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험 놀이터를 제공하라

 

      100년전에 영국에서 창립되어 1980년대초까지 유럽 전역에서 엄청난 인기를 끈 '메카노(Meccano)'란 장난감이 있다. 레고(Lego)와 비슷하지만 주로 중장비 기계류나 자동차 등의 보다 정교하면서도 무게 있는 조립식 장난감 브랜드로 큰 인기를 얻었다. 미국을 비롯한 서유럽 지방에서 비디오를 이용한 아주 초창기의 컴퓨터 게임이나 레고와 같은 전통적인 조립식 장난감들과 치열하게 경쟁을 하는 제품이었다. 메카노는 동네 장난감 가게들, 우리로 치면 동네 문방구 같은 가게들을 중심으로 입소문을 타고 미국 시장에 알려지기 시작하여, 그 브랜드의 인기에 힘입어 미국에서 가장 큰 장난감 소매점인 '토이즈러스(Toy's Rus)를 독점 유통점으로 삼아 미국 전역으로 진출했다.

 

      유럽의 지방 장난감 기업으로서는 모든 것이 장미빛으로 보였다. 미국 시장이라는 엄청난 무대가 그들의 품 안에 들어 온 것 같았다. 그렇지만 메카노의 밝은 청사진은 채 2년이 지나지 않아, 암울하게 바뀌었다. 토이즈러스 매장에 쌓인 제품들에는 먼지가 앉고, 구석으로 밀려 나가고, 반품들이 되어 가는 악순환이 시작되었다. 그런 악순환이 시작된 가장 큰 이유가 바로 토이즈러스란 유통 채널의 특성에 있었다. 메카노 장난감은 그 매뉴얼이나 기본적인 속성이 레고보다 덜 상세하며 섬세하여 사용자의 상상력을 자극하며 발휘할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완성된 품목들도 남성적인 선이 굵어 육체적인 성취감까지 만족시켜 준다는 것이 상대적인 강점이었다. 그런 장점들을 소비자들이 느끼기 위해서는 그들이 매장에서 직접 제품을 만져 보고, 몇 몇 방법들을 바로 시도해 보며 재미를 스스로 느껴 가는 과정이 절대적으로 필요했다. 그들이 토이즈러스와 독점계약을 맺기 전 이용했던 유통 채널은 주로 전국적인 유통망을 갖추지 않은 동네 장난감 가게들이었다. 당연히 가격은 비쌌지만 대부분의 가게에서 주인을 비롯한 종업원들이 단순하게 메키노 장난감을 소개하는 것을 넘어서, 손님들과 메카노 장난감을 함께 가지고 연구하고 놀면서 그야말로 '체험 마케팅'을 실현했다. 그런 체험의 기회가 대형 장난감 체인인 토이즈러스에서는 제대로 구현되기 힘들었고, 그것이 바로 메카노 같은 성격의 제품에는 치명적인 결과를 가져온 것이었다.

 

      최초의 개인용 PC시대를 열었고, MP3 플레이어의 신기원을 이룩한 아이팟(i-Pod), 근래는 핸드폰까지 진출한다는 애플(Apple Inc.) 컴퓨터의 전시장 겸 매장 역할을 함께 하는 '애플 스토어(Apple Store)'는 실내에 별 장식없이, 밋밋하고 단순한 나무 테이블 위에 제품들을 쭉 진열해 놓았다. 사람들은 아무의 눈치를 볼 필요 없이 자연스럽게 제품들을 만지고 조작을 해 본다. 혹시 궁금한 점이 있거나, 작동에 잘 되지 않으면 항상 주위에 바로 대기 상태 혹은 다른 손님과 얘기하고 있는 도우미들을 부르면 된다. 그런데 도우미 대부분이 실제로 문자 그대로 자원봉사자라고 한다. 그들 자신이 애플 매니어(Apple mania)이라 새로운 애플 제품들을 경험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고, 다른 사람들이 애플 제품들을 사용하는 것을 도와 줌으로써 뿌듯함을 함께 느끼는 것이었다.

 

      대부분의 기업들이 전시장과 판매점을 구분한다. 그런데 매장 자체가 전시장의 역할을 하고, 전시장에서는 매장과 같은 매출이 일어나야 한다. 소비자가 단순하게 매장에서 필요한 물품을 산다는 이상으로, 내 브랜드나 제품에 대하여 뚜렷한 인상을 가지고 가도록 이끄는 전시장의 역할을 하게 만들기 위해서는 매장 내에서 소비자들이 물품을 체험할 기회를 주어야 한다. 그리고 그런 체험이 바로 매출로 연결될 확률이 크다. 개인적인 경험으로 얘기하면, 기본적으로 전시장 성격을 지닌 뉴욕이나 샌프란시스코의 애플 스토어에서처럼 계산대에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서 있는 전자 매장을 본 적이 없다. 두 곳의 매장 모두 근처에 있는 소니(Sony) 전시장과 비교가 되는데, 소니의 전시장도 한 때는 꿈의 전자제품 전시장으로서 구름같이 사람들을 모으던 시절이 있었다. 그런데 그 시절에도 충실하게 제품 전시와 약간의 체험의 기회만을 제공하였지 그것을 매출로 적극적으로 연계하려는 노력은 하지 않았다. 물론 전시와 판매의 두 마리 토끼 사이에서 균형을 잡기는 쉽지 않다. 그런데 그 균형을 잡아 줄 수 있는 요소가 바로 소비자들이 직접 체험할 수 있는 기회를 주고, 그 체험을 계속 가져가고 싶다는 욕구를 불러 일으키는 것이다.
 

      기억이 가물가물할 때, 그 일이 일어났을 때와 비슷한 상황을 만들어 주면 기억을 되살리기가 쉽다고 한다. 그렇게 기억을 되살릴 수 있는, 오래 가게 만드는 가장 확실한 장치 중의 하나가 바로 직접 체험하도록 하는 것이다. 그것도 일방적으로 주는 것을 받아 먹는 듯한 대형 음식매장의 시식(試食)이나 매장 점원의 통제에 따른 체험이 아니라 고객들이 스스로 만져 보면서 궁금증을 내부에서 유발시키고, 매장 점원을 자연스럽게 찾도록 만드는 체험 기회를 주어야 한다. 이것이 바로 매장 점원에 의한 '판매(Selling)'와 소비자가 결정하는 '구매(Purchasing)'의 차이라고 할 수 있다.
2009년 10월부터 현대기아차그룹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이노션월드와이드 마케팅본부장으로 재임하고 있음.
역사 및 사회의 제반 모습들을 브랜드적으로 해석하는 데 관심이 많고, 그에 관련한 저서 두 권이 있다. '모든 것은 브랜드로 통한다(사회평론,2002)', '브랜드 마인드(사회평론,2004)'. 학부에서는 중국사를 전공했고, 삼성전자 홍보실을 거쳐, 미국 뉴욕대 경영대학원을 졸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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