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기상 적절하지 않은 광고

 

      몇 년 전에 뉴욕시를 쓸어 버리는 모습을 묘사한 소니(Sony) 엔터테인먼트의 광고가 있었다. 일반 대중을 상대로 한 광고는 아니었고, B-to-B 형태로 광고계 인사들을 겨냥하여 소니의 새로운 게임과 그로부터 파생된 컨텐트들이 실리는 매체들이 효과가 있으니 광고를 실으라는 메시지를 전한 것으로, 광고 관련 잡지로는 최고의 권위와 영향력을 자랑한다고 할 수 있는 '애드버타이징에이지(Advertising Age)'에서 그 광고를 보았다. 눈이 번쩍 뜨였다. 광고를 잘 만들어서가 아니라, 내가 그 광고를 본 때가 2001년 9·11 직후였던 것이다. 광고대행사와 소니 측에서 얼마나 당황을 했을까 눈에 보이는 듯 했다. 그래도 업계 전문지에 나왔으니 그나마 다행이었으리라.

 

      4월 9일자 애드버타이징에이지를 오늘(4월 19) 아침에 보다가 깜짝 놀랐다. 사진에 보이는 것과 같은 이미지가 크게 실린 광고가 전면으로 실려 있었던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버지니아공대(Virginia Tech University)에서 발생한 여러모로 비극적인 사건과 관련하여 NBC에 배달된 소포에서 나온 총격범의 여러 사진을 놀라움과 씁쓰레함이 어우러진 채 본 직후였던 지라 더욱 그랬다.
 


 

      미국의 여성전문 케이블 채널인 '위티비(We TV)' 광고의 일환으로, 채널의 대표적인 인기 프로그램인 "Wife Mom Bounty Hunter"를 내세운 것이었다. 'Bounty hunter'는 현상금 사냥꾼을 일컫는다. 주로 서부극에 많이 나오는 인물 유형이다. 마카로니 웨스턴의 대표적인 작품이라고 할 수 있는 "황야의 무법자(A Fistful of Dollars)"의 속편격인 "석양의 건맨(For a Few Dollars More)"의 클린트 이스트우드(Clint Eastwood)가 바로 그 대표적인 인물이다. 그런 서부 영화의 주요 모티프를 미국 중산층의 거주지로 옮겨 왔고, HBO의 인기 드라마로 분명히 송강호의 최신작인 "우아한 세계"에 힌트를 주었다고 생각이 되는 가장으로서의 마피아의 모습을 주로 그린 "소프라노(The Sopranos)"의 설정을 가정주부이자 어머니이고 범죄자를 쫓는 인물로 뒤틀어 놓은 작품이다. 재미있을만한 요소를 두루 갖춘 작품이다.

 

      가정주부로서의 모습을 상징하는 다리미를 왼손에, 오른손에는 터프하게 권총을 들고 경찰 뱃지를 찬 샌드라 스콧(Sandra Scott)의 사진은 드라마의 핵심적인 요소들을 두루 보여 주는 한 장으로 잘 뽑은 이미지이다. 그런데 유감스럽게 전혀 예기치 못한 비극적인 사건이 이 이미지를 그대로 갖고 갈 것인지, 폐기할 것인지 정말 기로로 몰아 넣었다. 시청률만을 생각한다면 이 이미지를 그대로 가지고 가며 화제를 불러 일으키고, 희대의 비극적인 사건과 정면대결을 하는 양상으로 몰고 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다른 한 편으로 미국인의 일상 생활 속에 너무나 손쉽게 가까이 자리를 잡은 총기가 심각한 이슈로 떠오른 지금, 이 사진이 사회적 논란을 불러 일으킬 때 아무리 사회정의를, 일상 생활의 평온을 지키기 위한 자위도구로서 슈퍼우먼이나 알파걸의 현신과도 같은 주부가 손에 쥐고 있는 총기는 광고주들의 지지를 얻기 힘들 것이다.
 

      'Politically incorrect(정치적으로 적절하지 않은)'이란 표현을 요즘 남용하다시피 많이들 쓴다. 한국의 언론 매체에서도 심심치 않게 이 용어를 쓰는 것을 보았다. 보통 의도나 담고자 하는 의미는 정확하고 틀린 것이 아니더라도, 뭔가 민감한 논란을 불러 일으킬 소지가 많은 경우 이 표현을 쓰는데, 이번 광고야말로 프로그램 자체의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명확하고 잘 표현이 되었지만, 정치적으로 옳지도 않고, 무엇보다도 맞는 표현이지는 모르겠지만 'Timingly incorrect(시기상 적절하지 않은)'하다.

 

※ We TV의 원래 이름은 '로맨스 클래식스(Romance Classics)'였다. 꼭 제품 카탈로그를 일컫는 듯한 이름이었는데, 그것을 여성들의, 여성을 위한 즐거움의 제공이란 뜻을 담은 'Women's Entertainment'로 자신들의 브랜드를 더욱 확고히 정립하면서, 앞 철자를 따서 'We'라고 바꾸었다. '우리'의 'We'로 여성들의 공동체까지 연상을 확대시키는 대단히 잘 지은 이름이다.
2009년 10월부터 현대기아차그룹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이노션월드와이드 마케팅본부장으로 재임하고 있음.
역사 및 사회의 제반 모습들을 브랜드적으로 해석하는 데 관심이 많고, 그에 관련한 저서 두 권이 있다. '모든 것은 브랜드로 통한다(사회평론,2002)', '브랜드 마인드(사회평론,2004)'. 학부에서는 중국사를 전공했고, 삼성전자 홍보실을 거쳐, 미국 뉴욕대 경영대학원을 졸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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