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주류(非主流) 브랜드를 위하여




        지난 설 명절처럼 5일을 온전히 집에서 쉬는 날은 드물다.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시간이 뭉텅이로 주어진 것이다. 업무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책들을 읽고 싶었다. 그래서 그 동안 읽으려 하다가 못 읽고 서가에 쌓아 두기만 한 소설책들을 집어 들었다.




        우선은 연휴 직전부터 아침 운동을 하면서 런닝머쉰에서 그리고 따뜻한 탕에서 반신욕을 하며 읽던 영어 소설을 끝내기로 했다. 패티 김(Patti Kim)이라는 유명한 가수와 같은 이름을 가진 재미교포 소설가의 “A Cab Called Reliable"(A Wyatt Books for St. Martin's Press, 1997)이란 자전적 소설이었다. 이 소설책은 처음부터 맘먹고 산 것은 아니었다. 한국의 어느 대형서점의 외국서적 코너 소설부문에 깔려 있는 책들 중 재미교포 소설가들의 평소 흥미 있어 하는 것을 다루었을 것 같은 책 두 권을 보았는데 아무래도 수입서적인지라 값이 비쌌다. 미국의 아는 서점에 가서 사는 것보다 네 배 정도 비싼 것 같았다.

        출장을 가서 구입하리라 맘먹고 마침 뉴욕에 들러 서점에 갔는데, 아뿔싸 저자명으로 서가에 꽂혀 있는데 제목만 생각이 나고 저자명은 가물가물했다. 잠깐 당황하다가 한국 출신 재미교포 작가들이 꽤 있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고, 이들은 어떤 얘기를 풀어낼까가 궁금해졌다. 그래서 저자명이 ‘Kim', 'Park', ’Lee'로 된 소설책들을 찾았고, 일곱 권을 샀다. 유감스럽게 한국 대형서점에서 내가 봤고 사려던 책은 찾을 수가 없었다. 나중에 보니 그 소설가는 미국인과 결혼을 해서 미국인의 성(姓)을 따라서 분류가 되어 있었다. 다시 한국서점에 가서 저자명까지 확인을 하고 다음 출장에서 결국 그 책까지 사곤 하니 재미교포의 소설로만 열권 정도가 서가에 자리를 잡았다.

        애초 한국의 대형서점 서가에서 봤던 두 권, 수키 김(Suki Kim)의 “The Interpreter"(Farrar, Straus and Giroux, NY USA, 2003)와 노라 옥자 켈러(Nora Okja Keller)의 "Comfort Woman"(Viking Penguin, NY USA 1997)을 사자마자 읽고, 한동안 재미 한국작가들의 작품들을 서가에 꽂아만 두었다가 연휴를 맞이하기 직전 운동하고 반신욕을 하며 읽기 좋은 부피와 내용 및 난이도의 책을 찾는데 패티 김의 책이 세 가지 기준을 잘 갖추었던 것이다. 참고로 기준을 얘기하면, 우선 부피가 너무 크면 런닝머쉰 위에 놓기도 곤란하고 수건으로 쌀 수가 없어서 곤란하다. 웬만한 크기의 하드커버는 제본을 망가뜨리지 않고는 책을 펴놓기가 힘들어 대체로 페이퍼백이 좋다. 너무 심각하거나 많이 되씹어 보아야 하는 내용이면 곤란하다. 어쨌든 빨리 걷기 운동을 하면서 움직이며 읽기에 내용도 걸음 속도에 맞추어 휙휙 지나갈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난이도는 내용과도 약간 연관이 있는데, 한 장 한 장이 너무 빨리 넘어 가서는 힘이 든다. 가뜩이나 다리 운동도 힘겹게 하고 있는데, 페이지를 넘기는 손까지 바빠서는 리듬이 흩으러 진다. 그런 면에서 200 페이지 안짝의 영문소설들이 제격이다.




