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일기획 사보 2006년 1월호에 실린 글의 축약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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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의 양과 통찰력의 관계

 

      해마다 10월말 정도부터 서점에는 다음 해의 경제 환경을 예측하는 책들이 사람들의 눈에 가장 잘 띄는 서가로 대거 진출한다. 이들 예측서들은 크게는 국내와 국외의 트렌드나 환경 예측으로 나눌 수 있는데, 국내 중심으로는 경제신문을 중심으로 한 언론사에서 발간한 것들이 있고, 유명 경제연구소들에서도 다투어 출간을 하고 있다. 해외 부문은 예전에는 일본의 미쯔비시경제연구소에서 나온 것이 한창 인기가 있었던 것 같은데, 요즘은 전세계 동시출간 형태로 한국에서는 모경제신문사에서 『세계대전망』이란 제목으로 번역하여 내고 있는 이코노미스트(The Economist)의 예측서가 평정을 한 느낌이다. 한 편으로 근래는 워낙 중장기 트렌드를 정리하고 예측하는 서적들이 많이 출간이 되고 있어서, 이런 정기적인 예측서들의 자리가 위협받고있다는 느낌도 든다. 이외에도 나왔다 싶으면 이미 사라져 버리는 패드(Fad)와 같은 순간적인 현상들을 다루는 책도 부지기수로 나오고 있다.

 

      이러한 예측서들을 1995년부터 일과 관련하여 본격적으로 구입해서 보았다. 기업 브랜드 관련한 일을 담당하면서, 당시로부터 5~10년 후에 사회가, 경제 환경이 어떻게 변할 것인지 예측하여 중장기계획을 세우라는데 그렇게 멀리 나가 있는 것은 고사하고 트렌드란 단어가 타이틀에 들어가 있는 책이 존 나이스비트(John Naisbitt)의 『메가 트렌드』 외에 두서너 권이 겨우 있었다. 그러니 그 몇 권의 트렌드 책과 함께 연말에 쏟아지는 예측서들을 이전의 것들과 함께 비교하는 가운데 나름대로 해답이라고 생각하며, 퍼즐 맞추기를 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런 예측서들도 1997년을 마지막으로 구입하여 보는 것을 그만 두었다. 그 해 10월에 장미빛으로 물든 1998년의 한국 경제 환경에 대한 예측서들을 구입하자마자 IMF체제로 편입되면서, 이들 서적들은 의기양양하게 서가로 진주해 온 것보다 더 빠른 속도로 자취를 감추었다. 잘못된 예측의 전형으로 몇 권 기념 삼아 보관을 하기도 했다. 예측서들을 보지 않고 1998년말을 지낸 후, 1999년부터는 이들 책을 대체하여 인터넷이 트렌드 뿐만 아니라 일을 하는데 주(主)정보원으로서 자리를 잡았다.

 

      인터넷이 회사에 도입된 것은 1996년 초였으나, 1998년 중반까지는 과문한 탓이기도 하겠지만, 자료원으로서 인터넷의 가치는 그리 크지 않았다. 당시까지 나름대로 예전 방식에 인터넷까지 활용하여 브랜드전략에 관한 자료 파일을 만들었는데, 중간 크기 서류 파일 두 개로 충분할 정도였고, 그 알량한 자료들을 복사하여 돌려 가면서 보곤 했다. 그런데 요즘은 관심을 두고 있는 분야가 넓어진 것도 아닌데, 인터넷을 통해 다운받는 자료가 반 년이 채 되기도 전에, 기가(Giga) 단위로 훌쩍훌쩍 넘어 간다. 매일매일 받는 뉴스 클리핑(Clipping) 서비스는 슬쩍 훑어 보지도 못하고 바로 노트북 속의 휴지통으로 들어가는 것이 태반이 넘는다. 그렇게 때마다 버릴 정도로 풍성한 정보 속에서 과연 브랜드나 트렌드에 관하여 더 뛰어난, 혜안으로 가득 찬 보고서나 통찰력(Insight)을 발휘하고 있을까?

 

      한국 한문학자(漢文學者)인 정민(鄭珉) 선생은 정보 홍수 속에 사는 요즘 사람들의 상대적인 사고(思考)의 빈곤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개탄한다.-『책 읽는 소리』(마음산책, 2002) 중에서-

 

'요즈음 아이들은 배우지 않는 과목이 없다. 모르는 것이 없어 묻기만 하면 척척 대답한다. 중학교나 고등학교의 숙제를 보면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어려운 내용들을 다룬다. 어떤 주제를 내밀어도 아이들은 인터넷을 뒤져서 용하게 찾아낸다. 그런데 그 똑똑한 아이들이 정작 스스로 판단하고 제힘으로 할 줄 아는 것은 하나도 없다. 시켜야 하고, 해줘야 한다. 판단 능력은 없이 그저 많은 정보가 내장된 컴퓨터 같다. 그 많은 독서와 정보들은 다만 시험문제를 푸는데 유용할 뿐, 삶의 문제로 내려오면 전혀 무용지물이 되고 만다.'

 

'제 생각조차 옳게 글로 쓰지 못하는 20대의 대학생이나 대학원생들을 보면 혹시 정보량의 증가가 인간의 통찰력과 반비례하는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다.'

