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내커

'e'의 변신

 

‘e’의 변신


대림산업의 ‘e 편한 세상’ 아파트의 ‘e’는 원래 인터넷으로 대표되는 IT 기술의 상징으로서 쓰였다. ’e편한 세상‘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던 2000년도만 하더라도 인터넷 붐이 최고조에 다다른 시기였다.


사실 굳이 사람들이 의도한 것은 아니었지만, 어떤 알파벳을 가지고 발전된 IT 기술을 더욱 앞서서 접목시킨 것과 같은 인상을 줄 것인가의 싸움은 90년대 중반 인터넷이 대중적으로 알려지고 사용되기 시작하면서부터 시작되었다. 이 초기 싸움의 대표선수들이 바로 ‘a, e, i, n’ 였다. 이들 알파벳을 원으로 감싸는 @과 같은 형태가 특히 많이 이용되었다. 원형은 나름대로 IT를 상징하는 시각적 보조장치로 자리를 잡았고, 각각의 알파벳은 ‘at, electronic, internet, net 혹은 network’등으로부터 출발했다.


이들 중 단지 주소를 표현하는 도구로서 극히 부분적인 의미로 축소된 @이 가장 먼저 자취를 감추어 간 것 같다. ‘n‘이 상징했던 네트워크의 경우는 @처럼 너무 범위가 연결시키는 그 자체로 좁게 해석이 되든지 혹은 중국식 ’꽌시(關係)‘까지 포괄하는 지극히 넓은 개념으로도 해석이 되면서 핵심이 모호해지며 사라졌다. 이어 ‘i’도 애플(Apple)에서 워낙 강력하게 주도권을 쥐고 있어서인지 보기가 힘들다. eBay와 같은 세계 100대 기업에 이름을 올리는 대표선수의 존재, 일반용어가 된 e-Commerce, 가장 먼저 ’e’를 대중화시키는 데 공헌한 IBM의 ‘e-business’등의 공헌인지 ‘e’가 브랜딩의 요소로는 가장 안정되게 자리를 잡았다.


그런데 이 ‘e’에도 변화가 왔다. 첫머리에서 얘기한 대림의 ’e편한 세상‘의 광고가 그 ’e’가 어떻게 변했는지 극명하게 보여 준다. 바로 IT 기술의 ‘e’에서 환경을 의미하는 ’environment’혹은 ‘eco’의 ’e’로 변한 것이다. 아마도 대림산업 내에서 광고의 방향을 이렇게 바꾸고, ‘e’의 성격을 그에 맞추어, 아니 그 반대의 순서로 변화를 현실로 만드는 데는 내부에서 엄청난 격론을 거쳐야만 했을 것이다.



경험상으로 브랜드와 관련하여 무언가를 변화시키려고 할 경우에 부딪히는 저항의 강도가 커뮤니케이션 관련한 결정을 내리기 위한 과정에서 벌어지는 것들 중 가장 강하다. ‘제품은 변하지만 브랜드는 변하지 않는다’ 혹은 ‘변하지 말아야 한다’는 명제가 도그마처럼 자리를 잡고 있어서 성경 구절에 대한 보수적 교인의 해석에 대한 생각만큼이나 절대적인 권위를 기업 내에서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성경의 해석도 시대에 따라 조금씩 변할 수 있듯이, 같은 알파벳이라도 시대 트렌드에 맞추어 충분히 다르게 해석할 수 있고, 다르게 되어야만 한다.


영국을 본사로 하는 BP가 원래 뜻하는 바는 ‘British Petroleum’이었다. 그런데 AMOCO, ARCO, Castrol 등의 다른 석유회사 등을 합병한 사업적인 측면에서의 변화와 환경친화적인 트렌드를 수용하기 위하여 2000년 BP가 ’better people, better products, big picture, beyond petroleum’을 의미한다고 발표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이 네 가지 중에서 마지막 ‘beyond petroleum’만이 자기부정적인 변증법적 인상을 풍겨서 그런지 강하게 각인이 되었고, 실제 BP에서도 커뮤니케이션 활동에서는 ’beyond petroleum’만을 활용했다. 새로운 시대의 환경친화적인 에너지산업의 선두주자로서 BP의 위상을 세우고자 했다.


GE의 경우는 1970년대 초이래 거의 30년간을 지켜왔던 ‘We Bring Good Things to Life’ 슬로건을 ’Imagination at Work’로 2003년 대체하였다. 이어 2005년 ‘Imagination at Work’라는 우산 아래 하나의 부분 요소로 환경을 주제로 한 일련의 캠페인을 전개하며, ’ecomagination’이란 신조어를 만들었다. 그런데 이제는, 바로 지난 8월의 북경올림픽에서도 그랬듯이 GE의 거의 모든 기업 브랜드 커뮤니케이션 활동이 ‘ecomagination’에 집중되어 있다. ‘Imagination at Work’의 기본 정신과 취지만 살리는 가운데 형태까지도 변형시켜 버린 것이다.


브랜드가 변하지 말아야 한다고 얘기하는 것은 아주 기본적인 근간이 되는 철학과 정신을 말하는 것이다. 대림의 경우 ‘편하다’라는 것이 브랜드가 될 수 있다. ‘e’는 최초 ’e편한 세상‘이 나왔을 때는 발전된 IT기술로, 이어 보다 환경에 관한 욕구가 강해졌을 때는 각종 환경친화적인 요소를 뜻하는 ’e’로 고객들, 바로 입주자들에게 보다 ‘편리한’ 생활을 제공한다는 이야기가 가능하다. 그 힘든 과정을 거쳐 변화를 이룩한 용기와 시도에 박수를 보낸다.


선두 브랜드인 래미안과 너무 비슷한 느낌으로 가서 안타깝지만, ‘집’이라는 아파트보다는 더 큰 의미로 나아가고자 한 시도에도 역시 박수를 보낸다. 그런데 이 또 한 번의 대담한 시도에서는 ‘e’란 것은 어디로 갔는지 모르겠다. ’e’는 할 역할을 다하고 빠지는 것인지, ‘e’라는 브랜드 자산을 당사자들조차 잊어버린 것이 아닌가 싶다. ‘e’의 또 한 번의 변신이 바로 대림산업 ’e편한 세상‘이 래미안과 선을 그으며 맞설 수 있는 유일한 무기임에도 불구하고…..!

2009년 10월부터 현대기아차그룹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이노션월드와이드 마케팅본부장으로 재임하고 있음.
역사 및 사회의 제반 모습들을 브랜드적으로 해석하는 데 관심이 많고, 그에 관련한 저서 두 권이 있다. '모든 것은 브랜드로 통한다(사회평론,2002)', '브랜드 마인드(사회평론,2004)'. 학부에서는 중국사를 전공했고, 삼성전자 홍보실을 거쳐, 미국 뉴욕대 경영대학원을 졸업했다.

ⓒ '성공을 부르는 습관' 한경닷컴,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