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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고계의 여성들

 

광고계의 여성들(1)


        ‘90년대 초의 어느 날, 신제품 주방세제의 광고물을 완성하여 방송국에 보내기 직전에 실제 소비자인 30~40대 주부 20여명을 회사로 불러서 광고물에 대한 사전평가 겸 최종 점검을 하고 있었다. 삼겹살을 구어서 기름이 둥둥 뜨다시피 한 프라이팬에 우리의 신제품 주방세제 몇 방울을 떨어뜨리고 설거지를 하니까 프라이팬이 반짝반짝 빛나게 되는 전형적인 주방세제 광고물이었다.

        아주 뛰어나고 획기적인 아이디어가 들어간 것은 아니지만, 삼겹살 기름과 같은 것들까지도 말끔하게 씻어내는 세척력 하나만큼은 확실하게 보여 주었다고 스태프들 모두 자부를 했다. 그런데 한 참석자 아주머니가 고개를 갸우뚱하면서 질문인지 혼잣말인지 그러나 모든 사람들이 들을 수 있게 중얼거렸다. “삼겹살 같은 것 프라이팬에 굽고 나면 휴지로 먼저 닦아내지 바로 세제 붓고 하는 사람이 어디 있어?” 바로 이구동성으로 아주머니들이 “맞아”, “말도 안 돼” 맞장구를 쳤다.

        당시 모임의 사회자로부터 시작해서 스태프들 모두가 멍한 표정으로 서로를 쳐다보았는데, 광고주까지 포함해서 8명의 스태프들 모두가 남자였다. 그 남자들 모두 설거지라고는 군대에서 식판, 가끔씩 놀러 가서 코펠이나 겨우 닦아 본 사람들이었다.


        1975년의 어느 날 미국 뉴욕에서 털이 수북하게 난 손가락을 둥글게 오므리며 탐폰에서 새롭게 나올 생리대를 설명하는 곰 같은 큰 덩치의 중년 사내가 있었다. 의아한 표정으로 신제품의 재질과 놀라운 흡수력에 관한 설명을 듣는 네 명의 광고회사 사람들도 설명하는 사내랑 별 다를 바가 없는 중년에 가까운 남자들이었다. 그 설명이 끝날 때까지 아무도 회사 동료 중에 여성 하나라도 데리고 와야 할 것 같다는 얘기를 하지 않았다는 것이 의문이라고 당시 현장에 있던 전설적인 광고인인 제리 델라 페미나(Jerry Della Femina)는 회고했다.

        ‘90년대 초 제일기획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고 한다. 직접 본 것은 아니지만 생리대 광고를 따기 위하여 남자 선배 하나는 여자 후배를 데려다 놓고 생리대 포장 뜯는 것부터 개인교습(?)을 중인환시(衆人環視) 상태로 받아서 사람들의 얼굴을 화끈거리게 하였단다. 더 한 선배는 생리대를 자신의 두시부분에 차고 다녔다고 한다.  

        제리 델라 페미나가 1967년에 세운 광고회사인 ‘델라 페미나 트라비사노 앤드 파트너스(Della Femina Travisano & Partners)’의 사장으로 루이스 맥너미(Louise McNamee)가 1985년에 취임한 것이 광고회사에서 여성이 최초로 최고경영자의 자리를 차지한 것이란다. 그 전의 경우에는 메어리 웰스 로렌스(Mary Wells Lawrence)처럼 여성으로 광고회사에서 최고의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서는 스스로 창업을 하는 경우 밖에 없었다고 한다.


        내가 처음 제일기획에 입사하던 ‘90년대 초만 하더라도 회사 내의 여성의 비율은 10% 내외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 정도라도 다른 업종에 비하여 높은 편이었다. ’80년대 말 삼성전자에 입사했을 때는 수만 명의 직원 중에서 여성 대졸자의 숫자는 손으로 셀 수 있을 정도였다.

        여성들의 사회 진출이 활발해진 것에 덧붙여 삼성 같은 경우는 어느 정도 선도적으로 ‘90년대 중반부터 여성 인력들에 대한 적극적인 선발책까지 실행하여 현재 제일기획 내 여성의 비율은 40% 내외로까지 올랐다. 아마 광고계 전반이 다른 업종에 비하여 여성의 비율이 매우 높은 편일 것이다. 특히 광고계 내에서도 영업 부문이 아닌 우리와 같은 전략 수립이나 제작 쪽에서의 여성 비율이 높다.

        여성의 본격적인 업계로의 진출이 늦어서이기도 하지만, 최고위 경영층 소위 임원으로의 진출은 아직도 극소수에 불과하다. 비슷한 경력을 지닌 남성 광고인들에 비하여 상당히 더딘 편이다. 그 원인도 밝혀 보고, 숫자와 능력에 걸맞게 여성 광고인들이 더욱 활발하게 활동하고 위상을 높일 수 있는 방안을 함께 연구하고 모색해 볼까 하는 생각을 줄리안 시벌카(Juliann Sivulka)라는 한국어로 매우 거칠게 들리는 성씨를 가진 여성의 <Ad Women>이란 책의 발간 소식을 들으며 해보았다. 

2009년 10월부터 현대기아차그룹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이노션월드와이드 마케팅본부장으로 재임하고 있음.
역사 및 사회의 제반 모습들을 브랜드적으로 해석하는 데 관심이 많고, 그에 관련한 저서 두 권이 있다. '모든 것은 브랜드로 통한다(사회평론,2002)', '브랜드 마인드(사회평론,2004)'. 학부에서는 중국사를 전공했고, 삼성전자 홍보실을 거쳐, 미국 뉴욕대 경영대학원을 졸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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