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내커

리커란과 션아오이

예전 이 지면에 썼던 리커란의 <목우도>에서 출발, 보강하여 제일기획 사보에 발표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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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커란과 션아오이

 

요즘 많은 호평을 받는 광고들은 확실히 메시지는 화면 뒤로 숨고, 소비자들로 하여금 숨바꼭질을 하면서 그것을 찾게 만든다. 좋은 말로 하면 생각할 거리를 던져 주고, 소비자들이 나름대로 선택한 경로를 따라서 돌고 돌아 광고가 애써 전달하려 한 의미를 스스로 찾도록 만드는 것이다. 그래서 필자는 광고 얘기를 할 때, 동양화에서의 ‘여백의 미’를 예로 자주 든다. 갤럽과 맥나라마에게 여백이란 숫자 ‘0’으로 인식되겠지만, 실제로 그 여백은 한계가 없이 무한대수까지 담을 수 있는 공간이다.

– 「포스트모더니즘 시대의 광고」, 졸저(拙著) 『브랜드마인드』(2004, 사회평론) 중에서 –

 

※ 갤럽은 여론조사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죠지 갤럽(George Gallop)을, 맥나라마는 수리(數理)의 천재라는 소리를 들으면서 포드(Ford)자동차의 대표를 지내고, 수적으로 나타낸 전력 비교와 전술을 통하여 미국의 베트남 참전과 전쟁 수행을 이끈, J.F 케네디(Kennedy)와 린든 죤슨(Linden B. Johnson)대통령 밑에서 국방장관을 지낸 로버트 맥나라마(Robert McNarama)를 지칭한다.

      

      위의 인용문에서 얘기한 것과 같은 동양화에서의 ‘여백의 미’를 보여 주는 가장 인상적인 작품으로 나는 <그림 1> 리커란(李可染)의 목우도(牧牛圖)를 주로 거론한다. 여기서 작가는 여백의 미를 떠나, 여백으로 실체를 만들어 내는 마술을 부리고 있다. 물 찬 개울을 소들이 콧구멍까지 물에 잠겨 어푸어푸하면서 건너고 있는 정경을, 물을 굳이 그리지 않고도 너무나도 실감나게 표현했다. 엷게 칠한 소잔등이 물 먹은 털과 같은 효과를 주고, 어느새 또 소잔등에 올라 탄 인물의 시선을 따라 매화 가지로 눈이 옮겨진다. 실제로 그 인물의 눈은 보이지 않고 그가 어디를 보고 있는지도 명확하지 않다. 뒤에 따라 오고 있는 소가 걱정되어 보는 것인지, 정말 개울가의 매화를 보는 것인지, 아니면 보이지 않는 언덕에 누가 소리쳐 부르고 있는 것인지, 맘대로 상상하게 만든다. 그런 면에서 이 작품은 내가 생각하는 동양화의 미덕, 곧 ‘무위지위(無爲之爲)’가 기가 막히게 잘 구현되었다. 
 

      광고에서도 사실 이런 꼭 ‘말하지 않아도’, 소비자가 알아서 이해하고 공감하는 그런 광고들이 있다. 강의를 할 때 자주 받는 질문들 중의 대표적인 것들이 ‘어떤 브랜드가 좋은 브랜드냐?’, ‘어떤 광고가 좋은 광고이냐?’하는 브랜드와 광고의 점수를 매기는 문제들이다. 질문도 두리뭉실하고, 시간도 많지 않아 역시 두리뭉실하게 대답하곤 했다. “아주 단순하게 얘기하면, 말이 적은, 카피가 간결한 광고가 보통 좋은 광고이고, 그런 광고를 하는 브랜드들이 좋은 브랜드입니다.” 브랜드가 확실히 서 있으면, 자신감이 뒷받침되고 긴 말 할 필요가 없다. 뭔가 빠진 것이 없나 조바심을 내면서 쓸 데 없는 말이 많아지고, 정말 허접스러워진다. 그리고 없을수록 자꾸 알아줘 달라고 꾸미다 보면 허튼 소리 하게 되고, 그 때문에 또 약점이 잡히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물리학 관련 서적으로는 최고의 베스트 셀러일 “시간의 역사”란 책의 서문에서 저자인 스티븐 호킹 박사는 동료 학자가 물리학 공식이 들어가면 공식 하나마다 독자들이 반으로 줄어들 것이라 해서, 공식을 쓰지 않으려 애를 썼는데, 결국 그 유명한 ‘E=mc2’만은 쓰지 않을 수 없다고 얘기했다. 그리고 이후에 나온 “호두껍질 속의 우주”에서는 ’복잡한 수학 공식 없이도 폭넓은 개념을 전달할 수 있다고 믿는다‘고 확실한 자신감을 피력했다. 공식을 알아야 하지만, 거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면 공식을 공식이 아니게 풀어낼 수 있어야 한다. 물을 그리지 않아도 감상자들이 알아서 물 냄새까지 맡게 만드는 그런 그림이 좋은 그림이다. 광고도 마찬가지이다. 지난한 과제이기는 하지만……


