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메리카’는 그 자체로 엄청난 브랜드라고 할 수 있네. 20세기 중반 이후부터 절대적인 지위를 누려 왔지. 양차대전은 왕년 제국들의 최고 절정이자 내리막의 시작이었지. 소련과 미국이 유럽 제국들의 뒤를 이어 세계를 두 파로 나누며 차갑지만 치열한 전쟁을 펼쳐 왔던 것이 20세기 후반이었지. 두 개의 절대적인 브랜드들이었는데, 소련이 해체되면서 미국은 세계시장에서 필적할 상대가 없는 브랜드가 되어버렸네. 미국에 비하면 다른 국가들은 마치 아무 표시가 없는 제너릭 브랜드(Generic brand)나 PB(Private brand) 같은 격일세. 브랜드 아메리카는 이를테면 각각의 분야의 기업으로 따지자면 1960년대의 제너럴 모터스(General Motors)와 포드 자동차(Ford)를 합친 정도, 혹은 1990년대 중반까지의 제록스(Xerox), 베이비 벨(Baby Bell)이라고 부르는 지방 전화회사들로 분할되기 전의 AT&T와 같은 존재였네.




역사가인 액튼 경(Lord Acton)의 그 유명한 “절대 권력은 절대 부패한다”는 경구를 잘 알고 있지? 그 경구는 브랜드에도 바로 적용될 수 있다고 생각하네. 사람들은 절대적인 위치에 대해서는 자연스럽게 반발하고 싶어 하네. 경쟁자나 정책입안자는 물론이고, 소비자들도 괜히 피해를 입는 듯한 느낌이 들고, 심지어는 내부에서도 태생적인 반발심을 갖는 사람들이 나오게 마련이지. 그 면에서 빌 클린턴(Bill Clinton)은 큰 역할을 했어. 어린 인턴을 비롯한 몇몇 여인네-힐러리(Hillary)도 그 중의 하나일세-의 도움에 힘입어 미국이란 브랜드를 향한 예봉을 자신이 온몸을 던져 막았거든. 물론 그러면서 미국 브랜드에 원치 않는 색깔을 약간 입히기도 했지.




‘힘’만을 상징하게 된 브랜드




현재의 대통령인 부시(Bush) 가문은 빌 클린턴 집안과는 다른 전통을 가졌지. 몇몇 사람들은 빌 클린턴 집안에는 ‘전통’ 따위는 아예 없다고 가볍게 반박을 하지 않고는 넘어가지 못하더군.  부시 집안사람들은 아메리카 브랜드에 대한 사랑과 자부심이 지나쳐서, 외부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아. “당신이 (브랜드 아메리카 제품이) 필요한지 아닌지는 따질 필요 없어. 생각해 보고 묻고 할 것 없이 무조건 사야 돼. 다 당신을 위해서 하는 소리야.”




시장 질서를 잡는 데도 그들은 미국이 단지 한 명의 플레이어가 아니라 규칙을 정하고 다른 참가 선수들을 뽑는 커미셔너 역할도 맡고, 경기의 심판도 봐야 하고, 응원하지 않는 사람들 혼내는 응원단장까지 제법 빛이 나는 것 같은 지위는 모두 차지하려 하지. 더 큰 문제는 그러면서 정말 다른 국가들을 위한다고 생각을 한다니까. 이런 생각을 기저에 깔고 2001년의 9․11을 맞이하니, ‘세계 평화를 위하여 참아 왔는데, 행동으로 나서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게 되지. 그 행동도 철학적인 빈곤, 장기적인 브랜드 관점의 부족을 여실히 드러내면서 펼쳐졌지.




비극적인 9․11 사건 직후에 브랜드 관점에서 미국이 대응하는 방법이나 범위가 세 가지 단계로 확대될 것 같다고 얘기한 것 기억나나? 첫 번째는 사건 직후에 바로 터져 나오기 시작했고, 부시 대통령조차도 자기 입으로 얘기한 “오사마 빈 라덴을 포살(捕殺)하라(Kill Osama bin Laden)"이 고, 거기서 범위를 점차 넓혀 갔지.”알 카에다(Al-Quaeda)를 박멸(撲滅)하라“에서 ”이슬람 테러집단을 제거하라“까지.




