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sers are always in a hurry




뉴욕에서 다국적 브랜드 컨설팅 회사에 근무하던 한국인 여성 디자이너 친구가 하나 있었다. 그런데 2 년 전 갑자기 남편을 따라서 체코의 프라하로 간다고 하더니 연락이 끊겼다가 몇 개월 전 예전에 그녀와 함께 근무했던 친구를 통해서 연락이 닿았다. 체코의 프라하에서 브랜드 회사를 세워서 운영하고 있단다. 진공청소기, 커피메이커 등의 가전 소품으로 체코에서는 가그 가전회사의 CEO가 중국에 출장을 오는데, 한국에까지 들르도록 하였으니, 자리를 함께 하자고 해서 제일기획 출신으로 그녀의 오랜 지인인 여자 친구 하나와 함께 4명이 만났다. 그들이 머무는 신라호텔과의 인접성과 오랜만의 귀국이므로 한국 토속적인 음식을 해야 한다는 점까지 감안하여 장충동 족발집에서 저녁을 함께 했다.




지난 9월 홍콩에서 발간되는 <Media>란 잡지에 실린 전반적인 한국 시장과 소비자들의 특성에 관한 기사에 관하여 한동안 얘기를 나누었다. 특히 그 기사에서 인용된 내 인터뷰가 한국의 소위 ‘골드미스(Gold Miss)라고 불리는 구매력 크고, 소비성향이 강한 20대 후반에서 30대 여성에 관한 내용이라, 여성과 남성 소비자의 차이를 소재로 한참 얘기를 나누었다. 얘기가 소비자를 넘어서 남성과 여성의 차이로 넘어가더니, 50대 후반쯤으로 보이는 벨기에 출신의 그 CEO가 소주 기운이 오른 영향도 있어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남성‘으로서의 신세한탄과 함께 두 명의 여성들에게, ’그래, 남자들은 패배자(Loser)야! 너희 여성들이 항상 승자(Winner)야!“라고 선언인지 결론인지 고백인지가 애매한 발언을 했다. 그리고는 우리는 그 CEO 친구가 얘기할 때마다 ”그래, 당신은 패배자야“라는 말로 장단을 맞추며 가볍게 놀려댔다.




족발집에서 소주와 함께 한 저녁을 마치고, CEO 친구가 2차를 호텔의 바에서 자신이 내겠다고 해서 왔던 길을 거꾸로 계단을 올라가는데 발걸음이 유달리 빨랐다. 열 걸음 정도를 앞서서 호텔 현관에 도착하여 기다려 섰다가 너무 빨리 걸어서 미안하다고 얘기하는 친구에게 위의 제목과 같이 대답을 했다. “Losers are always in a hurry(패배자들은 항상 조급하다니까).” 그 친구가 “맞다”고 소리치며 박장대소를 하고, 바에 가서 우리는 절대 조급해 하지 말자면서 여유 있게, 어울리지 않지만 몰트 위스키와 와인을 함께 했다.




실상 요즘 세상에서는 위의 얘기와는 반대로 조급해 하지 않으면, 뭔가 급하게 빠른 속도로 무언가를 하는 듯이 보이지 않으면 문제가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빽빽한 일정으로 분초 단위로 이동하고 모습을 보여야 유능한 사람으로 인정받는 듯하고, 본인 스스로가 그렇게 생각하는 경우도 많은 것 같다. 광고주들의 경우 성격이 급할수록 직급이 높다고 우리끼리 얘기를 한다. 직급이 높을수록 처리해야 할 일이 많기 때문에 성격까지 급하게 되는 후천적인 것인지, 성격이 급하여 일을 더욱 빨리 처리해서 능력을 인정받는 것인지 어떤 것이 먼저인지는 모르겠으나, 어쨌든 내가 얘기했던 것과는 상치되는 것 같다.




미국 쿠퍼스타운의 야구 “명예의 전당”에 감독으로서의 능력과 명성을 인정받아서 헌정된 레오 듀로처라는 사람이 이런 얘기를 했다. “Nice guys finish last." 우리말로 옮기면 ”사람 좋으면 꼴찌야“ 정도가 되겠다. 우리의 대화와 연결시키면 사람 좋으면 패배자가 된다로 할 수 있겠다. 그런데 이 말이 다른 사람이 아닌 레오 듀로처에게서 나왔다는 데 주목해야 한다. 레오 듀로처는 메이저리그에 선수로 데뷔했을 때부터 승리를 위해서라면 물불 가리지 않는 고약한 성질로 유명했다. 단순하게 상대를 골탕 먹이는 수준이 아닌 선수 생명을 끊어 놓을 수도 있는 술수를 부리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다. 레오 듀로처라는 인물의 브랜드를 반영하여 들어야 하는 언사이지, 공통적으로 누구에게나 적용될 수 있는 경구가 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실제 가장 많은 월드시리지 우승을 이끈 케이시 스텐겔의 경우 절대 서두르지 않고, ‘Nice guy'에 어울리는 인물이었다.



광고주의 조급함에 광고 회사 사람들이야 예의상으로도 어느 정도 맞추어 주는 시늉을 하기는 해야 한다. 흡사 학교에서 혼을 내는 선생님 앞에선 겁먹은 듯한 표정을 짓거나, 체벌을 당했을 때 몸부림치며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을 연출하는 정도의 예의를 갖추는 격이다. 그러나 실제로 그 한 마디 한 마디 조급하게 나오는 소리에 휘둘려서는 안 된다. 모든 가능성을 열어 놓고 더욱 넓은 세계를 탐험하며, 차분하게 해결책을 궁리하고 제시하여야 한다. 조급하지 않으려면 평소에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유비무환(有備無患)’은 너무 절박하게 몰린 느낌이 나고, ‘지피지기백전불태(知彼知己百戰不殆)’가 보다 광고하는 사람에게 맞는 비유이자 경구이겠다.




광고인이여! 

쫓기는 패배자가 되지도 말고, 선도가 되기 한 나쁜 사람이 되지도 말지어다.

여유와 아량을 함께 갖춘 승자가 됩시다!
2009년 10월부터 현대기아차그룹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이노션월드와이드 마케팅본부장으로 재임하고 있음.
역사 및 사회의 제반 모습들을 브랜드적으로 해석하는 데 관심이 많고, 그에 관련한 저서 두 권이 있다. '모든 것은 브랜드로 통한다(사회평론,2002)', '브랜드 마인드(사회평론,2004)'. 학부에서는 중국사를 전공했고, 삼성전자 홍보실을 거쳐, 미국 뉴욕대 경영대학원을 졸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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