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꾼




      7년만에 미국 텍사스 댈라스에 출장을 가게 되었다. 클라이언트와 대행사의 업무 관계를 떠나서 "로마인 이야기"를 비롯하여 책과 관련된 얘기를 많이 했던 선배가 댈라스에 있다. 필요한 것을 묻자 역시 좋은 책이나 갖고 오란다. 독서인으로서의 안목을 보겠다는 아주 부담스러운 토를 달면서.




      마음에 두고 있는 책이 몇 권 있었지만, 시간이 없다는 핑계로 주문을 미루다가 결국 마지막 순간 공항서점에서 책을 고르게 되었다. 염두에 두고 있는 책들은 역시나 전혀 찾을 수가 없었다. 탑승 시간은 다가오고 아침운동을 하면서 가지고 다녀 약간 너덜거리기는 하지만 가방에 넣었던 "존 리드 평전"이라도 구차하지만 드려야겠다고 마음을 먹고 나오는 순간에 번쩍 눈에 띄는 책이 있었다. 위화(余華)의 근간 장편소설 "형제(兄弟)"가 세 권 한 묶음으로 작가노트의 별책까지 붙여서 얌전하게 비닐로 포장되어 카운터 옆에 놓여 있었다.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중국작가'로 광고문구에는 씌어 있는데, 한국인뿐만 아니라 중국인을 포함한 전 세계에서 현재소설가로는 가장 많이 팔리고 있는 작가이다. 나는 영화로 먼저 그를 만났다. 2003년 주재원 생활을 마치고 귀임하면서, 이틀을 연수원에 들어가 있었다. 다른 귀임주재원들은 모두 출퇴근을 했는데,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고 싶어서 일부러 연수원으로 들어갔었다. 둘째 날 연수원 도서실에 들러 DVD코너를 둘러보다가 장이모(張藝謀) 감독의 "인생(人生)"을 보는 순간 갑자기 그냥 중국 현대영화가 보고 싶었다. 당시 연수원에 중국 지역 전문가로 나갈 친구들이 들어와서 중국어 공부를 하며 마지막 시험을 앞두고 초조한 모습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그렇게 전전긍긍하는 그네들 사이에서 한껏  여유를 부리고 싶었다. 그러나 영화를 보면서는 시종 가슴이 답답했다.




        하녀의 등에 업혀 도박장만을 오가던 부잣집 도련님의 예정된 몰락이 그가 새롭게 가정에 눈을 돌리고 가장으로서의 책임감을 느끼며 생활비를 벌기 위해 안간힘을 쓰게 되는 것까지는 그럭저럭 가끔씩 미소도 띄울 수 있었다. 그러나 돈을 벌기 위해 그림자극 놀이 공연을 하러 집을 떠났다가 돌아오는 길에 국공내전에 휘말리는 장면부터 본격적으로 한숨이 나오기 시작했다. 인민과 해방군을 위한 그림자극 공연으로 목숨을 부지하기는 하지만 온전한 의미에서의 가정의 행복이란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부지될 수 없음을 보여 준다. 그리고 주인공 주변 인물들의 죽음이 이어진다. 간간이 생활 속에서의 작은 행복을 상징하는 만두가 등장하는가 하면 바로 그 만두를 채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주인공의 가족들이 어처구니없이 세상을 떠난다. 

        

