웰빙 열풍과 정말 잘산다는 것

입력 2004-09-10 08:54 수정 2004-09-10 08:54
생수가 아니면 안먹고, 유기농 과일로 만든 천연주스나 비타민C 음료 마시고, 요가와 명상을 하고, 아로마테라피 마사지를 받고, 반신욕과 족욕을 하고, 단체 회식에 빠지는 대신 헬스클럽에 가서 달리거나 근육운동을 하고, 주말엔 만사 제치고 여행을 떠나고....



웰빙 열풍이 세상을 휩쓸고 있습니다. `웰빙 식품’‘웰빙 레스토랑’‘웰빙 카페’‘웰빙 의류’‘웰빙 가전제품’‘웰빙 가구’에 `웰빙 잡지’‘웰빙 사이트’‘웰빙 보험’‘웰빙 여행상품’까지 물건이고 서비스고 ‘웰빙’자가 안들어가면 오히려 이상할 정도입니다. 뭐든 유행하면 폭풍처럼 몰아치는 팬덤 현상이 일반화된 까닭일까요. 웰빙 바람 역시 단순한 붐을 넘어 새로운 사회 코드로 자리잡은 것처럼 보입니다.



도대체 ‘웰빙(wellbeing)’이란 무엇인지요. 어떤 이유로 이토록 빨리 넓게 퍼지고 생활 깊숙이 파고 드는 것일까요. 웰빙의 사전적 뜻은 ‘복지’ ‘안녕’ ‘행복’ 등이지만, 실제론 물질만능주의에서 비롯된 바쁘고 정신없는 삶에서 벗어나 몸과 마음의 안녕을 최우선으로 치는 삶을 의미한다고 돼 있습니다. 90년대 말 미국 뉴욕에서 처음 생겨났고 원래의 목표는 ‘남에게 보이기 위한 삶이 아닌 자신만의 건강한 삶을 지향하는 것’이었다고 합니다.



돈과 지위를 좇느라 시간과 몸을 자기 마음대로 쓰지 못하고, 따라서 몸과 마음이 모두 망가지는 것에 아랑곳 없이 끼니를 거르거나 마구 먹고 술과 담배 등에 찌들어 사는 삶이 아니라 스스로를 잘 챙김으로써 참된 건강과 행복을 찾는 삶을 일컫는다는 얘기지요. 국립국어연구원에서 ‘참살이’라는 우리말로 풀어낸 것도 그같은 뜻에 기초했을 것입니다.



`참살이’이건 ‘웰빙’이건 원래의 의미 자체로 보면 우리 모두가 진정 추구해야 할 삶의 방식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러나 어찌 된 일인지 지금 이 땅의 웰빙 열풍은 신체와 정신적 건강이라는 웰빙의 두 축 가운데 정신 부문은 사라진채 오로지 육체적 안녕(얼굴과 몸 만들기에 최우선 순위를 둔)에 올인하는 쪽으로 쏠리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일반식품의 두배가 넘는 유기농 식품을 먹어야 하고, 어떻게든 돈과 시간을 만들어 명상수련원이나 피트니스 센터, 스파사우나에 가야 하고, 같은 물건이라도 비싼 ‘웰빙’제품을 사야 ‘웰빙족’ 대열에 들어설 수 있고 그래야 ‘사는 것처럼 사는’ 듯 여겨지는 게 그것이지요. 실제 유기농 야채 대신 일반 야채를 사거나 ‘몸짱 만들기’를 소홀히 하면 뭘 모르든지 ‘형편이 어려운’ 부류로 취급될 지 모른다는 것 때문에 눈치를 봐야 하는 판입니다.



튼튼하고 균형잡힌 몸매를 원하고 그러기 위해 돈과 시간을 투자하는 일을 잘못이라고 할 수는 없겠지요. 웰빙 제품이 쏟아지는 건 우리 사회의 전반적인 생활수준 향상에 따른 고급 감성소비와 가치 중심의 합리적 소비문화에 따른 자연스런 현상이라는 해석도 있습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알려진 ‘웰빙족’의 일상은 서민들로선 흉내조차 내기 힘든 것 투성이입니다.이렇게 되자 어떻게든 뭔가 팔아야 하는 업체에선 기존제품보다 비싼 ‘웰빙’제품을 쏟아냈고, 서민들은 매스컴에 보도되는‘웰빙족’처럼은 못살아도 웰빙 제품이라도 사야 할 것같은 심리적 압박에 추가비용을 지불합니다.



웰빙 붐의 긍정적인 측면도 적지 않아 보입니다. 경기 침체에 따른 극심한 불황 속에서 나름대로 비타민C나 아미노산 음료시장같은 새로운 소비시장을 만들어낸 것이나, 건강과 환경에 대한 일반의 관심을 크게 높인 것 등이 그렇지요. 일부인 것같지만 원하지 않는 회식에 끌려다니지 않고 자신의 시간을 가꾸려는 분위기가 생긴 것도 주목할만합니다.



그러나 꼭 비싼 유기농산물을 먹어야 잘먹는 건 아닐 테고, 마음의 평정 또한 요가와 명상에 의존하기보다 가족을 비롯한 모든 공동체 안에서 조화롭게 잘 지낼 때 보다 확실하게 얻어지는 것 아닐른지요.



상업주의가 가공해낸 정체 불명의 변종이 아닌, 자신과 주위 모두의 건강과 행복을 만드는 참 웰빙족이 되려면 천연주스나 허브차, 아로마 마사지가 잠시 가져다주는 사치스러운 기분이 아닌, 작은 것이라도 나누고 힘든 이들에게 먼저 손 내밀 때 생겨나는 기쁨과 뿌듯함에 스스로를 맡기는 훈련이 필요한 것 아닐까요.



퇴계 이황은 ‘활인심방(活人心方)’에서 몸과 마음을 함께 다스려야 건강하게 살 수 있다고 했고,연암 박지원은 ‘불사약을 먹으랴’에서 이렇게 썼습니다.



"내가 복용한 인삼이 과연 사람을 죽지 않게 만들고,몸을 가볍게 하여 멀리 날고, 구름 속으로 노닐 수 있다 하더라도 식솔들을 돌보지 않고 또 따르는 벗이 없다면 무슨 흥취가 있겠는가.... 매일 화조(선경의 대추.먹으면 하늘을 날수 있다고 함)와 영지를 먹는다 해도 늘상 먹는 시원한 배나 홍시와 어찌 같을 수 있으랴.”




늦깎이 훈장이 된 글쟁이. 내 인생의 꼭지점이 아직 남아 있겠거니 믿으며 매사 열심히 대드는 철 안든 아줌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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