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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케팅 경쟁 요소의 변화

 

마케팅 경쟁 요소의 변화

‘기업브랜드를 위하여(1)’에 이은 글입니다. 자동차 산업을 예로 Ford로부터
Toyota까지 경쟁요소가 어떻게 변해 왔는가를 보았습니다.

1. ‘현대(Modern)’을 만든 생산기술(Manufacturing)


        포드(Ford) 자동차의 설립자인 헨리 포드(Henry Ford)가 노년에 어느 초등학교를 방문했다. 마침 ‘현대(Modern)’ 역사와 생활의 변화 등에 관하여 배우는 수업이 진행되고 있었다. 유심히 그들의 수업을 참관하고 있는 헨리 포드 할아버지에게 한 어린이가 약간 비아냥거리는 투로 물었다. “현대(Modern)가 어떤 건지나 아세요?” 헨리 포드가 빙그레 웃으면서 대답했다. “얘야, 그 ’현대‘라는 것을 만든 사람이 바로 나란다.”

        현대 기업의 아버지로 헨리 포드를 뽑는데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2006년 우리나라에서 번역, 발간된 그의 자서전은 ‘고객을 발명한 사람’이란 부제를 달고 있다. 극소수의 부유한 사람만이 놀이용으로 타는 물건이었던 자동차를 그는 말 그대로 보통사람들을 위한 대중적이고 실용적인 탈 것으로 만들었다. 그의 이런 업적을 통하여 자동차는 20세기 이후 인류의 생활 방식을 규정짓는 데 가장 큰 영향력을 발휘한 제품으로 자리를 잡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거주 지역, 여가를 보내는 방식 등 라이프스타일적인 측면에서 인간의 활동반경이 획기적으로 넓어졌고 빨라졌다. 철강산업을 비롯한 파생산업을 자동차처럼 광범위하게 낳은 경우는 없었다.


        무엇보다도 그는 컨베이어 벨트에 의한 대량생산시스템이라는 20세기 거의 모든 제조업 생산시스템의 원형을 만든 공(?)으로 ‘현대를 만든 사람’이라는 칭호를 얻게 되었다. 이러한 시스템에 의한 생산 효율의 극적인 개선이 없이는 자동차의 대중화라든지 자동차 문명은 불가능했다. ‘생산 효율의 극대화에 따른 원가절감’이 바로 포드가 몰고 온 혁명의 핵심이었고, 이는 자동차 산업을 넘어서 20세기 기업의 경쟁력을 좌우하는 첫 번째 요소로 확고하게 자리를 잡게 되었다.


        포드는 자신이 고안한 생산시스템을 통하여 다른 회사의 자동차가 2천$대로 나올 때, 훨씬 견고한 제품을 800$대에 내놓았다. 그것도 몇 년이 지나지 않아 200$대로 떨어졌다. 포드자동차 노동자들의 임금은 반대로 다른 기업들의 세 배 이상이었다. 그리고 하루 10시간 이상의 노동이 일반화되어 있던 시대에 8시간 노동 규정을 도입했다. 투입요소를 무조건 쥐어짜는 형식은 아니었던 것이다. 처음 포드가 자동차 산업에 뛰어들면서 생각했던 실용주의자로서의 꿈들은 모두 이루어졌다. 거의 누구나 자동차를 가질 수 있었고, 자신의 노동자들은 풍요로운 삶을 누릴 수 있었다. 그러나 포드가 꿈의 완성을 선언한 그 포인트들 내부에 경쟁자들이 파고 들어가게 되는 포드의 약점들이 있었다.


2. 마케팅(Marketing)의 출현


        앞에서 언급했던 번역서의 부제처럼 포드는 고객을 발명했다. 몇몇 극소수의 호사가에 불과했던 자동차 애호가를 넘어서 수천만의 자동차 고객들을 포드는 만들어 냈다. 그러나 그의 발명은 일방적인 시혜와 같았다. 자동차와 같은 물건의 필요함을 고객들이 느끼게 하였고, 그들이 감당할 수 있는 가격대에 제품을 제공하는 것으로 그의 임무는 끝났다고 포드는 보았다. 아니, 더욱 낮은 가격으로 제공하는 것이 그가 끝까지 노력할 부분이라고 보았다. 그에게 자동차는 특정지점에서 지점까지 사람이나 물자를 운송해주기만 하면 되는 것이었다.