그렇게 하는 것은 사실 미국이란 브랜드에 ‘복수(復讐)’의 문신을 새기는 것과 다름없다네.  미국이 얻을 수 있는 최고의 칭호란 기껏해야 ‘세계의 경찰’ 정도가 될 것이네. 9․11은 미국에게 ‘평화의 사도(使徒)’가 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일 수도 있었는데 아쉽지. 금수(禽獸)도 상대방의 위해에 대해서는 저항할 수 있네. 무리지어 사는 동물들에는 보통 가장 힘이 세서 우두머리 노릇을 하는 놈이 있기 마련이지. 그런 종류의 힘에 의한 질서가 브랜드 아메리카가 의미하는 것이라면 아쉽기 그지없지.




타국의 부정적 이미지 속에서 빛났던 미국 브랜드




내가 생각하기에 미국이란 브랜드는 그것보다 훨씬 더 한 가치와 잠재력을 가지고 있네. 그리고 다른 어느 나라도 가지지 못한 자랑스러운 유산도 가지고 있지. 영국으로부터의 독립운동을 펼치며 자유, 평등의 메시지를 온몸으로 구현하고, 전 세계 인민의 눈을 틔게 한 것이 미국 아니었던가? 그런 역사적 자산을 가지고, 더 높고 근본적인 가치를 포용할 수 있는데 물리적인 힘으로만 밀어 붙여서 취할 수 있는 그런 가치로 자신을 떨어뜨리는 것이 안타깝네. 사실 미국은 2차대전과 동서 냉전의 시기 전까지는 한․중․일 동아시아 3개국에서 다른 어느 서구국가보다 긍정적인 이미지를 가지고 있었지.




페리(Perry) 제독이 1854년 ‘흑선(黑船)’을 이끌고 와서 도꾸가와(德川) 막부의 쇄국정책 빗장을 열며 조약을 체결하며, 영국, 프랑스, 러시아, 독일 등이 그 뒤를 이어 일본과 비슷한 조약을 맺었지. 사실 일본은 19세기 말 20세기 초에 이르는 광기(狂氣)의 제국주의 시대에 주변 상황을 교활할 정도로 잘 이용하여 매우 독특한 사례를 만들었네. 페리 제독이 일본에 온 이유 자체가 태평양 지역에서의 미국의 소위 방어선을 확고히 하자는 의도였지. 직접적으로는 러시아, 중국, 그리고 좀 멀기는 하지만 유럽 국가들이 태평양 쪽으로 진출하는 데 일본을 1차 방어선으로 이용하고자 하는 의도였지. 어쨌든 그 이후 미국은 태평양 연안 지역 개척을 본격화하고, 이어 하와이와 필리핀, 괌으로 이어지는 전리품들을 챙기게 되지. 미국과 직접 부딪히기가 껄끄러웠던 다른 국가들도 일본을 완충지대 정도로 받아들이고자 하는 모습도 보이게 되네. 물론 일본도 ‘부국강병(富國强兵)’의 기치를 높이 걸고, 서구의 행태를 그대로 동아시아 지역에서 재현하였고, 2차 대전에서의 파국을 맞기까지 그 노력은 상당한 효과를 보았지. 일차대전 이후 지금으로 치면 G7과 같은 세계 최강국 그룹에 일본이 진입하기까지 했으니까. 그렇게 되기까지 일본 정부와 산업계는 독일을 모델로 하는 경향이 강했지만, 일본의 대중문화와 유행은 미국의 영향이 압도적이었네. 재즈, 지루박, 야구, 영화, 백화점 문화 등이 군국주의 몰이에 지친 일본인들을 위로해 주면서 휴식의 공간을 제공해 주었지. 그러니까 미국은 부드럽고 밝고 즐거운 서구 문화의 상징처럼 일본인들에게 비추어졌지.




