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리조나(Arizona) 불립문자(不立文字)

입력 2007-04-15 07:03 수정 2007-04-15 07:03
애리조나(Arizona) 불립문자(不立文字)

 

      며칠 전 한 미국 친구에게 전화를 했다가 통화가 되지 않아서 음성메시지만 남긴 적이 있었는데, 그 친구의 답신이 이메일로 왔다. 아리조나(Arizona)주의 투쏜(Tucson)에 딸과 함께 놀러 와 있는데, 전화 감도가 좋지 않아 좀 괜찮은 곳으로 나오게 되면 전화를 하겠단다. 그 친구에게 답신 이메일을 보냈다.

 

      "투손, 아리조나! 죠죠의 고향에 갔군. 그럼 다음 행선지는 캘리포니아인가

      (Tuson, Arizona! The home of Jo Jo. Is California your next destination)?"

 

      전화가 연결되어 통화를 하며 그 친구가 말했다. "네 메일을 보고 웃음을 멈출 수가 없었어. 그리고는 계속 노래를 흥얼대고 다니니까, 딸 애가 '아빠, 죠죠가 누구에요(Daddy, who is Jo Jo)?'하고 묻는거야!" 그 친구가 흥얼거린 노래는 비틀즈(The Beatles)의 거의 마지막 히트곡이라고 할 수 있는 '겟 백(Get Back)'이었다. 가사가 이렇게 시작되어 흘러간다.

 

Jo Jo was a man who thought he was a loner / But he knew it couldn’t last /

Jo Jo left his home in Tucson, Arizona / For some California grass /

죠죠는 자신을 고독한 사내라 생각했네 / 하지만 오래 지속되지는 않을 것이란 걸 알고 있었지 /

죠죠는 그의 고향인 애리조나주 투손을 떠나 / 캘리포니아 초원으로 갔네 /

 

      그 친구와 나는 둘 다 조용한 '비틀매니어(Beatlemania)였다. 둘 다 노래를 못하고 하는 것을 즐기지도 않는데, 그 친구가 노래방에 갔었던 두 번의 경험에 모두 동참하여 둘이 비틀즈 노래만 몇 곡 불렀었다. 아리조나주의 투쏜이라고 했을 때, 현대차 '투싼'이 바로 떠오를 수도 있고, 콜로라도로 가기는 했지만-거기서도 옮기느냐 마느냐로 현재 말이 많지만-, 아리조나주의 피닉스(Phoenix)를 홈구장으로 했던 다이아몬드 백스(Diamond Backs)에서 맹활약을 보였던 투수 김병현이 연상되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한국가요사를 꿰고 있으면 '아리조나 카우보이'가 콧노래로 나올 수 있다.

 

      특정 사물이나 사건에 대한 연상은 사람에 따라 다를 수 있다. 자신이 생각한 연상항목이 나오지 않는다고 상대방을 타박할 일이 아니다. 그리고 이미 연상하고 있다면 그것을 굳이 주절이 주절이 얘기할 필요가 없다. 내가 그 친구에게 '비틀즈 노래 겟백에 나오는 죠죠의 고향인 투쏜, 애리조나를 말하는 거지? 그 죠죠가 캘리포니아 초원으로 갔다고 노래에서 그러니, 자네도 거기서 캘리포니아로 갈 셈인가?'라고 말한다면 문장이 구차해 보이는 이상으로, 어찌 보면 메일을 받는 그 친구를 무시하는 처사가 될 것이다. 10년 이상의 우정을 쌓았던 그 친구는 내가 자신을 그렇게도 모른단 말인가 생각하며 나에 대해 실망하고 10년간 쌓았던 우정의 실체에 대해서 회의를 하게 될 지도 모른다.

