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내커

산업사회의 무서운 꽃, 광고

산업사회의 무서운 꽃, 광고

-함민복의 시에 나타난 광고-

 

      처(妻)가 근래 들어 자주 얘기하던 함민복 시인의 시집을 몇 권 빌려 와, 숙취가 군데군데 묻어 있는 침대 위에서 뒹굴대며 한 권을 집어 들고 읽기 시작했다. 두 번째로 실린 시의 다음 구절에 ‘헛헛’ 가볍게 소리내어 웃었다. 청량리 역전의 이런저런 풍경들을 그린 한 줄 한 줄 중의 하나였다.

 

허리 휜 껌이 다가와 할머니를 이백원에 팔고 감

– 「후보선수」 중에서 –

 

      요즘에도 그런지 모르겠으나, 예전에는 거리에서나 술집이나 식당에서 거의 막무가내로 껌을 파는 사람들이 많았다. 특히 허리 휜 할머니들이 불쑥 내미는 껌들은, 껌마저 힘들어 하는 표정을 짓고 있는 듯 했다. ‘파는 인간과 팔리는 상품’의 일체감이라 표현하기에는 서글픔과 미안함이 껌을 산 연후에도 남아 있었다. 그 미묘함을 ‘파는 인간과 팔리는 상품’의 도치를 통하여 나타낸 표현에 헛웃음이 가볍게 나도 의식하지 못한 새에 나왔던 것이다. 그런데 웃음의 여운이 끝나기도 전에 정말 팔린 것은 할머니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등 뒤로 한 줄기 소름이 지나가고, 뒷골이 오싹해지기까지 하는 그런 전도(轉倒) 현상을 일으키는 첨병으로 그는 광고를 지목한다.

 

열한 가지 특제 양념과

정성으로 여러분을 요리하겠다고

티브이 광고까지 하는

지팡이 들고, 안경 쓰고, 가늘고 검은 넥타이 MAN

– 「켄터키후라이드 치킨 할아버지」 중에서 –

 

      ‘열한 가지 특제 양념과 정성’은 ‘여러분’이란 소비자들을 위한 요리를 위한 것이었는데, 결국 요리되는 것은 소비자이고, 광고는 그런 전도 현상에 사람들이 무감각하도록, 아니 그 쪽으로 이끌려 들어가도록 만드는 기제가 된다. 다른 시에서 그는 ‘제주도 감귤 아가씨, 대구 능금 아가씨’에서 ‘안면도 피조개아가씨’까지 쭉 나열하고, 그런 광고들에 이끌려 들어가 자신도 모르게 먹고 싶다고 느꼈다가 처녀귀신을 본 듯한 두려움에 화들짝 놀란다.

 

영광 굴비아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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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면도 피조개아가씨

 

다 먹고 싶다, 이 맛깔스러운 광고

그러나 인간과 상품이 합일된 놀라운 극치의,

처녀귀신처럼 무서운

– 「자본주의의 메뉴」중에서 –

 

      허구를, 허구를 전하는 광고에 무방비로 노출되면서 광고가 보여 주는 세계와 실제 세계의 구분이 허물어져 버린다. 그리고 그 광고를 전달하는 티브이는 리모컨으로 나에 의해서 작동하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가 나를 작동시키는 리모컨이, 나의 지배자가 되어 버린다.

 

실감한다, 허구의 세계가 또 하나의 허구의 세계를 만들어

두 세계의 벽 허물기를 통해

허구와 실제의 벽 허물기 체험을 무의식에

강요하고 있는 산업사회의 무서운 꽃 광고를. 나는

보기 싫어 리모컨을 누르다 경악한다, 이미 허물어진 벽.

티브이가 리모컨이 되어 내 머리통을 작동시키고 있었구나.

– 「엑셀런트 시네마 티브이·2」 중에서 –

 

      마침내는 이런 광고의 세계를 예찬해야 하는지, 그 앞에 절망하여야 하는지 갈피를 잡지 못하는 자아분열, 환각의 상태에 빠져 버린다.

 

광고의 나라에 살고 싶다

사랑하는 여자와 더불어

아름답고 좋은 것만 가득 찬

저기, 자본의 에덴동산, 자본의 무릉도원

자본의 서방정토, 자본의 개벽세상

(중략)

아아 광고의 나라에 살고 싶다

사랑하는 여자와 더불어

행복과 희망이 가득 찬

절망이 꽃피는, 광고의 나라

– 「광고의 나라」 중에서 –

 

      광고를, 광고 카피를, 광고 슬로건을 ‘자본주의의 시(詩)’라고 표현하는 것을 가끔 본다. ‘자본주의’와 ‘시’라는 어울리지 않는 조합의 연결고리로 광고가 손들고 나서야 하는 것인지 내 스스로에게 물어 본다. 어느 한 시절, 아니 한 시절이라고 표현하기에는 긴긴 세월 동안- 많은 경우 지금까지도- 광고는 손을 들고 나섰고, 그렇게 인정받고 싶어 했다. 광고는 어쩔 수 없이 특정한 시대의 모습을 반영한다는 변명과, 가난 속에 커 왔고 대학 시절 운동을 했다는 시인의 개인사적 배경을 넘어, 우리의 광고란 것은 ‘자본주의의’와 같은 궁색한 수식어가 붙지 않은 진짜 시에서 그렇게 취급될 수 밖에 없게 스스로 만들어 왔던 측면이 크다. 그리고 그 뿌리는 깊다. 조금 더 앞선 시대에 살았던 다른 시인 하나가 생각이 났다. (계속)

2009년 10월부터 현대기아차그룹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이노션월드와이드 마케팅본부장으로 재임하고 있음.
역사 및 사회의 제반 모습들을 브랜드적으로 해석하는 데 관심이 많고, 그에 관련한 저서 두 권이 있다. '모든 것은 브랜드로 통한다(사회평론,2002)', '브랜드 마인드(사회평론,2004)'. 학부에서는 중국사를 전공했고, 삼성전자 홍보실을 거쳐, 미국 뉴욕대 경영대학원을 졸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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