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린턴 전 미국대통령의 회고록 ‘나의 인생’을 두고 르윈스키가 ‘온통 거짓말’이라며 분통을 터뜨렸다고 합니다. 98년 지퍼게이트 사건 당시 자신은 특별검사의 온갖 위협에도 불구하고 클린턴을 보호하려 애썼는데, 클린턴은 회고록에서 ‘미안하다’는 말은커녕 ‘모든 건 르윈스키의 유혹에 의한 실수였다’ ‘너무 힘든 때여서 마귀에 홀렸었다’는 식으로 몰아세우고 뒤집어 씌웠다는 것이지요.



SBS 토크쇼 ‘야심만만’(夜心萬萬․월․밤11시5분)의 주제로 이 대목에 대한 남녀의 생각을 제시하면 어떨까요. 남자들에겐 ‘내가 클린턴이라면 어떻게 썼을까’, 여자들에겐 ‘내가 르윈스키라면 어떻게 대응할까’를 묻는 식으로 말입니다. 답은 알 길 없지만 아마 남자들은 대개 클린턴과 비슷하게 나오지 않을까요. 여자들은 르윈스키처럼 펄펄 뛰고. ‘사랑이 어떻게 변하니’(봄날은 간다)라고 물을 지 모르지만 사랑은 움직이고, 지나간 사랑의 무게가 남녀에게 같은 법은 없으니까요.



SBS에 따르면 ‘야심만만’은 ‘터놓고 이야기하는, 세상에서 가장 솔직한 토크쇼’입니다. 실제 이 쇼의 진행자나 출연자가 내숭을 떠는 경우는 드물지요. 오히려 가끔 ‘저건 너무 심하다’ 싶은 말이 튀어나와 보고 있는 사람을 놀라게 할 정도입니다. 간혹 양희은씨 정도의 중년 연예인이 나오기도 하지만 대부분 20-30대인 출연자들은 남녀에 상관없이 스킨십 키스같은 얘기를 할 때도 전혀 쑥스러워 하지 않습니다. 자신의 경험까지도 스스럼 없이 털어놓지요. 자연히 얘기는 종종 노골적이고 민감해지지만 진행자나 출연자 모두 잘 넘어갑니다.



프로그램은 하나의 주제에 대한 일반의 생각을 10대-40대 남녀 각 5천여명씩 1만여명에 대한 인터넷 설문조사로 알아본 다음 출연자들이 설문 결과 1-5위의 답을 맞추는 동안 자신의 경험담과 에피소드를 털어놓는 방법으로 진행됩니다. 박수홍 강호동이 진행, 김제동이 고정패널을 맡고 이유진이 자주 거들지요. 출연자는 보통 여자 한명을 포함한 4명. 출연자나 진행자의 답이 5위 안에 없으면 머리 위에서 거센 바람이 나와 머리와 옷을 흐트러트립니다. 맞은 사람들이 상당히 곤혹스러워 하는 것으로 봐서 바람은 상당히 센 모양입니다.



주제는 정치 경제 사회 문제와는 상관없는, 애정문제에 관련된 남녀의 심리입니다. 주제에 따라 남녀 모두에게 묻기도 하고, 여자 혹은 남자에게만 묻기도 하지요. ‘연애 초기, 1백일 전에 이렇게 하면 깨진다’ ‘연인이 집에 오게 됐을 때 걱정되는 것’ 등은 모두, ‘여자 친구의 이런 데이트스타일은 마음에 안든다’ ‘이럴 땐 여자가 되고 싶다’는 남자, ‘여자는 이럴 때 남자에게 먼저 키스하고 싶다’ ‘스킨십 후 그 남자가 싫어질 때’는 여자에게 물어보는 것이지요.



답은 순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상식 선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습니다. ‘연애 초기에 깨지게 만드는 요인’ 1위는 ‘사소한 다툼에 헤어지자는 표현을 너무 쉽게 자주 한다’, 2위는 ‘거짓말을 많이 한다’, 3위는 ‘과거 애인 얘기를 자주 하거나 비교한다’ 등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것들이지요. 뿐만 아니라 ‘사랑하기 때문이라며 강제로 스킨십을 하려 든다’가 4위에 들어 있더군요. 인터넷 설문조사에 응한 익명의 응답자들의 ‘솔직성’을 보여준다고나 할까요.