        “고객들은 어떤 색상의 차든지 구할 수 있다. 단지 그것이 까만색이기만 하면(Any color you want, as long as it’s black)”이란 말에서 보이는 것처럼 그는 아주 기본적인 성능에 대하여 만족한 연후에도 고객들은 스스로 새로운 욕구를 만들어 낸다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리고 서로 다른 욕구를 가진 고객 집단들의 존재를 무시하려 했다. 그의 이런 태도가 결국 절대자로서 포드자동차의 위치를 무너뜨렸다. 그 지위를 제너럴모터스(GM)가 이어 받았다. 

 
       GM은 포드가 발명한 고객들을 특성에 따라 나누었다. 그리고 나누어진 고객들의 특성에 맞는 차들을 제공했다. 예를 들자면 돈이 많은 사람들에게는 최고의 자동차로서 ‘캐딜락(Cadillac)’, 편안함을 추구하는 사려 깊은 고객에게는 ’올즈모빌(Oldsmobile)’, 즐거움을 추구하는 혈기왕성한 사람들을 위한 ‘뷰익(Buick)’, 저가이지만 다른 제품들과는 다른 독특한 스타일을 내세운 ’폰티악(Pontiac)’, 마지막으로 가장 저렴하게 실용적인 ‘시보레(Chevrolet)’가 바로 그들이었다. 사실 이런 구분의 근간을 이룬 것은 바로 가격 피라미드였다. 그렇지만 단순하게 고가와 저가의 등급으로만 나눈 것이 아니라 폰티악의 경우에서 보이는 것처럼 ’스타일‘이라는 약간의 플러스 요소를 가미했다. 이와 함께 GM은 매년 모델을 변경하였고, 할부판매와 같은 획기적인 판매기법도 도입하였다. 이 모두가 숨겨져 있는 것과 같은 고객의 니즈를 찾고, 편익을 제공하여 고객의 주머니를 열게 만든 그야말로 20세가 전반 현대경영의 최고 거두로서 A.P.슬로언(Sloan)을 우뚝 서게 만든 마케팅의 혁명적인 도구들이었다.


3. 감성에 호소하는 브랜드(Brand)


        미국에서 마케팅 부문 최고의 대학원 중의 하나로 유명한 미국 시카고 외곽에 자리 잡은 노스웨스턴대학교(Northwestern University) 소재 켈로그 경영대학원(Kellogg School of Management)에서 주관하였던 4주 짜리 마케팅 프로그램에 2005년 여름에 참여했었다. 그 4주 동안 강의했던 교수들이 가장 많이 언급했던 사례가 바로 GM이었다. 그것도 모두 실패사례로만 다루었다. 실패사례로서 GM이 사람들 입에 오르내린 역사는 길다. 필자가 뉴욕대(New York University) 경영대학원에 다니던 90년대 초에도 이미 GM은 실패를 상징하는 단어와도 같이 취급을 받았다. 당시 최초의 모델을 내놓은 지 얼마 되지 않았던 새턴(Saturn)의 기업홍보영화를 본 적이 있는데, 부모라고 할 수 있는 GM과의 연결을 부정하는 데 거의 전력을 기울이고 있는 것 같아서 흥미로우면서도 씁쓰레하게 느꼈던 기억이 있다. 그리고 우습게도 많은 경영학자들이 새턴의 초창기 성공요인으로 GM과 거리두기에 성공했다는 것을 들었다.


        뉴욕에서의 여러 교수들이 얘기했던 GM 관련 사례들을 돌이키면서 켈로그의 교수에게 물었다. “거의 20년에 가깝게 GM은 놀림감이 될 정도로 경영학자들에게 실패사례의 전형으로 얻어  맞았는데, 어떻게 그다지도 정신을 차리지 못할 수가 있죠?!” 질문을 하는 순간에 ‘미국에 좋은 것이면 GM에 좋은 것이고, 그 반대도 마찬가지이다(What’s good for the country is good for General Motors, and vice versa.)’ 라는 1953년 당시 GM 사장을 맡고 있던 찰리 윌슨(Charlie Wilson)의 유명한 말이 머리 속에서 맴돌았다. 미국 대기업의 고질적인 교만함과 조직의 경직성을 얘기하며 답으로 갈음하지 않을까 싶었다. 역시 질문을 받은 대부분의 교수들이 새로운 환경에 재빨리 대처하지 못하는 복잡한 의사결정과 실행체계, 자유로운 의견 개진이 힘든 딱딱한 조직문화, 부서간의 벽 등으로 대표되는 대조직병과 외부의 얘기에 귀를 기울이지 않고 자신들이 스스로 환경을 만들어 갈 수 있다는 교만함을 이유로 들었다. 가장 대표적으로 나타난 결과가 바로 고유가 시대에 맞춰 소형차 개발에 실패하여 일본차를 비롯한 수입차들이 점유율을 갉아 먹을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 주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GM의 몰락은 1970년대의 오일쇼크로부터 시작되었다고 한다.