 

      사실 책의 권 수로만 따지면 우리는 수백년 전의 내노라 하는 지식인들, 석학보다 훨씬 많은 분량의 책을 읽고, 그만큼 많은 정보에 접하고 있다. '남자라면 모름지기 다섯 수레의 책을 읽어야 한다(男兒須讀五車書)'에서 나오는 '다섯 수레' 분량의 책도 지금이라면 꽤 되겠지만, 죽간(竹簡) 형태인지라 역시 위의 정민 선생에 따르면 현재와 같은 형태의 책으로는 기껏해야 수백권 정도에 지나지 않고, 아마도 그 때 당시까지의 지식의 총량에 가까울 것이라고 한다. 그런데 그 시대의 지식인들은 그 몇 권 되지 않는 책들을 읽고 또 읽으면서 인생 전반의 맥을 짚어 내고, 시대를 뛰어 넘는 트렌드를 발견하는 통찰력을 키우고 발휘했다.

 

      트렌드 예측에 관하여 일반적인 예측서들의 공백을 메워 준 책으로 지금까지 기억에 남고, 가치를 발하고 있는 것은 단 두 권이다. 인터넷도 깔리지 않았던 1995년에 앞으로의 세계의 커뮤니케이션은 어떤 방식으로 변할 것이며, 그 변화가 세계와 사람들의 생활에 초래할 변화는 또한 어떠할 것인지에 대해서 나름대로 틀리건 맞건 생각할 수 있게 인도한 것은 마셜 맥루언(Marshall McLuhan)의 『미디어의 이해: 인간의 확장』이었다. 그리고 한 치 앞을 내다보지 못했던 예측서들을 팽개치고 보낸 1998년 말에는 니콜라스 네그로폰테(Nicholas Negroponte)의 『Being Digital』이 등대와 같은 역할을 했다. 맥루언의 책이 거시적인 측면에서 결과물로서 세계의 변화될 모습과 그 추진동력으로서 커뮤니케이션을 얘기했다면, 후자의 네그로폰테 교수의 책은 그 수단으로서, 그리고 종국에는 우리의 생활과 사고 방식으로서 디지털을 보여 주었다. 『Being Digital』이 출간된 것이 1995년이었고, 그 이후 'N세대'를 비롯한 수 많은 알파벳을 붙인 세대들이 쏟아져 나왔고, '컨버전스(Convergence)', '유비쿼터스(Ubiquitous)', 'UCC' 등의 새로운 시대를 정의한다는 단어들이 난무했지만, 미래 시대의 원리와 철학을 담아서 전달하는 데는 『미디어의 이해: 인간의 확장』, 그 세계의 종합적인 설계도를 보여 주는 데는 『Being Digital』을 넘어서는 책이 없다.

 

      제레미 리프킨(Jeremy Rifkin)의 『유러피언 드림(European Dream)』(민음사, 2005)을 보면 지금으로부터 200년전만 해도 농민이건 도회지 거주자이건 일생 동안 접촉하는 사람이 이삼백명을 넘지 않았을 확률이 높다고 한다. 그런데 우리는 10억명 이상의 사람들과 실시간으로 연결이 되어 있다. 그리고 그 시대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평생동안 접할 수 있는 정보의 양이 뉴욕타임즈 일요일판에 실리는 정보의 양에도 미치지 못할 것이라고 한다. 어떤 자료를 보니 현재 73일마다 전 세계에 존재하는 정보의 양이 2배씩이 된다고 한다. 현재와 비교하여 일 년 후면 정보의 양이 30배 이상으로 증가한다는 얘기이다. 그 엄청난 정보를 우리는 어떻게 처리하고, 우리의 것으로 만들어, 정보의 양에 걸맞는 통찰력을 발휘하고 있을까?

 

      1999년 제일기획 미주법인에 플래닝팀을 만들면서 그 이름을 3I(Information, Intelligence, Insight)팀이라고 이름을 붙였다. 나름의 해석은 있는 그대로의 자료, 선택과 새로운 조합을 통한 정보, 보이지 않는 것을 읽어 내는 통찰력으로 단계적으로 나눈 것이었다. 『미래의 소비자』(에코비즈, 2006)에서는 '자료, 정보, 지식, 통찰력(Data, Information, Knowledge, Insight)'란 용어를 사용하여 약간 다른 분류법으로 다음과 같이 각 단계의 차이를 비유했다.

 

어떤 사람은 가늘고 흰 선과 사각형으로 표시된 땅을 보고 그것 자체로 인식한다(자료). 또 다른 사람은 주차장으로 여긴다(정보). 그러나 이전의 기술(지식)을 가지고 인식력이 있는 과정을 이용하여 이 선들을 읽은 또 다른 사람은 그것의 실제 용도, 즉 축구 경기장(통찰력)임을 알 것이다.
 

      우리가 나름대로 수집하고 분석한 정보라는 창(窓)을 통하여 보고 있는 브랜드는 어떤 것일까? 손톱만큼 밖에 되지 않는 어떤 사실을 보고도 우리는 브랜드의 전체 세계를 파악할 수도 있고, 몇 기가(Giga)의 정보 파일을 쌓아 놓고도 그 브랜드에 관해서 아무 것도 모를 수도 있다. 그냥 정보라는 것만 쌓아 놓고 그 쌓인 것을 보고 흐뭇해 하며 할 일을 다 했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닐까? 정보량의 증가와 인간의 통찰력이 반비례한다는데 또 하나의 사례를 더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2009년 10월부터 현대기아차그룹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이노션월드와이드 마케팅본부장으로 재임하고 있음.
역사 및 사회의 제반 모습들을 브랜드적으로 해석하는 데 관심이 많고, 그에 관련한 저서 두 권이 있다. '모든 것은 브랜드로 통한다(사회평론,2002)', '브랜드 마인드(사회평론,2004)'. 학부에서는 중국사를 전공했고, 삼성전자 홍보실을 거쳐, 미국 뉴욕대 경영대학원을 졸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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