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내커

긍정적인 광고

긍정적인 광고

 

      1990년대 중반에 가끔 미국 출장을 함께 다니곤 했던 친구 하나는, 꼭 살 물건이 없어도 시간을 내어 미국의 대형 슈퍼마켓에 들르곤 했다. 기껏 산다고 해도 맥주 여섯 캔이나 들고 나오고 하는데, 매장으로 들어가면 굳이 목표 지점을 찾는 것도 아닌데 우선 전체를 찬찬히 조망해보고 몇몇 매대 사이의 복도를 돌아보곤 했다. 그러면서 자신은 ‘슈퍼마켓에 오면 진정한 미국을 느낀다’고 했다. 한국에 대형 할인점이 생기기 전이니, 한 실내 공간 안에 그렇게 많은 물건들이 쌓여 있는 그 모습이란 누가 무어라 해도 미국의 물질적 풍요를 상징하는 단면이었다. 90년대 중반의 우리가 그랬을진대, 그 때에서 30년전, 지금으로부터 딱 40년전의 김수영 시인에게 비추어진 미국의 물질적 풍요로움이란 어떤 모습이었을까?

 

VOGUE야 넌 잡지가 아냐

섹스가 아냐 유물론도 아냐 선망조차도

아냐-선망이란 어지간히 따라갈 가망성이 있는

상대자에 대한 시기심이 아니냐, 그러니까 너는

선망도 아냐


마룻바닥에 깐 비닐 장판에 구공탄을 떨어뜨려  

탄 자국, 내 구두에 묻은 흙, 변두리의 진흙,

그런 가슴의 죽음의 표식만을 지켜온,  

밑바닥만을 보아온, 빈곤에 마비된 눈에

하늘을 가리켜주는 잡지

VOGUE야

– 김수영, 「VOGUE야」(1967) 중에서 –

 

      아래 연 처음 두 줄에 ‘비닐 장판’, ‘구공탄 자국’, 변두리 진흙’ 등으로 구체적으로 표현된 한국의 가난한 생활과 대비되어 보그(Vogue) 잡지에 그려진 모습은 선망의 대상이 되는 경지까지도 넘어섰다. 여성 모델들도 섹스 어필 여부를 따질 단계를 넘어 섰고, 물질이 어쩌고저쩌고 논리 싸움을 벌이는 것과는 다른 차원에 서 있다. 시인이 도달할 수 없는, 도달할 엄두도 내지 못하는, 다음 연의 ‘밑바닥’과 ‘하늘’의 대비에서 느껴지듯이 도달하려고 하지도 않는 다른 세계를 보그는 상징한다. 그렇게 보그가 잡지가 아닌 별세계가 되는 빈곤에 마비된 시인의 눈에 광고가 제대로 보였을 수가 없었을 것이다. 실제로 우리의 경제 생활 속에서 광고가 차지하는 비중도 극히 작았고, 시인에게는 보인다고 하더라도 애써 외면하고픈 실물경제의 환영(幻影)과 같은 존재였으리라.

 

      이십 년이 흘러 함민복 시인은 광고가 나를 ‘요리’하고, 상품과 ‘합일’시키는 ‘광고의 나라’에 살게 된다. 그에게 광고를 첨병으로 내세운 자본주의의 세계, 소위 실물경제는 조롱의 대상이 되기도 하고, 위압적인 존재로 군림하는가 하면, 끝없는 저항을 불러 일으킨다. 시(詩)까지도 돈으로 그 가치가 매겨지는데, 그는 그렇게 차가워지고 초라해진 시에 따뜻하며 소박한 긍정의 온기를 불어 넣어, 읽는 이의 마음을 푸근하게 해준다.

 

시(詩) 한 편에 삼만 원이면
너무 박하다 싶다가도
쌀이 두 말인데 생각하면
금방 마음이 따뜻한 밥이 되네

시집 한 권에 삼천 원이면
든 공에 비해 헐하다 싶다가도
국밥이 한 그릇인데
내 시집이 국밥 한 그릇만큼
사람들 가슴을 따뜻하게 덥혀줄 수 있을까
생각하면 아직 멀기만 하네

시집이 한 권 팔리면
내게 삼백 원이 돌아온다
박리다 싶다가도
굵은 소금이 한 됫박인데 생각하면
푸른 바다처럼 상할 마음 하나 없네

– 함민복 「긍정적인 밥」(1990) 전문 –

 

      시까지도 가격표를 붙이고, 얼마가 남는가 따지기를 강요하는 사회에서 그는 우리가 흔히 보고 접하기에 하찮게 생각할 수 있으며, 그 가치를 제대로 알지 못하는 우리 생명에 직결되는 쌀, 밥, 소금을 통하여 시의 근본적인 가치를 겸손하게 일깨우고 있다. 이들에게 붙여지는 2만, 3천, 3백과 같은 숫자조차 차디차게 객관화된 숫자가 아니라 마음을 따뜻하게 해주는 훈풍이 더욱 살갑고, 온몸에 달라붙도록 하는 역할을 한다.

 

      광고가 이 사회에서 어떤 역할을 할 것인가, ‘건전한 소비생활의 진작’이라는 표피적인 구호성 발언을 넘어서 사회에, 사회의 발전에, 사람들의 가슴에 어떤 존재로 새겨질 것인가에 대해서 바닥으로부터의 성찰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인지도 몇 %, 호의도 몇 점, 목표고객의 평균 수입 얼마와 같은 숫자들을 머리 속의 질서정연한 표에 배열하고 이리저리 계산하는 이상의, 뜨거운 가슴으로 그들에게 생명력을 불어 넣어야 한다. 그것이 사실은 광고하는 자신에게 생명의 호흡을 불어 넣는 것이다. ‘박하다’고 느끼는 것처럼 사람들이 알아주지 못한다고 섭섭해 하지말고, 얼마나 사람들에게 감동과 실질적인 도움을 주고 있는가를 생각하며, 눈 앞의 성과에 연연하지말고 바다와 같이 멀리 보고, 항상 새로워질 수 있는 푸르름을 유지토록 노력하여야 한다.

2009년 10월부터 현대기아차그룹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이노션월드와이드 마케팅본부장으로 재임하고 있음.
역사 및 사회의 제반 모습들을 브랜드적으로 해석하는 데 관심이 많고, 그에 관련한 저서 두 권이 있다. '모든 것은 브랜드로 통한다(사회평론,2002)', '브랜드 마인드(사회평론,2004)'. 학부에서는 중국사를 전공했고, 삼성전자 홍보실을 거쳐, 미국 뉴욕대 경영대학원을 졸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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