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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자도 시청료를 내야 한다

죽은 자도 시청료를 내야 한다

 

      근래 가까운 혈족 중의 하나가 갑자기 사고로 세상을 떠나서 그 뒷처리의 일부를 맡게 되었다. 건조하게 정의를 하자면 기호·편의·필수 서비스에 대한 해지 업무를 맡았다. 이를테면 인터넷, 도시가스, 전화, 핸드폰, 위성방송, 국민연금류 들이다. 어느 친구가 같은 아파트 단지 안에서 움직이는데 끊고, 새로이 설치하고 할 것이 6개나 된다고 난감해 하는 모습을 봤는데, 이을 필요도 없이 완전히 끊기만 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전화나 인터넷만으로 해결되는 것은 거의 없었고, 대부분이 직접 찾아가든지, 추가 서류를 부쳐야만 했다. 전화 응대 태도가 세련되고 친절해져서, 심리적인 부담이 상당 부분 줄기는 했지만, 몇몇 군데에서는 이해하기 힘든 상황이 아직도 일어되고 있었다.

 

      얼핏 외형적인 전화 응대 태도로만 보면 위성방송의 경우가 가장 뛰어났다. 전화 통화가 서비스, 즉 전화 응대의 질을 점검하기 위하여 모니터 될 수 있다는 것도 명확하게 알려 주었고, 상담원까지 어렵지 않게 연결이 되었다. 내가 물어 본 ‘해지’라는 문제는 아마 그들이 전화상담을 통해서 처리해야 하는 것들 중에서 가장 민감한 문제일 것이다. 자신의 이름을 밝히면서 ‘최선을 다해 도와 드리겠다’ 등의 인사말을 상냥하게 읊조린 상담원은 해지를 하려 한다고 하자, 그 이유를 물으면서, 내가 바로 대답을 하지 못하고 어떻게 표현을 해야 할까 약간 머뭇거리는 사이에 가입자가 2009년까지 약정을 하여 16만원 이상의 돈을 일시불로 집어 넣어야만 해지가 된다고 역시 상냥하지만 빠르고 힘있게 밀어 붙였다.

 

        내가 힘들게 가입자가 사망했다는 사실을 알려 주고, 사망한 경우에도 원래의 약정금액을 다 내야만 하는가 물어 보자, 처음으로 머뭇거리는 듯 하더니, 바로 상냥하고 발랄한 듯한 느낌을 주는 리듬과 멜로디를 회복하여, 해지할 경우에는 어쨌든 약정한 금액을 내야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내가 다시 끼여들 틈을 주지 않고, 다른 사람에게 양도하면 약정금액에 대하여 지불하지 않아도 된다고 덧붙였다. 가입자가 사망을 한 경우는 약정기간을 깨려고 한 것이 아니라 불가피하게 시청을 할 수 없는 경우가 생긴 것으로 일반적으로 약정한 기간을 깨는 경우와는 다르지 않느냐고 항의조로 얘기를 하자, 상담자는 다시 새로운 가입자에게 넘기면 약정 해지금액을 지불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앵무새처럼 두 번 되풀이하더니, 지금 얘기한 내용을 해지담당자에게 넘길 터이니 더욱 자세한 것은 그 쪽으로 물어 보라며 나와의 얘기를 끝냈다.

 

      해지 담당자의 얘기도 다르지 않았다. 규정이 그렇게 되어 있어서 약정금액을 낼 수 밖에 없다는 얘기만 아주 친절하고 상냥한 어조로 되풀이하였다. 그들과 이런 통화가 되풀이되면서 그들의 상황이 이해되었다. 그 회사의 고객 전화 응대를 포함한 서비스 태도에 대한 매뉴얼과 교육은 기본적으로 훌륭한 것으로 판단된다. 전화상담원과 직원들의 고객응대태도가 표피적으로는 대단히 훌륭하여 결코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지 않고, 고지식하다고 할 정도로 일관되게 밝고 상냥한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그리고 해지하려는, 즉 자신들을 떠나려는 고객들을 만류하다가 방향을 바꾸어 새로운 고객유치 활동과 연결하는 것도 아주 자연스럽고, 많은 경우에 효력을 발휘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문제는 그 매뉴얼에 혹은 그들의 요금 규정에 그럴 지도 모르겠는데, 가입자가 사망한 경우에 관한 조항은 없는 것 같았다. 그리고 더욱 큰 문제는 직원들이 매뉴얼에 없는 대사는 결코 할 수 없게 교육을 받은 것 같았다. 좋은 말로 감정을 드러내지 않았다고 했는데, 상당히 긴 시간 동안 상담원 그리고 해지 부서의 직원과 네 차례에 걸쳐서 통화를 했는데 가입자, 가입자를 떠나서 통화하고 있는 상대방의 가까운 사람이 사망을 했다는데 어떠한 안타까움이나 위로의 표현이 없었다. 가장 가까운 말이 ‘사정은 이해하는데, 규정상 어쩔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 회사의 사정은 이해하는데 정말 안타까웠다. 창립 때부터 꽤 오랫동안 그 회사의 광고에 우리 회사가 관여를 했고, 한동안은 전략 수립하는 것도 우리 부서에서 담당하고 했는데, 책임감을 느낄 정도로 안타까웠다. 충분히 규정을 이해하고 약정파기에 따른 금액을 지불하겠다고 얘기를 하고, 한 가지 부탁을 했다. “가입자가 사망을 했는데 그 유가족에게 약정파기금액을 내든지, 금액을 내지 않으려면 다른 신규 가입자가 그 약정을 이어 받든지 하라는 규정은 ‘인정(人情)’과 상식에 어긋나고, 기업과 브랜드 이미지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칠 우려가 있으니 꼭 바꾸어야 한다는 얘기를 윗사람에게 꼭 전해 달라.” 이런 경우를 당한 사람으로서가 아니라, 브랜드 마케팅의 전문가로, 그 기업에 대해서 애정을 갖고 있는 사람으로서 얘기한다는 사실을 덧붙였다.

