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내커

테이블 3개 짜리 라면집에서 생긴 일

해야 할 일은 많은데 정작 아무 것도 손에 잡히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이유는 여러 가지지요. 무엇부터 해야 할 지 모르거나, 어떤 이유로든 기분이 나빠 일에 집중이 안되거나, 괜스레 심란하고 머리 속이 복잡할 때 등.

오늘 오전 제가 그랬습니다. 풀리지 않고 있는 일 탓에 마음이 영 개운치 않은 터에, 주위에서 툭 던진 사소한 말로 인해 마음까지 상하다 보니 써야 할 글을 한줄도 쓰지 못한채 시간이 흐르고 있었지요.

어느새 점심시간이 됐길래 도저히 안되겠다 싶어 식당에 가는 대신 회사 옆 약현성당으로 향했습니다. 서울시 문화재로 지정돼 있을 만큼 오래 된 약현성당엔 입구에서 성당으로 오르는 큰 길 외에 한쪽 옆쪽으로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히신 과정을 14단계로 나눠 묵상하며 지나가도록 만들어놓은 오솔길이 있습니다.

크고 작은 일로 언짢고 울적할 때 이 길을 따라 천천히 올라가다 보면 마음이 웬만큼 가라앉곤 해 간혹 혼자 걷곤 합니다. 오늘도 제멋대로 핀 풀꽃을 보며 오르다 중간쯤의 순교성지에서 잠시 기도하고, 성당 안 가톨릭서점과 갤러리에 들러 책과 묵주를 보는 동안 우울했던 마음은 다소 가라앉았습니다.

기분이 좀 풀리니 배가 고파지더군요. 점심시간이 거의 지났으니까요. 간단히 라면이나 먹을까 하고 회사 옆 라면집에 갔지요. 테이블이 딱 세 개 있는데 그나마 하나엔 뭔가 놓인 경우가 많아 사실상 두 개나 다름없는 곳이지요.

고개를 빼꼼히 들이미는데 보니까 손님이 두 사람이나 있었습니다. 들어갈까 말까 잠시 망서리는데 먼저 와있던 손님들이 “들어오시라”고 하더군요. 라면을 주문하고 앉았는데 다른 손님들이 뭔가를 맛있게 먹고 있었습니다. 시장에서 장사를 하는 듯한 청년과 40대쯤 돼 보이는 남자였는데 맛있다며 먹는 건 `멸치졸임`이었습니다.

하도 맛있다길래 젓가락을 들어 집어 먹었더니 정말 괜찮았습니다. 싱싱한 생멸치를 파 마늘 풋고추를 넣고 졸였다는데 뼈째 씹히는 게 아삭아삭하면서 꽁치나 고등어졸임과는 또 다른 맛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맛있다”고 했더니 아줌마는 얼른 한 접시 따로 담아주면서 밥도 한공기 퍼줬습니다. “밥과 함께 먹어야 한다”면서요. 물론 라면은 따로 받았지요. 결국 점심은 다소 가볍게 먹으려던 당초 생각과 달리 라면 한그릇과 밥 한그릇을 몽땅 비우는 `사태`가 발생했습니다. 멸치졸임과 함께 내준 열무김치 맛이 또 기가 막혔거든요.

어떻게 하면 열무김치를 맛있게 담을 수 있는지 묻고 있는데 옆에서 멸치졸임을 안주로 소주를 마시던 청년이 잠시 나갔다 들어오더니 검정 비밀봉투를 내놨습니다. “딸기를 좀 사왔으니 씻어서 다같이 먹자”면서요.

딸기를 내놓기 전 아줌마는 또 커피를 한잔씩 줬습니다. 설탕을 하나 넣을까 둘 넣을까 물어가면서요. 저는 라면 한그릇 주문하고 밥 한그릇과 맛있는 생멸치졸임 한접시, 커피에 딸기까지 챙겨먹었지요. 2천원 내구요.

`휴게실`이라는 이름이 붙은 2평이 채 될까말까한 식당을 나서면서 오전 내내 꿀꿀하던 제 기분은 `확` 풀어졌습니다. 작은 식당을 운영하면서도 늘 푸짐한 아줌마와 생전 처음 보는 사람과도 나눠먹자며 딸기를 내놓은 `건강한` 청년의 인심을 대하면서 알량한 자존심 때문에 마음이 상해 있던 제가 “아이구” 싶어졌거든요.

아줌마는 전에도 간혹 들리면 근처 시장통 아줌마들에게 담가놓은 김치를 나눠주기도 하고, 새로 만든 반찬을 먹어보라며 내주기도 했는데 이날도 삼천포에서 가져왔다는 생멸치졸임을 즉석에서 나눠줬던 겁니다.

목이 번듯하다는 이유로 터무니없이 비싼 값을 받거나, 음식맛이 괜찮다고 소문나면 손님 알기를 그야말로 뭣같이 아는 식당 투성이인 마당에 `휴게실`식당 아줌마의 넉넉한 인심과 깔끔한 음식솜씨는 말 한마디에 잔뜩 응어리졌던 제 마음을 풀어주고도 남았습니다.

식당 문을 나서서면서 저는 다시 한번 다짐했습니다. “제발 작은 일에 마음 상하지 말고 넉넉하고 정겨운 마음을 갖자. 아는 사람 모르는 사람, 잘 차려입은 사람 대강 입은 사람 구분하지 말고 만나는 사람 누구에게나 먼저 손내미는, 마음 좋고 그래서 인상도 좋은 아줌마 좀 되자.그러기 위해 매사에 하는 버릇 좀 고치자”구요. 나를 내세우기 시작하면 남이 보일 턱이 없을 테니까요. 당장 잘 실천하긴 어렵다고 해도 애쓰다 보면 조금은 나아지지 않을른지요. 여러분들의 따뜻한 기도를 기다립니다.

35년반의 언론인 생활 끝에 늦깎이 훈장이 된 글쟁이.
나이에 상관없이 지금이 화양연화요, 내 인생의 꼭지점이 아직 남아 있겠거니 믿으며 매사 열심히 대드는 철 안든 아줌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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