워싱턴과 뉴욕의 한국 청소년들




        “A Cab Called Reliable"은 미국의 수도인 워싱턴 D.C. 근처의 우리에게는 미국의 국립묘지로 알려진 알링턴(Arlington)의 슬럼가와 같은 주택가를 배경으로 시작된다. 초등학교 3학년인 주인공 소녀는 하교길에 집 바로 앞에서 자신의 어린 남동생을 데리고 ‘Reliable'이란 사인이 붙은 택시를 타고 떠나는 엄마를 본다. 곧 엄마가 자신을 데리러 올 것이라고 생각하며 기다리나 엄마는 돌아오지 않고 용접이나 페인트칠 일을 하는 주정뱅이 아버지와의 끔찍한 하루하루가 계속될 뿐이다. 그 암울한 가운데서 소녀는 글쓰기와 이웃 포루투칼 출신 소년과의 너무나 조숙해서 위험한 사랑과 우정 사이에서 위안을 찾는다. 술에 절어 살던 아버지는 슈퍼마켓에서 일하던 여인과 가정을 이루려다가 실패하면서 더 이상 물러설 데도 없고, 딸과 서로 의지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깨닫고 핫도그와 음료를 파는 노점상을 시작한다. 소녀도 포루투칼 남자 친구가 떠나며 어머니에 대한 희망을 버리고 아버지를 돕고, 부녀는 빈민가를 떠나서 자신의 집을 마련해 괜찮은 동네로 이사를 간다.

        아버지는 고향에서 버림받은 과거를 딸에게 얘기하고, 딸이 그 얘기를 글로 풀어 놓은 것을 들으며 둘 사이에는 유대감이 형성된다. 그러나 아버지는 늙어갈수록 아무리 한국에 있는 자신을 버렸던 가족과 한국 노래들을 찾게 된다. 충실하게 그런 아버지의 뒤를 보살펴 온 이제 어른으로 자라난 소녀는 어머니가 그랬듯이 어느 날 아버지의 곁을 떠나기로 결심을 한다. 아버지는 그것을 아무 일도 없었던 듯이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 아니 반응하지 않는 것으로 담담하게 받아들인다.

        내친 김에 미국에서 LA 다음으로 한국인들이 많이 몰려서 사는 뉴욕의 퀸즈(Queens) 지역을 무대로 이제 막 틴에이저 열세 살이 되려하는 거친 한국 사내애들의 이야기를 다룬 박용수(Yongsoo Park)의 “Las Cucarachas"(Akashic Books, NY USA, 2004)로 넘어 갔다. 

        박용수의 작품은 패티 김과 비교하여 문체부터 달랐다. 흡사 황순원에서 “꼬방동네 사람들”의 이동철로 넘어 온 듯한 느낌이었다. 알링턴보다 더 많은 인종들이 섞여 살던 내가 아는 80년대말, 90년대초 퀸즈와 그 속에서 유치하지만 진지하게 자신들만의 갱을 조직하여 다른 인종 아이들과 나름대로의 사투를 벌이는 겉늙은 행태를 보이는 한국계 어린이들의 이야기가 전개되고 있었다. 단 이틀 동안의 얘기 속에서 묘사되는 아버지는 주인공 아이들의 표현처럼 완전한 ‘Loser(낙오자)'이다. 어머니는 억척스럽지만 역시 집이나 가게 밖의 미국과는 담을 쌓은 전혀 다른 세계에 살고 있다. 어린이 자신들은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 속에서 하루하루 살아가며 자신이 속한 갱을 제외하고는 믿을 사람이 없는 고독한 하이에나와 같다. 그리고 둘 다 불완전하기 짝이 없는, 가정과 학교로 각각 상징되는 한국과 미국뿐만 아니라, 어느 한 군데 제대로 속하지 못한 소년기와 성인기의 중간 세계에 끼어서 옴짝달싹 못하는 존재이다.




도시와 혁명의 열기에서 비껴난 아이들




        이 손만 대면 터질 것 같은 조기폭발의 위험성을 지닌 퀸즈 거리 한국 소년들의 우울한 얘기를 한숨쉬며 런닝머쉰과 탕 속에서 읽는 중간 중간에, 침대에서 누워 두 편의 번역소설을 읽으며 위안을 찾았다. 먼저 현재 북경대 교수로 있는 차오원쉬엔(曹文軒)이 지은 “홍와(紅瓦)”를 번역한, 두 권으로 된 “빨간 기와”(전수정 옮김, 새움, 2001)를 읽었다. 거기에 묘사된 1960년대 말 강소성(江蘇省) 시골 소도시 중학생들과 그 배경이 된 마을 사람들의 이야기가 흡사 이문구 선생의 “관촌수필(冠村隨筆)”과 조흔파 선생의 “얄개전”을 교차-혼합하여 연상시키며 사이사이 약간의 안타까움이 새어 들기는 했지만 줄곧 입가에 미소가 떠나지 않게 하였다.  

