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랜드 남아공의 과거와 미래

 

      실제 거리는 그렇지 않지만 느낌으로는 한국의 대척점인 남미보다도 더 먼 것 같은 남아프리카공화국에 왔다. 지리책에 나온 외국 이름 중의 하나를 넘어서 남아공이 최초로 내 기억에 각인된 것은 1974년 7월초 이른 아침의 라디오 방송을 통해서였다. 등교 준비를 하는데 아나운서의 흥분한 목소리가 홍수환 선수의 세계 타이틀 도전 경기를 전하고 있었다. 14회전부터 중계를 듣기 시작했는데 몇 번이나 다운을 시키고 압도적으로 우세하게 경기를 진행하여 막바지에 이르렀지만 아나운서는 홍수환 선수의 귀에서 계속 피가 흐른다며 심판이 경기를 중단시킬지 모른다 그리고 챔피언의 홈그라운드인 남아공의 더반(Durban)이라 판정이 어떻게 나올지 모른다면서 잔뜩 기대에 부풀었지만 마음을 졸이는 것이 느껴질 정도였다. 판정이 발표되면서 '뉴 챔피언(New champion)!'이란 아나운서의 함성이 들리고 약간은 판에 박은 '국민 여러분~'하는 메시지가 길게 이어졌다. 판에 박은 그 발표를 깬 것이 그 유명한 홍수환 선수 모자(母子)의 "엄마, 나 챔피언 먹었어"와 "그래, 대한민국 만세다"의 대구(對句)였다.

 

      홍수환 선수와 우연히도 같은 날 모스크바에서 열린 차이코프스키 콩쿠르에서 1등이나 진배없는 2등을 한 정명훈의 기사가 그 날 오후의 동아일보 사회면을 정확하게 2등분하였던 것과 홍수환 선수의 귀국 이후 공항에서부터의 카퍼레이드와 대통령께의 인사를 비롯한 환영행사 등등이 아직도 삼삼하게 기억에 남아 있다. 아나운서가 힘써 머나먼 곳이라고 외쳤던 남아공의 더반이라는 지명은 이후 신문에 실린 경기에 대한 후일담에 실린 때 마침 더반에 들러 힘껏 응원했던 원양어선 선원들의 모습과 겹쳐서 머리 속에 새겨졌다. 잘은 모르지만 막연하게 남아공의 항구도시로 복싱 세계타이틀전이 열릴 정도면 남아공의 수도이거나 상당히 큰 도시이겠거니 생각한 것이다.

 

      이후 중학교 때 안성 톨게이트에서 나와서 서울쪽 경부고속도로를 타자마자 도로변에 염소 조형물과 기념탑이 하나 섰다. 남아공의 한국전 참전 기념탑이란다. 남아공은 당시로서는 꽤 큰 규모의 전투비행단을 파견했고, 일부는 당연하게 영국연방 육군에 베속되어 참전했다고 한다. 그런데 장소도 과연 누가 고속도로를 지나다가 들를까 싶게 뜬금 없었고, 70년대 말이라는 시기도 뭔가 느닷없다는 느낌을 주었다. 어찌 보면 남아공이라는 국가에 대해서 내가 가지고 있던 이미지와 어울리는 것도 같았다.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도 남아공은 그렇게 있는 듯 없는 듯 막연한 이미지였을 것이다. 존재하기는 하지만 누가 들르지 않고 지나치는 기념탑처럼, 존재는 하지만 너무 멀어서 있는 듯 없는 듯하게.....

 

      80년대 들어 남아공의 인종차별정책 아파쎄이드(Apartheid)가 국제적인 이슈로 부각이 되면서 남아공은 그리고 넬슨 만델라(Nelson Mandela)라는 이름이 자주는 아니었지만 한국 언론에까지 오르내렸다. 제국주의의 압제에 시달리는 아프리카인들의 삶을 바탕으로 한 프란츠 파농(Franz Fanon)의 저서가 대학생들의 필독서로 자리 잡으면서 남아공의 흑인과 한국의 민중이, 남아공의 백인정권과 한국의 독재정권이 때때로 동일시되기도 하였다. 그리고 90년대로 들어와 아파쎄이드가 종식되고, 긴 유형 생활에서 풀려 나 만델라가 대통령이 되는 극적인 전환이 일어나면서 만델라의 이미지를 한국의 한 정치인에게 투영하려는 시도도 꽤 오랫동안 행해졌다.

