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여자, 한번도 알몸으로 포즈를 취한 적이 없어. 수영복 차림으로 카메라 앞에 서기는 해. 그러니까 잘하면 ’물에 젖은 수영복 차림‘ 정도는 실을 수 있을지 모르지.”

“컴퓨터로 사진을 수정하면 어떨까. 수영복을 지워버릴 수 없나?”

“그럼 소송이 벌어질 테고 사태에 책임을 져야겠지.”

“그럼 수영복 차림의 사진중에서 되도록 몸을 많이 노출시킨 걸 골라봐. 이왕이면 속이 조금 비치는 수영복이 물에 촉촉하게 젖어있는 사진으로 말이야.”



‘개미’로 유명한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소설 ‘뇌’에 나오는 잡지사 편집회의 광경입니다. 소설이 아닌 현실, 프랑스가 아닌 국내의 상황은 어떨까요. 얼마 전 신문에 실린 한 장의 사진은 국내 매체의 보도사진 선정 기준도 이와 비슷한 것 아닌가라는 생각을 갖게 했습니다.



경제 섹션에 실린 대문짝만한 사진엔 배꼽과 허벅지를 있는대로 드러낸 비키니 차림의 서양여성들이 CD 모양의 둥근 디스켓 한두 장을 들고 앉거나 서 있더군요. ‘독일 전자제품 매장에서 국내 기업이 개최한 신제품 출시 기념행사에서 선보인 차세대 저장매체’라는 설명이 아니었으면 뭣 때문에 여자들이 아랫배까지 죄다 내놓고 있는지 알 길 없는 사진이었습니다.



사진 속의 여성들은 국내 거리에서 비키니 차림으로 춤추는 신규매장 오픈 이벤트 도우미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외관상 기존 CD와 차이없는 신제품 홍보를 위해 도우미들을 동원한 것이고, 주최측의 의도가 성공한 듯 사진취재단의 카메라에 잡혀 국내 언론에까지 보도된 것일 테지요.



사진은 ‘멀리 독일 베를린에서 벌어진 사실을 그대로 보도한 것뿐’이라고 얘기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이 사진도 가슴 위쪽만 실었다면 전혀 야하지 않았을 겁니다. 제품을 위로 쳐든 손에 들고 있는 만큼 그렇게 해도 제품을 보여주는데는 전혀 문제가 없을 테니까요. 사진은 벗은 모델을 동원한 측과 이들의 전신을 배와 허벅지 중심으로 찍은 취재단, 크게 실은 매체 모두의 같은 목적을 위한 이심전심적 합작품인 듯 보입니다. 일단 눈길을 끌자는.



국내의 활자매체는 오랫동안 노출 정도가 심한 사진을 싣는데 상당히 조심스러웠습니다. 스포츠신문을 제외한 일반 신문에선 특히 그랬지요. 다소 야한 사진은 국제면의 외신사진이 고작이었습니다. 그것도 봄 가을, 파리나 밀라노 뉴욕에서 열리는 패션쇼 장면이나 해외 유명연예인 사진 정도였지요.‘해외화제’라는 이름과 함께. 그것조차 특정부분엔 X자 표시나 모자이크 처리를 해 실었습니다.



그러더니 언제부터인가 스포츠면 사진이 커지면서 국제면 사진을 압도하기(?) 시작했습니다. 테니스선수가 짧디짧은 치마에서 공을 꺼내는 장면, 골프선수가 샷중 배꼽을 노출시킨 장면, 체조선수가 다리를 180도로 벌인 장면, 몸에 짝 달라붙는 옷을 입은 농구선수의 기묘한 포즈, 비키니같은 옷을 입은 높이뛰기 선수의 배와 허벅지 등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사진들이 지면을 차지하는 겁니다.



국제면에서 스포츠면으로 번진 ‘야한 사진’은 이제 지면을 가리지 않습니다. 벗은 모델을 세워놓은 신차 발표회 사진은 물론 제품 발표회라는 이름의 반누드 사진이 곳곳에 등장하지요. 속옷과 수영복 발표회는 말할 것도 없고 선글래스나 구두 행사 모델도 비키니 차림의 요염한 포즈로 시선을 끕니다.



`야한’ 사진은 그래도 낫습니다. 야하다 아니다는 보는 사람에 따라 다를 수 있고, ‘쭉쭉빵빵한’ 여성 사진은 그 의도가 ‘뻔해도’ 아름다울 수 있으니까요.



그러나 고발이라는 이름으로 나오는 ‘끔찍한’ 사진은 어떻게 할른지요. ‘전쟁포로 학대 사진’이라는 이름으로 시체도 아닌 산 사람이 나체로 뒤엉켜 있는 사진, 특정부위가 노출되다시피 한 남자의 사진이 신문 1면에 연속해 실리는 현실을 보는 마음은 착잡하기 그지 없습니다.



경제면의 제품 관련 사진은 무한경쟁시대에 독자의 눈길을 끌기 위한 것이고, 스포츠면의 여자선수 사진은 현장성과 운동성을 최대한 강조하기 위한 것이고, 사건사고나 전쟁관련 사진은 진실보도와 사회고발이란 언론의 본분을 다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른지요.



한 장이 사진이 미치는 파장은 큽니다. 정지된 사진의 힘은 때로 동영상보다 훨씬 강합니다. 시선을 고정시키고 이미지를 각인시키고 결과적으로 사물에 대한 인식에 영향을 미치니까요. 그러나 시각적인 자극에 초점을 맞추다 보면 사건의 진상을 가리거나 중요한 문제를 단순한 화제나 흥미거리로 만들 수도 있습니다.



게다가 사진이 진실만을 말하느냐 하면 그렇지 않습니다. 같은 상황이라도 어디를 어떻게 비추고 잡아내느냐에 따라 전혀 달리 전달될 수 있으니까요. 똑같은 시위나 집회를 찍은 것이라도 긴장한 사람들이 잔뜩 모여있는 장면을 잡아낸 사진을 보면 ‘사태가 컸구나’ 또는 ‘심각했구나’ 라는 느낌을 주지만 몇몇 사람의 얼굴만 확대해 놓으면 무슨 내용인지 알기 어렵습니다.



가족시간대 TV드라마에 프렌치키스도 모자라 남녀가 벗은채 누워있는 신이 버젓이 등장하고 컴퓨터만 켜면 온갖 포르노 동영상이 뜨는 마당에 노출 사진에 대해 이러쿵 저러쿵 하는 것 자체가 구태의연하고 시대착오적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방송과 인터넷이 제아무리 보다 강렬하고 새로운 자극을 제공하려 혈안이 된다 해도, 활자매체에서까지 ‘야하고 끔찍한’ 사진을 자꾸 보게 되는 건 착잡하고 씁쓸합니다.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추세인 듯하지만 말입니다. "뭔 소리냐, 일단 쭉쭉빵빵한 젊은 여자 사진이 나와야 눈길을 끌지" 한다면 제가 무슨 할 말이 있겠습니까만서도.








늦깎이 훈장이 된 글쟁이. 내 인생의 꼭지점이 아직 남아 있겠거니 믿으며 매사 열심히 대드는 철 안든 아줌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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