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현대사를 전공한 역사학자로 사회적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는 베트남전을 비롯하여 병역 대체복무제와 의문사의 진실 규명 등 사회 문제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한홍구 교수는 석사까지는 현실 사회에서의 운동과 학업을 병행하면서 한국에서 했지만, 박사 과정은 미국의 시애틀에 위치한 워싱턴 대학( University of Washington)에서 마쳤고 학위도 그 곳에서 받았다. 노태우 정권이 약간의 유화기를 거쳐서, 문익환 목사의 방북을 기화로 새롭게 공안정국을 조성하면서, 쫓겨 가듯 미국으로 떠났던 그를 워싱턴대학에서 박사 과정을 밟도록 이끈 사람이 미국 내 ‘한국학의 대부’라고 불리는 제임스 팔레(James B. Palais) 교수이다.



        어물어물 어학연수를 하면서 친지들이 있는 시애틀에 머물게 된 한홍구 교수가 한 심포지움에서 한국민중론의 전개 과정을 역사적 맥락에서 짚어 보기란 주제로 발표를 하게 되었는데 약정토론자가 바로 팔레 교수였다. 사전 토론을 위하여 발표문이 작성되자마자 전달하여 주었는데, 의자에 앉으라는 말도 없이 발표문만 받고는 2~3일 후에 오라는 얘기만 듣고는 나왔단다. 이 첫 만남부터 한홍구 교수의 맘이 편치 않았던 것 같다. 2~3일 후에 다시 찾아간 한 교수에게 팔레 교수가 질문을 쏟아 냈다.




     첫 질문은 ‘미국이 왜 제국주의냐’는 것이었다. 기가 막히고 막막했다. 아니 그럼 미국이 제국주의가 아니란 말인가? 한국에서 젊은 연구자들끼리 공부할 대 이 문제는 너무나 당연한 전제였기 때문에 설명할 필요도 없었고 토론해 본 적도 없었다. 영어로 말해야 하기 때문에 답을 못 찾은게 아니라 한국말로 답하라 해도 당황했을 것이다.

- <한홍구의 현대사 다시 읽기> 한홍구 지음, 노마드북스, 2006, P.288 -




        영어를 떠나서 필레 교수의 질문이 얼마나 한 교수를 당황하게 만들었을지 이해가 되었다. 굳이 운동권이나 본격적인 연구자로 활동하지 않더라도 1980년대 대학을 다닌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미국과 제국주의는 등호로 연결이 되어 있었으며, 한 묶음으로 붙거나 ‘미제(美帝)’로 압축되어 운동의 현장에서 사자후(獅子吼)처럼 토해져 나왔고 유인물에 걸개에 플래카드에 나부꼈다.


        아무도 미국과 제국주의의 그 연결과 동일시에 의문을 제기하지 않았다. 초등학교부터 받은 주입식 교육의 영향도 크게 작용했을 것이다. 한편으로는 한국적인 선후배 관계에서 선배의 말씀에 토를 달거나 질문을 할 수 없는 분위기도 있고, 문자로 나타난 것에 대한 무조건적으로 수용하는 태도도 ‘미국=제국주의’가 아무 여과과정 없이 뇌와 가슴에 문신으로 새겨지는 데 역할을 했다.


        전문적인 연구자도 아니었고, 학습조직을 열심히 한 것도 아니었지만 제국주의가 무엇인가 하는 제국주의의 정의에 대해서는 학교 수업뿐만 아니라 다른 책들을 통해서도 익히 알고 있었다. 그리고 미국이 고등학교 때까지 배운 것과는 달리 어떤 행위를 했고 그 영향은 어떠한가에 관하여 새로운 시각을 갖는 공부도 했다. 그러나 제국주의의 정의와 미국의 실제 행위를 연결하여 미국의 행위를 제국주의의 관점에서 논증해 보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명제여서 그랬는지는 몰라도 그냥 넘어가고 ‘미국은 제국주의’라는 결과만을 외웠던 것이다.


        중고교 시절 대부분 수학을 별로 잘 하지도 못했고, 흥미를 느끼지도 못했다. 예외적으로 나를 매료시킨 수학 문제들이 있었는데 바로 ‘증명’이었다. 증명은 의문으로부터 시작한다. 그 의문들은 대개 많은 사람들이 기정사실로 받아들이는 것들에 대해서 딴지를 거는 식이었다. ‘임의의 실수 a에 숫자 0을 곱하면 답이 0이 되는 것을 증명하라’는 문제는 구구단을 외우며 곱하기를 배운 이후 한 번도 신경 써보지 않은 숫자 0의 성격에 대하여 근본적으로 다르게 생각하도록 했다. 그것이 명쾌하게 논증이 되었을 때의 성취감은 공식을 외워서 주어진 수식을 풀 때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컸다.   


