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연예인 매니지먼트(Management) 변천사

입력 2008-05-02 16:55 수정 2008-05-02 16:55




한국 연예인 매니지먼트(Management) 변천사




졸저(拙著) 두 권을 내면서 인물 브랜드에 관한 챕터를 두고, 유명인들을 브랜드 차원에서 분석하거나 묘사한 글들을 실었더니 가끔 연예인 매니저나 정치인의 측근이라는 분들에게 연락이 온다. 기업에서 하는 브랜드 관리 기법을 자신들의 인물들에 적용시킬 수 없겠느냐며 조언을 구하는 데, 시간과 상황이 여의치 않다보니 전화로 몇 마디 나누고 그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기업에 소속된 사람으로서 그 안에서 주어진 업무에도 허덕이는 나의 형편이 가장 큰 원인이고, 한편으로는 연예인 매니저의 경우 ‘브랜드’와 브랜드로서의 ‘관리’라는 것에 서로 해석의 차이가 큰 까닭도 있었다. 그런 해석의 차이는 어디에서부터 생긴 것일까? 과거로부터 한국 연예인 매니지먼트 형식이 어떻게 변해 왔는지 살펴보면서 생각해 보기로 했다.




원로배우 신성일 씨가 모잡지와의 인터뷰에서 그와 함께 공연을 했던 여배우들과의 에피소드를 털어놓는데, 70년대 하이틴 스타로 이름을 떨친 임예진 씨의 성인 데뷔작품이라고 할 수 있는 ‘땅콩껍질 속의 연가(1979)’를 촬영할 때의 얘기에 이런 대목이 있었다. “임예진 어머니가 매니저처럼 늘 옆에 있으니 노출신을 찍을 수가 있어야죠. 용평에서 촬영을 했는데 내가 제작진 한 사람에게 조용히 그랬죠. ‘예진이 엄마한테 가서 황태 사준다고 데리고 나가라’ 작전이 성공해서 어머니가 자리를 비운 틈에 얼른 노출신을 찍었는데, 그렇게 예쁠 수가 없었어요.”




임예진의 경우에서 보는 것처럼 예전에는 특히 여자 연예인들의 경우 가족들이 매니저 역할을 하는 경우가 많았다. 엄마들도 나서지만, 어린 막내 이모뻘이 나서는 것이 가장 어울렸다. 이들은 보디가드이자 분장사 및 임예진의 경우에서 보는 것처럼 검열관의 역할까지 함께 했다. 그렇지만 매니저로서의 프로의식이라는 것과는 한참 거리가 있었다. 연기자를 보호하며 촬영현장을 지키는 것도 중요했지만, 가족들을 걷어 먹이기 위한 황태를 사는 것도 중요한 가정주부나 어머니로서의 역할이 먼저였다. 이 때를 나는 ‘이모 매니지먼트’의 시대라고 부른다.




진정한 프로페셔널로서 전업 연예인 매니지먼트 시대를 연 인물이 바로 80년대 말부터 최진실, 최민수 등의 매니저로서 이름을 날린 배병수 씨였다. 배병수 씨의 특기는 로비와 협상이었다. 자신의 연예인들을 특정 작품에 캐스팅시키기 위하여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로비 활동을 벌였고, 이들의 이름이 알려진 후에는 그를 무기로 이들의 출연료를 특히 광고출연료를 대폭 올리는 강경협상의 명수였다. 실제로 광고계에서는 94년에 배병수 씨가 피살되었는데 아직도 배병수라는 이름에 치를 떠는 사람들이 많다.