 

      이후 사실 만델라는 남아공의 대표적인 아이콘으로 자리를 잡았다. 리처드 브랜드슨(Richard Branson)이 버진그룹(Virgin Group)을 상징하는 것과 거의 같은 정도였다. 남아공 관광청에서 발간한 책에 만델라는 '세계적으로 가장 유명한 남아공의 인물'로 소개가 되고 있다. 현재 남아공은 2010년 축구 월드컵의 개최국가로 곳곳이 그 준비로 바쁜데, 남아공 광고대행사 친구가 들려 주는데 따르면 만델라가 남아공이 월드컵 유치를 성공시키는 데 가장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한다. 말인즉슨 사실 선정위원들이 남아공에 대해서 별로 호의적이지 않았는데, 만델라가 나서서 '나이가 많은 죽을 날이 얼마 남지 않은 자신의 유일한 꿈이 세계인의 축제 월드컵이 남아공에서 열리는 것을 보는 것이다'라는 한 마디에 분위기가 확 바뀌었다고 한다.

 

      인천공항에서 출발하여 싱가포르에서 비행기를 갈아타고 오는 길은 생각보다 길지 않고 비행기에서 밤을 보내고 아침 일찍 쨍쨍한 햇빛 속에 우리 나라 10월에 부는 것과 같은 상쾌한 바다바람을 맞으며 도착하니 쾌적한 느낌까지 들었다. 공항도 비록 공사 중이기는 했지만 전형적인 휴양지의 공항처럼 잘 정리가 되어 있었다. 그러나 바로 공항을 벗어나자마자 대단위(?)로 조성이 되어 있는 문자 그대로 예전의 청계천 뚝방촌이나 해방촌의 피난민촌을 연상시키는 판자촌과 호텔 근처 해변가 언덕 위의 고급 주택들이 대비되는데 브라질이나 멕시코를 연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사실 도시 치안에 관한 한 브라질의 리오나 상파울루, 멕시코시티에 버금간다는 요하네스버그(Johannesburg)의 악명을 워낙 많이 들어서 걱정을 했는데, 옆 좌석의 노신사가 혼자서만 다니지 않으면 괜찮다며 케이프타운(Cape Town)은 안심하고 다녀도 괜찮단다. 그러나 어느 구석에를 가나 아무 일 없이 힐끗 지나가는 행인들을 보며 앉아 있는 흑인들과 머무는 동안 거의 매일 신문 1면을 장식했던 범죄 관련 기사는 노신사의 장담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행동반경을 제약할 수 밖에 없었다.

 

      어느 하루 신문의 1면 헤드라인을 함께 간 미국인 친구와 함께 보고는 안타깝기는 하지만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핵심상층부까지 썩어 빠진 경찰(Police, Rotten to the Core)". 요즘 이렇게 직설적으로 때려 대는 것은 우리 나라의 몇몇 신문이 현 정부나 대통령을 공격할 때를 제외하고는 세계적으로 거의 본 적이 없다. 좋게 얘기하면 투박한 매력이 있고 나쁘게 말하면 지나치게 공격적인데, 사실 이들이 바로 국가로서의 남아공과 그 곳 국민들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이 곳의 백인들의 경우 소수인종으로서 어떻게 당할지 모른다는 잠재적인 두려움과 언제든지 방어체제를 갖추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 지나쳐서 그것이 공격적으로 나타나는 성향이 있는 것 같다. 거의 모든 백인들이 집에 총을 소지하고 있고, '접근하면 쏠거야. 어떤 일이 벌어져도 당신 책임이야' 식의 뉘앙스를 풍기는 'Armed Response'라는 표지가 상당수의 가구나 빌딩 곳곳에 붙어 있다. 흑인들은 공식적으로는 인종차별정책이 폐기되었지만, 백인들과의 빈부격차는 더욱 벌어지고 심리적 장벽은 경제적인 격차와 함께 더욱 높아지고 있다고 느끼면서 작은 일에도 대단히 민감하게 공격적으로 반응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위에서 언급한 남아공 관광청에서 발행한 책자를 보고 놀란 것 중의 하나는 남아공 출신의 노벨상 수상자가 의학, 화학, 문학, 평화상 등 여러 분야에 걸쳐 10명이라고 한다. 물론 몇몇 인물들은 국적이 왔다갔다하여 영국인으로 분류가 되기도 하는데, 뚜렷하게 어떤 기준으로 10명을 제시하였는 지는 확실히 밝히고 있지 않으나, 모두 남아공에서 공식교육의 상당부분을 수행하기는 하였다. 참고로 노벨상을 타지는 못했지만 최초로 심장이식수술을 성공시키고, 의사로는 드물게 연예계 최고 스타 이상의 국제 사교계의 유명인사로 행세했었던 크리스티안 바너드(Christiaan Barnard)도 남아공 출신이다.