 

      그런데 내 얘기가 금액을 내지 않게 해 달라는 식으로 비추어졌던 것 같다. 다음 날 그 담당자에게 전화가 왔는데, 윗사람도 규정상 어쩔 수 없다고 했단다. 규정을 바꾸어야 한다는 건의를 했느냐는 질문에는 ‘그것도 어쩔 수 없다’고 했다는데, 제대로 얘기하지 못한 것 같았다. 회사 안의 의사소통과 임직원의 제안활동도 활발하지 않은 것으로 판단을 할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해지 담당자가 생각난 듯이 말을 했다. 컨트롤 박스 안에 스마트카드란 것이 있는데, 그것을 반납하여야 한단다. 반납하지 않으면 3만원을 내야 한단다. 망자(亡者)의 짐을 처분하면서 혹시나 해서 컨트롤 박스를 남겨 놓은 것이 다행이었다. 접시안테나는 앞으로 무엇에 쓸 수 있을 지는 모르겠으나, 가입자의 자산이니 보유할 수 있단다. 그런데 해지문의를 하려고 처음 상담원과 통화를 했을 때부터 4~5일이 지난 시점에 처음으로 스마트카드 이야기를 들었다. 내가 통화했던 두 사람이 공통으로 미처 거론하지 못한 실수가 아니라면, 해지하려는 가입자를 잡으려는 마지막 수단이 스마트카드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 씁쓰레했다. 게다가 자신들이 고용한 택배회사에서 직접 방문을 해서 수거해야 하고, 그 비용을 해지하는 가입자가 부담해야 한다는 것은 정말 이해하기가 힘들었다. 그 날 집에 와서 처와 이 얘기를 하며, 자연스럽게 지난 3년간 충실히 보아온 그 서비스를 어떤 난관이 닥쳐도 끊기로 바로 합의했다.

 

      기업을 하든, 브랜드를 하든 기본은 인간이다. 매뉴얼이 두껍고, 교육 시간이 많고, 세부 규정을 외우고 있고, 상냥한 목소리로 응대한다면 고객들이 만족하고 다시 찾을 확률이 더 높은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고객들을 감동시킬 수는 없다. 그런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쪽으로 심해지면 수용하는 고객들이, 마치 백화점 개점 시간에 멋모르고 들어가다가 줄지어 선 매장 점원들의 우렁찬 인사에 당황하듯이, 부담스러워 하기 십상이다. 그리고 인위적인 규정으로는 다양하게 분출하는 고객들의 욕구와 이번 나의 경우와 같은 생각하지도 못했던 상황들에 적절하게 대응할 수 없다. 사실 임직원들 모두가 최소한도의 인간적인 상식을 가지고 있어야 하고, 기업은 그것을 매뉴얼이나 규정으로 통제하는 것이 아니고 발휘될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해 주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경영자의 마인드부터 바뀌어야 한다. 이번의 죽은 자에게서도 군포를 받아 가던 조선시대 후기의 백골징포(白骨徵布)를 연상시키는 규정은 극히 단기적인 수익극대화만을 생각하고 강제하는 경영자의 태도가 부지불식간에 영향을 미쳐 만들고 지속시키고 있는 것이다. 인간을 대상으로만 취급하며 과학과 디지털을 내세우는 ‘인간 경영’이 아닌 인간을 위하고 인간으로부터 출발하고 마무리하는 참다운 ‘인간경영’을 보고 싶다.

 

      이 서글픈 경험담은 정말 쓰고 싶지 않았다. 젊은 나이에 세상을 뜬, 가깝고 소중했던 망자에 대한 그리움과 안타까움만큼이나 그 회사에 대한 노여움과 안타까움이 커서 혹시나 감정적으로만 흐르지 않을까 염려가 되었고, 한쪽에서는 아주 작은 부분이나마 내가 역할을 다하지 못했다는 한스러움과 안타까움이 계속 따로 또 같이 어우러져 나왔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똑같은 이유로 그렇기 때문에 또한 쓰지 않을 수 없었다.

2009년 10월부터 현대기아차그룹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이노션월드와이드 마케팅본부장으로 재임하고 있음.
역사 및 사회의 제반 모습들을 브랜드적으로 해석하는 데 관심이 많고, 그에 관련한 저서 두 권이 있다. '모든 것은 브랜드로 통한다(사회평론,2002)', '브랜드 마인드(사회평론,2004)'. 학부에서는 중국사를 전공했고, 삼성전자 홍보실을 거쳐, 미국 뉴욕대 경영대학원을 졸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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