 

      광고에서 이런 일 너무 많이 일어난다. '한국'을 외국에 광고한다고 했을 때, '경제 기적', '올림픽', '2002년 월드컵' 등의 긍정적인 연상이 나오지 않는다고 답답해 하는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 그래서 위의 나름대로 긍정적인 항목이라고 생각하는 것들을 일일이 설명한다. 당연히 광고가 새로움도 없고 재미가 없어진다. 외국인들이라고 해도 대충 알고 있는 얘기들을 시험에 대비하는 것도 아니고 그렇게 설명해 주면 받아 먹고 싶은 생각이 없어진다. 그 사람들이 충분히 알 것이라고 생각하고, 툭 튀겨 줄 팁(Tip)만 제시하면 오히려 자발적인 흥미를 유도하고, 우리가 원하는 긍정적인 연상구조를 그들이 만들어 채워 나갈 수 있다. 전자를 비롯한 첨단 기술 제품이라고 하는 것들일수록 새로운 기술이나 그것이 반영된 새로운 기능에 대하여 상세하고 친절하게 설명하는 광고를 만들기 쉬운데, 많은 경우 광고에 대한, 나아가서 제품에 대한 흥미를 떨어뜨리는 결과를 가져온다.

 

      불립문자(不立文字)! 광고에서도, 특히 요즘과 같이 소비자들이 제품의 개발 과정에서부터 참여하는 프로슈머(Prosumer), 스스로 컨텐츠를 만들고 그를 유포시키는 UCC(User Created Content)의 시대에 광고에서 모든 것을 문자나 그림으로 알려 주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은 버려야 한다. 그런데 사실 그 강박관념은 직접 광고를 만드는 대행사나 제작사 쪽보다는 광고를 의뢰한 광고주 쪽이 더 강하게 가지고 있고, 그것을 대행사나 제작사에 강요하는 경우가 많다. 사실 광고주와 대행사가 불립문자의 관계가 되어야, 소비자들과 불립문자로 소통하는 광고가 나올 수 있다.
 

      대학 시절 스승이신 민두기 선생께서 비교적 젊은 시절에 대만의 교수 한 분을 만나서 이런저런 말씀을 나누시는데, 대만 교수가 자녀들이 있는지 몇 살인지 물었단다. 열 살도 안된 어린 애들 둘이 있다고 답하며 '런쭝(任重)', '책임이 막중하죠'하고 덧붙이니, 그 대만 교수가 바로 '따오위앤(道遠)', '갈 길이 멀군요'하고 맞장구를 쳐서 두 분이 한바탕 웃음을 터뜨렸다고 한다. '임중도원(任重道遠)',  논어(論語)에 나오는 구절이다. 굳이 '논어에 나오는....' 어쩌고 할 필요가 없다. 물론 당시 우리들은 제대로 알아듣지를 못하여 선생님께 제대로 장단을 맞추지 못해, 선생님의 한심스럽고 애처롭게 쏘아 보시는 시선을 견디어야만 했다. 그러나 요즘 소비자들은 그렇지 않다. 대학 시절 우리처럼 선생님의 설명이 필요하지 않다. 이미 알고 있을 뿐만 아니라, 스스로 창조하기도 한다. 그 사실을, 소비자들의 능력을 우리도 알고 있어야겠지만, 광고주에게도 정확히 전달하고 그를 통하여 불립문자로 소통하는 광고를 만드는 일, 정말 꼭 해야 되기는 하지만 갈 길이 막막한 힘든 큰 일이기는 하다.

 

      임중도원(任重道遠)!
2009년 10월부터 현대기아차그룹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이노션월드와이드 마케팅본부장으로 재임하고 있음. 역사 및 사회의 제반 모습들을 브랜드적으로 해석하는 데 관심이 많고, 그에 관련한 저서 두 권이 있다. '모든 것은 브랜드로 통한다(사회평론,2002)', '브랜드 마인드(사회평론,2004)'. 학부에서는 중국사를 전공했고, 삼성전자 홍보실을 거쳐, 미국 뉴욕대 경영대학원을 졸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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