일본은 페리 제독이 자신들에게 한 것을 그대로, 보다 폭력적인 방법으로 한국에 적용하였지. 일본이야말로 물리적으로는 세계 강대국의 범주에 들며 계획 이상으로 이루었지만, 브랜드로서 지지층을 획득하는 것은 실패하였고 이는 결국 2차대전의 파국으로 이어졌지. 대전에서의 군사력에서의 실패 이후 기적적으로 경제력에서 그 이상을 이루었지만 브랜드로서의 성과를 거두는 것은 아직도 서투르기만 한 것 같네.




짜르(Tsar) 치하의 제정(帝政) 러시아도 이런 식의 브랜드 만들기 게임에 서툴기는 마찬가지였네. 귀족들은 자신들의 지배를 받는 평민, 농노 상태나 별반 다를 바 없는 농민들과 자신들의 거리를 더욱 더 멀게 만드는 데 뛰어났지. 그런 국내에서의 분리 정책이 빛을 발했듯이 외교 부분에서도 다른 국가들과 멀어지는 것이 꼭 구(舊) 러시아 외교의 목적인 것처럼 보였지. 이들 특유의 퉁명스러움과 비밀주의는 사실 10월 혁명 이후 공산체제가 들어서고, 냉전시기를 거쳤다가 CIS체제로 격변의 시기를 지내면서도 근본적으로 변하지는 않은 것으로 보이네.




19세기말 중국 청나라는 조선인들에게 가족을 부양하거나 보살필 능력을 상실한 이빨 빠진 가부장과 같은 존재로 비추었네. 그런데도 가정에서는 철권을 휘두르며 구태를 벗지 못하는 그런 아버지였지. 또한 한국인들은 오랫동안 일본인들을 한국인의 가르침을 전해 받아서 그나마 문명세계란 것에 제한적으로나마 눈을 뜬 열등 민족으로 생각하곤 했지. 그러니 그런 일본의 갑작스런 부상(浮上)과 폭압을 한국인들이 어떻게 생각했겠는가 상상해 보게나. 갑자기 힘이 세져서 보호자를 자처하며 돈을 갈취하는 깡패와 같이 생각했지. 식민지라는 이름으로 일본의 지배하에 들어갔으나 한국인들의 마음 깊은 곳에 있는 일본에 대한 경멸과 같은 감정은 아주 없애기는 힘들었지. 그러나 그것도 강압적인 식민지배가 몇 십 년에 걸쳐 지속되면서 일본을 진심으로 우러러 받드는 사람이 나오기도 하고 전체적으로 옅어지기도 하더군.




한국인들에게 러시아는 마치 여우와 같은 일본과 싸우는 늑대 같은 존재로 여겨지기도 했다네. 냉전 시기를 거치면서 상징 동물이 곰으로 바뀌었지만, 19세기말만 하더라도 늑대 표현이 더 자연스러웠네. 영국도 또 하나의 늑대와 같은 존재로 취급받았지. 영국은 거문도라는 한국의 큰 섬 하나를 러시아의 남진을 막겠다는 의도로 강제로 점거하기도 했지. 이들 폭압적인 가부장과 깡패, 늑대와 같은 무리에 휩싸인 한국인들 중에 미국에서 희망을 찾으려는 사람들이 나타났네. ‘정의의 국가’, ‘천부인권, 만인평등의 나라’, ‘피지배 식민지들의 구원자’ 등이 바로 일본의 지배가 심해질수록 많은 한국인들이 미국에 대해서 갖게 되고 자가발전 시킨 이미지였지. 미국의 일본에 대한 승전은 이런 해방자로서 미국의 이미지를 더욱 강화시켰고, 한국전은 최소한 한반도의 반쪽 남부에서는 우리의 수호자로서 미국의 이미지는 결코 누구도 자신의 목숨을 걸지 않고는 이의를 제기할 수 없는 우상화된 브랜드처럼 되어 버렸지.




