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있어야 할 이유

 

      버진항공사(Virgin Atlantic Airways)에서 최근에 나온 광고물부터 보시죠.



      항공사 광고인데, 비행기 타는 것을 싫어 하는 고객이 차라리 반갑다(We're glad you hate flying)는 헤드라인은 무슨 의미일까요? 이어 본문 카피에서는 '비행기 타는 것을 싫어하지 않는다면, 우리와는 별 상관없어요'라면서 자신있게 어찌 보면 도발적일 정도로 얘기합니다. 왜냐하면 '자신들의 존재 이유가 다른 방식으로 일을 처리하는 데 있다(our entire reason for being is to do things differently)'고 하니까, 현재의 상태 곧 다른 항공사들을 타고 여행을 하는데 전혀 불편함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은 자신들도 별로 개의치 않는다는 것이죠.

 

      버진항공사 측은 이번 광고캠페인의 제목으로 'Airphoria'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상식적으로는 '~을 싫어하는 사람'이란 접미어로 쓰이는 'phobia'를 써야 할 것 같은데, 발음을 더 부드럽게 하려는 목적인지, 아니면 실제로 그렇게도 쓰는지는 모르겠지만 'b'를 'r'로 살짝 바꾸었습니다. 'To do things differently'! 이것이야말로 사실 버진항공사를 넘어서 버진이라는 브랜드가 존재하는 그리고 존재할 수 있는 이유입니다. 좀 더 편안한 비행기 여행을 원하면 버진항공사를 이용하라고 하는데, 그 말에 설득력을 더 해주는 것이 바로 기존 버진이 가지고 있는 뭔가 다르게 한다는 이미지입니다. 후광효과라고 말할 수 있지요. 실제로 버진을 이용하고, 다르다고 느낀 승객들은 버진이라는 브랜드를 달고 있는 다른 제품에 대해서도 뭔가가 다르리라 기대를 할 것입니다.

 

      저는 2000년 초에 버진항공을 처음 이용했었습니다. 램프를 지나서 비행기에 들어서는데 여느 항공사와 같이 남녀 승무원들이 문 바로 안쪽에 서로 마주보며 서 있었습니다. 그런데 서로 농담을 주고 받으며 자기네들끼리 얘기하느라고 제가 들어서는 것에는 거의 신경을 쓰지 않는 듯했습니다. 약간 멀쑥하게 그들의 웃음소리를 뚫고 우향우하여 복도로 몇 걸음 떼는데 여자 승무원이 후다닥 달려와서 오랜만에 만난 옛 친구가 하는 냥 어깨를 잡으면서 "그냥 가면 어떻해? 우리랑 인사도 하고 얘기도 하고 가야지?"하면서 악수를 청하고, 문에 그대로 있던 승무원들은 저를 보고 손을 흔드는 것이었습니다. 저도 한바탕 웃음을 터뜨리고 농담 몇 마디를 건넨 후, 누구 말대로 웃음 바이러스에 감염된 듯한 모습으로 제 자리를 찾아 앉았습니다.

 

      대한항공에서 이런 일이 벌어졌어도 제가 웃으면서 승무원과 가볍게 악수까지 하고 농담을 주고 받았을까요? 마음 약한 제가 노발대발하는 일은 없었겠지만, 아마도 다른 승객들이 거친 항의를 잇달아 했을 겁니다. 같은 행동이라도 어떤 컨텍스트 안에서 이루어지는가에 따라서 다르게 해석이 될 수 있습니다. 여기서의 컨텍스트는 누가 얘기하는가, 바로 주위를 둘러 싸고 있는 브랜드를 포함합니다. 버진이라는 브랜드가 같은 행동이라도 다르게 해석하고 받아 들이도록 만든 것이죠. 저는 이런 것들을 아주 기본적인 '브랜드 에쿼티(Brand Equity)'라고 부릅니다. 동일한 제품이나 특성, 행동, 메시지라도 사람들이 보다 긍정적으로 다르게 받아들이도록 만드는 것이죠. 이것을 구매를 통해서 실제 매출과 수익에 미치는 영향에 초점을 맞추어서 보면 '물리적 속성이 같음에도 선택확률을 증가시키는 요소'와 같은 식으로 정의할 수도 있습니다.
 

      서두의 광고와 함께 집행된 광고를 보시겠습니다.


뭔가를 다르게 한다는 버진의 브랜드로부터, 비행기 여행이 질력이 나는 사람을 위한 항공사로서의 버진 항공사 광고, 버진 항공사를 타고 하는 여행을 즐겁게 해줄 버진항공사의 마사지, 스시 등의 각종 기내 서비스 등의 일관된 흐름과 그것에 카테고리와 특정 제품이나 서비스에 맞추어 필터링되는 느낌을 줍니다.

 

      이런 일관성과 초점의 명료함이 가능했던 것이 바로 '내가 존재해야 할 이유'라는 아주 근본적인 브랜드를 버진이라는 기업 브랜드가 확실하게 세워 놓았기 때문입니다.

 

      자, 여러분의 존재 이유는 무엇입니까? 브랜드는 무엇입니까?
2009년 10월부터 현대기아차그룹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이노션월드와이드 마케팅본부장으로 재임하고 있음.
역사 및 사회의 제반 모습들을 브랜드적으로 해석하는 데 관심이 많고, 그에 관련한 저서 두 권이 있다. '모든 것은 브랜드로 통한다(사회평론,2002)', '브랜드 마인드(사회평론,2004)'. 학부에서는 중국사를 전공했고, 삼성전자 홍보실을 거쳐, 미국 뉴욕대 경영대학원을 졸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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