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바이(Dubai)는 전주가 부럽다




        전주 한정식 한상을 받거나, 아니면 비빔밥 한 그릇이라도 쓱싹 비벼먹든지, 오전을 보냈다면 콩나물국밥에 모주 한 잔은 먹어야 전주에 들렀다고 얘기할 수 있다면, 거의 20년만에 전주를 방문했다. 90년대 초 런던(London)에 관한 졸문을 쓰면서 ‘아, 런던! 이제는 전주만큼이나 낯익은 도시여!’라고 유치하게 읊조리는 데 쓰일 정도로 전주는 가까운 도시였다. 고등학교 은사께서 전주의 대학교 교수로 가셔서 괜히 가깝게 느껴졌는데, 사촌누나가 시집을 전주로 가면서 친구들과 놀러 가기도 했고, 군대에서 휴가를 나왔을 때는 혼자 가서 애들을 돌보며 며칠 머무르기도 했다. 삼성에 입사하여 ‘라마드(LAMAD)’라고 불리는 물품판매를 전주에서 했다. 그렇지만 지난 십여 년간은 경조사 때문에 잠깐 들러 다른 지방과 별 차이 없는 경조식(慶弔食)만 먹어 치우고 돌아오곤 했다.




        그 전주에 지역브랜드와 연결하여 브랜드 전반 및 세세하게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할지 생각할 수 있는 꺼리를 던져 주는 얘기를 하러 갔다. 초청한 쪽에는 미안한 얘기지만 나에게는 20년만에 보는 전주가 어떻게 변해 있을까 확인하고픈 욕구가 앞서 있었다. 많이 변해 있었다. 가는 길부터 천안-논산간 고속도로가 생겨 이제는 더 이상, 한 겨울을 보냈던 호남고속도로 연변의 철조망 쳐진 논산훈련소를 챙겨서 확인하여야 할 의무로부터 벗어났다. 전주 시내까지 들어서는 풍경도 한솔제지로 바뀐 ‘전주제지’만이 벌판 위에 홀로 서 있던 것만 같은 곳에, 많은 공장들이 연이어 있었다.




        도청은 예전의 시내에서 벗어나 신시가에 자리 잡고 있었다. 도청에 있는 선배로부터 예전부터 들었던 구호를 다른 공무원으로부터도 확인할 수 있었다. 이제는 전북의 비공식 구호처럼 자리 잡은 문구이다. “두바이여 기다려라, 새만금이 간다!” 찬탄의 대상으로 근래 남용이 되다시피 하고 있는 두바이의 존재는 머나먼 대한민국의 간척지와 행정소재지에서까지 그 위세를 떨치고 있었다.




        강연에서 두바이는 약점이 많고 우리와 다른 점이 많다는 점을 얘기하며, 맹목적으로 벤치마크할 필요가 없다고 강조하여 얘기를 했다. 한국과 두바이의 다른 점에 대해서는 김진애 씨가 <오마이뉴스>에 2007년 8월 21에 올린 “두바이는 왕이 통치한다 - 두바이 모델은 우리에게 가능한가?”란 글에 일목요연하게 잘 정리되어 있다. 나는 김진애 씨가 지적한 점들 이외에 세 가지를 얘기하며, 두바이의 미래에 대하여 우려를 표했다.




        첫째, 사회구조적으로 매우 불안정한 상태이다. 두바이의 노동시장을 그리고 건설시장을 받치고 있는 것은 이주노동자들이다. 작년에 두바이의 건설 현장에서 노동쟁의 비슷한 것이 일어났다. 앞으로는 두바이인들의 혜택과 견주어, 수적으로 우세한 이주 노동자들이 자신들의 권리를 들고 나왔을 때 정치적 면역력이 떨어지는 셰이크 모하메드를 비롯한 정치지도자들이 과연 부드럽게 처리를 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둘째, 돈이 몰리며 경쟁적으로 건물들이 들어서고 있는데, 이를 지탱해 줄 인프라가 부족하다. 특히 획기적으로 개선할 수 없는 교통 부분이 취약하다. 지금까지는 새로운 건축물들에 가리워지고 묻어져 있으나, 취약한 인프라는 두바이의 기후토양적인 척박함에 사람들의 눈을 돌리게 하는 역할을 하면서, 두바이의 매력도를 크게 떨어트릴 것이다. 셋째, 가장 중요한 것으로 두바이에는 역사와 문화가 없다. 그를 만들어 나가고자 하는 ‘정신’도 없다. 오로지 돈을 끌어 들이고, 화려하게 꾸미겠다는 천민자본주의적인 욕구만이 지배하고 있는 것 같다. 그러니까 두바이는 내 기준으로는 잘 꾸며진 제품이기는 하지만, 진정한 브랜드라고 할 수는 없다. 이에 비하여 전주는 역사와 문화적 향취뿐만 아니라, 자연적인 부분에서도 산과 바다와 평야 등 모든 것을 갖추고 있다.




        이번에 전주의 여러 곳을 새롭게 들렸는데, 전주의 선배들은 별 것 아니라고 쑥스러운 듯이 얘기했지만 나는 ‘한옥마을’이 가장 좋았다. 한옥체험관 한켠 마루에 앉아 있는데 흥부가 판소리가 문풍지 너머 흘러 나왔다. 흥부가 사정하는 한 대목이었다. 라디오나 CD에서 나오는 소리라고 생각했는데, 중간 북소리가 더 먼 곳에서 나왔다. 문풍지 건너 어떤 분위기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생음(生音)이 흐르고 있었다. 미당(未堂)이 생기(生氣)라고 했다가 영랑(永郞)의 촉기(觸氣)라는 소리에 고개를 숙였던 그런 촉촉한 소리마디에 젖어 한참을 멍하니 앉아 있었다.



        두바이에 그런 소리는 없다. 가슴 뛰게 하는 책에서의 상상을 퉁하고 튀어 내는 그런 감동은 없다. 금융 피라밋이 쌓이는 것과 같은 두바이가 두렵다. 솔직하게는 그런 두바이에 붙여, 목소리를 높이지 않으면 큰일 날 듯 호들갑을 떠는 우리의 벤치마킹이 안쓰럽다. 두바이에서 배울 부분이 분명 있고, 합당하게 두바이가 받아야 할 찬사도 있지만, 브랜드적인 관점이 나직하지만 힘이 있게 내 가슴에 속삭인다. 두바이는 전주의 그 역사적 문화유산이 부러울 것이라고.
2009년 10월부터 현대기아차그룹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이노션월드와이드 마케팅본부장으로 재임하고 있음.
역사 및 사회의 제반 모습들을 브랜드적으로 해석하는 데 관심이 많고, 그에 관련한 저서 두 권이 있다. '모든 것은 브랜드로 통한다(사회평론,2002)', '브랜드 마인드(사회평론,2004)'. 학부에서는 중국사를 전공했고, 삼성전자 홍보실을 거쳐, 미국 뉴욕대 경영대학원을 졸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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