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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여년전 유망주들의 현재 성적표

10여년전 유망주들의 현재 성적표

 

      종합적인 브랜드전략 강의를 위한 커리큘럼을 짜는데 참고가 될까 하여 실로 오랜만에 케빈 레인 켈러(Kevin Lane Keller)의 『Strategic Brand Management』를 서가에서 찾아, 먼지를 털고 목차와 사례들을 중심으로 훑어 보았다.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은 1998년 프렌티스 홀(Prentice Hall)에서 나온 첫  번째 판인데 꼼꼼하게 종합적으로 잘 짜여진 체계에, 당시로서는 신선하기만 했던 수많은 사례들을 담고 있었다. 1년여를 넘게 혼자서 모든 짐을 떠 안은 것처럼 막막한 상태에서 고민만 하고 있다, 이 책을 만나니 정말 고은(高銀) 시인의 ‘첫가을에 백리가 트인다’는 시의 한 구절처럼 눈이 확 트이는 느낌이었다. 동료 친구들과 각 장(章)을 함께 읽어 나가며, 그에 맞는 한국의 사례들을 모아 보자고 의기투합까지 했지만, 결실을 보지 못한 것이 지금까지도 아쉽게 남아 있다. 그래도 2003년 서울에 귀임하여서는 별로 들추어 본 기억이 없지만, 그 이전에는 가장 자주 집어 들고 보았던 브랜드 책이었다.

 

      새로운 커리큘럼도 문제지만, 우선은 회상에 젖어 책의 이 곳 저 곳을 열어 보는데, 글로벌 브랜드 관리를 다룬 장에 있는 여러 브랜드 이름들을 나열한 상자가 눈에 들어 왔다. 『Advertising Age International』 잡지에서 1995년 9월에 「AAI Picks Next Major Marketers」란 제목으로 향후 세계 최고 반열에 들 브랜드 25개를 선정한 것이었다. ‘차세대 지도자’, ‘신인 유망주’하는 식으로 언론 매체에서 가끔 뽑는 것과 비슷한 모양이었다. 책에는 한 브랜드가 빠져서 24개만 실렸는데, 그들과 국가, 제품 업종이 다음과 같이 실려 있었다.

 

Brand(Country)                     Products

Acer(Taiwan)                              Personal computers

Aveda(U.S.)              Hair and skincare products and cosmetics

Body Shop(U.K.)                           Personal care products

BT(U.K.)                                  Telephone services

Compuserve(U.S.)                          Online services

Daewoo(Korea)                             Automobiles

Danone(France)                            Yogurt

Discovery Channel(U.S.)   Satellite-delivered documentary channel

Dr Pepper(U.S.)                           Soft drink

Episode(Hong Kong)                Upmarket women’s apparel chain

Ericsson(Sweden)                          Mobile phones

ESPN(U.S.)                     Satellite-delivered sports network

The Gap(U.S.)                             Apparel

Gateway 2000(U.S.)                  Mail-order personal computers

International Data Group(U.S.)Computer magazine, research, and exhibitions

LG(formerly Goldstar-Korea)               Consumer electronics

Lotus Notes(U.S.)                         Computer software

Marie Claire(France)                    Women’s monthly magazine

Nine West(U.S.)                           Women’s shoes

Orangina(France)                          Soft drink

Planet Hollywood                          Restaurant chain

Samsung(Korea)                            Consumer electronics

Singapore Airlines(Singapore)             Airline

Virgin(U.K.)               Airline, retail, and consumer products

 

      몇몇 브랜드들은 자신이 속했다고 하는 제품 카테고리 정의에서부터 완전 과거형으로 속할 수 밖에 없게 보인다. ‘전화 서비스(Telephone services)’의 BT, ‘온라인 서비스’의 컴퓨서브(Compuserve), ‘컴퓨터 우편 주문 판매(Mail-order personal computers)’의 ‘게이트웨이(Gateway) 2000’같은 것들이 바로 그런 예이다. 당시의 전화는 사람들에게 유선전화로 인식이 되었는데, 유선전화는 이미 오래 전에 포화상태에 이르렀고, 95년이면 무선전화가 본격적인 궤도에 오르기 시작한 시점이었다. 미국의 AT&T도 비슷한 상황에 빠져 있었지만, BT도 과거의 유선전화에 얽매인 이미지를 탈피해야 되는 것이 글로벌 브랜드로의 성장여부를 결정하는 요소였다. BT의 경우 로고도 바꾸고-AT&T도 비슷한 이유로 로고를 바꾸었었다- 여러 가지 노력을 기울였지만, 크게 성공하지 못했다.