        60년대말을 배경으로 하고 있으니 문화혁명 얘기가 나오지 않을 수 없다. 문화혁명을 회고하는 책들을 수 권 읽었는데, 두 부류로 나누어진다. 엄청난 고초를 겪은 당시 최소 40대 이상의 고위직에 있던 피해자와 반대로 그들을 박해한 10대 중후반의 홍위병 출신들이 쓴 책들로 나눌 수 있다. 그런데 재미있게도 당시 홍위병으로 거침없는 파괴와 조반(造反)에 앞장섰던 이들도 알고 보면 자신들도 피해자라고 주장한다. 물론 홍위병들이 그렇게 세상을 들었다 놓았다 한 기간은 3년이 채 되지 않았고, 그 3년 동안에도 홍위병 그룹 내에서 세력다툼에 따라 엎치락뒤치락하고 이합집산이 심하여 절대권력을 누리며 고문하다가 하루아침에 고문을 받는 신세로 급전직하하는 경우도 많았다. 그리고는 대부분이 오지로 하방(下放)되어 고난의 세월을 보냈고, 이후에는 80년대에 들어와서 재판을 받고 감옥에 간 무리들도 많았으니 나름의 ‘상흔(傷痕)’을 지니고 있기는 하다. 피해자이건 가해자이건 이들 모두는 문화혁명의 주인공이거나 최소한 조연들이다.

        “빨간 기와”에서 정치적 소용돌이에 휘말린 대도시에서 한 발 떨어진 시골에 사는 감수성 강한 사춘기 소년 소녀들의 삶 속에서 문화혁명은 이야기 몇 꼭지의 모티프 이상의 의미를 갖지 못한다. 그것도 이야기 속에서 희화(戱畵)로 그려졌다. 다른 도시의 혁명행동에 동참, 참관하거나 혁명열사의 유적을 돌아보기 위한 활동의 일환으로 대도시인 상해(上海)를 방문하는데, 일행끼리 흩어지는 등 우여곡절을 겪은 끝에 인솔 선생님은 다음과 같은 말로 그들의 혁명 활동의 일단을 접는다. “안 되겠어. 집으로 돌아가자. 온몸에 온통 이가 득실득실해서 원.” 생활 속에서 볼 수 있는 하찮고 자그마하지만 성가시기 그지없는 이들이 고귀한 혁명의 덜미를 잡은 것이다.

        따지고 보면 자연스런 일상생활 속의 파편들 속에 아무도 생각하지 못한 극적인 요소들이 숨어 있다. 인도의 현역 외교관인 비카스 스와루프(Vikas Swarup)의 처녀작으로 세계적인 베스트셀러가 된 “Q&A"(강주헌 옮김, 문학동네, 2007)은 범상치 않은 인도 사회의 다양한 면면과 어우러져 일어난 비주류 주변부 인생의 흔치 않은 성공 스토리를 보여 준다.

        10억 루피의 상금이 걸린 퀴즈쇼에서 기적적으로 우승을 한 하층 웨이터인 람 모하마드 토마스는 경찰의 고문에서 자신을 구해주기는 하였지만 자신을 의심의 눈초리로 쳐다 보는 변호사에게 다음과 같이 항의 겸 하소연을 한다. ‘변호사님, 우리 같은 가난뱅이도 질문을 하고 대답을 요구할 수 있습니다. 가난뱅이가 퀴즈를 내면 부자는 한 문제도 답을 말할 수 없을 겁니다. 나는 프랑스 화폐가 뭔지는 몰라도 샤릴니타이가 고리대금업자에게 얼마를 빌렸는지는 압니다. 달에 처음 발을 디딘 사람이 누구인지는 몰라도 다라비에서 불법 DVD를 처음으로 만든 사람이 누군지는 압니다. 당신은 누군지 아십니까?’

        사회의 주류라고 하는 사람들은 자신들의 관점에서 지식의 높고 낮음의 기준을 만들었다. 학교 수업, 책 등 그런 지식을 습득하는 경로도 자신들의 경우에 맞추어서만 생각한다. 그러나 람 모하마드 토마스의 말처럼 가난뱅이 하층민이라고 하더라도 자신만이 알고 있는 것들이 있다. 바로 자신만의 세계가 있다. 그들만의 세계에 기초한 지식들이 주류들이 내세우는 지식이란 것보다 훨씬 현실적으로 밀접하고 절박하게 생활에 붙어 있다. 동네 고리대금업자가 얼마 정도를 빌려 주는지 아는 것이 평생 쓸 일이 없을 프랑스 화폐의 단위가 무엇인지 아는 것보다 중요하다. 또 퀴즈쇼에서 그랬듯이 그렇게 삶의 궤적 속에서 체득된 것들이 주류의 지식과 겹쳐지면서 대박이 날 수도 있다.