 

      남아공 출신의 노벨상 수상자 중에는 흑인도 만델라를 포함하여 3명이 있는데, 모두 평화상 수상자들이다. 우리에게 많이 알려진 투투 대주교와 일찌기 1960년에 수상한 흑인 지도자 루툴리의 경우 남아공의 인종차별정책에 대한 항거에 초점이 있었다면 만델라는 그를 종식시키고 남아공 화합을 이끄는 세계적인 아이콘이 되었다. 그리고 일촉즉발까지는 아니더라도 잠재적으로 언제 폭발할 지 모르는 갈등을 봉합시킨 채 지탱하고 있는 존재이다. 곧 남아공의 내부와 외부 브랜드 커뮤니케이션의 핵심적인 요소인 것이다. 그를 통하여 남아공은 과거의 '차별과 갈등'의 브랜드를 '평화와 화합'의 브랜드로 바꾸어 나갈 수 있었다. 그런데 인물 하나에 의존한 브랜드는 데이브 토마스(Dave Thomas)라는 창업자에게 지나치게 의존하였다가 그가 죽자 바로 침체에 빠져 들기 시작하여 5년이 넘은 지금까지 방향을 제대로 잡지 못하고 있는 웬디스(Wendy's)의 예에서 볼 수 있듯이 대단히 위험하다. 특히 만델라의 경우 워낙 노령인데, 그에게 변고가 생겼을 경우 아직 완전하게 흑백의 살이 붙지 않고 외과봉합수술을 한 실도 빼지 않은 상태의 남아공은 물리적 충돌이 발생하고 심하게는 내전으로 확대될 가능성도 적지 않다.
 

      근래 남아공은 자연 환경과 그에 따른 와인, 해물요리 등의 먹거리와 펭귄을 비롯한 수많은 희귀동물의 서식지를 내세우며 자신들을 홍보하고 관광객을 유인하려 노력하고 있다. 거기에 사하라사막 이남 아프리카 진출의 전진기지로 자신을 자리 매기려 애쓰는데, 아프리카 다른 국가들의 상황이 그런 포지셔닝의 매력을 계속 갉아 먹고 있다. 어쨌든 남아공은 2010년 월드컵을 흑백화합의 결정판이요, 눈부신 자연의 혜택이 서구적인 인프라와 함께 하는 투자 적격지로서 남아공을 알리는 최고의 도구로 활용하려  모든 힘을 경주할 것이다.

       그런데 그들의 내적 실체와 하부 구조는 유감스럽게도 너무나 취약하고, 만델라라는 하나의 브랜드 아이콘에만 지나치게 의존하고 있다. 그리고 만델라라는 아이콘도 정치적인 부분에만 너무 비중이 크게 주어져 있다. 개인적으로는 만델라의 경우 정치계를 넘어서 다양한 분야의 국제적인 유명인사로 연예, 문화, 스포츠계의 인사들과도 자연스럽게 어울리는 모습을 보여 주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근래 특히 각광을 받고 있는 흑인문화의 상징적인 인물로 그를 활용하여 문화국가 남아공의 이미지를 충분히 심을 수 있을 것이다. 또한 그의 나이에 어울리게 남아공의 혜택받은 자연환경을 접목시키는 것도 '화합'을 향하는 남아공 브랜드의 지평을 단순히 흑백의 화합 이상의 인간과 자연의 화합으로 넓힐 수 있다. 어쨌든 인류 전체의 발전과 평화를 위해서도 남아공과 같은 브랜드는 축복이자 축복을 자신을 위해서도 인류를 위해서도 최대한 실현, 확산, 공유시키는 의무를 가지고 있다.
2009년 10월부터 현대기아차그룹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이노션월드와이드 마케팅본부장으로 재임하고 있음.
역사 및 사회의 제반 모습들을 브랜드적으로 해석하는 데 관심이 많고, 그에 관련한 저서 두 권이 있다. '모든 것은 브랜드로 통한다(사회평론,2002)', '브랜드 마인드(사회평론,2004)'. 학부에서는 중국사를 전공했고, 삼성전자 홍보실을 거쳐, 미국 뉴욕대 경영대학원을 졸업했다.

ⓒ 한경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