 호칭이 바뀌면서 실제는 보다 제작에 가깝게 서서 광고 컨셉을 발견하고, 쉽게 풀어주는 역할을 맡게 되었다.


        AP란 용어의 출현 여부와는 관계없이, 광고 대행사의 컨셉이 보다 제작지향적으로 흐르게 된 것은 광고 대행사의 위상 및 지향점의 변화와 연관되어 있다. 단순한 제품 하나를 넘어서 중장기적으로 끌고 가는 브랜드, 특히 제품들을 아우르는 기업 브랜드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고 그를 바탕으로 한 브랜드 전략을 광고 대행사가 주도적으로 진행을 하게 되면서 비즈니스 본연과 기업의 철학을 다루는 브랜드 컨셉의 산하나 연장선상에서 광고 컨셉이 나오게 되었다. 그러한 컨셉은 기업의 의지를 반영하게 되고, 그것이 소비자들에게 제대로 수용되기 위해서는 기업이 실제로 그 컨셉을 기업 내부에서 실현시켜야 했다.


        이 단계에서 기업 차원의 브랜드 컨셉을 제시한 광고 대행사는 광고만 제작하는 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기업 조직이나 생산관리와 같은 영역까지 다루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광고대행사에서 컨셉을 담당하던 마케터나 AP들은 비즈니스 컨설턴트와 같은 성격을 띠게 되었다. 대행사에서 비슷한 일을 하던 미국과 한국 의 몇몇 친구들과 우리의 다음 상대는 다른 대행사가 아니라 맥킨지 류의 비즈니스 컨설팅 회사들이라고 공공연하게 얘기를 하곤 했다. 그런데 사업 단위의 컨셉으로 확대되지 못하고 제작 컨셉에 가깝게, 좋게 말해서 날을 세웠고, 부정적으로 말하면 움츠려든 데는 세 가지 큰 이유가 있다.


        첫째로 주로 해외에서 벌어진 일이지만, 광고대행사 및 그와 관련된 조사, 미디어, PR 등의 전문 기업들을 합쳐서 거느리게 된 거대 커뮤니케이션 그룹들이 등장했다. 그러면서 종래 광고대행사에서 맡던 역할들이 분화되어 그룹 내의 전문집단에 맡겨지게 되었다. 그룹 산하의 광고대행사는 제작에 집중할 것을 요구받았고, 경합할 때의 초점이 더욱 더 제작물로 모여지게 되었다.


        둘째는 국내에서 특히 두드러졌는데 광고주들이 마케팅 인력들을 적극적으로 충원하고, 경험과 지식이 쌓이면서 역시 광고 대행사 간의 경쟁에서 전략적 측면의 컨셉보다는 제작에 대한 배점을 높였다. 그리고 대행사들도 서로 경쟁이 격화되면서 모든 것이 수렴되어 나타나는 결과물인 제작에 더욱 힘을 실어주면서 제작을 위한 컨셉에 더욱 힘을 쏟게 되었다.


        셋째로 광고대행사가 자신들의 영역으로 들어오려 하는 것을 감지하며 위협을 느꼈는지 아니면 브랜드전략 쪽이 수익성이 있는 새로운 개척분야라고 생각했는지 비즈니스 컨설팅 업체들이 브랜드 컨설팅 사업을 시작했다. 결과적으로 그들의 시도는 수익성 측면에서 성공적이지 못했으나, 광고 대행사의 영역 확대를 사전에 방지하는 이상으로 광고 대행사를 제작 부문에 주력하도록 만들어 버렸다.




새로운 방식의 컨셉 찾기




        제작 쪽으로 치우쳤던 컨셉이 새롭게 변모할 기회를, 바로 광고 대행사 자체가 그랬듯이 얼마 전까지 대행사 내에서는 비주류(非主流)로 취급받기도 했던 전통매체 이외의 부분, 바로 BTL(Below-The-Line) 부분에서 발견했다.


