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란(Egg)'과 '바나나(Banana)'

 

      마틴 롤(Martin Roll)이라고 <Asian Brand Strategy - How Asia Builds Strong Brands>-한국어판으로는 <아시아의 글로벌브랜드>-의 저자로 갑자기 브랜드 세계에 나타난 친구가 있다. 책의 출간 이후 그는 각종 브랜드 관련 컨퍼런스의 강연자로서 이름을 올리더니, 급기야 지난 달 한국 방문을 하면서 스스로 자원하여 제일기획을 방문해 강연을 했다. 강연 직후 점심을 함께 하며 얘기를 나누었고, 바로 브랜드 프로젝트를 함께 진행하지는 못하더라도 마케팅 트렌드 특히 아시아 지역에서의 특수한 점 같은 이슈들에 대해서 계속 정보와 의견을 교환하자고 했다. 그런데 한 달여만에 그가 다시 서울로 다른 강연 준비차 들르게 되며 연락을 하여 만나게 되었다. 이번에는 좀 더 오랜 시간, 멤버도 단출하게 추려서 저녁을 함께 하며 개인적인 신상에 관한 얘기까지 나누었다.

 

      앞으로 아시아 뿐만 아니라 세계 경제에 지금까지 보다 훨씬 큰 변화가 소용돌이처럼 일어날 터이고, 그를 헤쳐 나가기 위해서는 그런 변화의 근원에 저항만 할 것이 아니라 그것을 일정 부분 수용하여야 한다는 말을 그가 하면서 질문을 했다. '한국 기업들의 경우 상당이 배타적인 경향이 있는데, 얼마나 외부의 문화나 영향을 수용할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특히 인적 자원 측면, 바로 경영진의 구성에서 기업의 지배구조부터 시작하여 외국인 전문경영인이 와서 정말 책임있는 자리를 맡을 수 있겠느냐?' 아시아 기업들의 연원과 생리를 잘 알고 있었기에 나온 질문이었다. 그런 만큼 상당히 날이 서있어 누군가는 아주 민감하게 받아 들일 수도 있는 질문이었다.

 

      그의 말에 동의를 하면서 한국 기업들이 이미 외국인 전문가들을 영입하여 경영 일반까지 맡기고 있다는 얘기를 했고, 그 문호는 훨씬 더 넓어질 것이라고 대답했다. 함께 간 친구가 농담조로 '바나나(banana)들이 많이 들어와 있죠'라고 덧붙였다. 그러자 마틴 롤이 자신은 바나나에 반대되는 '계란(egg)'이라고 받으면서 모두들 한바탕 웃음을 터뜨렸다.

 

      분명히 겉 모습과 인종적으로는 황인종인데 미국 사회 나아가 세계의 지배층이라고 자신들이 생각하는 백인들처럼 생각하고 행동하는 무리들을 일컫는 '바나나'라는 말은 보통 경멸조로 오래도록 널리 쓰이고 있다. 비슷하게 흑인인데 백인처럼 말하고 행동하는 경우에는 겉이 까맣고 속에 하얀 크림이 들어간 과자에서 따서 '오레오(Oreo)'라고 부른다. 주로 중남미 계통 인종인데 역시 백인 사회로 들어가려 애를 쓰고 그처럼 보이려 애쓰는 경우에는 '코코넛(Coconut)'이란 단어로 표현한다.

 

      그런데 백인들은 이런 '바나나', '오레오', '코코넛'과 같은 단어들을 거의 쓰지 않는다. 자신들과 같아지려 애써서 몸과 마음을 다 바치면서 달려 오는 사람들에게 굳이 이런 경멸조의 단어들을 써서 부를 필요가 없는 까닭이다. 그리고 상대방에서 잘못 받아들였다가는 인종차별 구설수에 오를 수 있다. 미국 내에서 인구의 수를 떠나 권세와 영향력이란 측면에서 소수인종인 아시아인들과 흑인들, 중남미 계통이 자신들의 사회 테두리 안에서 자신들과 같은 인종에 대하여 손가락질을 하면서 뒤에서 속닥대며 쓰거나, 비슷하게 다른 인종들의 천박함을 공박할 때 주로 쓰이는 것 같다. 그렇게 말한 뒤끝에는 왠지 모르게 질투가 한 움큼 느껴지는 경우가 많다.