      리커란의 이 작품의 인상이 강하여 족자를 산 것에 덧붙여, 화가에 대해 자세하게 알고 싶어서 리커란의 제자가 쓴 그의 평전과 같은 형식의 『20세기 중국 회화의 거장 리커란 李可染』 (완칭리 지음·문정희 옮김, 시공사, 2003)이란 책을 바로 그 전시장을 나오며 사서 읽었다. 리커란이 산수화에서 나타내고자 한 것은 ‘의경(意景)’이었다. 의경이란 문자 그대로 ‘뜻이나 정(情)을 나타내는 의(意)’와 ‘실제로 보이는 경치(景)’이 함께 어우러진 것을 말한다. 그러한 정과 경의 융합은 ‘객관적인 사물의 정수(精髓)를 집결’한 후, ‘인간의 사상과 감정을 빚고 녹여 만들어 고도의 예술적인 가공을 거쳐’야 한다. 이를 다른 말로 그는 “중국화는 본 것을 표현할 뿐만 아니라, 앎(知)과 생각(想)을 표현’해야 한다고 했다. 이렇게 의경을 표현하기 위한 수단 혹은 단계로 그는 세 가지를 들었다. 가장 핵심적인 부분을 뽑아 내어 선택하는 ‘선재(選材)’, 나쁜 것은 생략해 버리고 좋은 것만 남기는 ‘전재(剪裁)’, 전력을 다하여 주제를 강조하는 ‘과장(誇張)’이 바로 그들이다. 

      이 역시 광고를 하는 근본 및 과정과 다를 바가 없다고 생각한다. ‘객관적인 사물의 정수’와 같은 것으로 보통 ‘과학적’이란 포장을 두른 조사 결과 혹으 ㄴ아니면 그에 덧붙여 제품 개발자 즉 광고주에게 받은 기술상의 특장점 등이 얘기되는데, 거기에 ‘인간의 사상과 감정을 빚고 녹’이지 않으면, 그것은 실제로 보이는 사진으로 찍은 경치처럼 ‘앎과 생각’이 표현되지 않은 제품의 사용설명서나 모형에 지나지 않을 뿐이다. ‘선재, 전재, 과장’에 대해서는 글과 그림의 혼연일체, 상승작용을 느끼며 감상했던 『대장정(大長征)-세상을 뒤흔든 368일-』(웨이웨이(魏巍) 원작ㆍ왕쑤(王蘇) 글ㆍ선야오이(沈堯伊) 그림, 송춘남 옮김, 보리 발행, 2006)의 후기에 나온 ‘그린 이’ 선야오이의 글에 명료하게 설명이 나와 있었다.

 

보편성은 개별성을 통해 드러난다. 홍군 모자의 보편적 형상은 회화 속에 나타나는 구체 인물의 개별적인 특징 속에 체현되어 있다. …주 총사령관이 줄곧 이런 모자만 쓰지는 않는다. 하지만 나는 이런 모자를 씌우면 주 총사령관의 특징을 더 잘 살릴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런 점으로 볼 때 특징을 도드라지게 드러낸다는 것은 사실 예술 수단을 활용하는 중요한 방편이다. 취사선택하고(특징적인 형상을 취하고, 특징이 부족한 형상을 버린다.) 개괄하고(세부 특징과 총체의 관계를 바로 놓는다.) 강조하거나 과장을 해서(특징을 두드러지게 한다. 특히 주요한 특징을 강조한다.) 최종으로 전형에 이른다.