        광고를 하는 경우에도 수학의 증명 문제를 푸는 것과 같은 접근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특정 신제품에 대한 광고를 준비하게 되었을 경우, 보통 신제품의 특성은 무엇인가에 대한 설명을 듣고 그것을 재미있게 나타내라고 주문을 받는다. 그리고 그 주문에 충실하게 매달려 집중한다. 그런데 그런 방식의 접근으로는 경쟁자와 차원을 달리 하는 발상은 나올 수 없다. 과연 그 특성이란 것이 필요한 것인가에서 출발하여 신제품을 냈어야만 하는가, 그 제품 카테고리에 그 기업이 참여하여야 할 필요는 무엇인가를 넘어서 그 기업 자체가 태어나고 존재하여야 할 이유는 무엇인가까지 질문을 던지고 생각해 보아야 한다.


        광고를 떠나서 기업의 경영자들은 항상 그런 질문을 던져야 한다. 최소한 그런 질문에 대해 답변할 수 있는 준비를 갖추어야 한다. 현재 미국에서 문제가 되고 있는 자동차 'Big 3‘의 대표격인 GM을 예로 들어 보자. GM의 경영진에게 발등에 떨어진 불은 파산의 나락에서 그들을 구할 동아줄인 구제금융을 받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구제금융이 없을 경우 가동을 중단해야 하고, 대량 해고가 따를 것이며, 연관산업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것을 생각하면 미국 경제 전체를 더욱 어려운 지경으로 몰고 간다고 청문회에서 다음과 같이 협박 비슷하게 늘어놓았다.




제일 먼저 청문회에 오른 릭 왜고너 GM 회장은 "미국 자동차 업계가 도산하면 1년 안에 300만명이 일자리를 잃고 앞으로 3년 동안 개인소득은 1500억달러가 줄어들며 정부 세수입 감소도 1560억달러에 달할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 자동차산업이 몰락할 경우 미국 경제에 엄청난 후폭풍을 초래할 것이라는 점을 부각시킨 것이다. 그는 각종 수치를 통해 "자동차산업 구제금융은 디트로이트 이상의 문제며 재앙과도 같은 파국에서 미국 경제를 구하는 길"이라고 말했다.

(2008. 11/18. 매일경제)




        후폭풍은 먼저 릭 왜고너(Rick Wagoner)를 비롯한 미국 자동차 빅 3의 경영진이 우선 맞았다. '적반하장(賊反荷杖)‘식으로 협박을 한다는 말부터, 어느 의원은 빅 3의 경영진들이 기름값도 비싼데 한 비행기로 같이 올 것이지 꼭 각자 전용기로 왔어야 되었느냐며 비꼬기도 했다.

        과연 GM이 자동차 산업을 하고 있어야 할 절대적인 이유가 있는가? 반대로 자동차 산업에 GM이란 존재가 꼭 필요한가를 생각해 보았다면, 릭 왜고너의 의회 청문회에서의 발언 내용과 태도는 달랐을 것이다.

 
       세계 자동차 역사에 끼친 GM의 공헌과 그 유산은 다른 어느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지대하다. 그렇지만 그것이 GM의 존재 자체를 규정하고, 계속 지속될 필요충분조건이 되지는 못한다. GM의 파산이 몰고 올 파장에 대해서는 모두가 잘 알고 있다. 릭 왜고너를 포함하여 GM의 경영진은 GM이 곧 자동차산업 그 자체라고 생각하고 있는 듯하다. 흡사 80년대에 미국은 제국주의라는 공식처럼, GM이 없으면 자동차 산업도 없다는 식의 생각을 하고 있는데, 누구나 납득할 수 있게 증명을 하지 않고는 현재의 위기에서 빠져 나올 수 없을 것이다.
2009년 10월부터 현대기아차그룹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이노션월드와이드 마케팅본부장으로 재임하고 있음.
역사 및 사회의 제반 모습들을 브랜드적으로 해석하는 데 관심이 많고, 그에 관련한 저서 두 권이 있다. '모든 것은 브랜드로 통한다(사회평론,2002)', '브랜드 마인드(사회평론,2004)'. 학부에서는 중국사를 전공했고, 삼성전자 홍보실을 거쳐, 미국 뉴욕대 경영대학원을 졸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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