 
       그로부터 약 30년이 지난 2007년은 명실상부하게 일본의 토요다(豊田)자동차가 세계 최대의 자동차 기업으로 GM을 제치는 원년이 된다. 오일쇼크 이후 일본 자동차들의 약진이 세계시장에서, 특히 미국시장에서 두드러진 것은 사실이나, 일본 자동차들의 명성이란 JIT(Just-In-Time)이나 간판시스템과 같은 포드자동차와 같이 생산기술에서의 우위가 바탕이 되었다. 거기에 연비를 주요한 구매준거로 따지게 된 소비자들의 변화한 욕구를 맞추게 된 마케팅에서의 경쟁우위도 자연스럽게 따라갔다. 그러나 새로운 경쟁우위요소를 갖추며 90년대말까지 절대적인 시대의 강자로 군림한 것은 일본자동차 기업들이 아니었다.


        브루스 윌리스(Bruce Willis)와 제인 마치(Jane March)가 주연한 1994년 영화 “Color of Night”에서 지금까지 필자에게 가장 인상적인 장면 중의 하나는 헐리우드의 팜므파탈(Femme fatale)적인 관능과 서부 해안을 배경으로 한 도회의 건강한 섹시함을 동시에 간직한 듯한 제인 마치가 차가 무엇이냐고 묻는 브루스 윌리스에게 ‘빨간 BMW’라고 자심감과 자부심이 합쳐진 유혹 가득한 미소를 날리며 대답하는 모습이었다. 그리고 바로 얼마 후 모습을 드러낸 제인 마치의 빨간색 BMW는 제인 마치의 그 서로 모순된 듯한 매력이 어떤 형태인지 그대로 보여 주고 있었다.


        기업들의 영화 PPL을 둘러 싼 경쟁이 요즘처럼 격화되기 전에, “Color of Night”에 나온 제인 마치의 BMW처럼 영화제작자들은 배역을 드러낼 수 있는 소품으로 자동차를 즐겨 썼는데, 가장 많이 쓴 것이 바로 BMW와 벤츠(Benz)였다. 이 두 독일 기업들은 생산기술에서의 전통에 의거한 평가 위에 GM과 같은 가격 피라미드의 틀을 갖춘 것은 물론이고, 감성적으로 사람들이 무엇을 원하는가를 인식하여, 자신의 전체 기업 브랜드에 반영하였다. BMW의 속도감과 그에 따른 운전의 재미와 짜릿함, 벤츠의 감히 범접하기 힘든 품격과 권위는 고객들이 그들의 제품 라인에서 어떤 가격의 자동차를 타든 공유할 수 있게 하였다. BMW의 ‘Ultimate Driving Machine’과 그 뒤를 이은 ’Sheer Driving Pleasure’는 BMW를 운전하며 얻는 그 즐거움 자체를 확실하게 표현하고 있다. 벤츠도 ‘Das Beste, Oder Nicht(최고가 아니면 만들지 않는다)’와 같은 슬로건으로 ‘최고’라는 고객들이 누릴 감성적인 혜택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아주 객관적인 지표라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2007년 발표된 인터브랜드(Interbrand)의 브랜드 가치 순위에서 벤츠는 6위, BMW는 13위에 올라 있다. 토요다가 모든 기업들을 제치고 1위의 자리에 올랐다. 자동차와 같은 고관여 중후장대형 산업의 기업으로는 최초였다. 브랜드를 내세운 절대강자로서 BMW와 벤츠까지 제치고 토요다를 그렇게 최고의 자리로 올린 원동력은 무엇일까?

2009년 10월부터 현대기아차그룹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이노션월드와이드 마케팅본부장으로 재임하고 있음.
역사 및 사회의 제반 모습들을 브랜드적으로 해석하는 데 관심이 많고, 그에 관련한 저서 두 권이 있다. '모든 것은 브랜드로 통한다(사회평론,2002)', '브랜드 마인드(사회평론,2004)'. 학부에서는 중국사를 전공했고, 삼성전자 홍보실을 거쳐, 미국 뉴욕대 경영대학원을 졸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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