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5년 미국 시카고. 모든 자동차는 자동으로 움직이고(수동으로 운전하면 경찰에게 혼난다), 주차할 때는 차가 세로로 서며, 거리와 집엔 로봇 투성이다. ‘한 집 한 로봇’ 시대를 맞아 집집마다 로봇도우미가 요리하고 세탁하며 아이도 돌본다. 그러나 엄청난 데이터 축적에 의해 자체적으로 진화한 로봇의 반란이 시작되고, 주인공의 사투 끝에 사태는 진정된다."



올 여름 개봉된 할리우드 SF영화 ‘아이 로봇’의 줄거리입니다. 제작비 1억2천만 달러(약 1천4백억원)의 대작답게 컴퓨터그래픽으로 도배한 화면은 요란하지만 눈부실 정도는 아니고 줄거리는 엉성합니다. ‘기계문명의 발달이 빚을 지도 모르는 미증유의 세상에 대한 두려움’이라는 주제는 강하지만 아귀가 잘 안맞는 성근 짜임 때문에 다소 지루하기까지 하지요.



그래도 이 영화는 할리우드가 결코 놓치지 않는 공식을 어김없이 지키고 있습니다. 가족의 중요성, 노인에 대한 존중, 어린아이에 대한 보호를 강조하는 게 그것이지요. 주인공 델 스프너 형사는 사고로 인공팔을 달고 있는데도 로봇을 혐오합니다.



이유는 한 가지지요. 과거 대형사고를 당했을 때 로봇이 생존 확률만 따져 함께 있던 어린 소녀 대신 자신을 구했기 때문입니다. 그는 당시 상황이 떠오를 때마다 “내가 아닌 그 아이가 살았어야 했다”고 부르짖습니다. 게다가 그는 매사 제멋대로임에도 불구하고 할머니 말이라면 꼼짝 못하지요.



아이와 노인을 비롯한 가족에 대한 사랑과 이해의 중요성을 내세우는 할리우드의 이런 공식은 극영화, 애니메이션, SF물 어느 것에나 똑같이 적용됩니다. ‘사랑할 때 버려야 할 것들’에선 엄마의 딸에 대한 사랑과 함께 딸의 엄마에 대한 사랑을 다루고, ‘배트맨 3’에선 살던 집에서 쫓겨날 정도로 형편이 어려운 숙모가 조카의 생일선물로 꼬깃꼬깃한 쌈지돈을 꺼내 줍니다.



‘마이너리티 리포트’는 자식을 되찾고 싶어하는 부모의 마음, ‘AI`는 엄마를 되찾으려는 어린 로봇의 필사적인 노력을 그렸지요. 심지어 다큐영화인 ‘화씨 9/11’에서도 이라크전에 참전했던 아들을 잃은 엄마를 내세워 스토리를 끌어갑니다.



할리우드 영화가 유독 가족에 집착하는 건 어쩌면 그 사회의 가족 해체가 그만큼 심각하다는 것을 의미할 수도 있겠지요. 가족 해체는 심하고 세대간 괴리 또한 걷잡을 수 없다보니 영상물을 통해서나마 세대간의 융화와 가족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일 수도 있겠구요. 어떻게든 노인의 지혜와 너그러움, 포용성을 강조하고 어린아이와 청소년의 중요성을 강조함으로써 따뜻하고 조화로운 사회를 만들어나가고자 하는 노력의 일환일 수 있는 것 아닐른지요.



우리는 어떤가요. 영화든 드라마든 나이든 층은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제작비를 줄이는 게 첫째 이유요, 시청자들이 나이든 출연자를 싫어해서 그렇다는 겁니다. 뿐인가요. 기껏 등장해도 지혜롭고 너그러운 존재가 아니라 편협하고 욕심 사납고 이기적이거나 모자란 인물로 그려집니다.



지난해 TV의 추석 특집드라마로 방송된 김수현 작 ‘혼수’의 시어머니 자리는 물려줄 재산을 미끼로 며느리감에게 자신의 다이아몬드 반지와 모피코트까지 요구하는, 어처구니 없는 인물로 등장하거니와 나이든 층에 대한 이런 식의 묘사는 비단 이 드라마에 그치지 않습니다.



트렌디극을 표방하는 월화 또는 수목드라마에선 두말할 것도 없고 가족극이라는 일일극이나 주말극에서조차 부모세대는 한때의 실수를 인정하기보다 덮고 감추기 위해 온갖 술수를 다 쓰는 파렴치한 인물로 그려지기 일쑤지요(‘파리의 연인’, ‘황태자의 첫사랑’ 등등)



그러니 나이든 층은 인생살이의 경험을 통해 젊은 사람의 성급함을 달래고, 실수를 감싸주고 격려해주며 쉽사리 판단하기 힘든 문제에 대해 조언해주는, 쓸모있는 존재가 아니라 젊은 사람들의 자유로운 사고와 진취적인 행동을 막는, 타파돼야 할 존재로 그려집니다.



이런 판이니 우리 영상물엔 나이든 층을 존중하고 그들로부터 뭔가 배우기보다 윗세대를 가르치고 계도하려 드는 젊은 세대가 자주 튀어나옵니다. 세대 교체와 개혁이 강조되는 사회여서인가. 어쨌거나 기껏 잘 그려져도 추억의 존재 정도이지 존경이나 사랑 받는 존재는 아니지요.



영상물의 영향은 실로 막대합니다. 자라나는 세대에겐 특히 그렇지요. 금연을 아무리 강조해도 배용준이나 장동건 권상우가 영화나 드라마 속에서 근사한 폼으로 담배를 피우면 아무 소용이 없고, 드라마속 누구누구의 말 한마디, 옷과 목걸이가 24시간도 안돼 온천지에 퍼집니다. 모방과 따라하기, 팬덤이 판치는 시대에 영상물이 은연중 드러내는 메시지는 실로 중요하지요.



지난해 추석 특집드라마로 방송된 ‘혼수’(김수현 작)가 오랫동안 장안의 화제였거니와 잘만든 영화, 잘만든 드라마는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고 앞날의 지표를 새로 설정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때로 유치하다 싶어도 영상물 속에서 노인을 공경하고 아이들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건 가족해체를 향해 브레이크 없는 자동차처럼 달려가는 우리 시대의 제어막을 만들 수 있지 않을른지요.



거꾸로 사회 일각의 비정상적인 삶, 윤리 붕괴를 담아내는 영상물은 사람들로 하여금 그같은 일에 무감각해지도록 유도할 수 있습니다. 드라마가 출생의 비밀을 내세워 이복형제, 아버지가 다른 자녀를 양산할 경우 시청자들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 혼전 임신이나 혼외정사를 가볍게 여기게 될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습니다.



문화란 만들어지는 게 아니고 흘러가는 것이라거나 있는 현상을 보여주는 것일 뿐이라고 하지만 그래도 문화예술은 드러나지 않는 가운데 사람들의 정서와 가치관에 영향을 미친다. 나이든 세대는 도무지 쓸모없고 낡아서 갈아치워야 한다거나 가족이란 서로를 구속하고 귀찮게 하는 집단이라는 식의 영상물이 판치는 한 이 땅의 미래는 없는 것 아닐까 싶습니다만.**




늦깎이 훈장이 된 글쟁이. 내 인생의 꼭지점이 아직 남아 있겠거니 믿으며 매사 열심히 대드는 철 안든 아줌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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