 

      ‘주 총사령관’은 대장정은 물론이고 국공내전 거의 전기간을 통하여 홍군(紅軍), 나중에 인민해방군 총사령관을 지낸 주더(朱德)을 말한다. 봉건 군벌의 수하 장교로 아편에까지 빠졌다가 극적인 인생 전환을 이룬 그의 인생 자체의 드라마틱함과 이후에 풍기는 직위를 넘어선 소탈함과 강인함이 어우러진 그의 특징을 잡아 낼 수 있는 요소는 많이 있다. 굳은 의지를 느끼게 해주는 일자(一字)로 다문 입, 구부정한데도 실제 덩치에 비해 넓어 보이는 어깨, 해진 군복과 그 위에 걸친 지푸라기나 갈대로 만든 우의(雨衣) 등등. 선야오이는 그 중에서 부드럽게 구겨진 주더의 홍군 모자를 주더의 특징을 살릴 수 있는 가장 좋은 요소로 선택한 것이다. 그의 말대로 주더가 대장정 기간 동안에도 항상 그런 모자만 쓴 것은 아니다. 아마 선야오이가 중국을 대혼란으로 몰아 넣었던 문화혁명 때나 그 전에 이 대장정 삽화를 그리고 이런 글을 썼다면, 사회주의적 사실주의에 위배된 작품 활동을 하였다고 비난을 받았을 것이다. 괜히 해진 군복과 군모를 부각함으로써 사회주의의 권위에 도전했다고, 그래서 그 때 많은 경우에 그랬듯이 중국공산당의 명예를 훼손하는 것 이상으로 전복을 꾀하고 있다는 어마어마한 소리를 들었을 지도 모른다. 서두에서 얘기한 것처럼 광고주들에게는 제품과 관련된 제품 안에 내재된 모든 요소들이 하나도 버릴 수 없는 광고에 담아서 알려야 할 특징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버릴 때는, 버려야 할 것은, 버리게 설득하는 것으로부터 광고를 만드는 작업은 시작된다고 할 수 있다.


      선야오이의 말 중에서 특히 ‘세부 특징과 총체의 관계를 바로 놓는다’는 데 주목하고 싶다. 주더의 예에서 그가 주더를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특징으로서 군모를 선택하였다고 하더라도, 그 군모가 대장정에서 그리고 대장정이 상징하는 중국혁명의 어떤 요소와 연결이 되어 있는지가 명확하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 이를테면 군모가 낡았다는 것이 그만큼 서민적인 털털함, 인민과 함께 한다는 것으로 연결이 되어야지, 독특한 스타일의 하나로만 표현이 되어서는 곤란하다. 제품광고를 할 때 이런 난관에 잘 부딪힌다. 아니, 광고를 만든다는 사람들도 스스로 자신이 그런 수렁을 직접 파고 자신을 빠뜨리는 경우를 많이 보았다. 새로운 제품을 두고 ‘경량화(輕量化)’, ‘대형화(大型化)’의 싸움이 일어나는 경우가 많은데, 그렇게 싸움을 하다보면 무엇을 위해, 더 가볍게 만들고, 더 크게 만드는가를 잊고, 그 자체가 목적이 되는 경우를 자주 본다. 그리고 제품 하나에만 몰입하다 보면, 자신의 모기업이 표방하는 것과 배치되는 것을 얘기하게도 된다. 두통약 타이레놀(Tylenol)의 예를 자주 드는데, 타이레놀의 효능은 아스피린보다 떨어지지만 모기업인 존슨앤존슨(Johnson & Johnson)의 부드러운 이미지와 연결시키면서 ‘부작용이 없는 믿을 수 있는 진통제’로 아스피린의 난공불락과 같은 아성을 허물 수 있었다. 부작용이 없다가 선재로 채택한 요소이고, 효능이 떨어진다는 전재된 것이며, 모기업의 이미지가 과장되어 메시지를 강화시켜 주었다. 국내에서는 제품브랜드와 연결되는 기업브랜드에 대해서 제품 담당자들이 유감스럽게도 거의 신경을 쓰지 않는 편이다. 예전 한국의 거대 기업집단과 두통약을 연결하여 본다면 현대는 어쨌든 효능이 빠른, 삼성은 증상에 따라 다르게 복용할 수 있는, LG는 위에 부담을 주지 않는 식의 커뮤니케이션이 어울린다. 그런데 현실은 집중을 하지 않고 모든 얘기들을 한꺼번에 전달하려는 경우가 너무 많다. 그리고 그것이 사실을 가장 잘 반영한 것이라고 압박을 가한다.