브랜드 아메리카의 마지막 기회




다시 한번 액튼 경의 경구가 빛을 발하네. 한국에서 브랜드 아메리카는 절대권력이 되어 버렸지. 지금으로부터 20여년전 내가 미군에 배속되어 군 생활을 하던 시절, 당시 한국주둔미군사령관의 관저에 일 때문에 간 적이 있었네. 관저 그 바닥에 한국의 알만한 저명인사들이 보낸 동양화, 도자기 등의 선물들이 아무렇게나 버려져 있다시피 한 광경이 바로 미국이란 브랜드가 한국에서 가지고 있던 위상을 그대로 보여주었지.




그런데 사실은 그 때만 해도 이미 브랜드 아메리카의 신화가 무너지기 시작한 이후라네. 전제적인 독재정권을 지원한다고 해서 70년대부터 소수의 지식인들을 중심으로 미국에 대하여 의문을 품기 시작했고, 80년대에 들어서면서 흡사 반전운동에 나섰던 미국 대학생처럼 한국의 소위 운동권 대학생들이 반미(反美)의 구호를 외치기 시작했지. 한 가지 유념할 것은 말이지, 미국의 반전운동은 문자 그대로 목숨을 걸어야만 했던 한국 젊은이들의 반미에 비하면 스포츠 경기처럼 보인다는 거야. 상대적으로 진보적이라고 여겨졌고 그러기에 상당히 오랜 기간동안 야당 신세를 면치 못했고 정치적인 핍박을 받았던 세력이 정권을 잡은 90년대 말 이후 한국은 브랜드 아메리카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는가에 따라 두 그룹으로 나뉘어져 세계 어느 국가에서도 볼 수 없는 희한한 대립 상태로 들어갔다네. 지난 연말 친미를 표방하는 그룹에서 대통령이 선출되었으나, 브랜드 아메리카에 대한 인식의 변화로까지는 아직 연결되지 않고 있는 것 같고 대립만 격화되지 않을까 생각하네. 어쩌면 대립진영을 벗어나 있는 대다수의 한국인들에게 미국은 어찌 되었든 골칫거리라는 인상을 더욱 강하게 심어줄 지도 모르네.



이번 미국 대통령선거에서 소위 사회적 소수자에 속한 사람들이 유력후보로 나서며 민주당이 선풍을 일으키고 있다고 흥분하는 사람들이 많더군. 많은 다른 나라들은 이미 그런 과정을 거쳤지만 역시 미국이 하면 다른가 보네. 그 크기를 떠나서 미국 역사상의 유산이 있기 때문에 또한 그런 세계적 관심이 가능할걸세. 다보스 포럼에서 미국의 상징물 중의 하나인 빌게이츠(Bill Gates)가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서도 기여할 수 있는” ‘창조적 자본주의(Creative Capitalism)'을 얘기했는데, 나는 이것이 현재의 대통령 선거와 맞물려 미국이라는 브랜드가 긍정적으로 나갈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는 생각이 드네. 힘으로 줄 세우는 냉전시대의 행태와 가장 거리를 둘 수 있는 구호와 그것을 행동으로 옮기는 것! 그것이 미국이 근본적으로 가지고 있는 가치들을 다시금 세계인들의 가슴 속에 심어 줄 수 있는 길이라고 생각하네. 우선은 미국인들의 가슴 속에서 불러 일으켜야 하겠지. 너무 불안해하지 말고 지켜보자고!


-제일기획 사보 2008년 2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2009년 10월부터 현대기아차그룹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이노션월드와이드 마케팅본부장으로 재임하고 있음.
역사 및 사회의 제반 모습들을 브랜드적으로 해석하는 데 관심이 많고, 그에 관련한 저서 두 권이 있다. '모든 것은 브랜드로 통한다(사회평론,2002)', '브랜드 마인드(사회평론,2004)'. 학부에서는 중국사를 전공했고, 삼성전자 홍보실을 거쳐, 미국 뉴욕대 경영대학원을 졸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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