‘여자 친구의 이런 데이트 스타일은 마음에 안든다’에 대한 답 1위는 ‘남자가 뭐든 다 이끌어주기를 바란다’, 2위는 ‘계산은 남자인 네가 다해라’, 3위는 ‘둘이 있을 땐 붙어 있다 아는 사람이 나타나면 딴청 피운다’, 4위는 ‘분위기 찾는다며 비싼 레스토랑에 가자고 한다’, 5위는 ‘자기 편한 시간에만 데이트시간을 잡는다’ 였습니다.



대체로 여자의 이기적인 태도를 불만스러워 하는 것이지만 돈과 관련된 내용이 많은 대목은 데이트비용을 일방적으로 부담하는데 대해 남자들이 얼마나 억울해 하는지, 그런 만큼 백마 탄 왕자님을 원하는 여자들의 생각이 때로 얼마나 터무니없는 것인지 깨우쳐주고도 남습니다. 게다가 6위에 ‘시간을 안지킨다’가 오른 걸 보면 화장을 비롯한 ‘예쁘게 하기’를 핑계로 늦는 여자들의 버릇을 남자들이 얼마나 ‘할 수 없이 참는지’를 알 수 있지요.



대놓고 말하는 데는 여자들도 결코 지지 않습니다. ‘여자는 이럴 때 남자에게 먼저 키스하고 싶다’의 2위는 ‘집 앞에서 헤어질 때 인사 다하고서도 남자가 안가도 서 있을 때’, 3위는 ‘말없이 5초 이상 눈을 마주치고 있을 때’, 4위는 ‘볼을 비볐는데 입술이 살짝 스친 순간’, 5위는 ‘내게 기대 자고 있을 때’, 6위는 ‘나만 사랑한다고 고백했을 때’ 등이었지만, 1위는 ‘어깨에 기댔는데 그 남자의 거친 숨소리가 들려올 때’였습니다.



이쯤 되면 나이든 세대는 잠깐 심호흡을 해야 합니다. 아무리 익명을 전제로 한 인터넷 설문조사 결과라지만 공감을 넘어 당황스러우니까요. 이 프로그램은 이처럼 사람들의 마음을 숨김없이 보여줍니다. 많은 경우 얼굴이 화끈거리면서도 “그렇지” “음, 그렇군” 싶지만 때로 “정말 그런가” 하는 의문을 품게 만들 때도 있지요.



어쨌거나 이 프로그램은 21세기초 대한민국 사람들의 사랑과 성(Sex)에 대한 생각을 드러낸다는 점에서 재미있고 흥미롭습니다. 고정패널로 나오는 김제동의 재치와 말솜씨는 감탄을 자아내고, 준고정패널이랄까 자주 나와 진행자를 거드는 이유진의 솔직함과 감각은 여자 연예인을 다시 생각하게 만들지요. 지난해 3월 시작한 이후 야심한 시각의 토크쇼로 매회 20%이상 높은 시청률을 기록한다는 건 이런 요소들에 기인할 테지요.



그러나 답이 틀리면 쏟아지는 바람에 옷이 젖혀지는 여자 연예인의 가슴을 훔쳐본다며 남자 출연자들이 우우 거리거나 흘끔거리고 대놓고 낄낄 대는 건 아무리 프로그램의 흥을 돋우기 위한 양념거리에 지나지 않는다고 해도 불쾌합니다. 아주 가까운 사람들끼리의 술자리도 아니고 애 어른이 함께 볼 수도 있는 공중파방송의 프로그램에서 그런 식의 태도를 여과없이 내보내는 건 아무리 야심한 시각의 오락프로그램이라도 껄끄럽습니다.

`엿보기와 드러내기’라는 인간의 본능을 최대한 활용하는 프로그램이고 ‘너도 보면서 즐거워 하면서 뭘’이라고 한다면 할 말이 없지만 말입니다. ***




늦깎이 훈장이 된 글쟁이. 내 인생의 꼭지점이 아직 남아 있겠거니 믿으며 매사 열심히 대드는 철 안든 아줌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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