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도 피해자가 될 수 있다

입력 2008-03-30 22:44 수정 2008-03-30 22:47


당신도 피해자가 될 수 있다

        일요일 아침에 갑자기 별로 연락을 하지 않던 친구가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전화를 했다. “너, 혹시 요즘 다른 사람한테 원한을 살, 나쁜 짓하고 다닌 것 있냐?” 아무리 생각해도 꼭 착한 일만 하고 다닌 것은 아니지만, 요즘 들어서 굳이 그렇게 나쁜 일을 하지는 않았기에 궁금증이 생기기도 하지만, ‘별 일 없다’고 대답을 했는데, 바로 다른 친구가 전화를 해서 비슷한 질문을 한다. 두 친구가 연달아 그런 전화를 해서 이상하여 두 번째 친구에게 자초지종을 물어 보았다. 매주말 그 친구는 등산모임에 참석하려 지하철을 타고 가는데, 지하철역사에 ‘박재항은 나쁜 놈이야!’란 플래카드가 붙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지하철 차량 안에도 ‘박재항, 넌 참 우습게도 생겨 먹었다’란 큰 스티커가 붙어 있었단다. 급기야는 지하철에서 내려서 탄 등산로 입구까지 들어가는 버스에도 ‘박재항, 우리 엄마도 널 절대 용서 못한대’라는 부착물이 옆면에 붙어 있었단다.




        혹시나 하고 우리 집 앞의 지하철역에 나가 보았더니, 그 곳에는 ‘박재항, 너 따위 이제 신경 끊었어’라는 플래카드가 붙어 있었다. 우리 애들이 매일 통학하는 길목인데, 이것을 보면 과연 애비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할까 소름이 쫙 끼쳤다. 이제는 식상한 느낌도 주는 광고주와 광고 대상물에 대하여 자세한 정보를 전하지 않아서 호기심을 자극하는 티저(Teaser) 광고인 것 같은데, 뭔가 조치를 취하기는 해야겠다며 집으로 돌아와 인터넷을 열었다. 단, 몇 시간인데 이메일이 수북하게 들어와 있었다. 심각하게 걱정을 하며 ‘너를 믿는다’라고 얘기하는 사람도 있지만, 몇몇은 장난스럽게 ‘그러게 행실을 조심하고 다니랬지’하며 훈계를 한다. 두 가지 태도 모두 펄쩍 뛸 노릇이다. 이 짓을 꾸민 놈들이 누구일까 인터넷을 뒤지는데, 티저에 충실한 것인지 그 꼬리가 밟히지 않는다. 바로 내일 아침이면 아이들도 학교에 갈 터인데 지하철의 그 플래카드는 어쩔 것이며, 회사에 나갔을 때 동료들의 야릇한 웃음과 진지하거나 농담조거나 질문공세를 접할 생각을 하니 가슴이 답답해진다. 대체 어떤 놈들이 이런 되도 않는 장난(?)을 하고 있는 것인가?




        위의 글은 실제로 일어난 일은 아니다. 물론 비슷한 일이 벌어진 적은 몇 차례 있다. 가장 유명하기로는 제일기획 선배가 꾸몄던 지금도 전설로 회자되는 새롭게 문을 열었던 여성 웹사이트를 위해 최소의 비용으로 관심을 창조, 극대화하는데 성공했던 ‘선영아, 사랑해’가 있다. 제대로 어떤 광고인지 알려주지 않고 호기심을 자극하여 입소문을 만들어내고, 웹에서도 화제가 되는 ‘Viral-Teaser'의 두 가지 요소를 훌륭하게 만족시킨 캠페인이었다. 이후 ’문대성, 한판 붙자-형렬‘과 같은 사람 이름을 직접 사용한 광고가 나왔으나, 주목도나 화제를 불러일으키는 측면에서 부정적인 면이 더욱 두드러졌다.