 
     황재영이라고 미술대학을 졸업하고 태백탄광촌으로 이주해서 그 곳에서 광부를 하면서 탄광촌 풍경을 그린 화가가 있다. 그의 그림 중에서 거칠고 과장된 필치로 한밤중에 구급차가 싸이렌을 울리며 탄광촌을 질주하는 광경을 그린 것이 있다. 황화백의 선배 한 분이 그 그림을 가지고 탄광촌의 어느 구멍가게 같은 곳에 들어갔는데, 그 그림을 본 주인이 “그림 참 잘 그렸다”며 감탄을 하더란다. 약간 의아해 하는 그 선배에게 가게 주인은, ” 밤중에 탄광에서 사고가 나서 차들이 웽웽거리며 질주를 하면 정말 이렇단 말이요”라고 하더란다. 광부로써 탄광촌에 살았던 황재영 화백이 아니면 그릴 수 없었던 가슴으로 그린 작품이었다.

 
     선야오이의 판화 형식의 그림은 세밀한 사실성에서는 떨어질 지 몰라도, 박재동 선생의 평가처럼 놀랄 정도로 ‘딱 그 사람’을 재현하여 연출했다. 나름대로 숱하게 많이 본 저우언라이(周恩來), 마오쩌둥(毛擇東), 주더의 어떤 사진보다도 선야오이의 투박한 필치의 그림이 그들을 더욱 선명하게 묘사했다. 그리고 그런 인물의 묘사를 통하여 그는 지도적인 인물들과 다른 홍군들의 ‘생명을 바친 그들의 열정이 어디에서 왔는지 그리고 그것이 지금 어디에 있는지, 또 그들이 이루고자 했던 중국과 지금의 중국, 그리고 그렇게 올 수 밖에 없는 이유가 무엇이었는지도 생각하게’ 만들었다. (<그림 2>『대장정-』책에 나온 저우언라이와 주더. <그림 3> 박재동 선생이 같은 형태로 묘사한 홍군의 모습-한겨레신문 혹은 <그림 3. 『대장정-』책에 묘사된 홍군 지도자들의 모습)

 
     보는 이의 감동을 불러 일으키기 위하여 우리가 황재영 화백처럼 탄광촌으로 들어가 탄을 캘 수 없고, 선야오이처럼 6년간 대장정의 궤적을 그대로 답사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러나 열정의 강도만큼은 뒤지지 않게 지닐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 열정은 끊임없는 탐구를 통한 ‘앎’과 성찰을 통한 ‘생각’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그리고 어떤 압력에도 옳은 것을 선택하고 생략할 것은 버릴 줄 아는 용기를 지니고 있으며, 자신만의 우물 속에서 벗어나 더 큰 세상으로 인도하는 길잡이이자 동반자의 역할까지 지니고 나서야 한다.

2009년 10월부터 현대기아차그룹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이노션월드와이드 마케팅본부장으로 재임하고 있음.
역사 및 사회의 제반 모습들을 브랜드적으로 해석하는 데 관심이 많고, 그에 관련한 저서 두 권이 있다. '모든 것은 브랜드로 통한다(사회평론,2002)', '브랜드 마인드(사회평론,2004)'. 학부에서는 중국사를 전공했고, 삼성전자 홍보실을 거쳐, 미국 뉴욕대 경영대학원을 졸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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