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살과 통신의 교차점

 

      7년만에 미국 텍사스(Texas)에 자리한 댈라스(Dallas)를 방문했다. 삼성전자 무선통신의 미국 지역 판매를 맡고 있는 법인이 댈라스에 있어서 1999년초부터 들르기 시작했다. 나중에는 제일기획 사무실을 그 곳에 내기 위하여 사람을 뽑는 인터뷰를 하고, 초기 정착 지원을 위하여 자주 들렀었다. 당시 삼성전자 주재원 한 분이, 힘들게 미국 친구 뽑으려 애 쓸 필요없이 나보고 직접 댈라스로 내려와서 근무를 하라고 열심히 권유를 했다. 회유와 협박의 양면전략을 구사하다가 제대로 되지 않자 나중에 "그래, 텍사스 같은 촌에서는 살기 싫다는 거지!"하면서 농담반진담반으로 언성을 높이기도 했다. 계속 현지에서 채용된 미국 친구들만으로 구성된 제일기획 댈라스 사무소에 올해 초 처음으로 제일기획 본사에서 파견된 주재원 후배 한 친구가 근무를 하고 있다.

 

      강산이 변한다는 10년에 근접하는 기간을 두고 와서인지 공항도 완전히 새롭게 현대식으로 단장을 했다. 공항에서 시내 들어가는 도로변에 공사가 벌어지고 있던 곳이 많았는데, 그 곳들에 우리로 치면 연립주택이나 빌라와 같은 타운하우스 단지들이 들어섰고, 텍사스 강렬한 햇빛 아래 빨랫줄에 널린 옷들이 왠지 더 꼬들꼬들할 것만 같았다. 마중을 나온 후배의 차를 타고 시내로 들어가면서 일상적인 생활을 포함하여 이런저런 얘기를 들어 보니 90년대말부터 팽창일로를 걷던 댈라스가 뭔가 주춤거리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댈라스라는 도시 이름을 들었을 때 미국인들에게 가장 먼저 연상되는 것이 무엇일까? 연령대나 시기에 따라 다르게 나타날 것으로 예상이 된다. 대충 추측을 하자면 40대말 이상, 시기적으로 70년대말까지는 케네디(John F. Kennedy) 대통령 암살이 가장 먼저 나올 것이다. 30대 중반 이후, 80년대로 들어서면 TV 드라마의 새 지평을 열었던 드라마 "댈라스"가 강하게 자리 잡고 있겠다. 그리고 스포츠 관련하여 미국의 진정한 국기(國技)라고 할 수 있는 미식축구에서 미국을 대표하는 팀, 가장 사랑받는 팀이라고 얘기할 수 있는 프로 미식축구팀인 "댈라스 카우보이(Dallas Cowboys)"가 있다. 요즘도 그러한지 모르겠지만 카투사로 근무하던 80년대에는 매년 댈라스 카우보이 팀의 치어리더들이 위문공연을 오곤 했다. 2000년대 들어서는 농구팀인 "댈라스 매버릭스(Dallas Mavericks)"가 우승을 하지는 못했지만 계속 좋은 성적을 올리며 깊은 인상을 심어 주고 있다. 이와 함께 댈라스는 통신 분야의 메카와 같이 떠올랐다. 삼성전자 무선통신도 그렇지만 노키아(Nokia)도 역시 미국 본부를 댈라스에 두고 있고, 다른 많은 첨단 통신 관련 기업들이 댈라스를 근거지로 활동을 벌이고 있고, 댈라스 당국도 케네디 암살이나 댈라스 드라마에서 연유하는 '음모'의 그림자를 떨치고 첨단산업의 이미지를 부각하기 위하여 노력을 하고 있다.

 

      케네디가 총을 맞은 곳에서 걸어서 5분 거리의 호텔에 묶게 되었다. 케네디 암살범으로 지목되었던 '리 하비 오스왈드(Lee Harvey Oswald)'가 몸을 숨기고 있다 케네디를 저격하였다는 건물이 아침 식사를 하는 곳에서 훤히 보였다. 오스왈드가 몸을 웅크리고 있던 6층을 박물관으로 꾸며 놓고 "The Sixth Floor Museum"이라고 명명했는데, 예전에 몇 번이나 들르려고 했다가 이루지 못한 방문의 꿈을 이번에 이룰 수 있었다. 예전에 내가 그 박물관을 가려고 한다는 말을 꺼낼 때마다 사실 댈라스에 있는 주재원들 대부분이 볼만한 것이 거의 없다며 말리곤 했다. 그러나 도착한 날 바로 저녁을 함께 한 선배는 역사서적을 좋아하는 분답게 기록의 복원과 여러 가지 생각할 점을 준다는 점에서 아주 인상적이었다며 강력하게 추천을 해서, 호텔과 가깝다는 지리적 이점에도 힘입어 드디어 그 곳을 방문할 수 있게 되었다.