        잔인하다고까지 느껴질 정도로 주인공만을 남기고 모두를 없애 버렸고, 너무나도 무력하기 짝이 없는 민중의 모습을 그렸지만, 영화를 쫓아가며 거역할 수 없이 고개를 끄덕이게 만드는 흐름의 힘이 있었다. 집으로 돌아와서 그 영화의 원작소설이 “활착(活着)” 임을 알았다. 우리말로는 “살아간다는 것”이라고 번역이 되었는데, ‘인생’보다 문자 그대로 힘겹지만 어떻게든 연명하며 나아가는 꿈틀거림이 강하게 느껴진다. 그가 서문에서 썼듯이 ‘사람은 살아가는 것을 위해서 살아가지, 살아가는 것 이외의 그 어떠한 것을 위해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활(活)’과 ‘착(着)’의 글자로서의 묘미를 살리며 이야기로 풀어냈다. 바로 이어서 읽은 “허삼관매혈기(許三觀賣血記)”에서도 과장된 듯하면서도 소설 속의 무대로 등장하는 장강(長江)처럼 구불구불 유장하게 흘러가 독자로 하여금 제동을 걸 여유를 제공하지 않으면서도 긴장감을 놓지 않게 하는 이야기는 계속 되었다. 위화는 그것을 ‘모든 것들이 타래에서 풀려 나오는 새끼줄처럼 이어져 그 길의 끝자락에까지 하나의 이야기로 이어져갔다’고 스스로 표현했다. 어떻게 타래처럼 자연스럽게 얘기를 풀어낼 수 있을까? 역시 작가의 얘기를 직접 들어 보자.




        이런 종류의 이야기가 풀어지는 ‘이런 공간에서 작가가 할 수 있는 일이란 아무것도 없는 법이다. 붓을 놀린 그 순간, 작가는 허구 속의 인물들 역시 자신의 고유한 목소리를 가진 존재라는 사실을 발견하게 되고, 이들의 목소리를 마땅히 존중하여 그 목소리들 스스로 바람 속의 해답을 찾도록 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작가는 결코 자신이 서술하고 있는 세계에 함부로 침입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위화의 위의 얘기를 나는 허구 속의 인물들을 소비자들로, 작가를 마케터로 대체해서 읽었다. 마케터로서 자신의 틀에 맞추어 조사를 기획하고 소비자를 재단하면서 소비자들의 목소리가 사라지는 경우가 많다. 몇 %, 혹은 7점 만점의 몇 점이라는 숫자로만 남게 되는 것이다. 조사를 하면서 스스로 자기비하까지 가지는 않는다고 하더라도 ‘뻔한 결과 확인한다’고 얘기하는 것을 곧잘 듣는다. 왜 뻔한 결과가 될 수밖에 없었는가에 관한 근본적인 고찰은 없이, 조사의 한계만을 되풀이하여 얘기하거나, 자신이 짠 조사의 논리적 틀에 도취, 함몰되어  맹신의 모습을 보이게도 된다.




        다시 한번 위화의 말처럼 ‘인내심과 세심함, 남의 일을 자신의 일처럼 헤아릴 줄 아는 자세를 갖추어야 하고 늘 경청의 태도를 잃지 않으려고 애써야 한다.’ 결국 작가로서 자신의 신분을 용해시켜 스스로를 한 사람의 독자로 위치시키듯이, 마케터로 소비자를 가르치거나 이끈다는 생각을 버리고 한 사람의 소비자로 자신을 동화시켜야 하는 것과 다름이 없는 이야기이다.




        위화는 “허삼관매혈기” 서두 ‘작가의 말’에서 결론으로 다음과 같이 놀라운 고백을 한다. ‘실제로 이 소설의 작가 또한 작품을 완성하고 난 후, 자신이 이 소설에 관해 알고 있는 것이 결코 남보다 많지 않다는 사실을 발견하였던 것이다.’ 자신이 직접 만들어 낸 인물이고 꾸며낸 사건들인데도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이 다른 사람들이 알고 있는 것과 별반 다를 바 없다는 고백은 다른 각도에서 보면 인위적으로 조작하는 단계를 넘어서서 자연스럽게 인물들이 나타나고 캐릭터로서 자리를 굳히고 그에 맞추어 사건들을 만들어 내면서 하나의 소설로 자연스럽게 완성이 된 것이다. 우리 시대 최고의 ‘이야기꾼’이라는 위화에 대한 평가는 그렇게 자신이 애써 만들어 내고자하는 단계를 넘어서면서 나오게 된 것이다.




