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고판의 추억

 

      어느 날 처가 학교에서 빌려 왔다며 요즘은 보기 힘든 고색창연한 예전 문고판 책을 보며, 약간의 감탄사와 함께 혼잣말을 추임새처럼 한다. "호적은 정말 모범생이야", "어쩜 엄마 말을 이렇게 잘 들을 수 있을까!" 호적(胡適) 생애 전반기의 자서전이라고 할 수 있는 『사십자술(四十自述)』을 차주환 선생이 번역하여 을유문화사에서 1973년에 <을유문고>의 하나로 간행한 것의 1984년판 재판본을 읽고 있었다.

 

※ 호적(胡適)을 중국어로 읽어 '후스'라고, 곽말약(郭沫若)같은 경우도 '궈모뤄' 식으로 표기하는 것이 중국이름의 표기법상 맞다. 그러나 2005년 4월 15일자로 여기에 올린 "명칭과 이미지"란 칼럼에서 리영희 선생의 얘기를 하면서 든 것처럼, 내게도 처음 그들을 접했던 그 느낌이 '후스'나 '궈모뤄'에서는 살아나지 않는다. 그래서 거의 '호적', '곽말약'으로 표기한다.

 

      대학 2학년 때 사학계열에서 동양사학과로 진학하면서 첫 학기에 『사십자술(四十自述)』을 읽은 것으로 기억한다. 그렇다면 1973년의 초판본으로 읽었을 터인데, 정확하게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서점에서 구입하지 않았고 학교 도서관에서 빌리지도 않은 것은 분명하고, 학과 도서실에 엉성하게 꽂혀 있다가 굴러 다니다시피 한 것을 읽었던 것 같다. 정말 4반세기만에 다시 읽는 호적의 『사십자술(四十自述)』은 우선 양복 속주머니에도 들어가는 문고판의 그 크기와 감촉이 마음에 들었다.

 

      예전에는 문고판 책들이 꽤 많았다. 문고판의 개척자이며 대명사인 <삼중당문고>가 대표적이어서,  삼성문화재단에서 나왔던 <삼성문고>와 『사십자술(四十自述)』 번역본이 포함된 <을유문고>도 꽤 읽혔던 것 같은데, 문고판이면 의례 삼중당문고라고 지칭했었다. 대학 시절 매주 금요일마다 서점에서 문고판 한 권을 사는 친구가 있었다. 그렇게 문고판 한 권을 사면 책은 가볍지만 내용은 결코 가볍지 않아, 주말이 든든하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문고판 책들은 주머니 사정이 넉넉하지 않고, 입시와 학과 공부나 생계를 유지하기 위한 힘든 노동과 같은 삶의 다른 것들에 치어서 고급장정본의 그 딱딱함과 무게와 어찌 할 수 없는 거리감에 힘겨워 했던 사람들에게 위안을 주는 존재였다. 그런 인생에서의 문고판을 그린 장정일 시인의 「삼중당문고」란 시를 보자.

 

열다섯 살,
하면 금세 떠오르는 삼중당 문고
150원 했던 삼중당 문고
수업시간에 선생님 몰래, 두터운 교과서 사이에 끼워 읽었던 삼중당 문고
특히 수학시간마다 꺼내 읽은 아슬한 삼중당 문고

(중략)

깨알같이 작은 활자의 삼중당 문고
검은 중학교 교복 호주머니에 꼭 들어맞던 삼중당 문고
쉬는 시간 10분마다 속독으로 읽어내려간 삼중당 문고

 

      중학생으로 열심히 삼중당문고를 읽어댔던 장정일 시인은 약간 조숙했던 편이다. 그러나 고등학생들은 문고판 들고 다니며 몰래 읽는 경우가 많았다. 고등학교 2학년 때 어느 친구가 "네가 지금은 그냥 재미있다며 읽겠지만, 좀 깊게 생각을 하면서 읽으면 다르게 볼 수 있을거야"라는 약간 주눅들게 만드는 말과 함께 하교길에 학교 앞 서점에서 생일선물이라고 사준 책이 삼중당은 아니었지만 문고판으로 나온 『라퐁텐 우화집』이었다. 그 작은 책을 자리에 누워 훌훌 보았는데, 그 친구가 얘기한 것과 같은 다른 점은 어려서 그랬는지 찾지 못했지만, 친구의 우정만은 책과는 대조적으로 크디 크게, 세월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가슴 뿌듯한 무게와 강한 밀도로 느낄 수 있었다.