비주류로서의 기준과 자신감을 자져라




        주류가 되지 못하여 안달을 하는 브랜드가 있다. 그들은 주류가 세운 기준을 그대로 가져다가 자신을 정의하고, 재단한다. 그것은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에 스스로 오르는 행위이다. 침대는 주류에 딱 맞추어 짜져 있다. 침대에 맞추려 자른 것이 바로 비주류 브랜드만의 특장점일 확률이 크다. 억지로 늘여 침대에 맞춘 몸은 보기 좋게 침대에 맞추어져 있는 주류의 몸과 비교하면 어색하기 그지없을 것이다.

        자신만의 침대를 만들어야 한다. 꼭 침대일 필요도 없다. 미국의 부부 디자이너로 유명한 레이(Ray)와 찰스 임스(Charles Eames) 부부는 잠시도 가만히 있지 못하나 갑자기 푹 쓰러져 휴식을 취하기도 하는 친구인 영화 감독 빌리 와일더(Billy Wilder)를 위하여 침대와 이동 의자의 역할을 겸비할 수 있는 ‘라운지 체어(Lounge chair)’를 개발했다. 어느 디자이너가 찰스 임스의 철학에 대하여 제대로 정리를 했다. ‘찰스 임스가 의자를 하나 디자인한다면, 그가 디자인한 건 하나의 의자가 아니다. 그는 앉는 방법을 개발한 것이다. 그는 기능을 위해 개발을 하는 것이 아니라 기능을 개발한다.’ ‘하나의 의자’는 이미 너무 많이 나와 있다. ‘또 하나의 의자’를 거기에 보태 봤자 주류의 살만 찌우고, 자신은 그 살에 더욱 깊이 파묻힐 뿐이다.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앉도록 만들라!
        가족과 이별은 진부하기까지 한 소재이지만, 패티 김의 소설에서 나타난 그것들은 여느 소설에서와는 다르다. 꼬마 하드보일드 소설 박용수의 작품에서 도드라진 것은 미국에 떨어진 한국인 아버지의 패배자로서의 초상이다. 차오원쉬엔의 작품을 빛나게 한 것은 세상의 변화를 주도한 혁명과 도시와의 정서적, 물리적 거리이다. 상층 주류와 교차하며 펼쳐지는 하층민의 파란만장한 삶을 그린 “Q&A”도 작가인 스와루프가 외교관으로 정통 소설가들과는 다른 세계에 서 있어서 가능한 것이 아닌가도 싶다.

        세상에는 비주류가 훨씬 많다. 비주류간의 감성적 연대는 더욱 끈끈하다. 배신의 상처는 아주 오래 간다. 복수는 매우 처절하다. 기회가 크나 기회를 성공으로 만들었다 싶었을 때 성공을 만들어 준 비주류들에게 배신자가 되기도 한다. 기존 주류의 기준에 어느새 맞춰 버리기 때문이다. 비주류로서의 기준을 꾸준히 가지고 가야 한다. 구체적인 사례 하나를 들면, 애플(Apple)의 아이포드(i-Pod)는 미국 시장점유율 70% 이상의 지나치다 싶을 정도의 주류이나, 7%도 되지 않는 마이너리티, 비주류처럼 행동해야 한다. 근래 애플을 보면 그런 점에서 좀 아쉽다. 애플이여, 당신에게 한층 어울리는 비주류로 돌아오라!
2009년 10월부터 현대기아차그룹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이노션월드와이드 마케팅본부장으로 재임하고 있음.
역사 및 사회의 제반 모습들을 브랜드적으로 해석하는 데 관심이 많고, 그에 관련한 저서 두 권이 있다. '모든 것은 브랜드로 통한다(사회평론,2002)', '브랜드 마인드(사회평론,2004)'. 학부에서는 중국사를 전공했고, 삼성전자 홍보실을 거쳐, 미국 뉴욕대 경영대학원을 졸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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