        그가 바로 이러한 경지에 도달한 것은 아니었다. 초기 형식실험을 추구하는 단편소설을 쓸 때, 그는 신처럼 모든 것을 알고 창조할 수 있다며 소설 속의 인물들을 지배하는 독재자였는데, 장편을 쓰면서 민주주의자로 변했다고 얘기한다. 문득 소설 속 인물들이 자기의 목소리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발견했고, 인물들을 통제하고 지배하는 것을 포기하였다고 한다. 그러니까 인물들이 스스로 길을 가고 말을 하며 이야기를 만들어 간 것이다.




        지금으로부터 딱 30년전 어느 웅변대회에서 심사위원장을 맡은 분이 심사평을 하면서 제대로 웅변을 하는 법에 관하여 한 얘기를 기억한다. 일제시대 일본의 유명한 웅변가가의 말을 빌었는데, 웅변을 하는 사람은 모름지기 청중들을 아무 것도 모르는 개나 소처럼 취급을 하면서, 자신감을 가지고 웅변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자신감도 중요하지만 이는 일방적인 주입식 커뮤니케이션으로 명령과 복종의 관계만이 존재하는 전체주의적인 시대에나 통할 수 있는 태도라고 생각한다. 그런 상황에서는 이야기가 만들어 질 수 없다. 이야기는 말하는 자와 듣는 자가 하나가 되어 대화하고 호흡하며 그 형태가 갖추어 진다. 그런 상호작용이 없는 글이나 웅변은 어느 정도의 감동을 자아낸다고 하더라도 거리감이 느껴질 수밖에 없다.




         제품이나 기업의 브랜드에 이야기(Story)가 있어야 한다는 얘기들을 많이 한다. 브랜드의 이야기는 대개 브랜드의 역사로부터 나온다. 기업들 홈페이지의 회사 소개에서 가장 먼저 나오는 것이 보통 CEO의 인사말이거나 회사의 역사이다. 그런데 ‘연혁(沿革)’이라는 딱딱한 단어 아래, 소비자들에게는 무의미하기 짝이 없는 ‘OOOO년 설립’, ‘XX공장 완공’과 같은 사건만이 연표 속에 나열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읽는 사람들의 마음을 설레게 하고, 호기심을 자아내는 아무런 모티프가 없다. 아주 작고 하찮게 보이는 데서 강력한 흡인력을 끄는 모티프가 나온다. 휴렛팩커드(HP)의 ‘차고(Garage)', 마이크로소프트(Microsoft)는 창업자인 빌 게이츠(Bill Gates)의 하버드 ’중퇴‘와 같은 것들이 바로 이야기를 시작하는 인자로서 작용한다.



        선배에게 책을 건네주기 전까지 초침 소리가 들리는 듯 시간에 쫓기며 읽었던 “형제”의 모티프는 지저분하기 짝이 없는 ‘재래식 화장실’이다. 그 곳에서 여자 엉덩이를 훔쳐보는 부자(父子) 2대(代)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그리고 이야기는 때로는 눙치듯이 때로는 숨 가쁘게, 제 맘대로 희극과 비극을 엮어 가며 흘러간다. 작가인 위화는 그저 우리 독자들 옆에 쭈그리고 앉아서 그 이야기판을 웃음을 터뜨리며 눈물을 뿌리며 박수를 치며 한숨을 쉬며 듣는 것 같았는데, ‘역시 이 시대 최고의 이야기꾼’이란 칭호를 얻는다. 재미있지 않은가?
2009년 10월부터 현대기아차그룹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이노션월드와이드 마케팅본부장으로 재임하고 있음.
역사 및 사회의 제반 모습들을 브랜드적으로 해석하는 데 관심이 많고, 그에 관련한 저서 두 권이 있다. '모든 것은 브랜드로 통한다(사회평론,2002)', '브랜드 마인드(사회평론,2004)'. 학부에서는 중국사를 전공했고, 삼성전자 홍보실을 거쳐, 미국 뉴욕대 경영대학원을 졸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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