 

      아시아인과 함께 어울려 놀고 사고하는 백인들을 가리킨다고 이번에 마틴이 쓴 '계란(egg)'이라는 표현이 이렇게 백인의 입에서 나오는 것을 난 처음 들어 보았다. 이번의 모임에서처럼 누가 '바나나'란 이런 유형에 속한 말을 쓰는 경우에야 어떻게 나올 상황이 되는 말 같은데, 그런 말을 면전에서 쓰기가 예의에 어긋나는 경우가 많고 어쨌든 불쑥 내뱉기가 쉽지 않다. 이 '에그'는 그렇게 쓰이는 경우가 많지도 않고, 경멸적인 뉘앙스가 거의 없다. 그런데 미국의 중국인들은 계란에서 더 세분화하여 우리가 보통 쓰는 한자어로는 '피딴(皮蛋)'이라고 하는 삭힌 오리알을 얘기하는 '천년된 계란(thousand-year-old-egg)'을 아시아인과 어울리려 애를 쓰는 흑인이나 중남미 계통 사람들을 가리키는 단어로 쓴다. 어차피 피부 색깔로부터 유래한 것이기는 하지만, 약간의 부정적인 냄새가 풍긴다. 또 백인인데 흑인과 잘 어울리는 부류를 '담배(cigarette)'라고 부르기도 했다. 거의 '백인 쓰레기'와 비슷한 느낌으로 들린 단어였다. 그런데 이 '시가레트'는 근래 들어서는 흑인문화가 앞서 가는 유행으로 자리매김되면서 예전과 달리 '힙(hip)'하다는 긍정적인 비중이 높아졌다. 그래서 말맛이 떨어져서인지 쓰이는 경우가 많이 줄어든 것 같다.

 

      어떤 단어이든 쓰이는 상황에 따라서 또한 시대에 따라서 의미가 달라지기 마련이다. 그에 따라 사용빈도도 달라질 것이다. 마틴 같은 경우는 나름대로 아시아 브랜드의 전문가를 자처하면서, '에그'라는 표현을 자신의 능력과 경험을 어필하는 수단으로 썼다. 아마도 중국이라는 거대시장을 놓고 치열한 각축이 예상되매, 서구의 브랜드들, 특히 소위 명품 브랜드들을 중심으로 앞으로는 '에그'를 자칭하는 인물들이 그들 브랜드의 대변인으로 많이 나타날 것 같다.
 

      국가와 인종이 혼합되고, 지난 번의 원산지에 관한 글에서 보았듯이 원산지의 영향력도 갈수록 희박해지는 요즘과 같은 상황에 '바나나', '오레오', '에그'과 같은 단어는 부정과 긍정을 떠나 가치중립적 혹은 무가치적인 경향을 띄게 될 것 같다. 그냥 재미삼아 쓰는 말이 되어 갈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가볍게 내뱉었어도, 자신이 어느 하나임을 자처한 순간 그것을 실천할 의무를 갖게 된다. '에그'면 정말 속은 노랗게 만들어야 된다는 얘기이다. 아마도 정작 아시아인들은 자꾸 하얘지려 하는데, 백인이 에그를 자처하고 나선다면 그들에게는 정말 샛노랗기를 강요할 지도 모른다.

 

 "명심해, 마틴!"
2009년 10월부터 현대기아차그룹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이노션월드와이드 마케팅본부장으로 재임하고 있음.
역사 및 사회의 제반 모습들을 브랜드적으로 해석하는 데 관심이 많고, 그에 관련한 저서 두 권이 있다. '모든 것은 브랜드로 통한다(사회평론,2002)', '브랜드 마인드(사회평론,2004)'. 학부에서는 중국사를 전공했고, 삼성전자 홍보실을 거쳐, 미국 뉴욕대 경영대학원을 졸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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