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들은 우리에게 어디에, 어떻게 구멍을 뚫어야 하는지 가르쳐주고 있지만, 우리는 아직도 왜 거기에 구멍을 뚫어야 하는지 모른다.”




        ‘70년대 말의 개방 이후 중국이 급속하게 경제발전을 이루고 있고, 외국 기업들이 활발하게 중국에 투자를 하고 기술이전을 한다고 하지만, 그 한계를 정확하게 꼬집은 어느 중국 공무원의 말이다. 삼성경제연구소를 업고 이미 스테디셀러로 자리를 잡았지만, 철저히 읽은 사람들은 그리 많은 것 같지는 않은 <제국의 미래>(에이미 추아 지음, 이순희 옮김, 비아북 펴냄, 2008)에 나온 말이다.




        중국이 초강대국으로 등극하는 데에서의 한계로 중국 특유의 ‘꽌시(關係)’에 기초한 불합리한 상거래 관행을 지적한 데 이어 나온 내용이다. ‘꽌시’는 누구나 알다시피 중국 사회에 오랜 역사를 두고 너무나 뿌리 깊게 자리를 잡고 있다. 그로부터 파생되는 부정부패는 수천년 봉건제도를 뒤집은 중국 공산당도, 개방 이래로도 수시로 집행되는 공개처형을 통해서도 완전히 잡을 수가 없는 형편이다.




        중국 관련 일을 하는 친구들 얘기를 들어 보면 서서히 개선은 되고 있지만 근본적인 제거는 힘들 것이라고 한다. 사실 이런 사적(私的)인 관계의 공적(公的)인 분야로의 영향은 어느 국가에나 일정 수준 있기 마련이다. 중국에서 그것이 다소 강하게 나타나지만, 미흡하지만 유학을 포함한 해외 경험을 가진 화교 출신 중국인들이 선봉에 서서 소위 글로벌 스탠다드(Global standard)를 도입하는 개선에 앞장서고 있다고 한다.




        이들 해외 출신 중국인들이 맨 위에서 보았던 어느 중국 공무원의 볼멘 불평도 해결해 주기 위하여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외국 기업들이 기술 이전을 한다고 하면서도  특정 분야, 근본적인 부분에 대해서는 소극적인 태도를 취하는 것이 1차적인 이유겠지만, 그들이야말로 ‘왜 거기에 구멍을 뚫어야 하는’ 이유를 아는 원천기술과 이론에 접근해 보았을 확률이 높고, 그랬을 경우 그런 근본적인 질문들에 대해서 궁리를 해야 한다. ‘꽌시’를 비롯한 중국의 불합리한 관행이 근본적인 것에 대한 연구를 막고 있는 경우도 있다.




        펄벅(Pearl S. Buck)의 <양마담과 세 딸>이란 작품을 보면, 원자물리학자인 미국 화교 출신의 사위가 중국에 와서 결국 좌절하고, 불의의 사고로 목숨까지 잃는 것으로 그려진다. 이를 중국의 ‘내재적 모순’이라고 한다면 지나치게 들리겠지만, 어느 정도는 중국 발전의 뒷다리를 잡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특히나 바로 눈앞의 문제가 아닌 근본적인 부문에서의 발전을 도모하는 시도 자체를 무산시키게 된다.




        우리 연구소에서는 새로운 프로젝트를 하기 위한 제안서를 많이 쓴다. 제안서에 주제나 해결 문제에 따라서 어떤 조사방법과 연구 접근을 할 것인지, 계획을 상세히 쓰게 마련이다. 워낙 많이들 써서 그런지 가끔 가다가 별 생각 없이 자판기처럼 조사계획을 잡지 않았을까 의심이 가는 제안서들도 나오곤 한다. 왜 사내 임직원 인터뷰를 해야 하고, 20대 친구들을 대상으로 정량조사를 해야 하는지에 대한 성찰 없이 상품구색을 맞추거나 개인의 지식을 자랑하듯이 다양한 조사기법들을 나열하곤 한다.




        10년 정도 이상의 경력을 쌓은 중견급이나 신입사원 티를 벗어나지 못한 비교적 신참 친구들에게서 똑같은 현상이 나타나는 경우가 있다. 고참급들은 일에 대한 숙달도를 넘어서 자만에 가까운 태도로 별 생각 없이 계획을 잡으면서 이런 일이 벌어진다. 신입급들은 고참들이 해놓은 것을 되새김질 없이 그대로 갖다 베끼면서 이런 잘못을 저지르게 된다.



        사실은 프로젝트 의뢰와 다른 일들이 많다보니까, 계획을 잡아서 제안서를 쓰는데 예전과 같은 노력을 기울이기가 쉽지 않은 현실도 영향을 미쳤다. 보통 일주일의 시간을 주면 대단히 여유있게 기간을 주는 듯하게 받아들여지는 것이 현실이니까. 옛날의 향수에 젖어서 하는 소리로 들리지 않을까 염려스러운데, 예전에 제안서를 쓸 때는 이미 최종보고서도 70% 이상을 써놓고 한다는 얘기도 많이 했다. 그렇다면 이미 최종보고서의 어디에 어떤 조사의 자료가 들어가야 할지 이미 거의 정해놓은 상황에서 계획을 세우게 되는 것이다. 물론 이런 접근은 한편으로는 조사의 해석을 제한할 여지가 있긴 하다. 그러나 전반적으로 전체 보고서를 생각하면서 조사계획 등을 구상하므로 보다 폭넓고 새로운 접근이 가능하다.




        이러다보니 넓게 생각하면서 근본적인 계획을 세우지 못하는 이유를 광고주나 다른 의뢰하는 쪽으로 슬쩍 넘긴 것 같다. 흡사 어찌 할 수 없는 ‘꽌시’를 중국인의 문제에 들이댄 것처럼. 어쨌든 ‘왜’는 광고인이 ‘어떻게’, ‘어디에’ 이전에 필히 던져야 할 질문이다.
2009년 10월부터 현대기아차그룹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이노션월드와이드 마케팅본부장으로 재임하고 있음.
역사 및 사회의 제반 모습들을 브랜드적으로 해석하는 데 관심이 많고, 그에 관련한 저서 두 권이 있다. '모든 것은 브랜드로 통한다(사회평론,2002)', '브랜드 마인드(사회평론,2004)'. 학부에서는 중국사를 전공했고, 삼성전자 홍보실을 거쳐, 미국 뉴욕대 경영대학원을 졸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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