        이전의 광고 대행사에서 컨셉을 뽑고, 광고를 만들어 집행하는 것은 수비수가 측면공격수에게 공을 전달하면, 측면공격수가 라인을 따라 치고 올라가서 중앙공격수, 소위 골잡이에게 전달하여 골을 넣도록 하는 공식에 기초한 축구와 같은 방식을 따랐다. 그런 공식은 그야말로 바둑의 정석과 같다. 알고는 있어야 하지만 그것이 승리를 담보하는 공식은 아니다. 실전은 멀티플레이어의 토탈사커로 축구장 전체를 활용한다. 컨셉도 특정한 호칭의 사람에게 의존하여서는 곤란하다. 전통매체와 BTL 도구들을 넘나들며 적용할 수 있는 그런 컨셉을 참가자 모두가 내놓을 수 있어야 한다.


        원칙상으로는 그래도 아무런 토대가 없이 생각나는 대로 컨셉이라고 던져서는 곤란하다. 대행사에서 컨셉의 개발에 참여할 사람이라면 최소한 세 가지 원칙 정도는 숙지를 하고 노력을 해야 한다.


        첫째, ‘일상(日常)의 관찰’. 모든 것을 항상 관찰하는 습관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거리를 걸어 다니면서는 주위의 다른 보행자와 상점들과 차도를 함께 보면서 뭔가 변한 것과 변하지 않는 것들을 함께 관찰해야 한다.


        둘째, ‘내면(內面)의 탐색’. 사람들에게 갑자기 나타난 특이한 면을 발견했을 때, 그 사람들에게 그런 동기를 제공한 것이 무엇인가를 찾아야 한다. 이는 힐끗 관찰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짧은 순간이라도 그들의 행동에서 혹은 그들의 입에서 나온 단어 한 마디에서 그들의 특이한 면을 촉발한 인자(因子)가 무엇인지 찾는 노력을 해야 한다.


        셋째, ‘관계(關係)의 발견’. 위에서 찾은 인자가 자신이 맡은 제품이나 서비스와 어떤 관계를 형성하는가를 발견한다. 그 관계식이 바로 컨셉이 된다.


        그렇다면 현재까지 컨셉의 주도자로 되어 있는 AP의 역할은 무엇인가? AP는 모든 사람들이 위와 같은 원칙을 지키면서 컨셉을 생각하고 대안들을 제시할 때 촉매(Catalyst)와 필터(Filter)의 역할을 해야 한다.


        흥미를 느낄 수 있는 다양한 관찰 대상과 관점을 제시해 준다. 기존의 트렌드 연구 결과 등을 제공하여 새로운 것을 찾거나, 해석하는 것을 도와줄 수 있다. 특히 관계식을 설정하는 과정에서 대상 제품이나 서비스에 대한 지식을 활용하여 실마리를 제공하고, 결과물들에 대한 검증 작업 등을 행해야 한다.


        광고 대행사에서 컨셉은 ‘과학(Science)'과 ’예술(Art)‘의 사이를 오가면서 그 의미와 주도자가 계속 변해 왔다. 둘의 비중은 앞으로도 계속 바뀔 것이다. 어쨌든 컨셉을 발견하는 데 참여하고, 그것을 공유하며 자신의 일과 연결하는 사람들은 점점 많아지리라는 것은 확실하다. 그런 면에서 결과물로서의 컨셉보다는 어쩌면 과정 자체가 더 중요하다. 그 과정 자체가 바로 대행사의 브랜드 역할을 할 것이고, 과정의 촉매와 필터의 역할을 하는 AP의 어깨가 더욱 무거워질 것이다.


        그나저나 요즘 하고 있는 일들을 얘기하면, 이전 회사에서의 선배는 내가 일하는 팀의 명칭을 무엇이라고 스스로 규정지을까?


2009년 10월부터 현대기아차그룹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이노션월드와이드 마케팅본부장으로 재임하고 있음.
역사 및 사회의 제반 모습들을 브랜드적으로 해석하는 데 관심이 많고, 그에 관련한 저서 두 권이 있다. '모든 것은 브랜드로 통한다(사회평론,2002)', '브랜드 마인드(사회평론,2004)'. 학부에서는 중국사를 전공했고, 삼성전자 홍보실을 거쳐, 미국 뉴욕대 경영대학원을 졸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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