 

      선배의 말씀대로 당시의 현장을 충실하게 재현해 놓았다. 그리고 사진과 비디오 자료로 시대적 상황과 케네디라는 인물 전반, 암살 사건의 영향 등을 체계적으로 보여 주고 있었다. 그런데 무엇보다도 그 소위 현장에서 오스왈드의 단독범행은 절대로 아니라는 생각이 바로 들었다. 올리버 스톤(Oliver Stone) 감독의 "J.F.K"는 차치하고라도 케네디 암살 당시의 필름과 음모론을 파헤치는 다큐멘터리, 그리고 책들을 통하여 현장의 모습은 낯익은 편이었는데, 실제 그 자리에 서서 보니까 아무리 명사수라고 하더라도 그 짧은 시간에 움직이고 있는 표적에 그렇게 정확하게 3방-암살사건의 공식적인 종합복서라고 할 수 있는 '워렌보고서'에는 3방을 쏘았는데 2이 명중을 했다고 되어 있다. 그런데 2방도 그렇게 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이 비록 전문가는 아니지만, 일정 정도의 총기 훈련을 받은 자의 상식에 입각하여 내가 내린 결론이었다-의 총알을 쏜다는 것은 절대 불가능한 임무였다.

 

      현지 실사(實査), 아니 실사까지 가지 않더라도 현지 관찰이란 것의 중요성을 실감할 수 있었다. 광고회사나 조사회사에서 자주 쓰는 조사방법으로 8~10명의 사람들을 한 장소에서 모셔서 대담을 하며 심층적으로 조사하는 '집단심층면접(Focus Group Interview)'이 있다. 광고회사 담당자의 경우에는 조사회사에서 작성한 주요 결과만을 요약한 보고서를 받아 보거나, 전체 대담을 녹음한 녹취록을 보거나 하는 아주 소극적인 방법으로부터 조사가 진행되는 현장을 들여다 볼 수 있는 일면거울이 설치되어 있는 관찰실에서 보거나, 아예 직접 대담을 진행하는 마더레이터(Moderator)로 나서는 참여도에 따라 여러 가지 형식으로 진행을 한다. 그런데 각각의 방식에 따라 느낌과 얻는 결과에 차이가 많이 난다. 당연히 현장에서 대상자들과 함께 호흡을 맞추며 얘기하는 것이 가장 좋다. 녹취록에서는 같은 단어로 표현이 되었다고 하더라도 사람에 따라 분위기에 따라 다른 의미로 얘기한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1939년 일본과 소련간에 벌어진 노몬한전투 현지를 방문한 일본의 소설가 무라까미 하루끼는 덜컹거리며 모래먼지 일어나는 가도가도 끝이 없을 거만 같은 30Km의 길을 달리고는 어린 시절 교과서를 통해 배웠던 내용을 회상했다. 교과서에는 '일본군들은 군장을 갖추어 30Km의 길을 행군해 갔다'고만 간단히 기술되어 있는데, 그것이 얼마나 무모하고 무자비한 행동이었음을 직접 현지를 답사하며 뒤늦게 느꼈다. 그리고 거기서 나아가 일본의 군국주의 자체의 비인간성과 당시 일본의 경제 형편과 인간에 대한 배려의 부족을 사무치게 느꼈던 것이다. 물론 현장을 본다는 것이 바로 해답을 주는 것으로 연결이 되지는 못한다. 그러나  현장을 제대로 보지 못했을 때 당연한 상식이 잘 포장된 논리의 사슬에 이상하게 꼬여지는 어처구니없는 일들이 발생하곤 한다.
 

      댈라스는 첨단 디지털 기술과 연계하여 자신의 브랜드를 만들고자 노력을 하고 있다. 타지역의 미국인들에게 자신들의 원죄와도 같은 케네디 암살의 기억을 없애고 싶어 한다. 그러나 케네디 암살은 범인이 누구이든 간에 지울 수 없는, 댈라스가 가지고 갈 수 밖에 없는 역사적인 사실이다. 드라마 댈라스의 최고 하이라이트인 주인공 'J.R.유잉(Ewing)'이 총을 맞는 장면 역시 직접적으로 언급을 하지는 않았지만 케네디 암살의 현장인 댈라스와 연결되었기에 더욱 극적이었다. 그래서 암살을 하나의 모티프로 하여 '대통령의 도시'로 댈라스를 만들고자 하는 모습이 엿보였는데, 그와 같은 사실의 인정으로부터 그것을 기반으로 다른 방면으로 확장시키는 노력은 긍정적이었다. 그렇지만 텍사스의 지정학적인 요소로 호전적인 이미지의 특정 인물들과 연결되는 부정적인 측면이 있다. 미국 역사상 가장 유명한 암살사건이 벌어진 고장이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그로부터 테러를 배격하는 평화의 메시지를 전하는 곳으로 이미지를 심어 나가는 것이 설득력이 있지 않을까 싶다. 특히 통신의 메카로 발돋움하면서 테러라는 행위 자체가 소통의 문제에 원인이 있음을 지적한다면 현재의 자산까지도 충분히 이용을 하면서, 평화라는 인류보편적인 가치를 담고 전파할 수 있는 도시로 댈라스라는 브랜드를 만들어 갈 수 있지 않을까 싶다.
2009년 10월부터 현대기아차그룹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이노션월드와이드 마케팅본부장으로 재임하고 있음.
역사 및 사회의 제반 모습들을 브랜드적으로 해석하는 데 관심이 많고, 그에 관련한 저서 두 권이 있다. '모든 것은 브랜드로 통한다(사회평론,2002)', '브랜드 마인드(사회평론,2004)'. 학부에서는 중국사를 전공했고, 삼성전자 홍보실을 거쳐, 미국 뉴욕대 경영대학원을 졸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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