 

삼성전자에 일하며 읽은 삼중당 문고
문홍서림에 일하며 읽은 삼중당 문고
레코드점 차려놓고 사장이 되어 읽은 삼중당 문고
고등학교 검정고시 학원에 다니며 읽은 삼중당 문고
시공부를 하면서 읽은 삼중당 문고
데뷔하고 읽은 삼중당 문고
시영 물물교환센터에 일하며 읽은 삼중당 문고
박기영 형과 2인 시집을 내고 읽은 삼중당 문고
계대 불문과 용숙이와 연애하며 잊지 않은 삼중당 문고
쫄랑쫄랑 그녀의 강의실로 쫓아 다니며 읽은 삼중당 문고
여관 가서 읽은 삼중당 문고
아침에 여관에서 나와 짜장면집 식탁 위에 올라앉던 삼중당 문고
앞산 공원 무궁화 휴게실에 일하며 읽은 삼중당 문고
파란만장한 삼중당 문고
너무 오래 되어 곰팡내를 풍기는 삼중당 문고
 

      그렇다. 문고판의 좋은 점은 어디나 들고 다니기가 편하여, 어느 곳이나 가지고 다니며 읽을 수 있는 기동성에 있다. 그래서 문고판에는 언제 어느 상황에서 보았는지 그 추억이 군데군데 묻어 있다. 그리고 책을 읽고 난 후, 눈에 띄지 않게 어느 곳에 자리 잡고 있다 어느 순간에 세월의 먼지와 함께 눈에 띄었을 때 그에 얽힌 추억까지 그 곰팡내로부터 파란만장하게 불러 일으킨다.
 

      일본인들이야 원래 작게 만드는 데는 정평이 있지만, 일본 근대화의 초기 길목에서도 그렇게 이어령 선생이 '축소지향'이라고 표현했던 것들이 일본적 근대화의 상징물로 나타났다. 바로 협궤(狹軌)열차와 이와나미(岩波)문고가 바로 그것들이다. 일본 철도가 왜 협궤가 되었는지에 대해 정설인지는 모르겠으나, 서구로 철도 시찰을 가서 면밀히 기록했던 일본 친구가 귀국길에 과로로 사망을 했는데 그가 남긴 기록 중의 궤간(軌間) 거리를 안쪽간의 거리로 잰 것을 바깥쪽으로 잰 것으로 착각했다고 하기도 하고, 비슷하게 기차간의 너비를 내부 거리로 잰 것을 외부로 착각하여 좁아졌다는 얘기를 한다. 그러나 일본인의 체구나 당시 시급한 근대화를 위하여 한시라도 빨리 기차를 만들어 운행하여야 한다는 조급한 마음에서 작게 작게 해석하는 것이 훨씬 편했을 것이다. 협궤철도가 일본 근대화의 하드웨어적인 상징물이라면, 소프트웨어는 이와나미 문고판이다. 숱한 서구의 저작물들을 빠르게 습득하도록 하는 첨병의 역할을 하였다. 그리고 단순한 지식 전달의 수단을 넘어서 이와나미 문고판을 들고 다니는 자체가 서구화, 근대화의 지수를 보여 주는 패션 소품의 역할도 했다. 마치 예전의 우리 대학생들이 두꺼운 영어 책들을 끼고 다녔듯이. 이런 데서도 뭔가 성격의 차이가 나타나는 것일까? 지적인 인간으로 자신을 표현하는 도구로서 각각 문고판 번역본과 양장본 대형판본의 원서를 들고 다니는 차이.

 

      거의 자취를 감춘 듯한 문고판이 2000년 이래로 <책세상>을 비롯하여 몇몇 출판사에서 나오고 있어 반갑다. 그런데 컬러판 호화양장지의 21세기 문고판들을 보면서 햇빛 아래서 오래 보다 보면 바싹 구운 김처럼 부스러질 듯한 느낌으로 책장을 넘기기가 조심스러워지고, 안광지배(眼光紙背)가 아닌 양광지배(陽光紙背)를 연출하는 그런 70~80년대의 삼중당문고가 사뭇 그리워지는 것은 너무나 복고적인 상념일까?
2009년 10월부터 현대기아차그룹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이노션월드와이드 마케팅본부장으로 재임하고 있음.
역사 및 사회의 제반 모습들을 브랜드적으로 해석하는 데 관심이 많고, 그에 관련한 저서 두 권이 있다. '모든 것은 브랜드로 통한다(사회평론,2002)', '브랜드 마인드(사회평론,2004)'. 학부에서는 중국사를 전공했고, 삼성전자 홍보실을 거쳐, 미국 뉴욕대 경영대학원을 졸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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