        두 가지 경우를 보면 우선 ‘선영아, 사랑해’는 우리 사회의 무수한 ‘선영’에게 사랑의 메시지를 전했다. 특정 ‘선영’을 사랑했던 몇몇 남자들에게는 애꿎은 질투의 감정을 샘솟게 하고, 그래서 그들의 ‘선영’을 괴롭혔는지는 모르겠으나, 어쨌든 대다수 ‘선영’에게는 기분 좋은, 가슴도 뛰게 하는 메시지였을 것이다. ‘문대성’이야 아테네올림픽 격투기 부문 최고의 명승부를 연출한 태권도 국가대표로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었고, 본인도 자신의 이름이 그렇게 쓰이는 것을 알고 있었다. -곳곳의 플래카드가 화제가 되자, 모방송의 인터뷰에서 문대성 선수가 ‘형렬이 누구인지는 모르겠으나, 정말 한판 붙고 싶다’는 얘기도 했으나, 그것은 정말 오버였다- ‘형렬’이란 이름을 가진 분들도 그리 억울할 것은 아닌 내용이었다. 어떤 면으로 보면 남자다운 면을 과시하는데 이용했을 지도 모르겠다.




        문제는 위에서 가상적으로 든 예처럼, 매우 부정적으로 비방하는 내용이 담겼을 때, 동명이인이라고 해도 마구 거명이 되는 사람들의 경우를 어떻게 해야 할까? 완전한 티저는 아니지만, 비슷한 일이 미국에서 일어났다. “Forgetting Sarah Marshall”이란 영화가 개봉할 예정인데, 미국의 5대 도시에 대대적인 옥외광고 캠페인을 펼치고 있다고 한다. 제목에서 슬쩍 느껴지듯이 사라 마셜이라는 여자에게 채이고 나서, 그 기억을 떨치면서 복수 비슷하게 하는 줄거리와 트레일러 소개된 것만 보면 B급 코메디에 가까운 영화이다. 그래서인지 옥외광고 캠페인도 위에서 가상적으로 든 문구와 거의 비슷하게,

"You Suck Sarah Marshall(넌 나쁜 X야, 사라 마셜)"

"My Mother Always Hated You, Sarah Marshall(우리 엄마는 원래부터 널 싫어했어)"

"You Do Look Fat in Those Jeans, Sarah Marshall(그 청바지들 입으면 정말 쪄 보여)"

식으로 직설적이며 유치하지만 사실적인 것들을 동원했다.




        가상 상황에서 나와 같은 상황에 처하는 사라 마셜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개인 홈페이지 형식의 사이트로 유명한 ‘Facebook'에만 276명의 사라 마셜이 있다고 한다. 곤혹스러워 하는 몇몇 사라 마셜들의 항의에도 불구하고 영화사는 의도한대로 화제가 되고 있다고 즐기는 듯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고 한다. 한술 더 떠 자신들이 만들어 놓은 ’IHateSarahMarshall.com'이란 블로그에 접속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며 이번 캠페인이 성공적이란 평가까지 이미 내놓았다.




        영화 그 자체보다 ‘Viral'캠페인이라고 불리는 이번 일련의 활동이 더욱 코미디, 그것도 아주 진한 블랙 코미디로 다가온다. 광고가 아무리 진실을 알리는 허구이고, 해당되는 사람이 극소수라고 하더라도 그들의 가슴에 상처를 내거나 일상생활에 불편함을 끼치는 것이 정당화 될 수는 없다. 혹시나 의도하지 않게 그런 일이 벌어졌다면, 사과를 하고 대책을 마련하는 것이 우선이다. 영화사에서 어떻게 나오나 일단 ‘두고 보겠다’고 하신 특수교육선생님이신 사라 마셜 아주머니를 비롯한 사라 마셜들의 분투를 기대한다.


2009년 10월부터 현대기아차그룹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이노션월드와이드 마케팅본부장으로 재임하고 있음.
역사 및 사회의 제반 모습들을 브랜드적으로 해석하는 데 관심이 많고, 그에 관련한 저서 두 권이 있다. '모든 것은 브랜드로 통한다(사회평론,2002)', '브랜드 마인드(사회평론,2004)'. 학부에서는 중국사를 전공했고, 삼성전자 홍보실을 거쳐, 미국 뉴욕대 경영대학원을 졸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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