      컴퓨서브는 온라인 접속 서비스의 절대 강자였는데, 온라인 접속 서비스라는 카테고리를 실질적으로 창출한 사업자로서 자신들의 비지니스 모델에 관한 확신이 너무 강하여, 약점 그리고 동시에 개선할만한 사항을 발견하지 못하였다. 그런 틈을 AOL이라는 기업이 파고 들어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자신의 고객들을 잠식하고 새로운 고객들을 휘몰아 가는데도, 몇 년 동안이나 자신들의 모델을 그대로 고수하는 고집을 부렸다. 결국 컴퓨서브는 하룻강아지라고 무시했던 AOL에 합병되는 수모를 겪었고, 현재는 AOL의 일개 사업부로 존속하고 있다.

      게이트웨이도 비슷한 과정을 겪었다. 90년대 초반의 게이트웨이는 정말 선풍적이었다. 미국에서의 개인적인 경험과 관찰에 비추어 보면, 91년도에 미국에서 내가 처음 PC를 살 때 게이트웨이는 전혀 고려 대성에 들지도 않았는데, 92년도에는 우편을 통해 싸게 살 수 있는 게이트웨이가 있다는 것이 알려지기 시작했고, 93년도에는 심심치 않게 게이트웨이 컴퓨터를 사는 친구들을 볼 수 있었고, 94년이 되자 대학가에서는 게이트웨이 컴퓨터를 사지 않으면 바보같은 취급을 받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래서 95년부터는 절정기로 치달았다고 할 수 있는데, 그 때는 이미 우편보다 더 앞선 전화를 통한 판매라는 ‘델(Dell)’ 방식이 아주 빠르게 게이트웨이의 시장을 파고 들기 시작한 시점이었다. 델을 애써 무시하면서 게이트웨이는 ‘단일한 시각적 모티브를 통한 통일된 브랜드전략의 전개’라는 측면에서 기념비적인 성과를 만들어 보이기도 했지만, 그런 브랜드의 그래픽적인 면으로 비지니스 방식의 낙후성을 보완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바로 위의 세 가지 사례는 카테고리라는 한 가지 특성을 너무 강조하여 얘기한 측면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카테고리에서의 문제라는 데서 한 꺼풀 더 들어갔을 때 그들은 모두 새로운 변화를 적극적으로 수용하지 못했고, 거기서 더 깊이 들어가면 그 변화를 수용할 수 있을 정도로 브랜드를 넓고 깊게 정의하지 못했다는 점을 발견할 수 있다. 모두가 자신들의 물리적인 속성에 의거한 제품 카테고리나 비지니스 방식을 브랜드로 만들어, 그것이 가져다 주는 지위와 수익에 안주했던 측면이 강했던 것이다. 비슷한 잘못들을 저질렀던 브랜드들은 없는지, 비슷한 경우에 어떻게 극복을 했는지, 95년도의 유망 글로벌 브랜드들이 지난 10년간 어떤 길을 걸어 왔고, 현재의 성적표는 어떠한지 보면서 시사점을 발견해 보기로 하자.(계속)

2009년 10월부터 현대기아차그룹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이노션월드와이드 마케팅본부장으로 재임하고 있음.
역사 및 사회의 제반 모습들을 브랜드적으로 해석하는 데 관심이 많고, 그에 관련한 저서 두 권이 있다. '모든 것은 브랜드로 통한다(사회평론,2002)', '브랜드 마인드(사회평론,2004)'. 학부에서는 중국사를 전공했고, 삼성전자 홍보실을 거쳐, 미국 뉴욕대 경영대학원을 졸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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