제대로 된 직업 매니저의 시대를 열고, ‘마이더스의 손’의 불리면서 상당한 수익도 거두었으나, 배병수 식의 한계는 바로 그가 통달했다고 하는 ‘로비와 협상’에 지나치게 의존했다는 데 있었다. 다른 연기자의 것을 빼앗아야 했고, 더 많은 돈을 광고출연료로 가져오기 위하여 위협적인 허풍과 언사를 무기로 사용하는 경우가 많았고, 그런 성공이 이어지자 안하무인격인 행동거지를 보여, 공공의 적이 되었다. 근본적으로 한정되어 있는 시장이기 때문에 성공의 뒤에 수많은 적들을 만들지 않을 수 없는 방식이었다. 그러나 아직도 대부분의 연예인 매니지먼트는 배병수 방식의 틀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배병수 식을 한 단계 올린 모델을 제시한 이가 바로 SM의 이수만 씨이다. 배병수 씨가 예비 연예인의 가능성을 보고, 그를 가공할만한 로비와 협상력으로 다른 이들을 제치고 스타덤으로 이끌어 갔었던 데 비하여, SM은 연예인을 소비자들의 기호와 트렌드에 맞추어 직접 제조를 하였다. 실질적인 사전투자가 이루어지기 시작하였다. 기호가 다른 많은 사람들을 커버하기 위하여 성격이 다른 여러 명을 한꺼번에 묶어서 내놓는다. 그리고 공동으로 전방위적인 활동을 펼치면서, 또한 멤버들 각자가 자신의 성격에 맞추어 개별적으로도 행동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든다. 그야말로 120% 자원을 활용하는 것이다. PJY의 박진영 씨의 경우도 SM식에서 크게 벗어나 있지 않다.




이들은 배병수 씨처럼 한 연예인, 곧 한 제품에 목숨을 걸지 않고 차기 수종 제품을 준비하며, 항상 적절한 포트폴리오를 구성하려고 노력한다. 그리고 예전과 같이 공연과 광고출연 등 전통적인 무대 외에도 대표적으로 ‘H.O.T.'음료나 화장품과 같은 브랜딩 라이센스 사업, ’비‘에서 보이는 해외 시장 등으로 수익 기반을 넓혔다. 크게 진일보된 형태이기는 하지만, 이들도 근본적으로는 한탕주의적인 속성을 지니고 있다. 성공의 기미가 보였을 때 크게 베팅을 하고, 최단기간 내에 최대의 수익을 올리는 데 집중한다. 장기적으로 브랜드를 어떻게 키울 것인가에 대한 생각은 거의 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위에서 얘기한 연예인 매니지먼트와 기업의 브랜드 관리 방식을 적용할 때의 가장 큰 차이는 얼마나 장기적인 관점을 취하고 있느냐에 있다. 제품은 사라져도 브랜드는 남는다. H.O.T가 설사 해체되고 멤버들이 뿔뿔이 흩어져 활동한다고 하더라도 엘비스 프레슬리(Elvis Presley)처럼 지속적으로 수익을 올릴 수 있게, 혹은 그 전에 H.O.T. 자체가 해체되지 않고 멤버들이 50대나 60대가 되어도 활동할 수 있는 힘을 제공해 주는 것들이 기업의 브랜드 관리 방식을 활용하면 가능성이 높아진다. 그러나 대다수의 연예인 매니저들이 아직도 배병수 식에서 좀 앞서간다고 하는 사람들이 이수만/박진영 식에 머물러 있는 것처럼 사실은 기업에서도 제대로 된 브랜드전략을 갖고 성공적으로 실행까지 나아가는 경우는 참으로 드문 게 현실이다. 그래서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표현을 썼다.


2009년 10월부터 현대기아차그룹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이노션월드와이드 마케팅본부장으로 재임하고 있음.
역사 및 사회의 제반 모습들을 브랜드적으로 해석하는 데 관심이 많고, 그에 관련한 저서 두 권이 있다. '모든 것은 브랜드로 통한다(사회평론,2002)', '브랜드 마인드(사회평론,2004)'. 학부에서는 중국사를 전공했고, 삼성전자 홍보실을 거쳐, 미국 뉴욕대 경영대학원을 졸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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